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진가
모데라타 폰테 지음, 양은미 옮김 / 문학세계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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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미 과거에 너무 많이 닥치고 살았어요. 더 많이 닥칠수록, 더 고약한 것만 얻게 됐어요. 만약에 자기 돈을 누군가에게 주었다가 환수하려고 들 때, 그 사람이 돈을 돌려줄 생각이 없을 뿐더러 더구나 돈을 돌려받아야 할 당사자가 입닥치고 있다면, 부도덕한 빚쟁이가 그 사람에게 만족감 따위를 줄 리는 만무하죠. 하지만 그가 재판관 앞에서 호소한다면, 정당한 권리로 그의 것을 되찾게 될 거예요.”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오늘날과 비교해서 여권이 상상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낮은 과거의 여성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을까?
울분을 토하며 권리를 주장했을까, 아니면 그냥 닥치고 살았을까.

페미니즘 서적의 홍수 속에서, 16세기 베네치아 여성들의 대화로 이루어진 책이라고 해서 호기심에 받아본 모데라타 폰테의 <여성의 진가>는 무려 1592년에 씌어진 책이다.
모데라타 폰테는 모데스타 포조의 필명으로, 그녀는 베네치아의 시인이자 한 남자의 아내, 그리고 세 아이의 어머니로, 안타깝게도 셋째아이를 출산한 후 곧바로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작품 소개를 보면 실제로 이탈리아 여성들이 나눈 대화를 책으로 엮은 것이라 생각하기 쉬운데, 이 책은 가상의 일곱 여성이 등장하는 ‘대화록이 아닌’ 소설로써 대강 아래와 같은 대화들로 이루어져 있다.

 


“사실, 여자는 여자들과 함께 있을 때에만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어요. 여자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멋진 일은, 남자 없이 홀로 살아갈 수 있을 때라니까요.” (57쪽)

“남자는 애초 신에 의해 영혼의 시련 차원에서 여자에게 주어진 것이니까요” (77쪽)

“솔직히 연인 사이에서 상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보물이 값진 보석 아니겠어요? 그건 여자도 마찬가지고요.” (103쪽)


책을 2회정도 거듭 읽어보았으나 나는 작가가 무슨 생각으로 이 글을 썼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심지어 등장인물 중 한 여성은 아들을 잃은 한 여성에게, 아들이 죽지 않고 성장했다면 “더 나쁜 쪽으로 바뀌었을 거란 쪽이 훨씬 더 현실성 있는 얘기죠(86쪽)”라고 한다거나 창녀를 가리켜 “선량한 본성과 연민으로 그렇게 이끌린 것(113쪽)”이라고 말한다.


또한 다음과 같은 문구는 경악을 했을 정도였는데,

“한 가지 확실한 건, 베네치아 여자들은 다른 곳의 여자들보다 더 매력적인 매너를 갖고 있다는 거예요. (중략) 반면에 베네치아 밖에서 오는 여자들은 좀 남자 같아 보이는 구석이 있어요.” (185쪽)

“사실, 여자 머리가 블론드일 때 보통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다고 생각하니까요.” (184쪽)

베네치아의 페미니스트도 인종차별은 어쩔 수 없었던가.
또 남편이 질투를 하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느냐는 딸 레오노라의 질문에 어머니 퀸은 이렇게 답한다.

“일단은 질투를 부추길 만한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게 가장 좋겠지. 남편을 제외한 다른 남자에게 매력을 어필할 필요는 없을 테니까. 만약 남편이 네가 옷을 잘 차려입거나 꾸미는 걸 좋아하지 않으면, 넌 그러지 말아야 하고, 네가 집 밖에 외출하는 걸 싫어하면, 외출을 삼가서 남편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어야 한단다. 이렇게 하면 그의 마음을 얻게 되고 나중엔 그의 신뢰를 얻게 되어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게 된단다.” (192~193쪽)


책 내용을 전부 다 기재할 순 없지만 위와 같은 내용으로 인해 문두에 적은 한 문장 외에는 책을 읽는 내내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16세기 베니치아 여성(중 한명)이 당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 이 책을 읽는 목적의 전부였다면 그 호기심은 충분히 해소 되었으나, 군데군데 눈에 띄는 오타와 번역 오류는 차치하더라도 이 책이 어떤 페미니즘적 가치가 있는지는 솔직히 의문스럽다. 아쉬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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