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마을 사람들이 먹고 살고자 하는 욕망에 측은지심을 버렸다고 하는 것엔 동의하기 어렵다. 그럼 마을 사람들을 노예처럼 싼값에 후려쳐 매매하는 중개인과 바깥 마을들은 먹고살 것도 아닌 욕망에 측은지심을 버린 건데.굶어죽지 않으려고 삼년 오년 십년 인생을 하인으로 팔려가서 가족들 생이별하는 사람들을 꾀는 은이 꼭 마을에서 소금 구워 피우는 불빛 같다. 다른 점은 난파선들은 마을로 가면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고 가는 거지만 마을 사람들은 다 알고도 가야 한다는 거.주인공도 주변 인물들도 어리거나 왜소했던 남성이 아버지 없는 집에서 가장으로서 조숙해지고, 또 결혼한 뒤로 저보다 튼튼한 아내를 하인으로 팔지 않겠다며 제가 팔리겠다고 다짐하는 모습... 또 부촌장이나 촌장이나 자기 사리사욕이 아니라 마을 전원에게 얻은 재물을 나누고 또 잘못에 책임감을 느끼는 모습.이 소설이 배경으로 삼은 전근대 사회에서 이 마을은 실은 무척이나 온화하고 더럽게 가난한, 이상사회일지 모른다. 폭력적이기도 하지만 그 폭력이 '청소년기가 없는' 전근대적 삶에서 아이를 한 사람 몫의 어른으로 만들어 살게 하는 역할을 하듯이.현대 사회의 기준으로 과거 배경의 소설을 보면 안 된다는 말을 평소엔 굉장히 비웃지만 이 소설에 대해서는 그 이야길 하고 싶다. 이름만 과거일 뿐 현대 사회의 인간상을 그대로 사용하는 소설에 현대 기준을 들이미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이 소설은 아니다.전근대 일본에서(일본만 그런 것은 아니지만) 피지배층의 신분과 거주지가 얼마나 제한되었는지 생각하면, 작중에서 직접 언급되진 않았지만 이 마을이 이웃 마을들과 다른 관습을 유지하는 이유 혹은 아무리 살기 힘들어도 마을에서 죽거나 노예처럼 팔려갈지언정 마을을 '떠나지' 않는 이유가 있을 것 같다.마을을 떠나도 그곳에서 동등한 인간으로 받아들여졌더라면 마을 젊은이들이야말로 빠져나갔겠지. 마을 어른들이 유출을 막으려고 바깥 세상에 대해 공포만 심어주고 교류를 차단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이 마을 사람들은 수시로 이웃마을로 물건을 팔러 다니고, 딸이든 아버지든 하인으로 팔려간 그들이 바깥 세상을 맛보고 도망칠 거란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는다. 사실 주인공도. 이웃마을을 보고 번화한 모습에 놀라면서도 자기 마을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건 그저 소박한 삶을 선호하는 취향이어서인지, 아니면 굶어죽고 가족과 생이별을 하더라도 '그냥'은 마을 바깥에서 살아갈 수 없을 만큼 세상이 적대적이어서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