공간의 요정
김한민 글.그림 / 세미콜론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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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 책에서 책시사회에 당첨된 책입니다. 베베로즈 사태 이후로 이런 꼭 명확히 표시해야한다고 하더라구요. 암튼 제 돈으로 산 책은 아닙니다. 저는 이런 책은 서서보지 딱히 사보진 않습니다만, 어른동화같은 책이고 의미는 있는 책이라 누가 사는 걸 말릴 생각은 없습니다.
 
암튼 책 후기 들어갑니다. 여기서부터는 반말~

공간의 요정. 요정하면 빨간머리 앤이 떠오른다. 앤이랑 다이애나가 요정 이야기를 하며 오솔길을을 산책하던 그 모습. 나는 그 만화(책이지만, 개인적으로 TV만화가 더 친숙)를 볼 때 이미 요정, 산타할아버지 이런 건 안믿는 나이었지만 앤의 확신에 찬 설명을 들으면 요정이 있는걸까 하고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보며 생각하게 되었다.

요정은 잊고 있었다. 요정말고 신경쓸게 얼마나 많은데 말이야. 너무 오랜만에 요정이라는 단어를 듣는다. 게다가 내가 아는 예쁜 날개달리고 반짝이고 막 그런 아이들과 다는 벌레같이 생긴 요정들이 나왔다. 이게 요정이야? 왠지 요정도 리얼리티 속으로 들어온 것 같기도 하고.

 




공간의 요정은 요정과 인간 사이에서 난 어린이의 순수한 시선을 통해 요정 이야기를 담담하게 이야기 한다. 주인공은 요정을 이미 믿고 있으므로 믿으라는 얘기도 하지 않고 당신은 어떤지 몰라도 나는 이랬거든요. 지금은 요정을 본지 오래됐지만 예전엔 그랬지요 라고 얘기하니, 진짜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시지렁이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이성적 판단을 요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왠지 믿기도 그렇고, 안믿기도 그런 이야기같다.




요정은 공간에 예민하다. 자기가 좋아하는 공간이 아니고서는 살아갈 수도 없고 기분을 생산하지도 못한다. 사람도 그렇다. 내가 좋아하는 공간, 내가 사랑하는 공간에 있으면 좋은 기분이 생긴다. 같은 공간에 있다고 해서 모두 같은 기분은 아니겠지만 말이야. 그런 공간에서 얻는 에너지를 느끼기 위해 나는 여행을 하고 또 근사한 가게들을 찾아다니고 그런 것 같다. 그 공간에 있는 요정이 우리에게 그 기분을 주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요정은 어디있을까? 우리는 요정을, 공간을, 기분을, 사람을 그렇게 조금씩 파괴해버리고 있는 건 아닐까?




책을 처음 받아들었을 때는 또 뻔한 어른동화같은 건가 하고 기대없이 만났는데, 발상이 독특하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도 식상과는 거리가 멀어서 재미있게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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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9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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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워보여서 책을 사놓고도 다른 책들보다는 후순위로 미뤄두고 있었는데 한번 잡으니 페이지는 그냥 넘어간다. 이렇게 글을 쓰는 사람들은 대단하다. 내용이 가벼운 것도 아니고 삶에 대한 이야기를 깊이 있게 다루면서도 독자들을 몰입하게 하는 능력은 놀랍다.

책을 읽는 동안 나다울 수 있는 자유가 없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게 했다. 농담 한마디로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세상. 그러나 그건 굳이 그 농담이 아니었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그가 쥐고 있던 것은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것이었고 다른 이들이 쥐고 있다고 해도 삶에 행복을 주는 것인가는 의문스럽다. 하나의 논리가 세상을 지배하는 듯 보이지만, 그것도 사실 절대적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다. 누가 그 칼을 들고 있느냐에 따라 잘려져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자리는 한정되어 있다. 올라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이념과 맞지 않아야하는 누군가를 찾아내서 쳐내야한다. 루드빅은 재수가 없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그때 그 농담을 하지 않았다면 자유에 대해, 시대를 지배하는 이념에 대해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헬라나가 루드빅에게 빠진 것은 그 앞에서는 달라져야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 사랑해달라, 사랑해야한다는 말을 한다.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 수 있다는 것은 지금 사회에 와서는 당연한 것처럼 여겨진다. 물론 지금도 자기의 생각만이 옳다며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있고, 다름은 인정하는 척 하면서 교묘하게 자리를 차지하며 실상은 내 논리만을 우기는 한수높은 사람들도 있다.

농담을 읽는 내내 나는 좀 끔찍했다. 정해진대로 모든 것을 해야하는 것, 누군가가 규정된 룰대로 움직여야하는 삶, 그 논리가 좋다고 춤추는 사람도 거기에 짓밟히는 사람도 그 삶에서 선택이란 보이지 않았다. 어른이 되어갈수록 전부 다는 아니지만 선택처럼 보이지만 강요인 것들을 깨닫게 된다. 요즘 우리 사회의 모습에서도 그런 것들이 많아지는 것 같아서 조금 무섭다. 나 그대로여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게 좋은 거라고 배웠는데, 그렇게 사는 게 참 쉽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

1독으로는 조금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다. 역시 가까운 시일내에 한번 더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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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선인장 - 사랑에 빠졌을 때 1초는 10년보다 길다
원태연.아메바피쉬.이철원 지음 / 시루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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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책 시사회 이벤트에 당첨되서 받은 책이다. 나의 도서 취향은 상당히 올드하기 때문에 이벤트 도서나 누가 빌려주는 책이 아니면 신간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다. 원태연 작가는 좀 손발이 오글거려서 나의 취향과는 다르지만 사람이 다양성을 경험한다는 측면에서 신청했다. 책 앞부분의 작가의 말 부분이 있어서 읽었는데 10년 만에 내는 책이라고 한다. 그렇구나. 원래 시인이고 나는 시를 잘 읽어서 잘 몰랐는데 그동안 문학 쪽 일은 접고 작사가로, 영화감독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원태연의 이름이라 예전 원태연의 시집같은 느낌일 줄 알았다. 근데 이 책은 원태연 혼자의 작품이라기 보다는 글+그림+음악이 하나가 되는 미디어적인 장르였다. 이런 종이책이 아니라 전자책으로 보는 게 창작자들이 원하는 느낌을 더 잘 전달할 수 있을 것 같다.   










































고양이와 선인장 이야기. 동화같은 느낌도 들고 책도 그렇고 그림도 그렇고 귀엽다. 음악은 한번 들어봐서 뭐라고 못하겠다. 사실 잘 기억나지 않아. QR코드로 들어가서 들을 수 있지만 책 꺼낼때마다 그렇게 하긴 귀찮잖아. 생각보다는 오글거리지 않아서 의외로 실망. 내가 나이가 들어서인가 싶기도 하다.

나도 고등학교 때는 원태연의 시를 봤었다. 그때도 오글거리긴 했지만 그대로 사랑이란 이런 모습이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가까이 있는 대상으로 묘사하는 그의 글에는 어려운 시들보다 더 공감했었다. 이 책은 그 때 봤던 시의 느낌보다는 조금 침착하고 정제된 느낌이다. 감정이 달려가야할 부분에도 약간 가라앉히고 이야기해서 되려 조금 생각하게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약간은 달라진 듯한 모습에 실망이랄까? 원태연 작가는 그 나름의 색깔을 유지하는 게 더 맞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의 개인적인 성향과는 사실 맞는 책은 아니지만 평소에 활자보다는 미디어에 친숙한 요즘 사람들에게 이런 책이라면 쉽게 만날 수 있다고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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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스크로 가는 기차 (양장)
프리츠 오르트만 지음, 안병률 옮김, 최규석 그림 / 북인더갭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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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친님의 추천으로 읽게된 곰스크로 가는 기차. 남의 추천으로 책을 읽게되는 경우 내가 평소에 고르던 책들과 다른 성향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것이 좋다. 내가 골라서 읽으면 내 취향이라는 것에 한정되게 되서 생각의 폭을 넓히기 위한 독서는 불가능한다. 깊이면에서는 집중이 나을 수도 있지만 나는 그런 성향이 아니라서, 깊이보다는 넓이가 더 좋다. 특히 남자분들이 추천해주는 책은 성향이 확실히 다르다. 그래서 신선하고 재미있다.

곰스크로 가는 기차, 책을 받았을 때 분명 처음보는 책인데 제목이 왜이렇게 익숙하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읽다보니 전에 드라마로 봤던 기억이 났다. 예전에 베스트극장에서 드라마로 했었다고 하는데, 내 기억에는 한국배우들이었지만 유럽식 옷을 입고 안락의자를 끌고 연극처럼 풀어냈던 드라마였고 내용도 독특해서 묘한 이야기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 전부터 연극으로 많이 소개되었던 작품이라고 한다. 음.. 연극으로 딱 좋을 거 같다. 공연이 어떤 식으로 펼쳐질지 그려지는 것 같은 작품이다.

곰스크에 가지 못하고 도중의 작은 마을에 정착하게 되는 신혼부부의 이야기. 곰스크로 가려는 남편과 왜 곰스크에 가려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아내. 두 사람으로 나눠져있지만 보통의 사람이 가지는 이중적 마음이란 생각이 든다. 이상과 현실. 우리는 이상을 택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한다. 나의 경우 갑자기 회사를 관두고 세계일주를 간다든지 하는 사람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는 책으로도 나오고 강연도 한다. 참,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냐고, 대단하다고 한다. 그들은 말한다, 별개 아니라도 당신들이 놓지 못하는 것을 나는 놓고 떠났을 뿐이라고. 정답은 없다.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의 문제이다. 마치 그 선택이 어쩔 수 없는 것처럼 보이고, 한쪽 구석에는 다 떨치고 가고 싶은 마음이 남는다.

언젠가 들은 이런 말이 생각난다. "내가 그 사람과 잘 되지 않았던 것은 부모의 반대도 아니고, 그 사람이 잘못해서도 아니고, 그 사람의 현실적 조건이 떨어져서도 아닌, 그런 모든 것을 극복할만큼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아서 이다."

비단 연애에서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선택은 그런 것이다. 누군가에게 떠밀려 온 것 같지만 결국 그 발을 움직인 것은 나다. 진정으로 선택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순간, 우리는 곰스크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곰스크로가는 기차 뿐만 아니라 다른 작품들도 짧은 글이지만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작가는 인생에서 한번은 맞딱드리는 이야기를 절묘하게 잡아내서 이야기로 풀어내고 더 뛰어난 것은 결론을 명확히 내지 않아 독자에게 생각하게 한다는 점이다. 책을 덮고나서 나를 생각하게 하는 책을 오랜만에 만났다.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읽어도 지금의 내가 맞게 가고 있는가를 고민하게 해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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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도시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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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쓸한 이야기를 꼼꼼하고 세밀하게 풀어내서 불편한 마음이 들지만 어쩐지 책을 놓을 수 없게 하는 오쿠다 히데오. 이 소설은 그 전에 읽었던 작품들보다 유머의 양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씁쓸한 웃음은 한층 더 강해졌다.

세상에 좋은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지만, 도둑놈 같은 놈들이 많다는 걸 알긴 알지만 그 실상을 리얼하게 볼 수 있는 건 드물다. 보통의 사람들도 적당히 나쁜 짓은 해야가면서 산다. 그래도 뉴스에 나오면 모두가 분개할 나쁜 짓이거나 어느 집에 이런 문제가 있다면 한참 혀를 차가며 이야기를 해야할 문제를 세밀하게 그려내는 걸 보는 건 그리 유쾌하지는 않다. 유쾌한 이야기도 아니고 두께가 꽤 있는 편이었는데도 오쿠다의 소설은 스피드가 있어서 빨리 읽게 된다. 그런 문장과 구성력 덕분에 듣기 꺼려하는 이야기임에도 다 읽게된다. 불편한 사회의 이야기를 개인을 통해 끌어내는데 탁월한 재주를 가진 작가이다.

소설에는 5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유메노라는 도시에 산다는 것말고는 공통점이라고는 없어보이는 인물들이 겪는 문제와 사건은 처음에는 유메노의 무기력한 분위기 이외에는 접점이 없어보인다. 그러나 이야기가 전개들수록 그들의 이야기도 조금씩 연결고리를 찾아가고 중심 인물들을 둘러싼 다양한 주변인물들이 겪는 문제들까지 복합적으로 드러나면서 유메노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가 폭넓게 그려진다.

유메노(꿈의 도시)라는 이름과 달리 이 도시는 미래를 꿈꾸기는 불가능하다. 후미에의 말처럼 2류인가 3류인가를 선택해야한다. 일본의 이야기이지만 우리의 현재 모습도 이와 다르지 않다. 점점 세상은 극단적으로 변해가고 중간을 유지하는 사람들은 상단에 위치한 사람들의 힘에 밑으로 밑으로 떨어진다. 미래가 더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상식처럼 사람들의 공감을 산다. 그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당한 노력으로는 어림도 없다. 사기를 치거나 있는대로 권력을 발휘해야한다. 그게 아니면 내세에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모르는 척 하거나 현재의 쾌락을 추구하며 현실일 잊어야 한다. 모두 이것이 바른 방법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 밖에 없다며 정당화시킨다. 전부 다 나쁜 짓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바른 방법이란 통하지 않는다. 멍청하게 당할 뿐이다.

소설에서는 그래도 희망을 보이지만, 가짜 희망이라는 느낌도 든다. 이미 몇 사람의 문제같은 게 아니니까. 현실에도 희망이 있을까? 모두 꿈을 이야기하지만 도무지 꿈은 어디에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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