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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날들에 필요한 말들 - 단단한 마음을 만드는 25가지 방법
앤 라모트 지음, 한유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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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까지만해도 장기하와 얼굴들이 부르던 <별일 없이 산다>라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별다른 걱정 없이 살고 있었습니다. 작년 여름 생애전환기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대장에 4-5cm정도인 용종이 있다고 했습니다. 대수롭게 생각지 않고 몇 달 뒤 용종을 떼내기 위해 대장내시경을 예약하고 속을 비운 후 병원에 갔습니다. ‘약 들어갑니다’라는 간호사의 말과 함께 잠이 들었습니다. 잠에서 깬 저를 보며 간호사는 담당의사와 상담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별다른 생각 없이 담당의사 앞에 앉았습니다.

담당의사는 걱정스런 얼굴로 이건 그냥 용종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간의 경험으로 볼 때 99%정도 ‘암’인 것 같다고 했습니다. 네??? 매년 건강검진을 해도 지극히 정상이었고, 매일 운동도 하는 내가 암이라구요? 전혀 실감할 수 없었습니다. 담당의사는 이왕 이렇게 된거 빨리 수술일정을 잡는게 어떻겠냐 물었습니다. 충격을 받을 겨를도 없이 암 담담의사와 상담 후 수술일정을 잡고 이틑 날 암이 생긴 부위를 잘라냈습니다.

대장암 3기. 다행히 암세포가 다른 장기까지 옮겨가진 않았지만 혈관을 타고 어딘가로 이동한 흔적이 있어 항암치료를 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이후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하루하루를 버티며 지내고 있습니다. 살면서 이런 중병에 걸릴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매우 건강한 편이었기에 수술 후 그리고 항암치료를 받으며 병상에서 스스로에게 가장 많이 한 말은 ‘아니, 내가 왜?’였던 것 같습니다.

고통 중에 발견한 위로의 책

뭔가 위로가 필요했습니다. 가족들이 함께 아파해주고 힘을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과는 별개로 스스로 고통을 받아들일 수 있는 무엇인가가 필요했습니다. 수술을 하고 치료를 받기 위해 다니던 직장을 잠시 쉬어야 했기에 의도치 않게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고통을 견디는 시간을 흘려보내면서 위로가 되는 책은 없을까 찾아보다가 제목이 눈에 확 들어오는 책을 발견했습니다. <나쁜 날들에 필요한 말들>
 

 
말 그대로 ‘나쁜 날들’을 보내고 있는 제게 저자인 앤 라모트는 ‘삶에서 뭔가 나쁜 일이 생겼을 때, 고통스러울 때 어디에서 살아가는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라고 묻고 있었습니다. ‘왜 내가 이런 몹쓸 병에 걸린거지?’라고 묻고 있는 제게 “왜? 라는 질문이 쓸모 있었던 적은 거의 없다”는 저자의 말이 훅 치고 들어왔습니다. 세상 많은 사람들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할 일을 찾아 열심히 하고, 가능한 한 삶을 즐기고, 버틴다”고 했습니다. 답이 없는 물음을 반복하기 보다는 고통을 버티는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저자는“우리는 악몽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 일이 끔찍하지 않은 척, 고통스럽지 않은 척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며 나쁜 일들을 예쁜 희망으로 포장하려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도 했습니다. 소리없이 찾아온 질병을 견뎌야 하는 제게 고통스러울 땐 충분히 고통스러워해도 된다는 말이 위로가 되었습니다. 이 책은 저와 비슷하게 몸이 아파 고생하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내 몸이 아픈 것보다 더 큰 고통 앞에선?

돌봐주는 가족이 있고, 걱정해주는 주변 사람들이 있다면 몸이 아픈 것은 견딜 만한 고통일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면? 만약 사회 구성원들 모두가 고통스러운 사건의 당사자가 된다면? 이런 고통과 상실감 앞에서도 우리는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요? 저자는 테러, 전쟁, 자연재해 등으로 가족이나 친구를 잃었을 때를 사례로 들며 살아가는 의미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를 물었습니다.

저자의 물음에 우리 국민들이 겪어 온 고통스러운 사건들이 떠올랐습니다. 특히 최근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희생자 분향소가 철거되었다는 소식에 유가족들은 어떤 마음일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참사 후 간절히 원했던 진실을 밝히지 못한 채 우리 기억속에서 희미해져 버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습니다. 또 여전히 고통속에 있을 유가족들에게 ‘잊지않겠습니다’라는 말 말고 내가, 우리 사회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자문하게 됩니다.

“고통과 마주한 우리 대부분은 그저 시간을 흘려보낸다. 우리는 커다란 고통과 절망에 빠진 그들을 억지로 일으키려고 하지 않고 그저 그 옆에 앉아 그들이 느끼는 고통을 같이 느낀다. 이렇게 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자비로운 선물인지도 모른다. 그들의 동반자가 되려면 우리는 ‘해야만 한다고’생각하는 일을 포기해야 하며, ‘우리’가 고쳐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그들이 견딜 수 없는 시간과 공간을 그저 견디며 존재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본문 인용)


앤 라모트의 이 말에서 ‘기억’이외에 할 수 있는 행동이 무엇인지 다시금 확인합니다. 참사의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 안전 사회 구축이라는 운동에 힘을 보태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는 고통의 시간을 버티며 살아가야 하는 가족들이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유가족들의 고통을 없애줄 수는 없을 것이지만, 마련된 공간 속에서 그 시간을 버텨나갈 수 있도록 함께 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문득,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을 때

질병, 참사 등을 겪지 않아도 삶이 버거운 순간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자신의 가치와 의미가 희미해져 버릴 때 한없이 무기력해지곤 합니다. 무엇에서, 어디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아야 할 지 모른 채 그저 하루가 또 지나가기만을 바라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된 이유가 있음을 앤 라모트는 말합니다.

“선생님들은 우리의 마음이나 존재, 인격을 충만하게 해주는 진실만이 우리를 충족시킨다는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다. 우리 대부분이 좋은 성적이나 일자리를 얻으려고, 가장 좋은 대학이나 회사에 들어가려고, 몸무게를 줄이려고 열심히 쳇바퀴만 돌렸던 까닭은 바로 이래서다.”(본문 인용)


인생에서 왜 살아야 하는지 묻게 되는 시기를 한번 쯤은 반드시 겪게 될텐데 이 때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보통은 이런 시기를 보내는 이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진짜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라는 조언을 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물론 일차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살펴보는 일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앤 라모트는 조금 다른 접근 방법을 제안합니다.

자기 내면에 너무 집중하다 보면 자기만의 슬픔이나 상처에 빠져 세상에서 자기만 불행한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일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저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것들’에 눈을 돌려볼 것을 제안합니다. 나 아닌 타인에게 관심을 가져보고, 미술, 음악 등 창의적인 활동을 해 보고, 자연에서 아름다운 것을 찾아보고, 때로는 달콤한 간식 먹기에 집중해 보라고 말합니다. 또한 우리 존재를 충만하게 해 주는 진실을 '지금 하루'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해줍니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우연히 눈에 들어온 아이의 웃음, 엄마와 함께 나눈 일상적인 대화, 고맙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 지난 봄 심었던 씨앗에서 튼 작은 싹. 일상을 스쳐 지나가는 소소한 것들이 때로는 우리를 웃고 울게 한다. 슬픈 날도 주고, 기쁜 날도 준다. 그렇게 만들어진 하루가 당신에게 가장 큰 의미다. 의미는 집중하기, 주목하기, 관심 갖기에 있다. (중략) 내가 있는 그 자리, 그 순간에 벌어지는 것들에 마음을 주고 눈길을 주는 것, 그 속에서 나와 함께하는 것들의 소중함을 느끼고 간직하는 것.”(본문 인용)


저 개인적으로는 몸이 아파 고통스러운 시간을 버텨내 보고자 이 책을 읽었습니다. 저자가 써놓은 이야기들을 통해 어느 정도 끝이 보이는 몸의 고통을 버티며 살아가는 삶에 대해 조금은 위로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고통이 훨씬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끊임 없이 일어나는 사회적 참사와 그 당사자들,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는 사회 구성원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스러운 시간들.

‘나쁜 날들’을 겪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이 위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저처럼 ‘어떤’ 사람들은 고통의 시간을 지나가는 데 조금의 위로를 얻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단 한 사람에게라도 위로를 줄 수 있고, 삶의 의미를 재평가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책은 존재 의미가 있습니다. 버티며 살아가는 ‘어떤’ 사람들이 조금의 위로라도 받을 수 있기를…

"고통과 마주한 우리 대부분은 그저 시간을 흘려보낸다. 우리는 커다란 고통과 절망에 빠진 그들을 억지로 일으키려고 하지 않고 그저 그 옆에 앉아 그들이 느끼는 고통을 같이 느낀다. 이렇게 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자비로운 선물인지도 모른다. 그들의 동반자가 되려면 우리는 ‘해야만 한다고’생각하는 일을 포기해야 하며, ‘우리’가 고쳐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그들이 견딜 수 없는 시간과 공간을 그저 견디며 존재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선생님들은 우리의 마음이나 존재, 인격을 충만하게 해주는 진실만이 우리를 충족시킨다는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다. 우리 대부분이 좋은 성적이나 일자리를 얻으려고, 가장 좋은 대학이나 회사에 들어가려고, 몸무게를 줄이려고 열심히 쳇바퀴만 돌렸던 까닭은 바로 이래서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우연히 눈에 들어온 아이의 웃음, 엄마와 함께 나눈 일상적인 대화, 고맙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 지난 봄 심었던 씨앗에서 튼 작은 싹. 일상을 스쳐 지나가는 소소한 것들이 때로는 우리를 웃고 울게 한다. 슬픈 날도 주고, 기쁜 날도 준다. 그렇게 만들어진 하루가 당신에게 가장 큰 의미다. 의미는 집중하기, 주목하기, 관심 갖기에 있다. (중략) 내가 있는 그 자리, 그 순간에 벌어지는 것들에 마음을 주고 눈길을 주는 것, 그 속에서 나와 함께하는 것들의 소중함을 느끼고 간직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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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의 감각 - 삶의 감각을 깨우는 글쓰기 수업
앤 라모트 지음, 최재경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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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책 한권 내보는 게 꿈이다.”

동료들과 회식을 하다가 이런 소망을 종종 듣곤 합니다. 하지만 책을 내고 싶다는 소망을 이야기했던 분들에게서 책을 냈다는 소식을 아직까지 듣지는 못했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그분들은 막연하게 책을 쓰고 싶다는 소망을 이야기할 뿐 실제로 글을 쓰지 않기(혹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 글을 쓴다고 해도 그것이 책이라는 완성된 형태로 나오려면 누군가(편집자)의 인정을 받아야 하는데, 여기까지 도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작가의 꿈은 대부분 회식자리에서의 꿈으로만 남아 있습니다.

한편, 수줍게 책을 건네며 이번에 책을 냈다고 말하는 지인도 있었습니다. 이분은 책을 내는 것을 딱히 꿈꾸지는 않았지만 일기쓰듯 인터넷에 올렸던 글들이 사람들의 인기를 얻어 책을 내게 되었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의 인생 소망 중 하나인 책 쓰기가 이렇게 이뤄지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글쓰기 혹은 책 출판이라는 꿈을 향한 여정의 첫 갈림길은 뭐가 되었든 글을 쓰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습니다. 일단 무엇이라도 써야 꿈을 이룰 가능성이 단 1%라도 생길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글을 쓰려고 노트를 펼치거나 컴퓨터를 앞에 두고 있으면 한없이 막막하기만 하죠.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할 수 있을까요?

글쓰기 강좌를 들을 수도 있고 글쓰기 모임에 참여할 수도 있겠지만 가장 손쉬운 방법은 글쓰기를 가르쳐주는 책을 읽는 것입니다. 수많은 글쓰기 책들 중에서 글쓰기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에겐 글쓰기 기술이나 기법을 알려주는 책들보다는 일단 쓰기 시작할 수 있는 동기를 불러일으키고 용기를 주는 책이 좋습니다. 이런 면에서 글쓰기를 시작하려는 이들에겐 앤 라모트가 쓴 글쓰기 조언집 <쓰기의 감각>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글을 쓰면 뭐가 좋은데요?

저자가 글쓰기와 책, 그리고 작가되기에 대해 쓴 내용들을 읽다보면 글쓰기와 책의 매력에 자연스럽게 빠져들게 됩니다. 앤 라모트는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면서 두 가지 유익을 얻게 된다고 했습니다. 글을 쓰고 읽다보면 삶에서 탐험할 거리가 많아지고, 자신의 인생을 구체적으로 관찰할 기회를 얻게 됩니다. 글쓰기와 읽기를 통해 한마디로 삶이 풍요로워진다는 말입니다.

“이토록 작고 평평하고 딱딱한 사각형 종이에서 수없이 많은 세계가 펼쳐진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 아닌가. 그 세계들은 때로 당신에게 노래를 불러 주고, 위로와 평안을 주기도 하고, 당신을 흥분시키기도 한다. 책은 우리가 누구인지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 가르쳐 준다. 공동체나 우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우리가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도 보여 준다. 책은 당신이 실제로 겪어보지 못하는 많은 경험들로 가득 차 있다.”(57쪽)


글을 쓴다는 것은 다른 누군가가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알려주는 일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소소한 체험들이 글로 모여 독자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는 것만으로도 글쓰기는 매력이 있어 보입니다. 다만 글쓰기가 그리고 작가가 되는 것이 마냥 즐겁고 신나는 일만은 아니라는 점을 앤 라모트는 정확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저자는 본격적으로 글쓰기 조언에 들어가기에 앞서 이렇게 충고합니다.

지금 당장 훌륭한 작가가 되기를 바라겠지만, 어쩌면 그런 날은 영영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작가가 되고자 하는 사람의 책이 출판될 가능성이나 그것으로 재정적인 안정을 얻을 확률, 마음의 평화나 심지어 기쁨을 얻을 가능성이 그다지 크지 않다고. 게다가 “아무리 글쓰기에 능숙해지고 책과 이야기와 기사를 많이 발표한 작가가 된다 하더라도, 글 쓰는 일이 그들이 바라는 것을 모두 충족시켜 주지 않을 거”(35쪽)라고.

글쓰기가 인생에 유익한 것은 분명하지만 작가로 사는 삶은 상상하는 것만큼 밝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기고 책장을 넘기게 됩니다. 사실 첫머리부터 유명한 작가의 글쓰기 비법을 기대했던 이들에겐 실망스러울 수 있는 조언이지만 현실감각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솔직한 말이라서 저자의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가 더 궁금해졌습니다.

베스트셀러 작가의 글쓰기 비법

사실 저자가 글쓰기를 대하는 태도는 이 책의 원 제목 Bird by Bird에 나타나 있는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 앤 라모트의 오빠는 새에 관한 보고서를 써야 했는데 마감 하루 전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아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아버지가 오빠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 말이 앤 라모트에겐 인상깊게 남았던 것 같습니다.

“하나씩 하나씩. 새 한 마리 한 마리 차근차근 처리하면 돼.”(63쪽)


너무나도 당연한 조언이긴 합니다만 앤 라모트에게 글쓰기는 ‘하나씩 하나씩 차근차근’ 해 나가는 것입니다.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인 저자조차 “실제로 내가 무엇이라도 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정말로 조잡한 초고를 쓰는 것뿐이다.”(67쪽)라고 말합니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글감으로 삼아 엉망인 것 같아보여도 일단 한 번 써 보는 것. 이는 영원히 변하지 않을 글쓰기 비법이라고 해도 과하지 않습니다.

저자가 추천하는 사소한 글감에는 학창시절 점심 도시락, 유명 작가들에 대한 질투심, 누군가와의 전화 통화, 만났던 사람, 만남에서 했던 이야기, 반전 있는 대사, 멋진 말 등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내가 듣고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글의 소재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글을 쓰려고 앉았는데 15분만에 포기하지 말 것, 떠오르는 생각들을 모두 받아 적어 볼 것을 앤 라모트는 제안하고 있습니다.

작가들이 글을 쓰고 읽는 이유

글을 쓰려고 할 때 위와 같은 구체적인 조언에 더해 앤 라모트와 같은 작가들이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 들어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저자에게 글 혹은 책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하는 선물이었습니다. 암에 걸린 아버지를 위해, 유방암에 걸려 죽어가는 친구를 위해 책을 썼습니다. 숨겨진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글을 썼습니다.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기 위해서 글을 썼습니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것을 나눠주는 법을 배우기 위해 글을 썼습니다. 글을 쓰고 나니 성취감이 따라와 또 글을 썼습니다.

“작가가 되는 일이 엄청난 만족을 준다는 것은 사실이다. 자신의 인생을 바쳐 어떤 일을 완성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 책을 출간하고 인정받는 사람이 된다는 것 말이다. 나는 이 사실을 내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꺼내서 그것이 여전히 거기 있는지 확인한다. 비록 글 쓰는 시간은 대부분 고통스럽고 절망적이지만, 나는 마음 깊이 비밀스러운 성취감을 품고 산다.”(323쪽)


글을 쓴다는 것. 쉽게, 자연스럽게 되기는 어렵지만 매력적인 일임에는 틀림이 없어 보입니다. 설사 책이라는 완성된 형태로 결과물을 내지 못한다 할지라도 글을 쓰는 것은 인생에 도움이 됩니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 글을 쓸 수 없기에 무엇인가를 쓴다는 건 언제나 깨어 있고 사유한다는 말입니다. 사람을 다른 동물들과 구별되게 하는 사유하는 힘을 기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글쓰기는 가치가 있습니다.

앤 라모트는 글쓰기를 통해서 인생의 정수를 발견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글쓰기를 인간에게 풍요와 생기를 줄 수 있는 성직과도 같은 일이라고까지 여깁니다. 게다가 글쓰기는 보다 깊은 읽기의 세계로 사람들을 초대하기도 합니다. 작가의 눈으로 글을 읽기 시작한다는 것은 글쓰기가 주는 또 다른 선물입니다. 삶과 사람, 그리고 세상을 보는데 있어 새로운 ‘눈’ 여러 개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글을 쓰고 읽는 일은 우리의 고독을 덜어 준다. 그것은 인생에 대한 우리의 감수성을 깊고 넓게 확장시킨다. 한마디로 그것은 우리 영혼의 양식이다. 작가들이 예리한 산문과 적확한 진실로 우리의 머리를 흔들어 놓을 때, 나아가 우리 자신이나 인생에 대해 웃음 짓게 만들 때, 우리는 낙천성을 되찾는다. 우리는 인생의 불합리라는 불협화음에 맞춰 춤을 추는 시도를 하거나, 적어도 따라서 손뼉을 친다. 거듭거듭 짓눌리는 대신 말이다. 그것은 바다에서 무시무시한 태풍이 불어올 때 배 위에서 노래를 하는 것과도 같다. 당신이 화난 풍랑을 잠재울 수는 없지만, 노래는 배 위에 함께 있는 사람들의 마음과 영혼을 바꿀 수 있다.”(352쪽)


"이토록 작고 평평하고 딱딱한 사각형 종이에서 수없이 많은 세계가 펼쳐진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 아닌가. 그 세계들은 때로 당신에게 노래를 불러 주고, 위로와 평안을 주기도 하고, 당신을 흥분시키기도 한다. 책은 우리가 누구인지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 가르쳐 준다. 공동체나 우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우리가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도 보여 준다. 책은 당신이 실제로 겪어보지 못하는 많은 경험들로 가득 차 있다."(57쪽) - P57

"하나씩 하나씩. 새 한 마리 한 마리 차근차근 처리하면 돼."(63쪽) - P63

"작가가 되는 일이 엄청난 만족을 준다는 것은 사실이다. 자신의 인생을 바쳐 어떤 일을 완성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 책을 출간하고 인정받는 사람이 된다는 것 말이다. 나는 이 사실을 내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꺼내서 그것이 여전히 거기 있는지 확인한다. 비록 글 쓰는 시간은 대부분 고통스럽고 절망적이지만, 나는 마음 깊이 비밀스러운 성취감을 품고 산다."(323쪽) - P323

"글을 쓰고 읽는 일은 우리의 고독을 덜어 준다. 그것은 인생에 대한 우리의 감수성을 깊고 넓게 확장시킨다. 한마디로 그것은 우리 영혼의 양식이다. 작가들이 예리한 산문과 적확한 진실로 우리의 머리를 흔들어 놓을 때, 나아가 우리 자신이나 인생에 대해 웃음 짓게 만들 때, 우리는 낙천성을 되찾는다. 우리는 인생의 불합리라는 불협화음에 맞춰 춤을 추는 시도를 하거나, 적어도 따라서 손뼉을 친다. 거듭거듭 짓눌리는 대신 말이다. 그것은 바다에서 무시무시한 태풍이 불어올 때 배 위에서 노래를 하는 것과도 같다. 당신이 화난 풍랑을 잠재울 수는 없지만, 노래는 배 위에 함께 있는 사람들의 마음과 영혼을 바꿀 수 있다."(352쪽) - P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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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 - 유쾌한 페미니스트의 경제학 뒤집어 보기
카트리네 마르살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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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 결혼해 두 명의 자녀를 둔 직장인 이씨. 이씨는 해 뜨기 전 이른 아침 회사로 가는 통근버스를 타기 위해 집을 나섭니다. 지난 밤 아이들을 재워놓고 조금 늦게까지 예능프로를 보느라 부족했던 잠을 통근버스에서 보충합니다. 회사에 도착해 메일을 확인하고, 보고서도 쓰고, 협력사와 회의도 합니다. 바쁜 하루 일정이기는 하지만 업무 중간 중간 동료들과 차도 마시며 잡담할 시간은 충분히 가질 수 있습니다. 야근을 할 수도 있겠지만 이씨는 법정 노동 시간 안에서만 일하면 됩니다.

한편, 이씨가 출근하고 나서 곧 일어난 아이들은 엄마를 깨웁니다. 이씨의 아내는 두 아이에게 아침밥을 차려 먹이고, 아이들이 학교와 어린이집에 갈 수 있게 준비시킵니다. 초등학생인 첫째 아이가 집을 나서고 나서도 이씨의 아내는 둘째 아이가 어린이집에 갈 시간까지 놀아줍니다. 둘째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와서 설거지, 청소 등을 하고 나면 어느 새 시간은 점심시간에 가까워집니다.

오후에 잠시 숨을 돌릴라 치면 곧 둘째를 어린이집에서 데려와야 합니다. 어린이집에서 둘째 아이를 데려와 놀다 보면 초등학교 방과후 학교를 마친 첫째 아이가 집으로 옵니다. 두 아이를 씻기고 있는데 남편 이씨가 퇴근해서 집에 돌아옵니다. 이씨의 아내는 저녁밥을 차려 두 아이와 남편과 함께 저녁식사를 합니다. 가사를 분담하기는 하지만 남편이 집에 돌아와도 아이들이 잠들 때까지는 집안일을 같이 해야 합니다. 이씨 아내의 노동엔 법정 노동시간 같은 것은 없습니다.

이씨는 위와 같은 노동으로 월급을 받아 가정 생활을 유지합니다. 이뿐 아니라 이씨의 활동은 경제활동을 측정하는 GDP산출에 포함됩니다. 그러나 출퇴근 시간도 없는 이씨 아내의 노동에는 보수가 주어지지도 경제활동 결과를 산출하는데에 포함되지도 않습니다. 아내의 돌봄 노동으로 이씨가 독립적인 경제활동에 참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내의 활동은 국가경제를 말할 때 전혀 고려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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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 경제학의 큰 결함들

지금까지의 경제학은 경제활동의 상당히 큰 부분을 배제해 왔습니다. <잠깐, 애덤 스미스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를 쓴 카트리네 마르살은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애덤 스미스로부터 시작된 주류 경제학과 그 기저에 놓인 가정에 큰 결함이 있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애덤 스미스는 평생을 어머니와 함께 살며 어머니의 돌봄을 받았음에도 경제를 말할 때 이 부분을 쏙 빼먹었습니다.

“매일 아침 15킬로미터를 걸어가서 식구들에게 필요한 땔깜을 모아 오는 11세 소녀는 국가의 경제발전에 큰 역할을 한다. 그러나 한 나라의 총 경제 활동을 측정하는 GDP를 계산할 때 그녀는 포함되지 않는다. 경제 성장에도 중요하지 않다. 아이를 낳아 기르고, 정원을 가꾸고, 형제자매들이 먹을 음식을 만들고, 집에서 기르는 소의 젖을 짜고, 친척들의 옷을 만들고,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쓸 수 있도록 돌보는 일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이 활동 중 어떤 것도 주류 경제학 모델의 생산 활동에 포함되지 않는다.”(31쪽)


애덤 스미스는 개인들의 자기 이익 추구와 자유시장이 경제를 돌아가게 한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애덤 스미스가 저녁 식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생산자와 상인들이 자기 이익을 추구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어머니가 식사를 차려주었기 때문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또한 경제학자들도 알고 있지만 단순화와 예측가능성을 위해 외면하는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는 경제학 모델의 가정과 현실에는 없는 ‘경제적 인간’이라는 모델에 결함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경제적 인간 모델을 만들기 위해 경제학은 인간에게서 감정, 이타심, 배려, 연대감을 배제하고 인간이 합리적, 이기적이며 환경에서 독립적인 존재라 단순화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대니얼 카너먼 등 행동경제학자들은 인간이 합리적이고 이기적이지 않고 감정에 지배되는 면이 상당하다는 점을 증명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류경제학에서의 인간모델은 여전히 바뀌지 않았습니다.

성차별을 합리화하는 경제학

주류 경제학의 문제는 위와 같은 잘못된 가정만이 아닙니다. 경제학은 성별에 따른 차별을 합리화하는데도 크게 기여했습니다. 여성은 ‘내재된 자기희생적 특성’으로 인해 경제적 존재로 여겨지지 않았음을 저자는 지적합니다. 경제학은 생산성이 낮기에 여성 보수가 낮으며, 출산할 것이기에 고등 교육을 위해 남성만큼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합리적인 경제적 인간 모델에선 차별마저도 합리적이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경제학은 감정, 육체, 의존성, 연대감, 자기희생, 부드러움, 자연, 예측불가능성, 수동성, 인간관계 등을 모두 여성의 특징이라 규정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더해 생물학적으로 여성이 집안일에 맞게 태어났다, 여성이 가사노동을 하는 것이 효율적인 분업이다, 보수가 없는 집안일의 경험과 지식은 집밖 활동에서 쓸 수 없다는 근거없는 주장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얼토당토 않는 주장들 보다는 저자의 이 물음이 보다 ‘합리적’이라 생각합니다.

“아이들을 잘 돌보는 사람이 더 날카로운 애널리스트가 될 수 없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부모 노릇을 하면서 우리는 경제학자, 외교관, 잡역부, 정치가, 요리사, 간호사의 역할을 모두 해내지 않는가?”(64쪽)


최근 수십 년 동안 성차별을 없애려는 부단한 노력으로 여성의 지위가 상당히 나아져 왔지만 성별에 따른 불평등은 여전합니다. 왜 그럴까요? 저자에 따르면 여성은 일터에서 책임감을 증명하기 위해, 여성의 자리는 집이라는 편견을 없애기 위해 남성보다 더 노력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일하는 능력뿐 아니라 가정을 돌보는 능력까지도 여성들은 심판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터에 나선 현대의 여성들은 무거운 등짐을 지고 남성들과 경쟁하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되면 모든 것이 충돌한다. 서로 분리돼야 할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이 갑자기 한데 섞인다. 출근할 때 버려두고 온 사적인 자아 곁에 임신한 배까지 두고 나오기가 불가능한 것이다. 보수를 받고 일하는 직장에 가정의 흔적을 가지고 가야만 한다. 자기 자신과 자기 자신 이상의 그 무엇을.”(100쪽)


다시 고쳐써야 할 경제학

경제적 인간(합리성, 이기적) 가정이 틀렸다는 것을 확인한 지 30년도 넘었지만 경제학은 여전히 이 가정을 포기하지 않음을 저자는 지적합니다. 사회속에서 인간은 기본적으로 의존적 존재이며 이성과 감정을 둘 다 가지고 행동하지만 경제학은 현실의 인간을 여전히 철저히 외면하고 있습니다. 경제학은 저자가 말하듯 현실의 인간 특성을 고스란히 고려해 이론을 다시 세워야 합니다.

“(경제이론은) 인간은 작은 아기로 태어나 쇠약해져서 죽고, 어디 출신이든, 얼마를 벌든, 어디에 살든 상관없이 날카로운 물건으로 피부를 그으면 살이 베이고 피가 난다는 사실을 외면하는 것이다. 우리의 공통점은 육체에서 시작한다. 추우면 몸을 떨고, 달리면 땀을 흘리고, 태어날 때 울고, 아기를 낳을 때 비명을 지른다. 몸을 통해서 우리는 다른 삶과 연결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경제적 인간은 몸을 삭제해 버렸다. 몸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가장하는 것이다.”(253쪽)


또한 이 경제적 인간 개념에서 철저히 배제되었던 또 하나의 성별인 여성을 경제학 이론에 포함시켜야 합니다. 저자가 강조하듯 경제와 그 중심에 있는 시장을 이해하려면 “인구의 절반이 하루의 절반 이상의 시간을 들여 하는 일을 무시”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글 서두에 있는 이씨가 자유롭게 직장을 다닐 수 있는 이유는 하루 종일 돌봄 노동에 시간을 들이는 그의 아내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성평등 관점에서 경제학을 바라보며 역사적으로 공고한 편견 혹은 결함있는 경제학을 다시 구성하자고 제안합니다. 인간의 관계성과 의존성, 공감과 연민/연대, 비합리성, 취약성이 고려되고 왜곡된 남성성/여성성 개념에서 탈피한 인간을 모델로 하는 경제학을 다시 배우고 싶습니다. 카트리네 마르살의 이 책은 페미니즘으로 고쳐쓴 경제학 입문서 사용해도 전혀 손색이 없습니다.

“페미니즘의 관점은 불평등부터 인구 증가, 복지 혜택, 환경, 그리고 노령화 사회가 곧 직면하게 될 돌봄 인력의 부족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제에 깊은 관련이 있다. 페미니즘은 ‘여성들의 권리’이상의 훨씬 큰 문에제 관한 것이다. 현재까지는 페미니즘 혁명의 절반밖에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는 여성들을 더해서 젓는 것까지는 했다. 이제 다음 단계는 이것이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왔는지 깨닫고, 그 새로운 세상에 걸맞도록 사회, 경제, 정치에 변화를 가져오는 일을 해내는 것이다.”(298-299쪽)


"매일 아침 15킬로미터를 걸어가서 식구들에게 필요한 땔깜을 모아 오는 11세 소녀는 국가의 경제발전에 큰 역할을 한다. 그러나 한 나라의 총 경제 활동을 측정하는 GDP를 계산할 때 그녀는 포함되지 않는다. 경제 성장에도 중요하지 않다. 아이를 낳아 기르고, 정원을 가꾸고, 형제자매들이 먹을 음식을 만들고, 집에서 기르는 소의 젖을 짜고, 친척들의 옷을 만들고,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쓸 수 있도록 돌보는 일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이 활동 중 어떤 것도 주류 경제학 모델의 생산 활동에 포함되지 않는다.(31쪽)

아이들을 잘 돌보는 사람이 더 날카로운 애널리스트가 될 수 없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부모 노릇을 하면서 우리는 경제학자, 외교관, 잡역부, 정치가, 요리사, 간호사의 역할을 모두 해내지 않는가?(64쪽)

어머니가 되면 모든 것이 충돌한다. 서로 분리돼야 할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이 갑자기 한데 섞인다. 출근할 때 버려두고 온 사적인 자아 곁에 임신한 배까지 두고 나오기가 불가능한 것이다. 보수를 받고 일하는 직장에 가정의 흔적을 가지고 가야만 한다. 자기 자신과 자기 자신 이상의 그 무엇을.(100쪽)

(경제이론은) 인간은 작은 아기로 태어나 쇠약해져서 죽고, 어디 출신이든, 얼마를 벌든, 어디에 살든 상관없이 날카로운 물건으로 피부를 그으면 살이 베이고 피가 난다는 사실을 외면하는 것이다. 우리의 공통점은 육체에서 시작한다. 추우면 몸을 떨고, 달리면 땀을 흘리고, 태어날 때 울고, 아기를 낳을 때 비명을 지른다. 몸을 통해서 우리는 다른 삶과 연결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경제적 인간은 몸을 삭제해 버렸다. 몸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가장하는 것이다.(253쪽)

페미니즘의 관점은 불평등부터 인구 증가, 복지 혜택, 환경, 그리고 노령화 사회가 곧 직면하게 될 돌봄 인력의 부족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제에 깊은 관련이 있다. 페미니즘은 ‘여성들의 권리’이상의 훨씬 큰 문에제 관한 것이다. 현재까지는 페미니즘 혁명의 절반밖에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는 여성들을 더해서 젓는 것까지는 했다. 이제 다음 단계는 이것이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왔는지 깨닫고, 그 새로운 세상에 걸맞도록 사회, 경제, 정치에 변화를 가져오는 일을 해내는 것이다.(298-2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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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기 안내서 - 더 멀리 나아가려는 당신을 위한 지도들
리베카 솔닛 지음, 김명남 옮김 / 반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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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시작되고 어느 새 작심삼일을 10번을 할 만큼 시간이 지나버렸습니다. 올 해는 어떤 목표를 가지고 살아갈까 고민하는 동안 벌써 한 달이 흘렀습니다. 이제 새해 결심을 목록으로 적기에는 너무 늦어 버린 것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아직 설날이 지나지 않았고 기해년은 시작되지 않았으니 조금이나마 위안을 삼으며 2019년을 어떻게 살아갈지 생각해 봅니다.

죽음이라는 종착지를 향해 가는 인생여행에서 어떤 길을 걸어볼까 고민이 많습니다. 지금까지 들어서 걸어온 길을 계속 따라갈 것인지, 중간에 만나는 갈림길에서 다른 길을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잠시 멈춰서서 걸어왔던 길을 돌아보며 생각할 시간을 가질 것인지. 어떤 길로 나아갈지 고민하고 있는 제게 ‘장기하와 얼굴들’이 부른 <그건 니 생각이고>라는 제목의 노랫말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이 길이 내 길인 줄 아는 게 아니라 그냥 길이 거기 있으니까 가는거야.”
“원래부터 내 길이 있는 게 아니라 가다보면 어찌어찌 내 길이 되는거야.”
“그냥 니 갈 길 가. 이 사람 저 사람 이러쿵 저러쿵 뭐라 해도 상관 말고 그냥 니 갈 길 가.”
“이 길이 내 길인지 니 길인지 길이기는 길인지 지름길인지 돌아가는 길인지는 나도 몰라.”
“그대의 머리 위로 뛰어다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너처럼 아무 것도 몰라.”
-<그건 니 생각이고> 노랫말 발췌 -


살아가는데 내 길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됩니다. 무엇인가 선택을 해야 할 때 자꾸만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나 조언을 구하게 되는데 그들 역시 나의 삶을 살아본 것이 아니기에 내 길을 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노랫말을 통해 재확인합니다. 내딛는 한걸음 한걸음이 모여 내 길이 된다는 말이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에 움츠러드는 마음에 용기를 불어넣어줍니다.

선택을 해야 할 시기를 맞을 때면 길을 잃고 싶지 않아서, 돌아가고 싶지 않아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었는데 이제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생애 마지막 도착지에 이르기까지 어떤 길을 따라가던 그 길을 가는 동안 즐길 수 있다면, 나만의 가치를 발견하며 걸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니까요. 그래서 때론 길을 잃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새로운 한 해를 어떻게 살아갈까 생각하다 장기하의 노랫말과 함께 리베카 솔닛이 쓴 매력 넘치는 제목의 책이 눈에 들어옵니다. <길 잃기 안내서>. 어떤 여정에서 길을 잃는 것은 왠지 피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길을 잃을 수 있게 안내하는 책이라니. 단 한번 뿐인 인생에서 길을 잃고 헤매도 되는 걸까요? 길을 잃게 되면 그 만큼의 인생을 허비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 길을 잃는다는 것이 제겐 그리 긍정적인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리베카 솔닛은 위와 같은 제 생각을 뒤집어 놓습니다. 저자는 길을 잃는다는 것을 “미지를 향해 문을 열어두는 것”이라 말합니다. 그 문을 통해 가장 중요한 것들이 들어오고, 그 문을 통해 우리들 자신이 들어오기도 하고 나가기도 한다고 말합니다. 또한 길을 잃어버림은 원래의 길을 찾는 것일 수도 있고 아예 새로운 길을 찾는 계기라며 ‘길 잃기’에 담긴 역설을 이야기합니다.
 

“길을 잃는 것, 그것은 관능적인 투항이고, 자신의 품에서 자신을 잃는 것이고, 세상사를 잊는 것이고, 지금 곁에 있는 것에만 완벽하게 몰입한 나머지 더 멀리 있는 것들은 희미해지는 것이다. 베냐민의 말을 빌리자면 길을 잃는 것은 온전히 현재에 존재하는 것이고, 온전히 현재에 존재하는 것은 불확실성과 미스터리에 머무를 줄 아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우리는 그냥 길을 잃었다(get lost)는 표현 대신 자신을 잃었다(lose oneself)는 표현을 쓰는데, 이 표현에는 이 일이 의식적 선택이라는 사실, 스스로 택한 투항이라는 사실, 지리를 매개로 하여 도달할 수 있는 어떤 정신 상태라는 사실이 함축되어 있다.”(19-20쪽)


저자의 제안에 따라 적극적으로 길을 잃어보면서 아직 알지 못하는 영역으로 스스로를 확장시켜 가며 지금까지와는 다른 내가 되어보고 싶습니다. 잘 모르는 상황이나 속성을 전혀 알지 못하는 것 앞에서 종종 당황하거나 두려워하게 되는데, 리베카 솔닛이 말하는대로 길을 잃어보는 경험을 하게 되면 낯선 것들을 좀 더 편안하게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모든 장소가 처음 가보는 장소였기에 길을 잃는 것에 전문이었던 탐험가들처럼 인생을 대하고 싶어졌습니다.

혈기왕성했던 청년기를 지나고 중년에 이르면 어느 정도 안정된 삶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리베카 솔닛의 길 잃기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니 안정에의 추구는 어쩌면 영영 도달할 수 없는 욕망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자가 지평선의 푸름을 바라보며 그 푸름에 취해 그곳까지 다가간다고 해도 지평선의 푸름에는 이르지 못하는 것처럼 도달할 수 없는 어떤 욕망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세상의 어떤 것은 영영 잃어버린 상태일 때만 우리가 가질 수 있고, 또 어떤 것은 멀리 있는 한 우리가 영영 잃지 않는다.”(68쪽)


중년의 초입에 이르고 보니 무엇인가 새로운 곳에 발을 딛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지금보다는 앞으로의 삶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이 앞서고 그러다보니 행동은 신중해지는 것을 넘어 머뭇거리게 됩니다. 일상에서 무엇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마다 가능하면 실수를 줄이는 방향으로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나이들어서 실수를 하게 되면 쉽게 돌이킬 수 없을 것만 같아 두렵기 때문입니다. 리베카 솔닛은 이런 제 마음을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젊은이는 절대적으로 현재만을 산다. 그러나 그 현재는 드라마와 무모함의 현재, 충동적으로 행동하고 친구들과 몰려다니는 현재다. (중략) 성인기는 신중한 예상과 철학적 기억으로 이루어지고, 그 덕분에 우리는 좀 더 느리고 착실하게 길을 찾는다. 하지만 실수를 두려워하는 태도는 그 자체로 크나큰 실수일 수 있다. 제대로 된 삶을 살지 못하게 하는 실수일 수 있다. 삶은 늘 위험한 법이니, 조금이라도 덜 위험한 삶은 이미 무언가를 상실한 것이기 때문이다.”(154쪽)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된 지 어언 한 달이 지나고 있는 지금 나의 모습을 돌아봅니다.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나 역시 내가 싫어했던 선배들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조금은 늦은 감이 있는 시기에 새해 계획 혹은 새해 목표 목록을 적어볼까 생각하다 형식적인 목록보다는 고착화된 혹은 정형화된 삶에서 벗어나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곳으로 발을 내딛어 보자는 결심 하나만을 적었습니다.

지금보다 조금은 더 무모했고, 충동적이었던 때. 이런 저런 실수를 반복하며 때론 앞으로 나아가기도 했고, 되돌아가기도 했던 조금 더 어렸던 시절. 이리저리 길을 찾아보며 미지의 영역으로 탐험하듯 살았던 그 시절의 나를 떠올리며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여전히 좌충우돌하며 나만의 인생을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그래서 지금 리베카 솔닛이라는 길 잃기 안내자를 만난 것은 행운입니다.

리베카 솔닛의 <길 잃기 안내서>는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 고인물이 되어가고 있었던 제 인생에 다시 물고를 터준 책이 될 것 같습니다. 리베카 솔닛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아가야 할 길을 잃는 것이 두려워서, 혹은 물길을 내지 못하고 그냥 땅속으로 사라지게 될까봐 두려워서 새로운 길을 내지 않고 고여있으려는 중년에 진입한 저는 다시금 용기와 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선원에서 설법 시간에 저자가 참석해 들었던 초콜릿을 팔던 맹인의 일화에 인용된 ‘알아차림’ 수련이 기억에 남습니다. 적극적으로 길을 잃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정신의 회복성이라고 부를 만한 능력,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든 기꺼이 맞을 줄 아는 능력”을 키우는 데 제격인 훈련이기에 그렇습니다.
 

“만일 내가 내 삶을 진지하게 따져본다면, 오늘 오후 내게 벌어질 일을 미리 알 순 없다는 사실, 그리고 내가 그 일을 너끈히 처리할 능력이 있다고 철석같이 자신할 순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중략) 정말로 나는 미래를 정확히 알 수 없죠. 하지만 모르면 몰라도, 높은 확률로, 오늘 오후는 보통의 날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나는 그럭저럭 헤쳐나갈 수 있을 겁니다.(중략)

하지만 우리가 알아차림을 실천하다 보면, 일상에 존재한다고 여기고 싶은 그 합리성 아래 깔린 것이 드러나면서 꽤 흥미로운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바로 자신의 내면에서 진행되는 대화, 자신의 머릿속을 흐르는 이야기들과 마음 속을 흐르는 감정들입니다.

게다가 우리는 이 영역에서는 세상이 그다지 질서 정연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아가 안전하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렇다 보니 지난 수백, 수천 년 이어져온 알아차림 수련에서 사람들은 늘 이렇게 자문했습니다. 음 어떻게 하면 이 과정에서 펼쳐질지도 모르는 것들에 지나치게 겁먹지 않고 그렇다고 무사안일하게 회피하지도 않으면서 알아차림을 실천할 수 있을까?”(275-6쪽)


"길을 잃는 것, 그것은 관능적인 투항이고, 자신의 품에서 자신을 잃는 것이고, 세상사를 잊는 것이고, 지금 곁에 있는 것에만 완벽하게 몰입한 나머지 더 멀리 있는 것들은 희미해지는 것이다. 베냐민의 말을 빌리자면 길을 잃는 것은 온전히 현재에 존재하는 것이고, 온전히 현재에 존재하는 것은 불확실성과 미스터리에 머무를 줄 아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우리는 그냥 길을 잃었다(get lost)는 표현 대신 자신을 잃었다(lose oneself)는 표현을 쓰는데, 이 표현에는 이 일이 의식적 선택이라는 사실, 스스로 택한 투항이라는 사실, 지리를 매개로 하여 도달할 수 있는 어떤 정신 상태라는 사실이 함축되어 있다."(19-20쪽)

"세상의 어떤 것은 영영 잃어버린 상태일 때만 우리가 가질 수 있고, 또 어떤 것은 멀리 있는 한 우리가 영영 잃지 않는다."(68쪽)

"젊은이는 절대적으로 현재만을 산다. 그러나 그 현재는 드라마와 무모함의 현재, 충동적으로 행동하고 친구들과 몰려다니는 현재다. (중략) 성인기는 신중한 예상과 철학적 기억으로 이루어지고, 그 덕분에 우리는 좀 더 느리고 착실하게 길을 찾는다. 하지만 실수를 두려워하는 태도는 그 자체로 크나큰 실수일 수 있다. 제대로 된 삶을 살지 못하게 하는 실수일 수 있다. 삶은 늘 위험한 법이니, 조금이라도 덜 위험한 삶은 이미 무언가를 상실한 것이기 때문이다."(154쪽)

"만일 내가 내 삶을 진지하게 따져본다면, 오늘 오후 내게 벌어질 일을 미리 알 순 없다는 사실, 그리고 내가 그 일을 너끈히 처리할 능력이 있다고 철석같이 자신할 순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중략) 정말로 나는 미래를 정확히 알 수 없죠. 하지만 모르면 몰라도, 높은 확률로, 오늘 오후는 보통의 날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나는 그럭저럭 헤쳐나갈 수 있을 겁니다.(중략)

하지만 우리가 알아차림을 실천하다 보면, 일상에 존재한다고 여기고 싶은 그 합리성 아래 깔린 것이 드러나면서 꽤 흥미로운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바로 자신의 내면에서 진행되는 대화, 자신의 머릿속을 흐르는 이야기들과 마음 속을 흐르는 감정들입니다.

게다가 우리는 이 영역에서는 세상이 그다지 질서 정연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아가 안전하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렇다 보니 지난 수백, 수천 년 이어져온 알아차림 수련에서 사람들은 늘 이렇게 자문했습니다. 음 어떻게 하면 이 과정에서 펼쳐질지도 모르는 것들에 지나치게 겁먹지 않고 그렇다고 무사안일하게 회피하지도 않으면서 알아차림을 실천할 수 있을까?"(27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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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시간입니다 - 심리학과 뇌과학이 파헤친 시간의 비밀
슈테판 클라인 지음, 유영미 옮김 / 뜨인돌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해마다 12월이 되면 머리속에서 지나온 한 해를 돌아보라는 알람이 울립니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연초 새해 목표 목록을 아주 오랜만에 들춰보며 지나온 한 해의 성과를 가늠해 봅니다. ‘음, 이 정도면 잘 살았군’하고 스스로를 칭찬하기도 하지만 어떤 항목에선 ‘이걸 내가 썼나?’하고 놀라기도 합니다. 그리곤 생각합니다. ‘와, 진짜 시간이 빨리 지나갔네. 왜 이렇게 1년이 짧지?’ 연말연초엔 ‘시간’ 이야기를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왜 즐거운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갈까?”
“왜 나이가 들수록 시간은 빨리 흐르는걸까?”
“왜 이렇게 시간이 부족할까?”


아마도 다들 위와 같은 질문을 해 보셨을 겁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이 점점 빠르게 흘러가버리는 것 같아 아쉬움이 커집니다. 게다가 왜 항상 시간은 부족한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궁금증에 정답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시간과 삶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게 해 주는 책이 있습니다. 슈테판 클라인이 쓴 <안녕하세요, 시간입니다>를 보면 인간이 어떻게 시간을 경험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시간을 더 신중하게 활용할 수 있는지 조언을 얻을 수 있습니다.

  ​
시간을 붙잡기 위해선 내면의 시간을 이해해야

저자는 시계가 돌아가는 시간과 내가 경험하는 시간이 서로 다르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시간에 대한 느낌은 외부의 시간과 인간의 내면에서 생겨나는 현상이 결합되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시간을 잘 다스리려면 내면의 시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내면의 시간을 잘 다룰 줄 알게 되면 하루 24시간을 더 풍성하게 경험할 수 있다고 저자는 쓰고 있습니다. 정신이 없을 정도로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을 잡아두고 싶습니다.
 

“우리 사회는 매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귀중하게 활용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그리하여 삶의 속도는 가끔 우리가 견디기 힘들 정도로 빨라진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 스스로 시간에 대한 느낌을 조절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쫓기는 기분이나 평온한 마음도, 과거를 회상하며 느끼는 풍요로움이나 공허함도 외부 상황에 의해 만들어지거나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10쪽)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여러 편리한 도구들의 도움으로 과거에 비해 더 많은 여유시간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현대인들은 왠지 항상 시간이 부족합니다. 그 이유를 저자는 참으로 매력적인 말로 표현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루하루를 ‘맞춤복’처럼 이용할 수 있는데 ‘기성복’처럼 받아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딸깍딸깍 흘러가는 시계의 시간은 동일하지만 그 안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시간은 충분히 조절가능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시간을 경험하는 것은 우리가 바라는 것과는 정반대입니다. 즉, 즐거운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불쾌한 순간은 지독히도 깁니다. 그러면 어떻게 시간을 연장시켜 경험할 수 있을까요? 우리의 주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시간 감각이 달라진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어떤 일에 몰두하면 시간이 지나는 것을 잊어버리고, 시간을 계속 의식하면 몇 초도 길게 느껴진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경험상 맞는 이야기 같습니다.

주의 집중 훈련으로 풍요를!

시간의 흐름을 조종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집중력입니다. 우리가 지루할 때 다른 데 주의를 돌려 시간을 짧게 느끼는 경우를 경험하기는 하지만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연장시키는 기술은 좀처럼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이 저자의 지적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이 기술을 터득해 외부에서 주어지는 정해진 하루 더욱 풍성하게 누리고 싶습니다. 이렇게 하면 내년 12월에는 시간이 부족했다는 아쉬움이 덜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자는 주의집중 혹은 몰입 훈련을 통해 시간을 붙잡을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단순한 예로 무엇인가에 관심을 가지고 주의 깊게 살펴보는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이를 테면 잡지를 볼 때 평소 보지 않던 세세한 부분까지 자세히 살펴보거나, 그림을 볼 때 아주 작은 부분들에까지 관심을 두고 살펴보는 것입니다. 저자가 지각훈련이라고 말하는 이 훈련을 통해 우리는 ‘지금’에서 더 많은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날마다, 순간마다 감각적 인상들을 더 많이 받아들일수록 시간은 더 풍요롭고 길게 느껴진다. 나중에 돌이켜 보면 활기찬 대화를 나누었던 1시간은 멍하니 몽상에 잠겼던 1시간보다 훨씬 길게 느껴질 것이다. 시간에 더 많은 생기를 불어넣음으로써 우리는 인생을 더욱 길게 느낄 수 있다.(중략) 온전한 현재에 사는 사람은 인생을 구성하는 순간들을 더 자세히 지각할 뿐 아니라 그런 순간들을 만끽할 수 있다.”(108, 109쪽)


나이와 비례하는 시간의 속도를 늦추려면

글의 서두에 던진 질문 중 나이가 먹을 수록 시간이 왜 빨리 흐르는지도 저자는 설명합니다. 우리는 정보의 양을 가지고 시간을 느끼는데, 새로운 것 혹은 변화를 많이 경험할수록 시간을 길게 느끼게 됩니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는 젊을 때 새로운 경험들을 많이 하게 되어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처럼 느낍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경험은 평범해져 하루하루가 쏜살같이 지나가는 것 같아지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날아가는 듯한 시간을 붙잡고 싶으신가요? 언제든 풍성한 기억을 소환할 수 있도록 체험한 것을 메모하거나 사진으로 남기면 좋다고 합니다. 또 두뇌를 계속해서 사용하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노년의 시간을 연장하고 싶은 분들은 “습관을 바꾸거나 새로운 습관을 들이는 것은 생명을 유지하고 우리의 시간감각을 새롭게 하는 유일한 수단이다.”라는 말을 기억하십시오. 개인적으로는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항상 부족한 시간, ‘시간을 발견’해 채우다

현대인들은 거의 무한정으로 몰려오는 감각적 자극 속에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향유할 시간이 부족한 것은 당연하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많은 자극들에 주의를 계속 분산시킬 것인지, 아니면 향유할 수 있는 자극 몇 가지를 선택하든지. 하지만 사람들은 종종 일정표에 빈 공간이 없도록 시간을 빽빽하게 채우곤 합니다. 저자가 지적하듯 시간을 온전히 향유하지 못하는 경우 분주함과 공허감을 오가게 됩니다.

저자는 집중력 부족, 스트레스, 의욕부진 때문에 사람들이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낀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없어서 어려움을 겪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제대로 쓸 줄 모르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고도 했습니다. 이 세가지 원인을 극복하기 위한 대책으로 앞서 말한 ‘집중력 훈련’, ‘자신의 통제 하에 놓이는 시간 마련’, ‘적당한 동기부여와 선택’을 제안합니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서 매일 바쁘다. 우리는 어떤 일을 진정으로 만끽하기 위해 다른 일을 의식적으로 팽개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우리 사회는 욕망을 억누르는 대신 일깨운다. (중략) 그리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느끼는 기쁨보다는 시간이 부족하여 하지 못하고 남겨두는 일에 대한 아쉬움이 더 큰 것이다.”(218-9쪽)


책의 말미에서 저자는 풍요로운 인생을 위해 ‘시간을 발견’하는 6가지 방법을 제안합니다. 저는 이 여섯 가지 방법을 ‘지금’부터 연습해 보려고 합니다. 이 방법이 궁금하신 분들은 함께 책을 열어보시죠. 흐르는 시간을 잡아둘 수는 없겠지만 이전처럼 시간의 강물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않고 시간의 강에 나룻배를 띄워 여행하듯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사회는 매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귀중하게 활용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그리하여 삶의 속도는 가끔 우리가 견디기 힘들 정도로 빨라진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 스스로 시간에 대한 느낌을 조절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쫓기는 기분이나 평온한 마음도, 과거를 회상하며 느끼는 풍요로움이나 공허함도 외부 상황에 의해 만들어지거나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10쪽)

"날마다, 순간마다 감각적 인상들을 더 많이 받아들일수록 시간은 더 풍요롭고 길게 느껴진다. 나중에 돌이켜 보면 활기찬 대화를 나누었던 1시간은 멍하니 몽상에 잠겼던 1시간보다 훨씬 길게 느껴질 것이다. 시간에 더 많은 생기를 불어넣음으로써 우리는 인생을 더욱 길게 느낄 수 있다.(중략) 온전한 현재에 사는 사람은 인생을 구성하는 순간들을 더 자세히 지각할 뿐 아니라 그런 순간들을 만끽할 수 있다."(108, 109쪽)

"우리는 무엇인가를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서 매일 바쁘다. 우리는 어떤 일을 진정으로 만끽하기 위해 다른 일을 의식적으로 팽개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우리 사회는 욕망을 억누르는 대신 일깨운다. (중략) 그리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느끼는 기쁨보다는 시간이 부족하여 하지 못하고 남겨두는 일에 대한 아쉬움이 더 큰 것이다."(21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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