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빠가 사라졌다
경선 지음 / 넥서스BOOKS / 2020년 8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그냥 평범했는데."
영인은 지금까지 자신의 오빠가 범죄자라는 것을 몰랐다는 것을 자책하며 이렇게 말한다. 그러면서 회상하는 장면은 오빠인 영재가 여혐발언을 스스럼없이 내뱉는 모습이다.
이런 모습을 평범하다고 생각할만큼 우리 사회는 얼마나 남성들에게 물렀던 걸까. 아니, 우리 아들, 오빠, 남동생이기에 눈 가리고 아웅한 걸지도 모른다.
만화 속 처벌이 강화된 한국에서도 그들은 뻔뻔하게 돌아왔다. 몇몇 피해자들은 절대로 돌아올 수 없는 일상에 말이다.
이 만화는 계속해서 말한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평범한 얼굴을 한 그들은 '그럼에도' 결국 돌아올 것이라고. 하지만 그들이 알던 사회는 이미 바뀌고 있다고.
이 만화는 성 착취물 유포나 소지만으로도 3년형이 선고되는 한국의 한 가정을 그려낸 만화이다.
장남인 영재가 성 착취물 소지혐의로 경찰에 소환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두 여동생 영은과 영인이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의 모습이 담담히 묘사된다.
영재의 안위를 걱정하는 마음에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가족, 현재의 최소 3년형으로 가중되었음에도 실질적으로 처벌받지 않는 현실을 비판하며 '디지털 성범죄 근절법'을 외치는 친구들, 그리고 기억 속에 남아있는 오빠 영재의 모습들.
영인과 영은은 가해자인 오빠를 돕지 않기로 결의한다.
잔인한 가해 장면이 나오지 않는데도 마음이 답답하고 고통스럽다. 다양한 입장의 목소리가 여과되지 않고 몰려들어와서 더 그렇다. 캐릭터들의 표정, 효과적인 연출에 대사 속 감정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특히 얼굴이 한 번도 나오지 않는 진수의 미소는 단순한 그림체임에도 공포스러웠다.
짧은 만화이지만 생각이 많아진다. 작중에 그려진 가족의 모습이 너무나 평범하여 자신의 남자 형제가 가해자가 되었을 때를 가정해 대입해보게 된다. 부모님의 반응은 어떠실까, 주변은 우리 가족을 어떻게 생각할까.
그리고 그 때, 나는 무얼 할 수 있을까.
-
"그 나쁜일이... 악몽으로만 남는다면 너무 억울하잖아."
이 만화는 n번방 사건을 소재로 만들어졌다. 가해자가 구속되었음에도 부과된 형량은 너무나 낮다. 기사를 볼 때마다 허무감이 느껴진다. 강남역 사건부터 시작되어 소라넷과 버닝썬을 거치며 활활 타오르던 분노의 불씨가 무력감에 점점 작아지는 것을 느낀다.
실제로 기사를 계속 보다 정신건강이 안좋아져 우울증에 걸린 커뮤니티 친구의 소식을 접하기도 한다. 분노와 기력에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도망치고 싶지는 않기에 연대를 하는 것이 아닐까.
이 연대의 숨은 주인공은 어머니, 연숙이다. 처음에는 아들의 안위만을 걱정하던 보수적인 인물이었지만 점점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며 성장하는 인물이다. 영재와의 인연을 끊겠다는 두 딸의 편을 들어주는, 세대를 뛰어넘은 연대의 장면은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
"너는 너한테 일어난 일이 아니면, 너랑 관련된 일이 아니면 공감을 못하니?"
주인공 영인과 영은은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부모에게, 남편에게, 친구, 선배에게.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하고 소통하며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
하지만 상대방이 모두 이해하고 받아들여주지는 않는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여도 메울 수 없는 거리감이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 영은의 남편 진수가 그렇다.
어디에나 있는 착하고 이해심 많은 남자. 하지만 거기까지인 남자. 《82년생 김지영》의 정대현, 《나의 미친 페미니스트 여자친구》의 주인공이 그렇듯 자신이 보는 일상과 파트너가 보는 일상의 괴리를 이해하지 못하며 공감하지 못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진 듯 답답하기만 하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 진수는 육아휴직을 쓰고 영은의 복직을 돕는다. "내가 더 노력할게.", 갈등을 회피하기 위해 쓰여지곤 하는 이 문장을 말한 진수는 그것을 말뿐이었던 것으로 끝내지 않는다.
-
공존을 위해서는 이해와 신뢰,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게 점점 사회는 바뀌어갈 것이다. 처벌이 가중되지 않으면 가해자는 바뀌지 않은 채, 모든 것이 바뀐 사회로 돌아올 것이다.
상상 속으로 만들어낸 '악마' 만이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다. 가해자는 언제나 너무나 평범해보이던 주변인일 것이다. 그렇기에 사회는 준비되어있어야 한다. 그 시작은 나 자신이다.
《오빠가 사라졌다》 경선 지음, 넥서스BOOKS
그 나쁜일이... 악몽으로만 남는다면 너무 억울하잖아.
너는 너한테 일어난 일이 아니면, 너랑 관련된 일이 아니면 공감을 못하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