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픽처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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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내 책장에 있었던 걸까? 한 일년? 최소 몇달. 항상 책을 한꺼번에 사다보니 내가 고를 법 하지 않은 책을 사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 책 역시 마찬가지. 왜 샀는지 기억안난다. 그러던 요 몇 주, 지하철을 타고다니는 동안 이 책을 읽는 사람을 정말 여럿 발견했다. 베스트셀러여서 샀는지 모르겠다. 이유가 어찌됐던 몇달동안 처박혀있다가, 지하철 여행이 긴 날 필요할만큼의 두께감때문에 드디어 책장을 벗어나 내 손에 잡힌 책. 역시 잘 팔리는 책 답게 스피디한 전개, 뒤가 궁금할만큼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나를 휙 잡아 끈다. 꼭꼭 씹어서 잘 삼켜야할 현미같은 책이 있다면 이 책은 빅 맥의 한정판같다. 발상이랑 아이디어가 신선하고 재미있지만, 빨리 읽기에 부담없을 정도로 익숙한 전개방식에 쓱쓱 읽힌다. 잘팔리는 영미권 소설 특유의 감성과 문체, 표현을 아주 잘 버무려놓았지만, 독특한 발상이 끝까지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 구성이 좋다.

전혀 다른 삶, 안주하고 있는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드라마틱하게 터치해서 재미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삶을 내가 선택하고 결정했다고 생각하기보다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되버렸다면서 원래는 내가 이러고 있을 사람이 아니라며 산다. 실제로 그런 푸념도 많이 하고. 나도 그랬던 사람 중 하나였다. 그런데 우연한 계기로 과거의 나를 완전히, 절대적으로 완전히 버려야만 한다면? 그러기 위해서 큰 죄책감도 하나 플러스. 하지만 새로운 나는 그동안 계속 꿈꿔왔던 일을 하게 된다. 어떤 선택을 하게될까? 보통의 사람에게 일어나는 경우의 수는 적지만, 실제로 이런 사람도 없지는 않겠다 싶다. 왠지 미국같은 데는 더욱 더. 괜한 편견일 수도 있지만. 지금의 삶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어하는 인간의 내면에 숨겨진 욕망을 살살 건드리면서, 이 삶 역시 일시적인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을 끝까지 놓지 않는 구성이 흥미진진했던 소설이다. 재미있는 영화처럼 스르륵 읽으며 반전을 즐기기에 괜찮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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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오 영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박영근 옮김 / 민음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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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들은 사랑에는 세 종류가 있다고 했다. 에로스(육체적), 아가페(감성적), 필리아(정신적). 무조건적 일방적인 절대적 사랑을 의미하는 아가페. 인류애로도 해석되기도 하는 아가페적 사랑의 전형을 가장 가까이에서 만나는 것은 부모의 사랑이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 옛말처럼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고 자식들을 그걸 모르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말이야, 진짜 아가페적 사랑은 제대로 된 제대로 주는 게 맞겠지?

고리오 영감의 첫 시작은 요즘 핫한 드라마 [야망]이 떠오르다가 점점 [내딸 서영이]이로 가는 듯 하다가, 나중에는 막장 드라마의 비극버전으로 끝이 난다. 아직도 판타지를 놓지 못하는 사람으로 그래도, 그래도 라며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았으나 발자크는 리얼리즘의 시조라 할만하다. 사는 건 그리 아름답지 않다. 자녀들에게 모든 것을 내주고도 무엇 하나 얻지 못하는 고리오 영감, 사치와 허영에 빠진 두 딸, 사교계 데뷔를 통해 성공을 갈망하는 라스티냐크, 고급하숙집에 머물며 욕망을 부채질하는 보트랭, 아직은 순수해서 욕망의 먹잇감이 되기 적당한 타페이유, 고급 하숙집 하나로 위세 등등한 보케르 부인 등 고급 하숙집을 중점으로 보이는 인간군상들은 당시 파리의 사회상을 극도로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19세기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요즘 드라마 못지 않은 막장 코드와 완전 짜증나는 사람들의 모습에 욕 방언이 터질려다가도, 지금의 현실이나 요즘 트렌드인 욕망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드라마나 영화 속 인물들을 보면 이런 코드라는 건 인간이 존재하는 한 계속 존재해왔다는 데 고개를 끄덕인다. '고리오 영감도 잘 한 건 없어.'라고 비난하다가도 제대로 부모로써 사랑하는 것은 연인 사이의 사랑보다 백만배는 어렵겠다 싶다. 사랑은, 사는 건, 참 어렵다,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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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너는 자유다 - 모든 것을 훌훌 털어 버리고 떠난 낯선 땅에서 나를 다시 채우고 돌아오다, 개정판
손미나 글.사진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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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서점가를 휩쓸었던 베스트셀러. 독서 취향이 최신서적보다 고전이나 스테디셀러여서 항상 다 늦게 읽는다. 사실 이 책은 그저 유명한 사람의 여행기라 여겨서 읽어볼 생각도 안했었다. 하지만 지난번 덕수궁 특강 때 손미나 씨의 강연이 정말 마음에 많이 와 닿아서 이번에 책 사면서 같이 구매했다. 

 

유려하거나 화려한 문장은 아니지만 꾸밈없이 솔직하고 깔끔한 문장이라 출퇴근하는 동안 슬슬슬 읽혔다. 하지만 거짓말을 모르는 어린이처럼 그녀의 진짜 이야기, 진짜 마음이 담겨있는 글에 지하철에서 몇번이나 울컥했다. 글이라는 건 정말 그 사람이구나 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지금은 이렇게 블로그에도 글을 매일 같이 써대지만 사실 나는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이다. 얼굴을 공개하는 것보다 부끄러운 건 누가 내 글을 읽는 일이었다. 그래서 국문과임에도 불구하고 대학 때 창작 수업은 쿨하게 패스한 나였는데, 졸업하고 나니 맨날 이러고 있다. 지금도 블로그에 글을 쓸 때는 진정성있게 쓰려고는 하지만 내가 너무 드러나지는 않게 쓰려고 한다. 불특정다수는 때론 무서울 수 있으니.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다시 생각한다. 나는 진짜 이야기를 얼마나 쓰고 있는가?

 

정말 그녀의 글은 진정성의 끝판왕이었다. 설레는 순간, 너무 아팠던 순간, 기뻤던 순간이 마치 내 일처럼 다가온다. 지난 1, 2년 사이 나이에 흔들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나도 어쩔 수 없었던 서른의 고비를 넘기며, 또 지지부진했던 인연을 정리하며, 그리고 항상 반밖에 열고 있지 않았던 마음의 창을 조금 더 내리고 사람들을 대하며 20대와는 다른 나를 만들어가는 시기를 보냈다. 겉으로는 평온하지만 속으로는 치열했던 그 시간을 보내며 나도 몰랐지만 나는 위로가 필요한 상태였던 거 같다. 그녀의 이야기가 엄청난 용기가 되어 당장의 자리를 떠나라고 말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위로, 그녀가 받았던 사람들에게 받았던 위로, 희망의 에너지, 사랑을 고스란히 전달되어서 나를 감싸주었다. 그리고 생각한다. 나도 언젠가는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는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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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베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9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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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햄릿, 오셀로, 리어왕, 맥베스. 햄릿말고는 원작은 읽은 게 없다. 고전이라는 게 대부분 내용은 아나 원작을 접한 사람은 생각보다 드물다. 그래도 다른 작품들은 공연으로라도 본 적이 있었는데, 맥베스는 어딘선가 대충 내용만 들어 아는 정도였다. 원작으로 접하니 생각보다 빠른 속도감있는 전개와 응축적 표현과 긴장감 넘치는 흐름으로 단박에 빠져들었다. 은유적 표현이 많아서 각주를 읽으라 자꾸 흐름이 끊겨서 연달아 2독을 했더니 전체그림이 잡힌다. 무대 공연을 바탕으로 한 글이기에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무대의 모습을 그리게 된다. 어둡고 좁은 무대, 화려한 조명 대신 핀 조명 하나가 맥베스에 집중하는 무대가 떠오른다. 꼭 공연으로 한번 보고 싶다. 

 

항상 비난할 수 밖에 없는 선택, 누가 봐도 惡인 선택을 하는 맥베스이기에 "이런 몹쓸 놈"이라고 욕하고 싶지만, 권력을 탐하여 피를 부르고, 또 지키기 위해 피를 보면서도 그를 맹렬히 비난하는 것은 어렵다. 만약 뉴스나 역사 책에서 봤으면 고민없이 비난하겠지만, 그 선택 전의 망설임과 고민, 선택 뒤의 죄책감과 두려움을 안고 고뇌하는 모습은, 인간은 선인가 악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나는 기본적으로 성선설을 지지하지만, 살면서 깨닫는 건 과연 객관적으로 옳은 일이라는 게 존재하는가 하는 것인가. 옳은 일이라는 건 결국 나에게 옳은 일인가, 남에게 옳은 일인가의 선택일 수 있다. 맥베스의 선택은 매우 극단적이고 비극적이며 또한 그에게"만" 옳은 일이라는 게 더 심각한 문제이긴 하지만 그 뒤에서 괴로워하는 모습은 선악의 선택 뒤에 힘들어하는 인간의 전형이기도 하다. 마치 처음 거짓말을 하고 이것이 들통날까 벌벌떠는 어린아이같다. 우리가 결국 악을 선택하더라도 결국 우리 속에 있는 선은 그 선택을 비난하기에 우리는 괴로워한다. 결국 그에게만 옳은 일도 아니었다. 유혹에 빠져 악을 택하더라도 우리는 결국 선을 버리지 못하기에 사람인 것 같다.

 

고전이라는 말답게 반전없이 전형적인 이야기이지만 대사에 드러나는 심리 묘사와 빠른 전개, 또 여러 인물들의 다른 표현 속에 나타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고민이 계속 생각하게 하면서도 이야기에 빠져들게 한다. 진짜 공연으로 보고 싶다. 공연한다는 소식 들리면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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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따라가는 한옥 여행 - 닮은 듯 다른 한옥에서 발견하는 즐거움
이상현 지음 / 시공아트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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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고 있는 한옥은 창호문이 있고 기와지붕이 있고, 마당이 있고 대청이 있다. 내가 알고 있고 알아왔던 한옥은 그 건축을 직접 보고 느낀 것보다는 사극 드라마에서 보고 저런 것이구나 하고 알게 된 것이 많다. 작년 한해 한옥서포터즈를 하면서 서너군데의 한옥을 묵거나 방문하게 되면서 한옥이라는 게 그리 단순한 존재가 아니며 그 속에 숨겨진 재미를 발견하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역시 미천한 것은 나의 지식이다. 물론 느끼는데 있어서 지식이 필수라고는 할 수 없지만, 아무래도 알면 더 많이 더 깊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은 딱 나 정도의 사람을 기준으로 한옥을 이야기하고 있다. 건축학적인 이야기를 포기하지도 않으면서 이렇게 저렇게 집을 둘러보며 주절주절 한옥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다분히 주관적이고 감성적인 이야기가 섞여있기에 더 친근하게 대할 수 있다. 글의 첫머리에 시작하는 투머치한 감성의 표현들이 조금 거슬리긴 하지만, 반페이지 정도만 잘 넘기면 적절한 수준의 감성과 지식이 담긴 이야기가 전개된다. 전국 24개의 한옥을 찾아 그곳에 숨겨진 이야기, 건축적 미학을 담아냈고, 각 챕터의 뒷부분에는 소개한 한옥 주위의 관광지도 함께 소개하고 있어 여행 실용서로도 참고가 될 만하다. 요즘은 한옥스테이를 염두에 두고 여행지를 정하는 사람들도 많다. 특히 아이들과 함께하는 여행이라면 한옥에 하루 머무는 것은 아이들에게도 어른들에게도 특별한 추억이 될 수 있다.

 

소개한 곳 중에 가봤던 곳도 있고 가보고 싶은 곳도 있었지만, 생전 처음 들어보는 곳이 더 많았다. 이런 곳에 이런 건물이 있었구나 하는 무지의 깨달음이 되었다. 한옥을 소개하는 방법이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입구 뒷쪽으로 보이는 풍경, 그리고 발걸음을 하나하나 옮기며 눈을 돌리며 담은 곳곳을 사진과 설명으로 풀어내고 있어서 이 책을 읽고 한옥을 방문하거나 혹은 방문한 후에 이 책을 읽는다면, "아, 여기서 이래서 이랬구나."하고 무릎을 치게 될 거 같다. 그리고 다시 한번 가보고 싶어진다. 내가 이해한 게 맞았는지, 내가 놓쳤던 부분은 없었는지 좀 더 꼼꼼히 한옥을 즐기고 싶어질 것이다.

 

나도 한옥에 관심을 갖기 전까지는 그저그냥 온돌이 있고 기와가 있는 비슷비슷한 집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소개하는 한옥들, 그리고 실제로 만난 한옥들도 각 건물마다 그 위치며 모양이며 배경이며 다 다른 이유가 있고 사연이 있고 다 다른 아름다움이 있었다. 이 책의 부제 "닮은 듯 다른 한옥에서 발견하는 즐거움"을 제대로 느끼려면 한번쯤 한옥을 제대로 보려는 공부와 노력이 필요할 거 같다. 잘 안다고 생각하기에 소홀히 했던 것에 대해 반성하게 하고 배우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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