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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 2017.4
샘터 편집부 엮음 / 샘터사(잡지) / 2017년 3월
평점 :
품절
‘관계’는 어렵다.
현실에서의 ‘관계’는 물론이고 최근 부쩍 늘은 온라인상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간편하고 실용적이라는 점에서 외연의 확대를 가져오긴 했지만 채워지지 않는 갈증마저 느끼게 한다. 역설적으로 편리하고 손쉬운 만큼 아무 것에도 관계 맺지 못한 상황을 가져온다고나 할까. 온라인이나 모바일의 게임으로 맺어진 사람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등의 SNS로 만나는 사람들, 등록된 핸드폰 번호로 건너 뛰어 알게 된 사람들까지 관계의 경계는 허물어졌지만 느슨하고 점성도 떨어진다. 게다가 내가 남긴 댓글이나 추천, 팔로윙 따위의 족적까지 분석해서 친구를 맺어주는 그 ‘친절함’에는 좀 과하다싶기도 하다. 이래서 무슨 의미 있는 관계를 이룰 수 있을까? 현실 세계에서도 이런 기분이 느껴질 때가 있다.
<월간 샘터> 4월호에서 이종원 편집장은 윤대녕의 작품, <그를 만나는 깊은 봄날 저녁>에 나오는 일화를 소개한다. 주인공이 직장생활 중 받아왔던 ‘명함’의 주인들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낭패감에 무작정 명함의 주인을 만났다는 이야기다. 결국 둘은 반나절이상을 같이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명함이 오간 순간을 기억하지 못하고 씁쓸한 관계의 의미만을 곱씹었다는 줄거리다.
나 역시 그랬다. 얼마 전 책상 정리 중, 처박아둔 명함집을 발견했는데, 정말이지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사람이라곤 컴퓨터를 수리해주던 기사뿐이었다. 그 나머지 사람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만났는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고사하고라도 왜 여기 들어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내가 사람들과 부대껴왔던 시간이 고작 이 명함을 대하는 나의 처지와 비슷하지는 않을까.
생각해보면, ‘관계’뿐 아니라 ‘혼자’인 것도 어렵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혼자’는 일단 낯설다. 그리고 막강한 채무감이 따른다. 그래서 ‘혼자’일 때, 그 시간과 기회를 살렸다고 평가하기가 더욱 인색해진다. 더욱이 ‘관계’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사람이라면 ‘혼자’는 더더욱 어렵다. <월간 샘터> 4월호 특집인, ‘혼자라서 좋은 날’에는 ‘혼자’인 상황에 처해진 우리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혼자여서 좋을 줄 알고 장을 봐왔는데 펼쳐놓고 보니 모두 남편이 좋아하는 식재료다. 은연중에 남편이 제일 맛나게 먹던 김밥, 냉이된장국, 도라지나물, 미역초무침을 만들기까지 한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다.
혼자하면 참 많은 것들을 제약 없이 할 줄 알았는데 막상 하다 보니, ‘이건 아이가 좋아하는 건데’, ‘이건 남편이, 아내가 좋아하는 건데’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게 가족 간의 사랑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한 켠에서 똬리를 트는 생각이란 “가족들을 떼어낸, ‘나’라는 존재는 과연 무엇일까?”라는 의문일 수도 있다. ‘혼자’인 상황에 처해졌을 때, 당혹스러워하지 않고 나를 직면하는 용기가 낯설었던 것일까? 심지어 내가 좋아하는 음식, 내가 하고 싶은 일마저 밀려나버리고 그런 질문조차 사치스럽게 느껴질 때면 ‘혼자’인 것을 더욱 욕심내야할 때는 아닐까.
<월간 샘터> 4월호에서 그 모범을 잘 보여준 인물이라면 연기자, 이문식이다. 11대 종손이라는 부담감으로 출세에 대한 강박증을 지닌 그는 육사시험, 해양대, 항공대를 전전했지만 하고 싶은 일을 찾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연기의 길’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었다. 한양대 연극영화과 졸업 후에 대학로 연극판에서 한 해 수입 300만원으로 버텼고, 라면 한 그릇 먹지 못하는 가난도 겪었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행복만은 지켰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두 아이들을 대안학교에 보내 하고 싶은 일을 스스로 고민하도록 2-3년의 유예기간을 허락한 양육방식에서도 보여진다. 현명하고 멋진 생각이다.
남자의 자격에서 ‘넬라판타지’를 부르면서 인기를 얻었던 배다해 역시 10년간 해왔던 성악을 포기하고 기획사의 방출까지 감수하면서도 혼자의 시간에 충실했다. 적어도 본인이 가장 행복해하는 노래가 무엇인지 알았고 그걸 당당하게 욕심내었다. 쉬운 길보다 본인이 원하는 길을 걷는 용기가 노래 제목처럼 ‘똑똑똑’하며 팬들의 마음을 두드리라 생각되었다.
‘관계’도 어렵지만, ‘혼자’는 더 어렵다. 내 자신을 들여다보는 ‘내 안으로의 길’을 내어야하고 세상 밖으로 커밍아웃하는 ‘내 밖으로의 길’도 내어야하기 때문이다.
<월간 샘터> 4월호는 그 길을 가도록 호흡을 가다듬게 한다. [보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