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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특별판)
김신회 지음 / 놀(다산북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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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30여 년간 41권까지 출간되었고 세계적으로 1천만 부 이상이 팔렸다.

우리나라에서는 투니버스에서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 방송되기도 했다.

답은 <보노보노>.

 

친근하다 못해 약간 유치할 수도 있는 색감과 그림체이지만 그 안에 담긴 메시지와 재미는 꽤나 알차다. 어릴 적에는 재미로 흘려보다가 어른이 되어서는 의미를 되짚는 묘미를 안겨주는 책이다. 읽는 이에 따라서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고 마치 선방에서 받는 화두처럼 번득이는 물음까지 던진다. 보노보노와 그의 친구들은 다양한 시각과 문제해결을 제시하면서 흥미로운 연출을 담당한다. 그래서 <보노보노>는 마냥 빠른 호흡으로 읽어젖히기보다 내 생각은 뭘까?’를 묻고 정리하는 깊은 호흡도 필요하다. 가벼운 듯 하나 진중함을 잃지 않고, 진중한 듯 하나 일순 긴장감이 탁 풀리는 웃음 포인트를 놓치지 않는다.

 

김신회 작가가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를 통해 들려주려는 이야기도 <보노보노>에서 얻은 삶의 성찰이자, 자기 고백이다. 불혹에 즈음한 저자의 화두는 다름 아닌, ‘어른이다. 몸은 성년이지만 마음과 생각은 아직도 미성숙하다고 생각한 저자 자신과 이 땅의 서툰 어른들을 위한 통찰이 담담한 문체로 엮였다.

 

다른 사람들하고도 같이 사는 법 / 꿈 없이도 살 수 있으면 어른 / 인생에서 이기는 건 뭐고 지는 건 뭘까 / 솔직해지는 순간 세상은 조금 변한다 / 완벽함보다 충분함이라는 큰 주제를 통하여 저자가 얻은 답은 솔직함이다

 

저자는 솔직함을 이렇게 표현한다.

“<보노보노>를 관통하는 주제는 솔직함이다. 어른은 거짓말을 잘한다. 자기한테 없는 진정성을 남들에게 요구하면서 산다. 솔직해지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선, 솔직해지는 것이다. 꾸미지 말고 감정에도 솔직하게 할 것. , 규칙이 있다. 남에게 상처주지 않을 것. 나에게 죄책감을 갖지 않을 것. 이제라도 보노보노와 친구들처럼 살기로 했다.”

 

 

 

 

 

어른으로서의 당위이자, 보노보노와 친구들의 미덕은 솔직함이다. 저자는 그 솔직함에 자신의 인생담을 조금 더 얹었다. 솔직함이란 꾸며내지 않고 나를 보되, 남의 눈치도 보지 않는 모습이다. 내 자신에 솔직해지니 나도 그런 적 있어하며 상대방을 그러려니'하는 마음(32)으로 이해하게 된다. 자신에게 솔직하지 않는 이가 용렬한 비판을 하듯, 솔직한 사람은 남에게도 관대해진다. 나아가 내가 남을 미워한 행적을 인정하기에 남에게도 '미움 좀 받으면 어때. 아무렇지도 않아.'(44)라는 평정심을 유지하기에 이른다. 오히려 사랑해야 할 사람들에 집중해서 덜그럭거리더라도 길게 이어지는 관계에 집중하게 된다. 또한 솔직함이란 나의 역량과 한계를 파악하여 포기할 때를 알 되(190), 자긍심을 잃지 않는 모습이다.(52) , ‘솔직함이란 어른으로서의 당위이면서 이 세상을 견뎌내는 전략적 맷집이다.

 

이 책의 흥미로웠던 부분은 김신회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사노 요코가 계속 연상되었던 점이다. 그러던 중 저자가 가장 좋아하는 글이 사노 요코의 수필과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311)이라는 고백에서 무릎을 쳤다. 두 작가의 글에서 오롯이 표현된 솔직함이 서로를 닮게 했던 것이다.

 

저자가 말한 사노 요코는 <문제가 있습니다>에서 솔직하다 못해 시니컬하고 발칙한 입담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예를 들어, “독서는 쓸데없었다. 독서만 좋아했던 내 인생도 헛된 인생이었다라고 회상하는 장면이나, “엄마는 엄마로서 정말 꼴불견이야라는 말을 아들에게 들었던 고백등이 그랬다. 게다가 한 페이지 가깝게 정성들여 묘사한 소재가 하필 자신의 변인 걸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도 있다.

 

김신회 작가 역시 글을 통해 엄마와 나 사이에도 솔직하지 못했던 시간이 삼십 년이 넘는다.”(77)라는 고백까지 한다. 그 외에도 아빠와의 관계, 성적, 연예담, 중학교 때의 도시락 일화까지 아무런 검열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정작 본인이야 나는 솔직하지 못하다.”(231)라고 고백하지만 독자의 낯이 달아오를 정도로 가감 없이 쓴 걸 보면, 차라리 대담하다고 표현해야할지도 모르겠다.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에서 누누이 반복되던 솔직함이 저자의 글과 삶 속에서는 이미 발아가 된 것 같다.

 

 

 

그럼, 솔직함이란 어디서 나올까?

막연하고 어려워 보이는 솔직함의 근저를 살피면 수월하게 표현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생각건대, ‘솔직함의 뿌리는 자긍심이다. 남들에게 자신의 강점이나 자랑할 만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인정욕망을 채우려는 건, ‘자존심이다. ‘자긍심이 아니다. 예를 들면, <심청전>의 심봉사는 눈을 뜰 수 있다는 말에 공양미 삼백 석을 시주첩에 적으려 했다. 그 때 스님이 만류하자 심봉사는 화를 내며, “남의 집 살림을 없이 보지 마시오.”라는 책망을 했다. 이건 자존심이다. 자존심은 남의 시선 중심에서 의식하고 은폐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거짓을 보인다. 원하지 않게 약점이 드러날 때는 거침없는 분노를 발산한다.

 

그에 반해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긍지의 표현은 자긍심이며 자신의 시선과 척도가 기준이다. 스스로의 확신과 가치 정립이 중요하므로 은폐하지 않고 설령 드러나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뭔가 대단한 걸 보유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가진 것 중에서 소소한 가치라도 발견해낸 긍지이다

 

보노보노는 소심하긴 해도 흐물흐물한 자기 몸이 조개나 돌을 올려두기에 좋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편리한 나다. 나는 내가 좋다.’(52)

 

졌을 때의 얼굴’(156)조차 내 모습이고, 내가 안을 모습이기에 자랑스러워하는 자긍심’. 그게 솔직함의 밑바닥을 떠받들고 있다. 사노 요코와 김신회 작가가 그랬고, 보노보노와 그의 친구들이 보여 준 것처럼. [보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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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에 하자
이광재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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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에 들리는 것들은 사람 안으로 들어온다. 심지어는 들으려고 하지 않아도 들리고 눈이 가닿지 못할 때도 감전된 것처럼 흘러든다.”(7)

 

이광재의 <수요일에 하자>는 첫 문장을 이렇게 시작한다. 책표지와 첫 문장으로 보아 저자는 분명, 음악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리라 짐작했다. 영화 평론가, 신귀백은 <수요일에 하자>눈보다 귀가 즐거운 소설이라고 평했다. 글 사이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Led Zeppelin과 백설희의 노래, Amy Winehouse와 조항조의 노래까지. 거기에 John Bonham의 드럼연주와 Ravi Shankar의 시타르 연주까지 듣고 나면 소설의 현실감은 한 층 물이 오른다. 마치 저자의 구령에 맞춰 소설에서 튀어나온 음악들이 오와 열을 맞춘 듯 딱딱 들어맞고 텍스트를 대신한 느낌은 더욱 풍요로워진다. <수요일에 하자>는 들어야만 한다. 들어야, 읽을 수도 있다.

 

수요일.

수요일은 한 주의 중간이자, 고비다. 피곤함은 쌓이고 주말까지는 멀다. 그래서 중간급유가 필요하다. “수요일엔 뭐든 하자 이거야.”(121)라는 모토 아래, 7080 라이브클럽인 낙원에서 수요밴드가 창설된다. 카페 낙원의 운영자인 배베이스의 주도하에 메인보컬 리콰자, 수배중인 드러머 박타동, 이혼녀이자 피아니스트인 라피노가 힘을 모은다. 업소를 떠돌며 기타 꽤나 치던 2인자, 니키타는 치매의 노모를 모시며 기타를 메고, ‘텐프로출신인 김미선은 서브 보컬을 맡는다.

 

우여곡절 끝에 팀은 구성되었다. 하지만 거칠었던 과거마냥 현실은 팍팍하기만 하다. 리콰자는 가족을 떠나 살며 편의점 알바를 시작했고, 라피노는 원하지 않은 임신을 한 뒤 가정폭력과 남편의 불륜에서 간신히 탈출하던 참이었다. 배베이스의 카페는 보증금마저 까먹어 넘어갈 위기에 처해있었고 니키타는 노모의 수발을 들며 기타연습을 간간히 이어갔다. 박타동은 경찰과 빚쟁이들의 추격을 피하려 위장이혼을 했다. 누구 하나 변변치 않았다.

 

작가라면 사회의 균열을 보아야만 한다. 주변부로 밀려난 사람들이 균열 속에서 어떻게 대응하는지 보여주고 싶었다.”는 저자의 설명은 이런 인물설정을 이해하게 해준다. 만약,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신분이 보장되어 있고 여유도 있는 인물들이 밴드를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저자가 웅변하려는 주제의식의 이 매우 달라졌을 것이다. 우선, 제도권 안의 불합리함을 제기하는데 설득력이 반감될 수밖에 없고, 삶의 설계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제기도 선명하지 않게 된다. 또한 음악을 통해 사람을 변화시키려던 그들의 원대한(?) 목표라던가, ‘금어’(金魚)의 경지에 도달하려던 결연한 자세도 희석되지 않을까? 소설 속 인물들의 '스탠스'는 사회 제도적 결함에 편입되지 않으면서도 음악에 몰입할 수 있는 회색지대여야 했다. 마땅히 그래야만 주변부로 전락한사람들의 미세한 떨림까지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딴따라 예술가들은 왜 구질구질하게 묘사 되어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일랑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는 데서 이해해야한다. 또한 단순히 좋아하는 음악을 다시 하게 되는 아재밴드 이야기정도로만 치부해서도 안 된다. 저자는 그 다음으로 독자를 몰아간다.

 

조항조의 사랑 찾아 인생 찾아를 웅얼거리던 201호 사내가 사체로 실려 나간 뒤, 박타동은 옆 공원에 올라, 이렇게 외친다. “개애새끼들!”(197) 그건 마치, 이길 수 없는 세상을 향한 울부짖음 같은 것이었다. 저자가 보여주려던 대목은 바로 이 지점이다

 

꿈과 행복, 존엄을 좇아 살 수 없게 만드는 사회 제도권을 직시하고 다시금 인간의 삶이 무엇인지, 행복과 존엄의 길(275)은 무엇인지라는 물음을 던지고 싶었던 것이다. 이런 질문들은 여러 인물간의 대화에서도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경찰직 고위공무원으로 있는 처남이자 고교동창인 인물과 리콰자의 대화(161), 박타동과 아들간의 대화, 연예인협회 도지부장 아들과의 대화등을 비롯해서 <노래 불러>, <철수야 놀자>, <검은 바다>의 가사에서도 직설적으로 노출된다.

 

 

 

 

 

하지만 균열된 세상에서도 수요밴드를 버티게 해주는 강력한 무기하나가 있었다. 바로 음악이다. “귀에 들리는 것들은 사람 안으로 들어오고종내, 그 음악은 사람을 치유한다. 배베이스는 기타를 치면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달랬고(24) 니키타의 노모는 레드 제플린 곡이 연주될 때 몸의 반응(200)을 보이기 시작했다. 라피노는 피아노 소리를 듣고 집에서 연주를 시작하면서 반드시 잊었어야 할 어떤 일들”(91)을 잊을 수 있었다. 박타동은 음악을 통해 삶의 의미와 방향을 발견했다. 그들은 음악으로 치유되는 간증을 가지게 되었다. 아니, 어쩌면 이들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음악의 위로와 치유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그래서 수요밴드아픈 사람은 아프지 않게, 슬픈 사람은 슬프지 않게, 심심한 사람은 재미있게 살도록 도와준다. 우리는 사람을 움직이는 연주를 지향한다”(178)라는 강령을 세우기에 이르렀다.

 

수요밴드에게 음악치유이자, ‘열정이기도 했다. 척박한 현실에서 음악에 대한 열정은 순도를 높여가며 뿌리를 깊게 내린다. 그 열정은 율도공연 출연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낙망이나 변심할 이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오히려 감각의 문이 열리고’(228) ‘비늘이 돋는(235) ‘금어’(金魚)의 경지에 애를 태운다. ‘쓰나미가 몰아치며 소름이 돋고 격분하기를 갈급해한다. 그래서 이들의 율도행 도전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살다보면, “율도 공연을 허고 나면 먼 좋은 수가 생기는 거여?”라는 의구심과 불안감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삶의 방향타는 결국, 내 심장이 뛰는 곳으로, 내 손에 의해 비틀어진다. 정작 절망해야 할 일은 우리 사회의 균열이나 불안함이 아니라, 다시 율도행을 감행할 수 있는 치유와 열정을 잊어버리는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다시 일어서게 해 주는 음악같은 존재가 필요하다. ‘음악이 아닌 그 무엇이라도 상관없다. 분명한 건 그것이 설령, ‘환청이고 먼지이더라도 무기이자 위로의 날이 온다는 것이다. [보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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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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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에는 세월의 더께가 앉을 여유가 필요하듯 이별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모든 이별이 예고되고 준비되는 건 아니다. ‘몸이 죽는이별이 아니라, ‘머리가 먼저 죽는이별 역시 마찬가지이다. 토미 드 파울라의 그림책, <오른발, 왼발>에는 보브 할아버지와 손자 보비의 이야기가 나온다. 거동이 불편해진 할아버지는 어느 순간 손자인 보비마저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 그 때마다 보비는 할아버지의 곁을 묵묵히 지켜낸다. 멤 폭스의 그림책인 <할머니의 기억은 어디로 갔을까?>에서도 주인공, 윌프레드 고든이라는 아이는 낸시 할머니의 기억을 찾아주기 위해 고군분투 한다.

 

<오베라는 남자>의 저자로도 잘 알려진 프레드릭 배크만이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에서 다루고 있는 이야기도 이런 기억상실에서 오는 이별의 준비다. 저자는 작품의 의도를 이렇게 설명한다.

 

"내가 아는 사람들을 서서히 잃어가는 심정, 아직 내 곁에 있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 내 아이들에게 그걸 설명하고 싶은 바람을 담고 싶었다."

 

치매와 임종에 다다른 할아버지의 입장이건, 남겨진 가족의 입장이건 우린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을 할 것이고, 그리워할 것이고, 그걸 또 덜 아프게 설명해야 할 때가 온다. 프레드릭 배크만은 단순히 작품을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임종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결연하고 진솔하게 쓰고 있다. 그 접근이 처음에는 다소 동화적인 발상으로 보여서 현실감이 덜 해 보일지 모르지만 인물간의 감정선을 따라가면 온 몸이 젖는 감동에 이른다

 

'노아가 눈을 감으면' 할아버지와 함께 할아버지의 머릿속 여행’(43)이 시작된다. 배경은 벤치가 있는 어느 광장이다.(11) 벤치에는 할아버지가 앉아있고 그 옆에는 다리가 땅에 닿지 않아 흔들거리는 손자, 노아가 앉아있다.

할아버지 아래에는 연보라 빛 히아신스 한 무더기가 피어있다. 멀찌감치 시선을 던지니 초록색용과 손자국이 찍힌 펭귄, 눈이 하나밖에 없는 부엉이가 보인다. 그리고 저 멀리 할아버지가 손수 페인트칠을 하고 돛 아래 돌까지 괴워 둔 배 한 척(96)이 보인다. 열거된 소재들은 할아버지의 머릿속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일화와 인물을 상징한다. 할아버지 바로 아래 피어있는 히아신스는 이미 사망한 할머니를 상징한다. 지척에 보이는 장난감들은 할아버지가 손자인 노아에게 사 준 것들이며 멀리 보이는 흰 배는 노아에 대한 애틋한 추억이 담겨 있다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에서 할아버지를 중심으로 비중 있는 인물은 세 명이다. 먼저 사망한 할머니, 아들 테드, 그리고 손자 노아다. 그런데 이 세 사람에 대한 감정과 관계가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더 중요한 건 이 세 사람이 작별의 준비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할머니는 크리스마스에 히아신스향을 흩뿌리며 우주로 돌아갔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에게 반세기가 넘도록 서로의 사람으로 지낸’(87) 존재이자, ‘집으로 가는 지름길’(118)같은 존재였다.

 

"몇 단계를 거쳐 내가 누구이고, 거기는 어디인지 기억해내는 거야.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는 거지. 그런데 우주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매일 아침마다 점점 길어진단다."(107)

 

 

 

기억은 과거라는 데이터로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시간이 숙성시킨 감정, 느낌, 생각, 추억등을 모두 포함시켜야만 온전한 기억이 된다. 그래야 그 기억이 를 만드는 내 집(home)’이 된다. 하지만 원제가 ‘And Every Morning the Way Home Gets Longer and Longer’인 것처럼 으로 돌아오는 길은 매일 멀어져만 간다. 기억을 잃어버린다는 건, 결국 까지 잃어버리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할아버지의 머릿속에서 재회한 할머니에게 이렇게 고백한다.

 

"당신이 옆에 있으면 내가 누군지 언제든 알 수 있었어. 당신이 내 지름길이었지."(118)

 

살아 생전에는 해 보지 못했던 말. ‘사랑한다는 말처럼 뭔가 직설적이고 간편하지는 않지만 묵직하게 끓어오르게 만드는 말. 매일 아침 조차 잃어버리는 할아버지가 할 수 있는 가장 애절한 고백이자, 최고의 찬사이지 않을까. ‘당신이 내 기억의 전부이고, 당신이 나를 기억하는 지름길이라고. 개인적으로 이 대목이 계속 걸려 책장을 잠시 멈춰야했다. 꿈에서라도 그리도록 애타게 보고 싶던 사람을 다시 만나서 하지 못했던 고백을 하고 그리워했던 사람에게 위안을 받는 건, 죽음조차 대범하게 맞을 수 있는 첫 준비임에 틀림없다

  

할머니의 관계와 달리 아들이었던 테드와 할아버지와의 관계는 무관심과 갈등관계였다. 할아버지가 아들에게 갖는 주류 감정도 미안함과 죄책감이다

  

"테드 혼자 (자전거 타는 법을) 터득했지...기타를 독학으로 배운 것처럼." 죄책감을 느끼기에 한마디, 한마디에 후회가 가득 묻어난다.(143)

 

하지만 아들에 대한 후회와 (손자)노아의 다리 역할을 통해 둘 사이는 화해된다. ‘미안함을 표현하기에 너무 늦은 건 아닐까라고 걱정하던 할아버지는 테드가 가장 좋아하던 기타로 운을 띄운다. 아들은 흔쾌히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받아드리면서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테드가 (병실)문 앞에 거의 다다랐을 때 할아버지가 기타를 들고 왔느냐고 묻는다...병실에서 테드는 기타를 치고 할아버지는 콧노래를 부른다.”(156)

 

재미있는 건 애초부터 아들, 테드와 할아버지간의 갈등을 유발시켰던 요인인, ‘수학의 언어문자의 언어라는 대립구도가 나중에는 완전히 와해된다는 점이다. 더 나아가 할아버지는 소원했던 아들이 나를 너무 닮아서”(137)라는 고백을 하기에 이른다. 대립과 갈등으로 삼았던 모든 이유들이 무색해지고 무의미해지는 순간이다. 사랑하는 사람 간에도 그런 관계가 있지 않은가. 내가 잘못했음에도 선뜻 사과하지 못하고 어영부영하다가 소원해진 관계, 말과 행동으로 입혔던 상처가 너무 커서 미안하다는 말조차 주저하게 되는 관계, 생각만 해도 마음에 돌 하나 얹어 놓은 듯 답답하고 후회스러웠던 관계 말이다.

프레드릭 배크만의 이별 준비는 바로 이런 관계의 회복이지 않을까. 사랑하고 그리워했던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 이상으로 용서를 구해야할 사람과 가슴을 맞대고 화해하는 건 더더욱 중요한 작별 준비였다. 그건 남겨진 사람들의 무거운 마음을 덜어주기 위한 배려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손자인 노아와 할아버지의 관계는 테드와 좀 다르다. 끈끈한 애착관계이기에 덜 아프게 작별하는 법을 고민하게 된 직접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다음 세대로 할아버지의 유지를 전하는 멧신져의 역할도 하고 있다. 게다가 아빠와 할아버지가 화해하는 다리의 역할을 하면서 저자의 뜻을 직접적으로 노출시키는 대변자의 역할도 한다.

 

프레드릭 배크만의 작품을 생각해보며 질문을 살짝 바꿔서 자문해 본다. “훗날 내가 눈을 감기 전, 난 뭐가 가장 아쉬울까?, 뭐가 가장 후회될까?” 뭘 먹지 못하거나, 누리지 못해서 드는 아쉬움은 덜 할 것 같다. 이루지 못한 일도 걸리긴 하겠지만 그것도 생각보다 큰 후회는 아닐 것 같다. 그럼 뭐가 있을까. 그건 아마도 사람을 향하고 있지 않을까. [보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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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 2017.4
샘터 편집부 엮음 / 샘터사(잡지)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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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는 어렵다.

 

현실에서의 관계는 물론이고 최근 부쩍 늘은 온라인상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간편하고 실용적이라는 점에서 외연의 확대를 가져오긴 했지만 채워지지 않는 갈증마저 느끼게 한다. 역설적으로 편리하고 손쉬운 만큼 아무 것에도 관계 맺지 못한 상황을 가져온다고나 할까. 온라인이나 모바일의 게임으로 맺어진 사람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등의 SNS로 만나는 사람들, 등록된 핸드폰 번호로 건너 뛰어 알게 된 사람들까지 관계의 경계는 허물어졌지만 느슨하고 점성도 떨어진다. 게다가 내가 남긴 댓글이나 추천, 팔로윙 따위의 족적까지 분석해서 친구를 맺어주는 그 친절함에는 좀 과하다싶기도 하다. 이래서 무슨 의미 있는 관계를 이룰 수 있을까? 현실 세계에서도 이런 기분이 느껴질 때가 있다.

 

<월간 샘터> 4월호에서 이종원 편집장은 윤대녕의 작품, <그를 만나는 깊은 봄날 저녁>에 나오는 일화를 소개한다. 주인공이 직장생활 중 받아왔던 명함의 주인들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낭패감에 무작정 명함의 주인을 만났다는 이야기다. 결국 둘은 반나절이상을 같이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명함이 오간 순간을 기억하지 못하고 씁쓸한 관계의 의미만을 곱씹었다는 줄거리다.

나 역시 그랬다. 얼마 전 책상 정리 중, 처박아둔 명함집을 발견했는데, 정말이지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사람이라곤 컴퓨터를 수리해주던 기사뿐이었다. 그 나머지 사람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만났는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고사하고라도 왜 여기 들어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내가 사람들과 부대껴왔던 시간이 고작 이 명함을 대하는 나의 처지와 비슷하지는 않을까.

 

생각해보면, ‘관계뿐 아니라 혼자인 것도 어렵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혼자는 일단 낯설다. 그리고 막강한 채무감이 따른다. 그래서 혼자일 때, 그 시간과 기회를 살렸다고 평가하기가 더욱 인색해진다. 더욱이 관계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사람이라면 혼자는 더더욱 어렵다. <월간 샘터> 4월호 특집인, ‘혼자라서 좋은 날에는 혼자인 상황에 처해진 우리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혼자여서 좋을 줄 알고 장을 봐왔는데 펼쳐놓고 보니 모두 남편이 좋아하는 식재료다. 은연중에 남편이 제일 맛나게 먹던 김밥, 냉이된장국, 도라지나물, 미역초무침을 만들기까지 한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다.

 

혼자하면 참 많은 것들을 제약 없이 할 줄 알았는데 막상 하다 보니, ‘이건 아이가 좋아하는 건데’, ‘이건 남편이, 아내가 좋아하는 건데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게 가족 간의 사랑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한 켠에서 똬리를 트는 생각이란 가족들을 떼어낸, ‘라는 존재는 과연 무엇일까?”라는 의문일 수도 있다. ‘혼자인 상황에 처해졌을 때, 당혹스러워하지 않고 나를 직면하는 용기가 낯설었던 것일까? 심지어 내가 좋아하는 음식, 내가 하고 싶은 일마저 밀려나버리고 그런 질문조차 사치스럽게 느껴질 때면 혼자인 것을 더욱 욕심내야할 때는 아닐까.

 

<월간 샘터> 4월호에서 그 모범을 잘 보여준 인물이라면 연기자, 이문식이다. 11대 종손이라는 부담감으로 출세에 대한 강박증을 지닌 그는 육사시험, 해양대, 항공대를 전전했지만 하고 싶은 일을 찾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연기의 길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었다. 한양대 연극영화과 졸업 후에 대학로 연극판에서 한 해 수입 300만원으로 버텼고, 라면 한 그릇 먹지 못하는 가난도 겪었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행복만은 지켰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두 아이들을 대안학교에 보내 하고 싶은 일을 스스로 고민하도록 2-3년의 유예기간을 허락한 양육방식에서도 보여진다. 현명하고 멋진 생각이다.

 

남자의 자격에서 넬라판타지를 부르면서 인기를 얻었던 배다해 역시 10년간 해왔던 성악을 포기하고 기획사의 방출까지 감수하면서도 혼자의 시간에 충실했다. 적어도 본인이 가장 행복해하는 노래가 무엇인지 알았고 그걸 당당하게 욕심내었다. 쉬운 길보다 본인이 원하는 길을 걷는 용기가 노래 제목처럼 똑똑똑하며 팬들의 마음을 두드리라 생각되었다.

 

관계도 어렵지만, ‘혼자는 더 어렵다. 내 자신을 들여다보는 내 안으로의 길을 내어야하고 세상 밖으로 커밍아웃하는 내 밖으로의 길도 내어야하기 때문이다.

<월간 샘터> 4월호는 그 길을 가도록 호흡을 가다듬게 한다. [보듬]

 

 

 

관계, 혼자, 월간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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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있습니다 - 때론 솔직하게 때론 삐딱하게 사노 요코의 일상탐구
사노 요코 지음, 이수미 옮김 / 샘터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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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것을 보면서 감탄한 일이 종종 있었다.

 

당당하게 소용돌이 모양으로 휘감기다가 끝부분이 하늘을 향해 뾰족 솟아 있다. 꼭 소프트아이스크림 같다.... 멋진 작품을 뽑아낼 수 있었던 건 구멍이 훌륭했기 때문일까? 친구가 온 날, 쭈그리고 앉아 관찰하는데. 달걀노른자 정도 크기의 동그란 노란색 풍선 같은 것이 몇 개 떠 있다. 투명한 풍선 속엔 샛노란 액체가 빙글빙글 돌고 있다. 솔직히 말해 아름답다고 표현해도 좋을 만한 형상이다. 투명한 노란색 비눗방울 형태가 터뜨리고 싶은 욕망을 자극한다. “, 젓가락 갖고 와.” 젓가락을 챙겨 내가 건드리려는 순간, 친구가 잠깐, 내가 할게.” 그런데 비눗방울이 물 안에서 빙글빙글 돌기만 할뿐 터지지 않는다. “뭐야. 이거. 안 되겠다. 포크 갖고 와봐. 큰 걸로.” 그러자 나는. “내가 해볼게. 내 똥이잖아.” (250-262)

 

 

이렇게 멋진 똥 글은 처음이다.

 

내키지 않아도 상상하게 만드는 생생한 묘사와 경쾌한 문장,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결국에는 헛구역질을 유발시키는 탐구심이란, 차라리 짓궂다. 거기에 명망 있는 동화작가이자, 에세이스트로서 사노 요코의 솔직하고 당당한 고백에 자체 검열 따윈 없다. 사노 요코의 <문제가 있습니다>는 그렇게 평범함을 가장하며 엉뚱하게 다가왔다

 

그런데 사노 요코는 참 녹록지 않은 삶을 살았다. 중국 땅에서 종전 후, 일본으로 넘어와 좋은 엄마를 꿈꿨으나 두 번의 결혼과 두 번의 이혼을 했다. 집을 지을 때는 사기를 당했고 항암치료와 우울증치료를 했다. 게다가 귀신 들렸네로 핀잔 받을 수 있는 자율신경실조증의 징후까지 보였다.

 

부모-자식간의 양육관계도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다. 엄마와의 불화와 애착장애는 작가의 몸에 핀 가시이자, ‘더러운 물의 원인이 되었다. 이건 그대로 대물림 되어, "엄마는 인간으로서는 그럭저럭 괜찮지만, 엄마로서는 정말 꼴불견이야"(245)라는 아들의 비난을 들어야 했다. 친구는 저자에게 자식한테 그러는 거 정말 못 봐 주겠어. 아니, 보고 싶지 않아.”라는 날선 말을 쏟아 부었다. 두 번의 결혼과 두 번의 이혼을 자평한 부분도 긍정적이지는 않다. ‘사람과 사람이 붙는 건 고생스럽지 않지만 떨어지는 건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108), ‘부부관계를 청산하기 위해 10년이라는 세월을 허비했다.’(204)등으로 정리한 걸 보면, 저자의 자조 섞인 말처럼 똥과 된장이 뒤섞인 인생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만수를 누리며 작고한 저자에게 평온함만 있었다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 잔물결 하나 일지 않는 바다가 어디 있으며, 흔들리지 않는 나무가 어디 있을까. 설령 똥과 된장이 뒤섞인 인생이라 할지라도 사노 요코의 작품은 대책 없이 당당하고, 겁 없이 재기발랄 하며, 주저 없이 맹랑하고, 쉼 없이 집요하다. 그런 성향이 잘 담긴 게 앞에 제시한 작품이고 똥 따위의 소재가 귀한 지면의 얼굴마담이 된 이유이다

 

<문제가 있습니다>에서 사노 요코는 작고 평범한 것들에 대한 애착과 공감의 모습을 보여준다. ‘기타카루이자와에서는 새싹이 1센티미터씩 자란 사실까지 알아차린다. “새싹이 하룻밤 사이에 1센티나 자란 걸 확인했을 땐 정말 놀랐다”(191) 무릇 작고 평범한 것들에 대한 예의란 무릎을 굽히고 앉아, 공감의 촉수로 놀라움을 표현하는 자세에 있다. 이런 태도에서는 하잘 것 없고 평범한 것들조차 날개를 단다.

 

가와이 히야오 선생을 높이 샀던 점 역시 지식이 아니라 놀라는 마음’(공감)에 있었다. “어른이 되면 그냥 놀라기가 어렵다. 하지만 가와이 히야오 선생은 어설픈 인텔리처럼 아는 척하거나 하찮게 여기지 않고 놀란다. 놀라는 마음전문가인 넓고 깊은 인격의 소유자인 것이다.”(111) 그래서인지 저자가 여생동안 가졌던 바램도 그때그때 놀라고 싶을 뿐이다.”(149)였다. 사노 요코 답다.

 

한 가지 재미있는 건, 샤노 요코는 이른바 식자 계급이나 책 좀 읽었소라는 허세에 대해서는 신경증적인 거부감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지독한 독서광임에도 불구하고 본인 스스로도 독서는 쓸 데 없었다”(39)라거나 책을 읽어도 똑똑해지진 않는다.”라는 표현을 썼다. 그 뿐 아니라 서른다섯 살 이후로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책만 읽었다는 앗짱의 할아버지 이야기, 저수조에 빠진 다로를 모른 체 하고 도망가서 대형 출판사의 사장이 되었다는 히데오 이야기는 머리만 채운 식자계급에 대한 조소를 담고 있다. 사노 요코에게 중요한 건,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었다. 작고 평범한 것들마저 볼 수 있고, 놀랄 수 있고, 담아 낼 수 있는 가슴 말이다.

 

엉덩이를 내놓은 채 내가 눈 줄무늬 똥을 관찰하다보니 똥이 더 나올 것 같았다. 물똥이었다. 놀랐다. 똥이 연하게 확 퍼져 있었다. 호랑나비의 검은 날개 같았다. 양쪽에 좌우 대칭으로 호랑나비 날개 두 장이 엷게 펼쳐진 형상이다. 노란색의 고운 소용돌이무늬를 띤 채. 남은 평생에 이토록 아름다운 똥을 또 다시 누지는 못하리라. 고독하게 물을 내려 흘려보냈다.’ (250-262) [보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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