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23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장경룡 옮김 / 문예출판사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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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때 배운 분위기 소설이 이런 거였다. 무진기행이랑 비슷한 느낌이 들기도 했는데, 그보다는 더 뭐가 없다는 느낌이었다. 뭘 하겠다는 의지도 의미도 없어보이며, 그녀들의 생동성 역시 설국 속에서 왠지 아련하다. 슬픔이 가득차지도 않았고 사연이 없지도 않지만, 잔혹한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눈의 이미지가 소설을 가득 채워, 그녀들마저 심장안쪽 구석구석까지 눈이 들어찬 사람들 같았다. 좋은 소설인지는 물음표가 뜨지만, 아름다운 소설이었다. [그남자잔혹하다]의 팜플렛에 있던 "파괴미학"이라는 말과 통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美라는 것이 가진 여러가지 모습 중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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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파는 남자 - KI신서 916
페르난도 트리아스 데 베스 지음, 권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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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보니 바로 보이는 세상. 발상의 전환을 통해 보이는 세상이 너무 리얼해서 살짝 섬뜩했다. 나는 아직 집도 없고 차도 없으니 아직은 내 시간의 소유자일 수 있지만, 지금까지 살며 먹고 입고 누린 것들이 아버지의 시간을 팔아서 얻은 것이라는 것이니 끔찍했다. 내 삶이지만 나는 순간부터 체제 속에 이미 팔려있는 것이며 내가 온전히 나의 주인일 수 없다는 것이다. 알고 있기는 했으나 솜사탕처럼 뭉성뭉성한 상태로 인지하고 있었는데, 이 이야기를 읽으며 막대사탕처럼 정확하고 명확한 형태로 내 입안에서 와장창하고 씹힌다. 음모론이 머리 속에 떠오르는 순간이다.

사는 건 이런 것인가? 경제학을 배울 때도 기회비용을 따졌다. 기회비용이란 시간의 경제적 가치의 다른 이름인 것 같다. 아직의 내 시간이 아닌 부모의 시간으로 살아갈 때 앞으로의 시간을 어떻게 팔아치울지 잘 판단해야겠다. 그나저나 일주일 패키지는 팔았으면 좋겠다. 5분이나 2시간 짜리는 좀 부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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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속물들
오현종 지음 / 뿔(웅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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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속물은 거룩한 거라구!!!!! 

나는 대학 다닐 때까지는 속물 아니려고 했었는데, 요새는 빨리 인정하는 것일까? 뭐 내가 좀 늦된 편이니까. 지금은 확실히 속물임을 인정하지만, 역시 편한 사람이 아니면 아닌 척~ 다 그런 거 아니겠냐며. 요새 이런 자조적 이야기들이 많이 공감을 얻는 것이 참 슬프다. 사실이며 진실이지만, 그래도 사람이 꿈꾸듯 헛바람이 좀 빵빵이 들어차야 행복했던 젊은 시절이라는 추억이 남는데, 치열한 사회의 모습을 너무 빨리 깨쳐버린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요새는 10대 아이들도 욕망과 현실에 솔직한데 20대에 이러지 않으면 뒤쳐지는 거겠다. 그래도 자신의 현실에 아파하고 고민하는 모습이 인간적이며, 결론적으로 꿈을 위한 선택을 했다는 점에서 아직은 놓치고 싶은 않은 그런 20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런 사람도 있어야되겠지.

나도 20대 초반이 그랬던 것처럼 뭔가 다 정해져있고 삶의 방향이 보일 것 같은 30대를 목전에 두고 있지만, 쳇, 인생이란 그리 만만한 게 아니었다. 아마 죽을 때까지 정해진 건 없을 거고 이미 내가 정해버린 것들 때문에 도리어 상처만 더 깊어지는 듯하다. 고민이 많았던 시기였기에 고만한 나이로 돌아가고 싶진 않지만, 앞으로도 그 정도의 고민과 걱정은 친구처럼 함께 가야한다는 것이 가끔 버겹다. 

인터넷 연재를 했던 글이라 역시 호흡이 짧고, 이야기 자체도 소설이라기보다는 다큐라 금방 읽힌다. 1시간 반이면 충분. 20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과 20대 자녀를 두신 분들께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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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 자서전
체 게바라 지음, 박지민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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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고백부터. 나는 체게바라 전기를 읽지 않았으며 그가 뭐하는 사람인지 잘 모르는 상태였다. 나한테는 그냥 티셔츠의 이미지이며 잘생긴 혁명가라는 인식 정도만 있다.

언젠가 한번을 체게바라 전기를 읽어야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딱히 마르크스 주의자도 아니고 혁명가도 아니지만 체게바라는 누구한테나 그런 존재가 아닐까 싶다. 좀 알아야되는 사람. 지난번에 중고책 구입하면서 자서전도 같이 판매하고 있어서 한번 사봤다. 근데, 자서전도 쓴 사람이었어 하며. 이 책은 체게바라의 각종 편지글이나 자전적 글들을 모아 만든 사후 편집형 자서전이었다. 이런 형식의 자서전도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책을 다 읽었지만 스토리가 명확하거나 그의 삶을 해체/재구성한 친절한 책이 아니라 그의 삶의 단편을 조금씩 보여주는 것이어서 솔직히 읽기 전보다 그를 잘 이해하게 되었거나 더 알게되었다는 느낌은 별로 안든다. 내가 알게 된 건 굉장히 열정적이고 솔직한 청년이었으며 자신이 해야할 일을 명확히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또한 밝고 유쾌한 사람이고 진실하게 모든 것을 대하고 있었다. 똑똑하고 잘난 사람인 건 맞지만,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넘친다. 체게바라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나 그를 자세히 소개해 놓은 책과 더불어 보면 그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책이다. 게다가 좋은 느낌의 사진도 많아서 체를 아는 데 좋은 자료가 되는 듯. 글 자체도 괜찮았다. 마음이 드러나는 글이라는 느낌이었다. 그의 글쓰기 자질은 정말 부러웠다. 이런 느낌의 글을 늘 쓰고 싶은데, 그런 삶을 살고 있지 않아서 그런가 그 느낌이 나질 않는군. 체게바라 전기는 올해 안에 역시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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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8
제인 오스틴 지음 / 민음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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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 연애 소설의 고전. 요새의 할리퀸의 시작이 오만과 편견이 아닐까 싶다. 폭풍의 언덕을 읽을 때도 그랬고 예전에 몰랐던 고전소설의 맛을 이젠 좀 알게 되었다. 순수한 이야기의 전형이 가져오는 평범하지만 친숙한 감성 때문에 공감하는 그런 매력이 있더군. 어릴 때는 유치하다는 감상을 날리며 이 따위 책들이 왜 고전으로 추앙받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며 고개를 저었으나, 지금은 그런 유치한 이야기들에 낄낄거린다. 이야기라는 것의 원형을 가지고있는 것이 고전이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특히 이 책은 밝고 빛난다. 봄이라 그런가, 나도 이런 사랑~ 이라는 쓸데없는 신데렐라 꿈도 꿔본다. 감정에 있어서는 순수하지만 다들 결단력없이 우유부단해서 빨리빨리 움직이란 말이야 하며 속으로 응원을 보내며 잘됐으면 좋겠다는 그런 큰언니의 심정으로 제인과 엘리자베스를 응원했다. 그녀들의 주춤거림과 두근거림, 사랑에 폭 빠진 설레임과 조심스러움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읽는 동안 참 예쁘구나 하고 생각했다. 작은 행동들 하나, 작은 사건들에 그녀들의 심정이 섬세하게 잘 표현되어서 더 많이 공감했다. 뿐만 아니라 주위에 참 재수없는 인물, 허세에 쩐 인물, 건방이 짝이 없는 인물 등 다양한 군상들의 모습이 주인공을 짜증나게 하는 것을 같이 욕하며, 빨리 행복한 결론에 이르기를 기대하며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러고보니 좀 일일드라마 같다는 생각도 드네. 욕하고 응원하고 공감하며 본다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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