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회>
“우화핫! 그러니까 그 녀석들이 내 비늘 맛을 보고 싶다는 거야?”
“너무 웃지 마. 찬이는 용이라면 깜박 죽는 애잖아.”
“하하 좋아, 찬이는 그렇다 치고 먹보 녀석은 설마…….”
“그래 맞아, 걔는 먹는 건 뭐든지 좋아하잖아. 지난 번 내 이야기를 듣고부터 먹고 싶어서 밤에 잠이 안 온데.”
“우 하하하하! 정말 웃기는 녀석들이네. 그런데 넌 왜 나한테 진작 이야기 안 했어?”
미르는 냉기를 뿜어대며 공중에서 한 바탕 재주넘기를 했다.
“비늘 한 조각이라도 네 몸에서 나온 건데. 떼어내려면 아플 거 아니냐.”
“…….”
미르는 한결이를 빤히 쳐다보았다.
“신경 안 써도 돼 녀석들 그러다 말겠지 뭐.”
“좋아, 인간이 내 비늘 삼키는 거 끔찍이도 싫지만 네 체면도 있으니까 두 개쯤이야.”
“아, 아니야 그럴 필요 없어.”
한결이는 당황해서 손 사레를 쳤다.
“괜찮아, 그 녀석들이 네 친구면 나에게도 친구 비슷한 거니까.”
“그래도.”
“대신 조건이 있어.”
“그게 뭔데?”
“첫째, 두 녀석들이 용의 비늘을 삼키고 난 후 어떻게 되든 모든 책임은 두 녀석에게 있는 거야.”
“그야 당연하지.”
“그리고 하루 한 시간씩 나에게 자유 시간을 줘. 내가 ‘그리’를 잡아먹든 눈을 뿌리든 상관 말기, 어때?”
“하지만,…….”
“대신 내가 부르면 언제든지 곧장 너 있는 곳으로 날아 갈 테니까 걱정 마.”
“조, 좋아. 녀석들에게 이야기 하면 녀석들도 좋아 할 거야.”
한결이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렇게 좋아? 웃다가 입 찢어지겠네.”
“헤헤, 지금까지 나 친구라곤 그 녀석들밖에 없었어. 그래서 뭔가 해주고 싶었거든. 고마워, 미르야.”
한결이는 미르를 두 손으로 감쌌다. 그리고 미르의 눈을 쳐다보며 빙긋 웃었다.
“정말 고마워.”
수업을 마치고 삼총사와 미르는 아무도 몰래 "용 분식집" 부엌을 찾아왔다. 석우와 찬이는 벌써부터 기대감으로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하지만, 한결이는 살짝 긴장한 표정이었다. 용의 비늘을 삼키는 사람은 보지 않아도 될 것 들을 보게 된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용 뿐 아니라 ‘그리’ 같은 괴물들도 보게 된다는 걸 두 친구에게 두 번 세 번 말했지만 석우와 찬이는 걱정 말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르 말이 용의 비늘은 삼키는 사람마다 그 맛이나 색깔도 다 다르게 느껴진데. 그러니까 내가 이야기 했던 거랑 다를 수도 있어. 그리고…….”
“야, 알았어. 벌써 그 이야긴 열 번은 더 했겠다. 걱정 말아. 우린 준비 다 되었다고.”
“그래 그리고 이제 일주일 후에 할아버지가 오면 다시 원상태로 될 수 있다며, 그러니까 걱정 마.”
찬이나 석우나 자신 만만해 보였다.
“좋아 그럼, 준비 된 거지?”
“그럼!”
한결이는 두 친구에게 몇 번을 다짐을 받고는 미르에게 달려갔다.
“미르야, 그럼 부탁해.”
“좋아, 오랜만에 용 튀김 요리를 만들어 볼까?”
미르가 푸욱 푸욱 입김을 뿜으며 커다란 용 분식집 주방을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와 정신없어!”
한결이는 자기 눈동자가 빙빙 도는 것 같아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렇지만 미르의 속도는 점점 더 빨라졌다. 이윽고 미르는 마치 푸른빛으로 빛나는 커다란 링처럼 보였다. 그때였다.
“한결아! 잘 받아!”
미르의 다급한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자, 푸른빛이 반짝반짝 빛나는 작은 비늘 하나가 보석처럼 커다란 링에서 튀어 나왔다. 한결이는 허둥지둥 달려가서 그것을 간신히 받았다.
“또 하나 날아간다!”
두 번째 비늘이 미르의 몸에서 튀어나왔다. 이번에는 한결이도 준비를 하고 있던 터라 곧장 달려가 냉큼 받을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미르가 회전하는 속도는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자, 이제 재료가 갖추어졌으니 오븐에 굽기만 하면 되겠군.”
미르가 몸을 꿈틀하더니 돌기를 멈추고 한결이에게 다가왔다.
“한결아 저기 커다랗고 별 모양이 그려진 오븐이 보이지? 거기다 비늘 두 개를 넣어야 해.”
“응, 알았어.”
한결이는 용 비늘 가지고 커다란 오븐으로 달려갔다. 석우와 찬이는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한결이의 행동을 이해 할 수 없었다.
“야, 지금 한결이가 뭐하는 걸까?”
“낸들 알겠냐. 그냥 지켜보는 수밖에.”
두 친구는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한결이는 커다란 오븐의 문을 낑낑 대며 열고 용 비늘 두 개를 넣었다.
“이 오븐에 구우면 용 비늘이 사람들 눈에도 보이게 되는 거야. 자 저기 빨간 별모양 단추를 누르면 시작이야.”
미르의 말에 한결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별모양 단추를 찾아 꾹 눌렀다. 윙 하는 소리와 함께 오븐 안은 푸른색과 붉은 색 빛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 처음 한결이가 용 튀김을 맛보던 때처럼 맛있는 냄새가 코를 찌르기 시작했다.
“우와, 정말 시작됐구나!”
한결이는 "용 분식집"에 앉아 용 튀김을 기다리던 때가 생각나서 얼굴에 미소가 그려졌다.
“얘들아, 어때? 냄새 좋지?”
하지만, 이상하게 석우와 찬이의 얼굴은 웃는 얼굴이 아니었다. 오히려 두 사람은 코를 막고 찡그린 얼굴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우웩! 고약한 냄새!”
“이건 진짜 정말! 오, 정말 !”
“다들 왜 그러는 거야?”
“푸하하하! 내가 말했잖아. 용 비늘은 삼키는 사람마다 그 맛이나 색깔도 다 다르게 느껴진다고. 저 녀석들 말은 그렇게 해도 처음부터 겁을 먹고 있는 게 틀림없어.”
미르가 고소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럼 어쩌지?”
“뭘 어째. 저 녀석들 소원이었잖아. 그냥 먹으라고 줘야지 뭐.”
“그래도……. ”
“음, 보아하니 다 구워졌네. 자, 오븐 위에 접시들이 보이지 거기에 담아서 갖다 줘. 자, 어서”
한결이는 망설이다가 접시에 용 비늘을 담았다. 미르는 석우와 찬이를 보며 뭐가 그리 좋은지 계속 콧노래를 불렀다.
“자, 용 튀김이야.”
“히익! 이, 이게 정말 용 튀김이야.”
찬이는 접시에 담긴 용 튀김을 보고 기겁을 하고 뒤로 물러섰다. 찬이의 눈에는 용 튀김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도마뱀 꼬리 같은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그것은 꿈틀꿈틀 움직이기까지 했다.
“이거, 저, 정말 맛있는 거 맞지?”
먹는 거는 다 좋아하는 석우도 접시를 들고 한 참을 머뭇거렸다. 석우의 눈에는 용 튀김이 사람 머리만한 커다란 대파 한 도막을 잘나놓은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럼, 입에 넣으면 살살 녹을 거야.”
한결이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지만 두 친구는 여전히 한결이의 말을 못 믿는 눈치였다.
“저 녀석들, 왜 이리 머뭇거려! 빨리 먹든 가 아니면 앞으로 쓸데없이 부탁을 하지 말든지 하라고 해.”
미르가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이 말했다.
“어떡할래? 안 먹을래?”
한결이는 두 친구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석우와 찬이는 한결이의 시선을 피해 서로를 바라보기만 했다.
“우리 이거 먹고 죽는 건 아니겠지?”
“으하하하, 겁쟁이들”
미르가 큰소리로 웃었다. 한결이도 미소를 지으며 팔을 벌리고 으쓱해보였다.
“조, 좋아, 내가 먼저 먹겠어.”
찬이가 결심이 섰는지 도마뱀 꼬리 같이 꿈틀대는 용 튀김을 손으로 들어 올렸다. 용 튀김에서는 비릿하고 무언가 썩는 냄새도 풍겼다. 입에 가까이 가져가는 찬이의 얼굴은 거의 울 지경이 되었다. 찬이가 이렇게까지 나서자 석우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용 튀김을 두 손으로 들어 올렸다. 석우가 가장 싫어하는 삶은 파 냄새가 확 풍겨왔다.
“하나! 둘! 셋!”
찬이와 석우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동시에 용 튀김을 꿀꺽 삼켰다. 그 순간 두 친구는 똑같이 소리를 질렀다.
“우웩!”
석우와 찬이는 인상을 쓰며 입속에서 끔찍한 맛이 사라질 때까지 연방 고개를 흔들었다.
“우와 이거 정말 끔찍해.”
“물! 물 없니? 누가 물 좀 줘! 아이고, 찬이야 너 괜찮아?”
“…….”
“찬이야? 찬이야!”
석우가 찬이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어도 찬이는 대답이 없었다. 찬이가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한 곳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용, 용이야. 푸른 용, 미르……. 진짜, 진짜로 있었어.”
“뭐? 뭐라고?”
석우도 찬이를 따라 위를 쳐다보았다.
“맙소사!”
푸른 빛 비늘이 반짝 거리는 미르의 모습에 두 친구는 한 참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미르를 바라보기만 하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