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살 전에, 더불어 사는 법을 가르쳐라
이기동 지음, 이원진 엮음 / 걷는나무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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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 살 전에, 더불어 사는 법을 가르쳐라를 읽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내가 어떤 생각으로 아이를 가르치고 키웠는지가 고스란히 드러나자 말문이 막혔다. 난 대체 어떤 아이로 키우고 싶었던 걸까? 무엇이든지 잘하고 처음 하는 일도 척척 해내는 만능 같은 아이였던 걸가? 어제 내 아이를 다른 아이와 비교하는 말을 하다 깨달았다. 나는 과연 그 아이 엄마처럼 내 아이에게 해주고 있을까? 아이는 부모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거울과 같다. 내 아이 잘못은 결국 내 잘못이고 내가 그렇게 가르쳤기 때문이다. 아이는 신이 나에게 준 선물이지 내 마음대로 키우는 존재는 아니다. 어쩌면 아이는 부모가 참다운 부모로, 한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다. 아이보다 더 정확하게 부모를 거울처럼 보여주는 존재는 없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진짜 사랑을 주기란 어렵다. 사랑보다 새로 나온 장난감이나 스마트 워치를 안겨주기가 더 쉽고 빠르다. 진짜 사랑은 아이 마음에 남아 사랑이라는 불씨를 터뜨리지만 장난감은 몇 주가 지나면 구석진 장소로 자리를 옮긴다. 진짜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는 세상 속에서 홀로 헤쳐 나가지만 사랑 받지 못한 아이는 겉으로는 괜찮은 척하며 홀로 상처를 핥는다. 상처가 곪아가는 줄도 모르고 말이다. 아이에게 상처를 준 대상이 부모이며 그 부모 또한 자신의 부모로부터 상처를 받고 자랐다면 잘못은 누구에게 있는 걸까? 나부터 과거를 청산하기로 했다. 더 이상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에 연연해하지 않으며 내 자녀에게는 진짜 사랑만 주고 싶다. 왜곡되고 포장되어 알 수 없는 사랑이 아니라 진짜 사랑을 줄 때 아이는 사랑받은 아이가 된다. 세상이 물질만능주의, 경쟁의식 등으로 가득하더라도 사랑받은 아이는 휩쓸리지 않는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존재인지 알며 힘차게 세상을 헤쳐 나간다. 그러기에 부모인 나부터 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나를 알 때 길도 보이고 자녀도 이끌 수 있다.

 

  아이가 즐거움으로 가득한 인생을 살도록 돕고 싶다. 주일무적(主一無適)은 오직 한 가지에 집중한다는 뜻이다.(p 144) 밥을 먹을 때는 음식과 맛에 집중하고, 공부할 때는 공부에, 축구할 때는 공에 집중하도록 돕고 싶다.(p 144~145 인용) 무엇을 했다는 자체에 얽매이지 말고 즐거움으로 삶을 가득 채울 때 행복해진다. 한 번 사는 인생,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부모나, 자녀, 타인이 가진 행복이 아니라 나 자신이 행복해야 한다. 난 행복하게 살기 위해 태어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내 행복을 가로챌 수 없다. 내가 내 아이 행복을 가로채면 안 되듯 말이다.

 

  결국 가정교육으로 돌아간다. 내 아이 행복도, 인생에 대한 가치도, 즐거움도 결국은 가정에서 나온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니었다. 가정에서 부모가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아이가 달라지고 바뀐다. 가정에서 참된 민주주의를 실현하며 토론하는 분위기를 조장할 때 아이는 민주주의 국민으로 살 수 있고, 부모가 아이 감정을 읽어주고 공감해 줄 때 아이 사회성이 자랄 수 있다. 결국 아이가 어떤 사람으로 성장하는지는 부모에게 달려있다. 막중한 책임감 앞에 사랑을 선택하고 싶다. 타인과의 비교도, 고액 과외도, 그 무엇도 선택하지 않고 싶다. 왜곡되지 않은 순수한 사랑만이 아이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다. 오직 사랑만 가지고 오늘부터 자녀를 대하고 싶다.

 

  동양철학 분야 석학이신 분의 책이라 어려울 줄 알았다. 알기 쉽게, 물 흐르듯 펼쳐지는 내용은 머릿속에 쏙쏙 들어와 박혔다. 단어 하나하나가 엄마의 마음에 박혀 후회, 반성, 감동의 도가니로 이끌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꼭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읽는 이까지 헤아리는 저자의 인품에 다시 한 번 고개가 숙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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