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처가 등장하는 장르에서 서사를 '괴물'로 푸느냐 '인간'으로 푸느냐는
이야기의 방향성이 극명히 다른 것같다.
소설Y클럽으로 만나본 '폭풍이 쫓아오는 밤'은 인간,
그것도 상처받은 10대 아이 둘을 주인공으로 한다는 점에서
크리처를 이용한 성장 소설을 표방했다고 본다.
모진말을 뱉고 엄마를 사고로 몰아갔다는 죄책감을 지닌 소녀 이서와
아버지에 대한 상처를 안고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소년 수하.
이야기는 두 아이가 괴물을 맞딱드리면서
자신의 상처와 어떻게 마주하고 극복할 수 있었는지를 풀어낸다.
사실 폐쇄적 공간에서의 긴박감을 즐겨야하는
크리처소설을 쓰기란 쉽지 않다본다.
국가적인 재난 상황이라는 설정이 있지 않고서야
사방이뚫렸는데도 그 공간에서 벗어나질 못할 이유나
핸드폰이라는 연락수단을 이용하지 못할 이유를
납득시킨다는게 쉽지않고 납득시킨다한들 흔한 설정을 차용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면에서 이 소설도 완전히 자유롭진 못하다.
고립된 낡은 수련원, 폭풍으로 인해 핸드폰이 터지지 않는 상황은
어디서 많이 봤는데? 라는 의문이 들게하긴하는터.
그러기에 이 소설의 매력은 인물에서 시작되서 인물에서 끝난다 생각한다.
맞서싸울 주인공들의 능력치에 대한 납득할만한 설정과 사연이 설득력이 있어야하는데
이서는 달리기가 취미이고 수하는 축구선수이기에
괴물로부터 살아남기 탁월한 신체조건임을 설정한 것은 영리했다고 본다.
고등학생이기에 괴물과 싸우겠다는
치기어린 선택을 했다는 것도 납득할 만한 설정아닌가.
괴물에게 특정 사연을 부여하지 않는 것도 좋았다
좀비영화에서 왜 좀비가 되고는 중요하지 않듯
이 괴물이 회장이 풀어낸 낭설처럼 어디서와서 악마란 별칭을 얻게되었는지
당위성을 주지 않는 게 맞다고 본다.
굳이 그 괴물에 대해 말하자면,
쓸개즙을 빼먹는 민간의학에 심취된 잔혹한 회장이 만들어낸 욕망의 집약체랄까.
괴물이 만들어낸 괴물인 것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