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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인간 실격 (미니북) - 1948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ㅣ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소영 옮김 / 더스토리 / 201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겁쟁이는 행복마저도 두려워하는 법입니다. 솜에도 상처를 입습니다. 행복에 상처를 입는 경우도 있는 겁니다." - 79p
인생이란 것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망가질 수 있을까.
주인공 '요조'의 길지 않은 일대기를 가만히 따라가다보면 도대체 어디서 잘못된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피폐와 퇴폐에 함께 물들게 된다.
어떻게든 해주고 싶은 기분이 들면서도, 도저히 어디서부터 손을 댈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응원 대신 '어디까지 가나 보자' 하는 마음으로 끝까지 읽었다.
이 소설은 화자 '나'가 주인공 '요조'의 수기를 소개하는 액자식 구성이다. 요조는 세 개의 수기를 통해 자신이 보낸 '부끄러운 생애'를 담담히 서술한다.
수기에는 요조의 시선으로 보는 사회가 펼쳐져 있다. 그가 보는 인간 사회에서 사람이란 태연한 얼굴로 다른 사람을 속이며 이득을 취하는 교활한 존재이며, 앞에서는 칭찬을 하면서 뒤에서는 험담을 하는 잔인한 존재이다. 이런 잔혹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신을 경멸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고뇌하던 요조는 끝끝내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선택에 이른다.
그 행위에는 커다란 동기도 심오한 목적도 없다. 끊임없이 세상에 실망해가며 요조는 차례차례 단계를 밟아가며 자기 자신을 학대한다. 생태계에 적응하지 못하는 생물이 스스로 도태되는 것처럼, 요조는 스스로 '인간'으로 살기를 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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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좋으니 웃기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인간들은 내가 그들의 이른바 '삶' 바깥에 있더라도 크게 신경 쓰지 않을 테니까." -20p
요조는 결벽을 앓았던 것이 아닐까. 위생적인 결벽이 아닌, '인간다움'에 대한 결벽을 말이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의 범주에서 벗어난 그 모든 것들에 손 조차 대려 하지 않고, 무서운 세상 속에서 본모습을 숨기기 위해 가면을 쓰고 도움의 손길도 어물쩍 넘겨버린 게 아닐까. 그런 요조는 다른 '인간'들과 절대로 닮지는 않으리라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요조는 불만족스러운 세상을 바꾸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 사회에 저항하지 않는다. 그저 포기하고 실망하며 그 탁류에 휩쓸리듯 살아간다. 못 사는 집 출신도 아니고, 교육의 기회도 있었고, 외모가 못생긴 것도 아니고, 그림이라는 재능 또한 있지만, 그는 '현실에 맞춰 자신의 인생을 꾸리는' 행동을 일절 하지 않는다. 강이 위에서 아래로 흘러가듯, 타락해간다. 보다보면 답답하기 그지없다. 마치 고급 차의 운전석에 앉아서는 끊임없이 어둠의 길을 향해 기울어지는 핸들에 손 하나 얹을 기럭 없이 가만히 앉아만 있는 것 같다.
그러던 마지막의 마지막에, 이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생전 처음으로 도움을 갈구한 요조를 가족은 정신병원에 감금해버린다. 요조는 체념한다. 무저항도 죄인지를 신에게 물으며 자신은 '인간 실격'이라 정의내리는 모습에 이유를 알 수 없는 연민을 느꼈다. 왜일까. 나약하고 무기력해 한 발자국 내딛으면 인생이 바뀔지 모르는데도 그 '한 발자국'을 내딛지 못해 수렁에 잔존하여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떠올랐다. 그깟 '두려움'이 뭐라고. 하지만 그 '두려움'이 개인을 좀먹는 건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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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단코 저는 미치지 않았습니다. 단 한순간도 미친 적 없습니다. 하지만 아아, 미치광이들은 보통 그렇게들 말한다고 합니다." - 175p
'다자이 오사무'라는 작가를 제대로 인식한 것은 15년 방영한 애니메이션 <문호스트레이독스>를 보았을 때다. 사망한 현대문학 작가를 '모에화'한 캐릭터들이 해당 작가 작품의 이름을 딴 초능력을 발휘하는 현대 판타지물이다. 이 만화는 일본에서 큰 히트를 쳤고, 덩달아 캐릭터들의 얼굴이 디자인 된 현대문학 서적이 리커버 출간되거나 해당 애니메이션 성우가 라디오에서 책을 일부 낭독하기도 했다. 작중 '다자이 오사무'는 큰 비중이 있는, '거대한 팬덤'을 보유하고 있는 캐릭터였기에 (자살 중독에 여성편력이 있는 잘생긴 남성 캐릭터이다. 저자 다자이 오사무보다는 인간실격의 주인공 '요조'에서 아이디어를 따온 듯 하다), 덩달아 소설 '인간실격'도 많이 소비되었다.
이렇게 책이 굿즈화 되는 경우도 있다니. 일본 시장이기에 가능한 일이었겠지만 참 신기했다. 나도 그 흐름을 신나게 탄 '덕후'중 한명이었기에 '다자이 오사무'라는 작가를 눈여겨보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여담이지만 일본에서 출간된 캐릭터 리커버북은 사지 못했다. 당시에 해외 구매 루트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슬펐다.
잊혀진 한이 남아있었던 걸까, 서점에서 한 눈에 들어왔다. 표지가 참 예쁘다. 초판본 리커버 미니북인데 한 손에 쏙 들어오고 가벼워서 읽기 편했다.
(+)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상>에서 다자이 오사무를 동경하는 캐릭터의 방에 똑같은 표지의 책이 놓여져 있는 것을 눈치챘다. 즐거운 발견이었다.
《초판본 인간 실격》,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소영 옮김, 더스토리
겁쟁이는 행복마저도 두려워하는 법입니다. 솜에도 상처를 입습니다. 행복에 상처를 입는 경우도 있는 겁니다 - P79
어떻게든 좋으니 웃기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인간들은 내가 그들의 이른바 ‘삶‘ 바깥에 있더라도 크게 신경 쓰지 않을 테니까. - P20
결단코 저는 미치지 않았습니다. 단 한순간도 미친 적 없습니다. 하지만 아아, 미치광이들은 보통 그렇게들 말한다고 합니다. -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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