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리로 다시 읽는 자본주의 세계사 - 자본주의는 어떻게 이동하며 세계의 미래를 바꿔왔는가?
이동민 지음 / 갈매나무 / 2025년 1월
평점 :
지리로 다시 읽는 자본주의 세계사는 처음에 기대했던 바와는 살짝 다른 책이었다. 팀 마샬의 지리의 힘이나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와 같이 공간의 차이에 따른 각국의 다양한 변화상을 흥미롭게 들여다볼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어느정도는 그러한 기대감을 충족시켰으나, 아쉬운 부분들이 없지 않았다.
지리적 요소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겠다고 표방한 책이지만, 정작 지리보다는 역사적 사건, 사회 제도, 법전 등의 요소가 더 강조된다는 느낌이었다. 물론 지리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자세한 서술보다는 개괄적으로 훑고 지나가는 인상이 강했다. 예컨대, 섬나라인 영국이 지닌 지리적 특징—폐쇄성과 개방성, 해양국가로서의 특성, 섬이기에 가능했던 산업 구조 등—에 대해 더욱 깊이 있는 설명과 흥미로운 이야기를 곁들였다면 훨씬 좋았을 것이다. 또한, 프랑스의 샹파뉴 정기시나 거래소에 관한 내용이 전혀 언급되지 않은 점도 아쉬웠다. 이는 지리적 맥락과 연결해 설명하기에 더없이 좋은 주제였는데도 완전히 생략되었다.
더불어, 자본주의의 역사를 다루는 책임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의 기원과 발전을 논할 때 빠짐없이 등장하는 이탈리아가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도 의아하다. 이탈리아는 국제 무역, 은행업, 복식부기, 공공채, 어음 등 자본주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지역으로, 책에서 소개하는 그 어떤 국가보다도 먼저 등장했어야 마땅해 보인다. 베네치아, 피렌체, 제노바, 밀라노 같은 강력한 상업 도시국가들, 비옥한 토양을 지닌 롬바르디아 평원, 농업과 산업 용수로 활용된 포 강, 수운업 발달의 중심이 된 베네치아의 대석호 등 자본주의와 연관 지어 흥미롭게 풀어낼 수 있었던 요소들이 충분히 많았음에도 아예 다뤄지지 않았다는 점이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양서로서의 가독성은 상당히 뛰어나다. 특정 역사적 주제에서 논란이 될 수 있는 부분들도 비교적 직관적으로, 그리고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어 유발 하라리의 서술 방식과도 비슷한 느낌을 준다. 자본주의의 흐름을 굵직한 시간적 사건과 공간적 특징을 중심으로 짚어가며 전개한다는 점에서, 자본주의의 큰 흐름을 개략적으로 파악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책이다. 경제나 세계사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이 책을 읽고 나서 더 깊이 알고 싶다는 욕구를 느끼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
자본주의라는 거대하고도 정의하기 어려운 불투명한 주제를, 세계사적 관점에서, 그것도 지리를 중심으로 풀어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페르낭 브로델이 말했듯이, "긴 역사의 관점에서 보면 자본주의는 ‘밤의 손님’이다. 모든 것이 갖추어졌을 때 비로소 당도하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탄생하기까지 인류가 쌓아온 오랜 역사적·사회적·경제적 토대를 단 300페이지 남짓한 교양서 한 권으로 풀어내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도 벅찬 작업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를 다루는 많은 교양서들이 시장경제의 우수성이나 자유민주주의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것과 달리, 이 책은 자본주의가 지닌 내적 문제점을 과감히 비판하고 짚어낸다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 이러한 점만으로도 충분히 시간을 내어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