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5년 9월
평점 :
일시품절


   세계 여행가로 잘 알려진 한비야. 그는 이제 단순한 여행가의 삶에서 벗어나 전 세계 재난의 현장에서 몸으로 뛰는 실천의 삶을 살고 있다. 굳이 직책을 말하자면, 국제구호단체인 ‘월드비전’의 긴급구호 팀장이다.  

   그가 처음으로 파견된 곳은 아프가니스탄이다. 탈레반이 물러갔는데도 그곳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은 ‘부르카’를 쓰고 다닌다. 나중에 탈레반이 다시 득세하면 지금 부르카를 벗고 다닌 사람들을 가만 놔두지 않을 거라는 불안감에서이다. 한비야는 그 부르카를 대신 입어본다. 눈 부분만 그물망처럼 뚫어놓고 나머지는 몽땅 가렸기 때문에 숨도 제대로 쉬기 어렵다. 멀미가 난다. 폐쇄공포증이 느껴지는 것 같다. 아프가니스탄의 여성들을 짓누르고 있는 이중 삼중의 억압이 생생하게 전달된다. 

   구호현장의 곳곳은 지뢰지대이다. 아프가니스탄에 묻힌 지뢰의 수는 1천만 개 이상. 지뢰 하나를 묻는 데는 5달러이지만 하나를 제거하는 데는 1천 달러가 든다. 그 비싼 지뢰 옆에서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아이들이 굶주리고 있다.    

     아프리카로 간 한비야. 월드비전의 현장 매뉴얼에는 에이즈 감염이 의심되는 아이들을 안아주지 말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좋아서 안겨드는 아이들을 피할 수는 없다. “만에 하나 죽게 된다고 해도 아쉬울 것 없다. 그럼 긴급구호요원이 사우나나 하다 죽으랴? 현장에서 일하다 장렬히 전사해야 마땅하지.” 

   팔레스타인 난민촌에 학교 건설을 위해 파견된 한비야. 현장에 가서 보니 분쟁의 원인은 이스라엘의 유대교와 팔레스타인의 이슬람교 간의 대립 때문은 결코 아니다. ‘종교’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 분쟁의 시작과 끝은 무어라 해도 땅 때문이다! 서구 사회의 지식인들이 ‘문명의 충돌’이니 어쩌니 하면서 현실을 호도하고 있지만, 팔레스타인의 비극은 알고 보면 무자비한 땅 뺏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현장 경험은 모든 어설픈 ‘설’을 박살낸다. 

   북한은 그가 방문한 93번째(!) 나라이다. 개마고원의 씨감자 재배현장을 방문하기 위해서이다. 씨감자 재배지역으로 들어서자 사방에서 감자꽃의 파도가 밀어닥친다. 차로 한 시간을 가도 그 물결은 그치지 않는다. 감자꽃의 바다에 뗏목을 타고 둥둥 떠다니는 듯한 기분이다. 

   그곳에서 한비야는 의외의 사실을 알고 반가워한다. 감자 4백만 톤이면 식량 부족분이 해결되는데, 지금 남과 북은 3-5년 안에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무균 씨감자의 대량 생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이다. 여태껏 북한의 식량난 해결은 불가능한 일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제 그 씨감자가 장차 전국의 밭으로 옮겨지게 되면, NGO 민간단체 수준의 지원으로는 턱도 없다. 대규모 비료 지원 등 민족 차원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 

   그가 이처럼 전 세계 재난의 현장을 뛰어다니는 이유는? 일이 ‘가슴’을 뛰게 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그는 엄마 아버지의 딸, 한국의 딸로만 머물고 싶지 않다. 한국은 말하자면 그의 ‘베이스캠프’일 뿐이다. 이왕 세상에 태어나고 세상으로 나섰으니 한국과 아시아를 넘어서 온 세상의 딸이 되고 싶다. 늘 집 떠나서 있는 사람은 지금 이 순간 함께 있는 사람이 바로 가족이다.  

   IMF 때보다도 더 어려웠다며 말이 많았던 지난 한해(=2004년) 동안 월드비전 모금액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대기업이나 고액기부자는 줄었다. 요컨대 개미 군단의 후원자들이 엄청 늘었기 때문이다. 10만 명의 후원자 가운데 대부분이 한 달 수입 2백만 원 이하이다! 이 기록만 보더라도 한비야가 어디를 보고 뛰어다니는지는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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