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대왕 - 역사학자 33인이 추천한 역사 인물 동화 1
이슬기 지음, 하일식 감수 / 주니어파랑새(파랑새어린이) / 2002년 8월
평점 :
절판


광개토 대왕은 멀리는 후연(중국)까지 전쟁하였고 밑으로는 왜구, 백제 등을 무찔렀다. 미천왕 다음인 고국원왕은 후연을 정벌하다 실패하여서 수도가 빼앗기는 수모를 당하였고 힘을 길러 전성기를 맞은 백제를 쳤다. 하지만 오히려 반격을 맞아 평양성까지 밀리고 그 싸움에서 고국원왕이 전사하였다. 그 다음은 복수를 위해 힘을 길렀다.고국원왕 다음왕인 소수림왕은 불교를 장려하였고 그 다음왕은 고국양왕은 광개토대왕의 아버지이다. 18살의 어린나이로 주위의 강대국을 맞게된 광개토대왕은 백성을 단합시키고 법을 정하여 나쁜 벼슬아치를 파직(벼슬을 그만두게 함)시켰다. 그렇지만 군사일이라고 소흘히 했던 것은 아니다. 장정 수만명을 모아 훈련시켰고 4만의 병사를 이끌고 백제의 원수를 갚을려고 백제로 출정하였다. 백제의 성을 한달에 10개를 점령하였고 그 기세를 모아 거란족을 공격하여 백성 1만명과 거란족 500명을 데리고 왔다. 몇달 후 백제의 요새 관미성을 점령하려고 출정했다. 특공대는 무기창고와 군량미 창고에 불을 지르고 문을 열어 관미성이 함락되었다. 후연은 광개토 대왕이 전쟁의 신이라고도 할 만큼 광개토대왕은 지략과 전술, 무예가 뛰어났다. 후연이 쳐들어와서 신성과 숙군성을 점령당한 고구려는 다시 반격하고 요동성을 공격해서 빼앗었다. 그리고 드넓은 만주벌판을 손에 넣었다. 그 뒤를 이어 장수왕도 땅을 더 넓혔다. 광개토대왕은 싸움만 잘한 것이 아니라 백성들도 성군이라고 했고 광개토 대왕이 돌아가셨을 대는 온 백성이 슬퍼하였다. 그 뒤를 이어서 장수왕이 땅을 넓혔고 전성기를 맞이 했다.

요즘 중국에 1948년 이전에 것은 우리 역사가 삭제되어 안타깝다. 다시 수정되어 드넓은 만주벌판을 호령하던 광개토대왕의 노력을 헛되이 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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