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것들의 비밀 - 반짝하고 사라질 것인가 그들처럼 롱런할 것인가
이랑주 지음 / 샘터사 / 2014년 4월
평점 :
품절


 










 

'말 좀 태워주세요'

 

시장 초입.

곡물류와 기름, 소스류를 모아놓고 파는 가게를 지날 때면 여간 곤혹스러운게 아니다.

생뚱맞게도 보리차와 잡곡류 매대 바로 앞에 100 원짜리 말이 버티고 서서 공주님의 발을 붙잡기 때문이다. 공주님은 100원짜리를 내리 5개나 넣어, '광란의 질주'를 했고 나는 주인 할아버지께 궁금했던 걸 묻던 참이었다.

 

'할아버지, 말 타는데 100원씩이면 전기세 빼고 뭐가 남아요?'

그런데 주인 할아버지가 미소를 띠우며 하시는 말씀이 의미심장했다.

말 타는 동안, 아이를 기다려야하는 엄마, 아빠가 있잖아요.'

 

그랬다.

 

이미 내 손에는 그 가게에서 산 보리차 한 봉지가 들려 있었다.

 

이런 생각을 해봤다.

만약, 보리차처럼 자주 소비되는 상품이 손길 가기 어려운 곳에 있었다면, '트리플 a 혈액형'인 나 같은 사람이 구매까지 했을까. 또 그 가게에 오랫동안 머물러야할 이유가 없었다면, 검은 봉지 휘날리는 부담을 감수했을까. 아마도 효율적인 상품의 진열방식과 함께 오랫 동안의 체류시간이 보리차의 구매까지 가능하게 했던 것 같다.

이런 예들은 이미 우리 삶속에 부지기수로 목격된다.

어느 때부터인가 맥주코너 옆에 안주들이 같이 진열되고, 계산대에는 쉽게 손이 가는 초콜릿바와 껌, 건전지등이 사열을 이루고 실내음악의 빠르기와 조명밝기까지 의도적으로 조절된다.

식자재와 과일들이 소포장과 반쪽으로 나뉘고 생선들이 명을 다하고도 살아있는 양, 비틀리고 세워지는 아크로바틱을 주저하지 않는다.

이런 작업을 '상품가치연출' 또는 '상품가치진열'이라고 하고, 그 직업을 '상품가치연출 전문가', '상품가치진열 전문가'(VMD)로 지칭한다. 개인적으로 VMD'Visual Merchandiser'의 약어표기라는 사실보다 'very much dream'으로 의역한 기발함에 더 점수를 주고 싶은 심정이다. VMD의 사명감이나 의미가 더 쉽고 감동적으로 와 닿는 느낌이랄까.

 

<살아남은 것들의 비밀>의 저자, 이랑주는 국내 VMD 1호의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소상공인 맞춤 VMD'영역의 개척자이자, 고객의 눈과 마음을 탐내는 탐험가, 길바닥에 방치되어 있던 가치를 찾아내주는 길의 여왕이기도 하다. 이 책은 저자의 그러한 이력과 40여개국 150여개의 전통시장과 소상공인 점포를 겪은 이야기가 실려있다. 하지만 독자층이 제한될 필요는 전혀 없는 책이다. 재래시장을 비롯해서 지하상가, 노점상, 구멍가게같은 소상인을 아우르면서도 삶의 각도와 일의 의미를 찾는 독자라면 누구든 추천할만하다.

책의 구성은 10개의 주제, 33꼭지로 되어있다. 한 개의 주제에는 3-4개의 마켓을 배열하고 VMD로서의 분석과 인생철학, 우리 시장에서의 응용점을 찾는 형식을 취한다. 예를 들어, ‘체험하게 하라, 충성할 것이다라는 주제 아래, 뉴욕 소호와 영국의 캠든 마켓, 인도의 바라나시와 다즐링을 예시하고 우리 전통시장에서의 적용점과 개인의견을 삽입하는 식이다.

이랑주의 <살아남은 것들의 비밀>을 읽으며 관심 있게 본 점은 개별 마켓들이 어떠한 모습으로 오랫동안 살아남았는지에 대한 각론만은 아니었다. 개별 마켓의 외형이나 운영모습은 토착성과 고유성을 띠는 것으로 비본질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잘 보이지 않지만 더 중요한 철학과 시장의 본질이라는 총론을 유심히 봤다. 저자가 강조하는, ‘살아남은 것의 비밀또한 외형이 아닌, 본질이고 철학이기 때문이다.

 

 

 

 

공감력이 먼저다 :

 

사람의 일이 그렇듯,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매출의 창조적 아이디어도 결국, 공감력에서 나온다. 나의 물건을 선택할 고객들의 입장을 먼저 살필 때, 고객의 마음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 ‘오사카의 부엌이라는 구로몬 시장에는 딸기 꼭지를 5cm정도 남겨둔 상인이 있다.(302-311) 이유인즉, 봄의 기분을 느낄 수 없었던 도시민들에게 풍성한 과실 수확의 즐거움을 재현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도시민의 안타까움을 공감하지 못했다면, 착안할 수 없었던 아이디어다. 마찬가지로 시장 바닥에 대리석을 깔았던 것도 자전거 운행자와 유모차, 장애인들에 대한 공감력에 부합된 아이디어다.

오클랜드 슈퍼마켓의 커넥팅 진열도 연관 상품을 쉽게 구매하고자하는 소비자의 욕구를 읽었던 것이며, 분야별 판매량 1-5위까지의 아이템만 판매하는 랭킹랭퀸역시, 선택의 혼란을 줄이고 최적의 상품을 선택하고자하는 고객의 마음에 공감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체코 프라하의 아름다운 다리인, ‘카를교역시 500m나 되는 긴 거리를 걷는 보행자의 심정을 읽었던 것으로 다리이면서 박물관이라는 명소가 되었다.(234-241) 부다페스트 중앙시장에서는 웃음 짓는 피클을 통해 파는 이가 아닌, 그것을 먹는 사람의 행복에 관점이 있음을 보게 된다.(170-172)

, ‘그의 마음이 되어야만 그의 마음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301) 결국 대박이란 그가 되어보는 공감력으로만 가능하며 고객의 마음을 미루어짐작하는 상상력의 날개로만 가능해진다. 결국, 매출은 외형적인 각론에 있지 않고 공감력과 상상력이라는 총론이자, ‘본질에 있다.

 

 

 

 

 

 

시장의 본질 :

 

<살아남은 것들의 비밀>은 세계 각국의 재래시장에서 발견되는 교훈와 가치를 따진다. 스페인의 산미구엘, 오스트리아의 빈 나슈 마르크트, 불가리아의 소피아 중앙시장, 영국의 캠든 마켓,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중앙시장, 인도의 바라나시와 다즐링 등등, 나름의 살아남은 이유들이 부각된다. 하지만 시장의 형태, 규모와 아름다움, 독특한 마케팅과 진열, 전략이나 이벤트같은 외형적 요소, 각론이 본질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전통시장들은 10여 년간 편의시설 확충과 시설현대화를 했음에도 괄목할만한 성장을 가져오지는 못했다. 이유는 시장상품에 대한 불신을 확실히 해소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길모어 파머스 마켓의 경우처럼, 소비자는 투명한 유통 이력을 통해 어디에서 어떻게 재배되어 나의 식탁까지 오는지 알고 싶어한다. 그 요구를 파악해서 철저한 품질관리인증으로 얼굴 있는 상품만 판다는 신뢰를 경주해야한다.(342-351)

하지만 외형적인 덧칠과 덧붙임만으로 본질과 비슷한 효과를 낼 수는 없다. ‘하카니에미 마켓 홀안톤 앤 안톤 슈퍼는 시장의 본질이 중요함을 말해준다.(162-165) 각종 방부제와 첨가물로 범벅된 영혼 없는 상품이 아닌, 생명을 살리는 상품으로 오로지 정직과 경쟁한다. 백 년 된 일본의 식당은 점포를 열기 전, 음식 재료로 쓸 농산물을 재배할 토양 조성에만 4년을 쓴다고 한다. 이게 본질이다. 당연하게도 시장의 본질은 믿고 살 수 있는 상품이고, ‘식당의 본질은 믿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백년의 가게 : 노포의 탄생>에서는 오로지 품질로 승부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장인이다.’라고 언급한다. 전통 시장의 현대화에서도 놓치지말아야할 것은 외형이 아니라 상품이라는 본질이다.

 

 

 

 

 

 

당신에게도 전통시장은 중요한가?

 

전국에는 1,500여 개의 전통시장이 있지만, 시장으로서 제 기능을 하며 생존할 수 있는 시장은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살아남은 것들의 비밀>의 전제 또한 위협받고 있는 전통시장을 비롯해서 지하상가, 노점상, 구멍가게등의 소상인은 지켜져야한다.’이다.

그렇다면, 왜 지켜져야할까, 그것들이 내 삶에 무슨 관련이 있다고.

그간 우리의 소비패턴이 말해주듯, 전통시장을 비롯한 여타 소상인의 운명은 대형 유통 마켓의 휴무일보다 중요치 않았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더더욱 이 생소한 질문이 필요하다.

저자는 전통시장을 비롯한 소상인의 가게들이 모두 가치 있는 전통이며 문화이고, ‘학습의 장’,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커뮤너티의 장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등한 가치와 낡은 것으로 밀려난다고 토로한다.

 

 

 

 

 

단순히 물건을 파는 곳이 아니라 시장 그 자체로 문화이고 문화유산임에도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남겨야 하는지조차 고민하지 못한다.’(243)

시장은 문화이자, 학습의 장이다. 시장으로 현장 실습을 나온 아이들은 다시 시장을 찾을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손잡고 시장의 문화를 어릴 때부터 익숙하게 학습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신자본주의 사회, 시장을 둘러보면서 어떤 이익을 남길 것인지, 물질적 이익만을 남길 것인지, 가치 있는 전통과 추억을 남길 것인지 결단해야한다.’ (246-251)

 

 

 

 

동감이다. 하지만 그와 함께 우리가 놓치고 있던 또 다른 전통시장을 비롯한 소상인의 중요성이 있지 않을까?

 

 

 

 

여기, 사진작가 김지연의 <근대화 상회, 2009>라는 작품이 있다.

근대화를 통해 잃어가는 인간의 가치들을 소비패턴의 변화를 통해 표현한 연작이다.

그러면 어떤 가치들을 잃게 된다는 것일까.

전통시장을 비롯한 노점상, 소규모 가게의 멸절을 통해 우리가 잃어버리게 될 것들이 과연 무엇일까?

<살아남은 것의 비밀>을 놓으며 진지하게 가져야 할 물음이다.

 

 

 

 

 

<보듬>  글의 원본은 http://thinker777.blog.me/220006766457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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