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밖에 난 자들
성은영 지음 / 아마존의나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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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이 되돌아보면 세상에 냉소적인 태도를 갖게 된 건 

생각보다 내가 훨씬 어렸을 때부터였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으슥한 동네 골목이나 인적 드문 공터를 지날 때면 '이상한 남자'들이 나타나 

해코지를 하지는 않을까 불안했고,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여자애들 사이에서 '쭈쭈바'로 불린 변태 선생님과 복도에서 마주칠까봐 조마조마했으며, 

버스를 타고 통학하기 시작한 중학생이 되고부터는 붐비는 버스 안에서 심심찮게 

아저씨들에게 추행을 당했고, 여고 시절 상담선생님이 우리들에게 해주신 최선의 조언은 

'그 선생님'과는 가급적 단둘이 있게되는 상황을 피하라는 것이었다.  

대학시절의 전철 통학과 직장에서의 회식 자리는 차라리 말을 말겠다. 

더러운 인간들, 피하고 말자, 이것이 나의 최선이었다. 

오래 전 일이니 이제는 많이 변했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해왔는데 

달라진 것은 수법일 뿐 본질은 여전하다. 하긴, 내가 한 것이라고는 고작 피한 것 뿐인데

그런 비겁함으로 무엇이 바뀔 수 있었을까. 


 '눈 밖에 난 자들'을 선뜻 펼쳐들지 못했던 이유 역시 이제껏 피해왔던 기억들을 굳이 소설로 

다시 불러내고싶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더이상 비겁하지 말자고 마음을 다잡고 첫 장을 읽기 시작했고, 단숨에 끝까지 달려가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다. 


소설의 화자인 귀랑은 지금 바로 아무 포탈에나 들어가 사회 뉴스 몇 번만 클릭하면 만날 수 있는, 넘쳐나는 'N번방'의 수없이 많은 '익명들'이다. 지나치다 싶을만큼 전형적이어서 이 인물의 

1인칭 시점으로 과연 얼마나 밀도있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지 초반부에는 조금 의문이 들기도 했다. 이런 의문은 귀랑의 시선 너머로 등장하는 유정 씨와 박꼭지의 실루엣이 점점 또렷해지면서 서서히 풀리기 시작한다. 세대가 몇 번 바뀌어도 고인물처럼 변하지않아온 귀랑의 평면 세계는 이에 맞서 싸워온 유정씨와 박꼭지의 입체 세계를 만나 균열하기 시작한다. 


가해자 귀랑은 자신이 저지른 일이 범죄라는 사실에 두려워하면서도 

'설마 할머니가 하나뿐인 손주를' 저버리고 피도 한방울 안 섞인 근본도 모르는 

촌계집애 편을 들겠냐며 주문을 외우듯 불안감을 떨쳐버린다. 


'말로는 혈육의 정에 이끌리면 안된다고 하면서도' 손주가 끝까지 반성하기를 

내심 간절히 기다렸던 할머니는 '대물림될 죄악은 뿌리째 뽑아내야' 한다는

피해자 박꼭지의 확고한 반박에 결국 손주에 대한 단죄에 동참한다. 


작가가 이 작품에서 그려나가는 세상의 물줄기는

혈연으로 지켜왔던 공동체에서 

입장과 세상관이 같은 사람들이 연대하는 공동체 쪽으로 그 흐름이 바뀌고 있다.

'눈 밖에 난 자들'을 벙커에 가둬두는 행위는 

바로 이런 연대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상징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관성으로 자라온 세상의 중심축은 쉽게 무너지지 않을만큼 여전히 뿌리깊다. 

유정 씨가 만든 '아방궁'은 세상을 얼마나 바꿀 수 있을까. 


아직도 문제의 본질은 깨닫지못한 채 '사방이 막힌 지하 벙커'에서도 

'어딘가 빠져나갈 구멍이 있을지 모른다' 여기는 수많은 귀랑이들이 활보하는

세상이라면, 박꼭지 이후의 세대에게도 희망은 멀다. 

그래서 소설을 다 읽고나면 벙커의 단죄가 주는 후련함보다는

그 이후에 대한 고민으로 마음이 무거워진다. 

결국은 종착역이 아닌 경유역일 수 밖에 없는 유정 씨의 '아방궁' 

다음 역에는 언제쯤 열차가 닿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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