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터슨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 지음, 황유원 옮김 / 읻다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폭포는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하여 떨어진다는 의미도 없이

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고

고매한 정신처럼 쉴 사이 없이 떨어진다.


금잔화도 인가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폭포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곧은 소리는 소리이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취(醉)할 순간(瞬間)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

나타(懶惰)와 안정을 뒤집어 놓은 듯이

높이도 폭도 없이

떨어진다.


김수영, 폭포(1959)


나는 최근에 박연준 시인의 시집을 읽었다.


사랑이 죽었는지 가서 보고 오렴,

이라는 제목으로 말을 거는 시집을 어떻게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그 물음에 아직?, 아직. 이라고 답하는

박연준의 시들이 좋았다. 


그렇지만 좋았다,라고 말하면

어딘가 시가 납작해지는 것만 같다.

너무 납작해져 버려. 시에 대해서 늘 더 잘 말하고 싶다.

시에 대해서 말할 때 어딘가 모르게

무구하고 겸언쩍은 얼굴이 된다.

시는 언제나 ‘미지’의 것.


근데 정말 그런가?

되돌아보면 그렇지 않은 인상으로 다가왔던 시들이 있다.

그건 바로 김수영의 시.

꾸짖고 호통치는 것만 같은 김수영의 시를 들으면

무덤에서 죽은 사람이 기어코 올라오는 것만 같다.

나는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의 ‘패터슨’을 읽으면서

김수영을 떠올렸다.


시집 『패터슨』은 ‘패터슨’이라는 이름을 가진 도시와 남자를 

호명하면면서 현대인의 마음과 도시의 유사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사랑은 위안거리가 아니다, 그보다는 차라리

두개골에 박힌 못

P117


과거는 상류에, 미래는 하류에 

그리고 현재는 쏟아져 내린다: 굉음, 

현재의 굉음, 말— 

그것이, 필연적으로, 나의 유일한 관심사 .

P202



여전히 시는 어렵지만, 시를 읽으면서 김수영을 떠올렸고 1883년에 미국에서 태어난 윌리엄스와 1921 서울에서 태어난 김수영을 이어보는 좋은 시간이었다.


*‘읻다 서포터즈’로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간을 거슬러 간 나비 - 데뷔 30주년 기념 초기단편집
듀나 지음, 이지선 북디자이너 / 읻다 / 202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30년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긴 지 생각해보면 까마득해진다.
내가 살아온 온 생애를 다 합쳐도 30년이 채 되지 않는데.
이 사람 내 삶보다 긴 시간을 글을 써왔구나.


『시간을 거슬러 간 나비』는 언제나 베일에 가려진 작가 ‘듀나’의 데뷔 30주년 기념 초기 단편집이다.

듀나 작가는 30년 전부터 ‘하이텔’이라는 인터넷 공간에서 짧은 단편을 써왔다.
언젠가 듀나의 소설을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너무나 예쁜 표지와 디자인으로 작가의 다양한 소설을 볼 수 있다기에 기쁜 마음으로 독서를 시작했다!


시간 여행이나 성경을 비트는 등 초반에는 조금 심오한 느낌이었다면, 후반부로 갈수록 조금 더 동시대적 감각이 드러나는 게 신기하고 좋았다.

내가 가장 재밌게 읽은 단편은 「홍장표 씨의 경우」라는 단편이다. 은퇴 후 무료한 시간을 보내던 ‘홍장표’씨가 자신을 무시하는 가족에 참지 못하고 아내를 살해하는 이야기다. 생각해보면 이 소설집에서 가장 SF스럽지는 않다. 하지만 듀나 작가가 소설 말미에 붙여두는 작가의 말에 이렇게 다음과 같이 적었고 나는 그 말 때문에 이 소설이 더 좋아졌다.

“전 이런 이야기를 소설로 쓰지 못합니다. 제 장르가 아니기도 하지만 너무 인위적으로 느겨지니까요. 하지만 원래 실화라는 게 그렇죠. 세상은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보여야 할 의무감을 느끼지 않으니까요.”

소설은 삶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다른 이름으로 저장하기’다, 라는 문장을 읽은 적이 있다. 실화를 그대로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듀나는 듀나만의 장르로, 방법으로 고민하고 글을 써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좋았다. 두껍지만 생각보다 잘 읽히고 이야기도 흥미롭다. 또한 각 소설 말미에 어떤 생각과 고민을 담았는지도 실려있어서 SF 소설 쓰기에 관심이 있으신 분도 완전 추천합니다!


마지막으로…
책 디자인에 대해서는 꼭 말하고 싶은데 살면서 본 책 중에 내 취향으로는 5 손가락 안에 들 듯…! 책 배에까지 다자인이 있어요ㅜㅡㅜ

*‘읻다 서포터즈’로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울의 워커홀릭들 - 일, 사람, 돈
홍정미 외 지음 / 읻다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간의 기본적 심리 욕구에는 자율성, 유능성, 관계성이 있다. 우리는 스스로 무언가를 선택하고 유능하게 해낼 때 행복감을 느낀다. 읻다 출판사에서 출간된 『서울의 워커홀릭들』은 12명에 ‘일하는 사람들’의 일, 사람, 돈에 대한 이야기다.
처음에 책을 펼쳤을 때는 주제에 따라 3분할로 나뉘어 있는 줄도 모르고 한 페이지를 통째로 읽었다. 읽고 나서야 무언가 잘못된 것을 깨닫고 살펴보니 카테고리를 따라 독서하는 책이었다…! (신기)

12명의 사람들 모두 확고한 취향과 신념으로 자신의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평소에 이름이 재미있다고 생각했던 양말 브랜드인 ‘아이 헤이트 먼데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된 마음성장 플랫폼 ‘밑미’ 등 자신이 좋아하고 진짜로 원하는 일을 찾아 떠나 스스로 워커홀릭이 되기를 자처한 사람들이 이야기가 담겨있다. ‘중독’의 측면 보다는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가지는 사람들의 긍지와 활력을 느낄 수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기 日記 - 황정은 에세이 에세이&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사랑하기 위해 자주 슬프다. 아름다운 것을 보면 눈물을 흘리고 마음이 저려오며 그리움에 아련해진다. 그렇다면 황정은은 사랑하기 때문에 분노하고 행동할 수 있다.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해 광장에 나서고 배를 보기 위해 매년 목포로 향하는 사람.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사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 사이엔 오해가 있다 총총 시리즈
이슬아.남궁인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 이슬아 왤케 좋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