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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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사회는 부정적 감정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괴로움과 고통을 대하는 법, 그러한 감정을 형식에 담는 법을 잊어버린다." 21p

 

피로사회에서 저자는 우리 사회가 부정의 사회가 아니라 긍정을 과도하게 수용하는 사회라고 말한다. 부정을 부정하는 긍정성이 강조되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신을 과도하게 학대하고, 이는 곧 만성적인 정신병이 팽배하는 사회를 낳는다는 것이 그 논지였다. 저자의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은 이 책에도 여전하다. 피로사회의 맥락을 잘 받아들인 독자라면 이 책 또한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이 책을 먼저 읽었다면 피로사회를 읽을 때 도움이 될 것이다.

 

현 사회는 긍정사회이면서 투명사회이다. 불투명성을 사람들은 용납하지 않는다. 투명한 정치, 투명한 기업, 투명한 미디어 등, 사람들은 투명함을 숭상하며 요구한다. 스스로의 삶에도 투명함은 깊이 배어들어있다. 대한민국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개인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지 않는다. 태어나자마자 주민등록번호가 부여되고 스스로의 개인정보는 인터넷환경 속에서 삽시간에 퍼져나간다.

 

저자는 이런 사회를 경계한다. 정치란 불투명성 없이는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을 꼬집으며, 결국 투명성을 강요당하는 정권에서는 더이상 비밀외교나 전략을 수행할 수 없게 될 것이라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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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상품으로 전시하고 과도한 가시성의 장에 던져넣음으로써 사회의 포르노화를 촉진한다." 54p

 

수업시간에 인상 깊었게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사람들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다른 사람의 삶을 엿보는, 즉 훔쳐보는 것에 대한 쾌감을 충족시켜준다는 것이다. 영화를 통해 한 가상인물의 인생, 생각, 행동 등은 상품화되고 투명하게 전시된다. 그것을 관객은 완벽히 안전한 영화관이라는 공간에서 훔쳐본다. 그곳에서 오는 쾌감은 마치 포르노를 보는 데에서 오는 쾌감과 일맥상통한다. 현실에서 남의 인생을 훔쳐보는 것은 범죄이다. 영화는 그 욕구를 합법적으로 해소하는 것을 돕는다. 이렇게 전시된 인생을 거리낌 없이 소비할 수 있는 건, 캐릭터가 자신과 같지 않다는 것을(실존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무의식으로 인지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투명사회에서 사람들은 스스로를 전시한다. 인스타그램만 봐도 유저들은 얼굴, 사는 곳, 방문한 장소, 좋아하는 것 등, 자신의 신상정보를 스스로 공개한다. 멀리서 보면 단순한 디지털 사진 한 장에서는 그 유저의 서사를 알 수 없다. 그저 노출된 일상의 단편일 뿐이고, 개인이 어떤 사람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곳에 달린 덧글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하나뿐인 정답을 외치는 목소리일 뿐이며 그것들이 모인다 하더라도 웅성거리는 소음이 될 뿐, 아무것도 생산해낼 수 없는 공허한 덩어리일 뿐이다.

 

자유와 권리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싸웠지만지금 사람들은 자신을 전시하며 스스로 통제되는 것을 권장하고 있다스스로가 스스로를 전시하는 환경에서는 만인이 만인을 감시하는 사회가 만들어진다이 사회의 위험한 점은 개인의 선이 점점 모호해진다는 것이다. 진정한 자유가 사라진다. 모든 당신의 선택, 사유, 행동이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고 영향을 받는다. 모든 인간의 육체는 전시되고 상품화된다. 결국 투명 사회는 곧 획일성을 향해 나아간다. 개성이 사라지고 개성을 없앤다. 비밀스러움에서 오는 로맨스도, 인간성도, 진정한 공동체도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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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사유는 공감하고 몇몇 사유는 의심했다. 특히 인터넷 커뮤니티에서의 담론이 현실을 바꾼 페미니즘 부스트를 지켜봐왔기에 디지털 환경의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었다. 언택트가 유행하는 코로나 시국에는 더더욱 디지털 환경에 익숙해져야한다. 시대에 맞춰 인터넷 기술도 더욱 발전할 것이며, 많은 이들은 이것에 적응할 것이다. 하지만 이미 익숙해진 일상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저자의 색다른 시야는 가히 혁명적이라 할 수 있다. 디지털 환경에서 사진은 시간을 받아 서사를 가지게 되는 물질이 아닌 한숨에 날아갈 수 있는 데이터조각이 되었다. 디지털 환경에 적응된 사람은 사유가 필요한 긴 글을 피하고 짧고 직관적이고 간단한 메시지를 추구한다. 느린 것은 곧 죄악이 되고 도태된다. 이 트렌드에 따라 채반으로 거른 듯 사라지는 것들은 우리의 생각보다 많을 것이다.

 

투명사회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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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사회는 부정적 감정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괴로움과 고통을 대하는 법, 그러한 감정을 형식에 담는 법을 잊어버린다. - P21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상품으로 전시하고 과도한 가시성의 장에 던져넣음으로써 사회의 포르노화를 촉진한다.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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