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 부역자와 저항자들 - 탐사취재 12년의 기록, 끝나지 않은 싸움
김병기 지음 / 오마이북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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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과 그 일당들의 대국민 사기극을 파헤친 12년간의 탐사보도! 4대강 다큐멘터리 영화 '삽질' 원작>

“강은 누구의 것인가?” 오마이뉴스 김병기 기자가 쓴 <4대강 부역자와 저항자들>을 읽기 전까지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물음이었습니다. 강 주변에서 강이 주는 혜택을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강의 주인일까요? 아니면 일종의 공공자원으로서 강이 있는 나라 모든 국민들의 것일까요? 인간을 중심으로 생각하기에 자연마저도 누군가가 소유해야 할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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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책에서 정수근 시민기자가 말했듯 “강은 인간만을 위한 공간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강은 스스로 살아 있는 생명체이고 다양한 생명들이 공존하는 생태계”라는 것도 다시금 환기합니다. <4대강 부역자와 저항자들>에는 누구의 것도 아닌 자연의 선물, 강을 자신들의 것으로 삼으려 했던 이명박 전 대통령과 그 측근들의 탐욕스럽고도 뻔뻔한 이야기가 펼쳐져 있습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주의해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먼저 주변에 손에 잡힐 만한 물건들은 치우시기 바랍니다. 책을 읽다가 열받아서 주변 뭔가를 집어 던질 수 있습니다. 또 깨질만한 것들은 읽는 자리에서 멀리 두십시오. 역시나 분노로 탁자를 내리쳐 물건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혈압이 높으신 분들도 이 책을 펼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병세가 악화될 수 있습니다.

‘부자되세요’ 대통령을 뽑은 비용과 그가 남긴 부채

“국민 여러분, 부자 되세요”라는 구호로 대통령이 된 이명박. 국민들의 탐욕을 효과적으로 자극해 표를 얻은 그는 공약으로 내걸었던 한반도 대운하 계획을 국민들이 반대하자 4대강 사업으로 이름을 바꿔 재정사업을 추진합니다. 이명박 정부는 반대 의견을 내는 시민단체를 파렴치한 단체로 몰아 제압했고, 엄청난 홍보비로 언론을 제어했으며, 사업의 문제점을 제기하는 교수는 각종 연구용역에서 제외시켰습니다.

반드시 거쳐야 하는 환경영향 평가 등도 법을 교묘하게 피해 졸속으로 진행하고, 사업 예산도 국회에서 날치기로 통과시켰습니다. 이렇게 4대강 사업은 22조 원이라는 엄청난 세금이 투입되며 강행되었습니다. 그러나 4대강 사업이 완료된 후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흐르는 강을 막아 악화된 강의 수질은 ‘녹조라떼’라는 신조어를 유행시키며 조롱거리로 전락했습니다.

온 국민을 부자로 만들어줄 것 같았던 대통령을 뽑아 치른 비용은 4대강 사업 예산만 22조 원입니다. 게다가 4대강 주변 공원 조성 및 유지, 부실시공된 16개 댐 보수, 바닥보호공 보수, 녹조 제거 작업 등을 포함해 매년 6천억~1조원 가량의 세금이 4대강 유지관리 비용으로 사용됩니다. 이 세금을 복지에 사용했다면 어땠을까요?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 소장의 말이 안타까움을 더합니다.
 

“국립대학 학생들을 공짜로 학교에 다니게 하면 1년에 2조원이 듭니다. 30조원이면 15년을 무료로 가르칠 수 있는 돈이죠. 전체 대학생들의 등록금을 무료로 하면 1년에 7조 원입니다. 최근에 아동 수당을 1인당 월 10만 원씩 주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그 돈이 연간 3조원입니다. 고등학생들에게 무상교육을 실시한다면 1년에 2500억 원이면 됩니다. 4대강에 투입된 30조원을 복지에 사용했다면 국민들이 많은 혜택을 누렸을 겁니다.”(165쪽)


죄값을 치러야 할 사람들

4대강 사업은 이명박의 오만과 탐욕으로 덧칠된 사기극이었다고 김병기 기자는 말합니다. 그리고 학자, 정치인, 관료, 재벌, 검찰, 법원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부역자들이 있었기에 이 사기극이 가능했다고 밝힙니다. 특히 언론은 국가의 재정사업을 검증하기는커녕 홍보비를 받아먹으며 사기극을 포장하기에 바빴습니다. 이 책은 국민 모두가 읽으며 아파해야 하겠지만 특별히 부역 언론인들이 반드시 읽고 반성하면 좋겠습니다.

김병기 기자 등 저항자들은 12년간 ‘대국민 사기극’을 추적하며 주범인 이명박 전 대통령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부역했던 사람들을 찾아가 묻습니다. 박석순 이화여대 환경공학과 교수, 이만의 전 환경부장관, 김철문 전 청와대 행정관, 정종환 전 국토해야부 장관, 이재오 전 한나라당 최고위원, 곽승준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심명필 인하대 명예교수, 권도엽 전 국토해양부 장관 등을 끈질기게 찾아가 물었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에게서도 4대강 사업에 대해 책임있는 대답은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사기극에 부역한 대가로 떵떵거리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뻔뻔하게 4대강 사업을 찬양하는 이도 있었고, 부역의 결과로 얻은 연구용역 참여실적으로 더 잘나가는 교수가 되어 있기도 했습니다. 현 정부가 반드시 해야할 과제를 김병기 기자가 잘 표현해주었습니다.
 

“환부를 도려내듯이, 썩은 부역자들의 죗값을 물어야 한다. 고름을 짜내듯이, 영혼을 팔아 호가호위하면 반드시 심판받는다는 상식을 세워야 한다. 적어도 그들이 지난 과오를 부끄러워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단군 이래 최악의 사업이라는 4대강 사업의 아픔으로부터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10-11쪽)


또 다른 4대강 사업을 방지하려면

이명박의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은 감사원 감사 등을 통해 확인된 사실입니다. 하지만 거대한 예산이 어디로 흘러갔는지 규명되지 않았으며, 이 거대한 사기극에 대해 처벌받은 이도 없습니다. 김병기 기자가 책에서 강조했듯 청문회라도 열어서 책임이 있는 이들을 철저하게 밝혀내고 처벌해야 합니다. 책임자 확인 및 처벌과 함께 또 다른 사기극이 벌어지지 않게 하기 위한 필요한 조치들도 눈에 들어옵니다.

책에 소개된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 소장의 제안을 적극적으로 법률에 반영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회는 막대한 손실을 낸 예산 낭비 사업에 대해 처벌하는 일명 ‘링컨법’을 제정해야 합니다. 미국의 경우 ‘공공재정 허위 부정청구 등 방지법’을 통해 국가 재정을 옳지 않게 사용한 행위에 대해 처벌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도 가장 필요한 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또한 문재인 정부는 4대강 사업 이후로 소요되는 국가 예산을 국민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하고 적극적으로 홍보하면 좋겠습니다. 국민들 각자가 우리들 세금이 어떻게 버려질 수 있는지 뼈아프게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마이뉴스라는 채널을 통해 4대강 사업의 실체를 밝혔던 ‘4대강 독립군’들의 역할을 정부가 해야 할 것입니다.

국민들 대다수에게 사기극의 실체를 알리기에는 오마이뉴스라는 채널은 한정적입니다. 흐르는 강을 가로막았던 보를 열었을 때 살아나는 금강을 생생하게 보여줬던 사실들을 주요 공중파를 활용해 국민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4대강 주요 보 혹은 댐들을 개방할 것인지, 더 나아가 철거할 것인지 논의가 계속될 것인데 이 때에도 명확한 사실이 국민들에게 공유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또 다른 4대강 사업은 언제든지 다시 출현해 국민들의 세금을 누군가의 호주머니로 흘려보내게 될 것입니다. 또한 사실을 국민들에게 알리고자 했던 4대강 사업 저항자들의 12년 간의 분투도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책을 덮으며 4대강 사업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저항한 최병성 목사(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의 말이 뇌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4대강 사업이라는 괴물은 탐욕이 꿈틀거리는 우리의 일상 속에 살고 있다.”(162쪽)



"국립대학 학생들을 공짜로 학교에 다니게 하면 1년에 2조원이 듭니다. 30조원이면 15년을 무료로 가르칠 수 있는 돈이죠. 전체 대학생들의 등록금을 무료로 하면 1년에 7조 원입니다. 최근에 아동 수당을 1인당 월 10만 원씩 주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그 돈이 연간 3조원입니다. 고등학생들에게 무상교육을 실시한다면 1년에 2500억 원이면 됩니다. 4대강에 투입된 30조원을 복지에 사용했다면 국민들이 많은 혜택을 누렸을 겁니다." - P165

"환부를 도려내듯이, 썩은 부역자들의 죗값을 물어야 한다. 고름을 짜내듯이, 영혼을 팔아 호가호위하면 반드시 심판받는다는 상식을 세워야 한다. 적어도 그들이 지난 과오를 부끄러워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단군 이래 최악의 사업이라는 4대강 사업의 아픔으로부터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 - P10

"4대강 사업이라는 괴물은 탐욕이 꿈틀거리는 우리의 일상 속에 살고 있다." - 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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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다운 게 어딨어 - 어느 페미니스트의 12가지 실험
에머 오툴 지음, 박다솜 옮김 / 창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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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 아침 방송에서 20대 여성이 인터뷰를 하다가 두 팔을 들어 풍성한 겨드랑이 털을 보여준다면 시청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풍성한 겨드랑이 털 뿐만 아니라 그 여성의 다리에도 털이 길게 자라 있다면 어떨까요? 이런 여성을 보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여성스럽지 못하다’며 미간을 찌푸릴 것입니다. 겨드랑이와 다리에 난 털을 깔끔하게 면도하는 것이 ‘여성답다’라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2012년에 영국의 한 아침방송 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방송에 출연한 주인공 에머 오툴은 이를 계기로 온갖 미디어와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여성 체모 세계 대표’에 등극했다고 스스로를 칭했습니다. 이 여성은 사회가 규정하는 여성이라는 틀에 따라 여성성이 만들어지는 것에 대한 문제 의식과 그것을 타파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1년 반 동안 제모를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관습적인 사회적 여성성에 반기를
 

 
‘여성 체모 세계 대표’ 에머 오툴이 면도를 하지 않은 행동은 사회가 규정하는 ‘여자다움’과 그녀가 그것에 저항하려 했던 실험들 중 하나였습니다. 에머 오툴은 관습적 여성성 타파를 위한 다양한 실험들과 그에 따른 여러 가지 경험과 생각을 <여자 다운게 어딨어>라는 책에 꾹꾹 눌러 담아냈습니다. 저자의 이야기를 통해 ‘여자다움’이라는 압박이 사회의 성차별적 구조를 어떻게 견고하게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의사가 “공주님입니다!”라고 외친 순간부터 우리의 몸은 우리를 정의하고,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며, 다른 이들이 우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규정한다. 부호화되고 의상이 입혀진 신체는 우리를 남성과 여성으로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해서 사회 내에 인위적인 구분을 만들며 어떤 젠더의 사람들이 정체성을 당당하게 수행하지 못하도록 제한한다. 그러니 우리가 수행하는 여자다움이라는 것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자.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 누가 그로부터 이득을 보는지. 그리고 새로운 각본을 써보자.”(26-27쪽)


가정과 학교에서의 교육, 각종 미디어, 어렸을 때 놀이 등을 통해 배운 여성이라는 사회적 기준은 여성의 선택을 큰 폭으로 제한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여성들은 아이를 양육하기 위해 노동시장에서 스스로 물러나기로 선택한 것일까요? 여성들은 정치권에 들어가지 않기로 선택한 것일까요? 여성들은 가정폭력에서 벗어나지 않기로 선택한 것일까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저자는 역설합니다.

면도를 그만두기로 선택했던 저자도 계절이 바뀌면서 탱크톱이나 치마를 입고 외출을 하면서 느끼는 사람들의 조롱섞인 시선으로 인해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선택의 문제에 대해 “아침 출근 때마다 정상적이고 편안한 기분을 느끼는 것과 자리를 비울 때마다 동료들이 당신의 체모에 대해 뭐라고 수근거릴지에 온통 신경이 곤두서 있는 것, 선택지가 이 둘뿐이라면 그것을 진짜 선택이라 할 수 있을까?”라고 묻습니다.

생물학적 성도 스펙트럼

저자는 생물학적 성별에 따라 자기 정체성이 정해지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성별을 연극에서 주어지는 하나의 역할로 보고 사회적으로 규정된 여성성에 문제를 제기합니다. 저자는 몸에 난 털을 없애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남장도 해보고 삭발도 해 봅니다. 이렇게 달라진 ‘분장’에 따라 자신을 유형화하는 사람들의 반응을 보며 에머 오툴은 생물학적 성별의 차이도 하나의 역할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을 재확인합니다.

또한, 우연히 참가하게 된 단체 누드 촬영에서 남녀 사이의 신체 차이가 그리 확연하지 않다는 것도 깨닫게 됩니다. 이 경험을 통해 저자는 생물학적 성별을 근거로 만들어진 사회적 규범들이 불공평할 수 있고, 개인의 신체적, 지적 능력과 연관성도 없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특히 생물학적 성도 사회적 젠더와 마찬가지로 ‘스펙트럼’이라는 말이 인상에 남습니다.

인터넷 서비스 가입, 병원 입원 등을 위해 개인정보를 적는 란을 보면 성별은 남자와 여자뿐입니다. 생물학적 성별은 당연히 남녀 둘 뿐이라 인식해왔던 제게 ‘간성’이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저자가 다시금 알려주었습니다. 생물학적 성을 남성과 여성으로만 강제하게 된 이유가 성별에 따른 사회적 불평등을 합리화하는 것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도 저자는 알려줍니다.

“남성과 여성의 신체가 다양한 남성적, 여성적 특징을 지니는데다 간성까지 존재하니 성을 스펙트럼으로 봐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가 성을 이분법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그 답이 불평등한 우리 사회 내에서 신체의 차이가 불평등을 합리화하는 데 쓰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간성을 인정하고, 생물학적 성이 이분법이 아닌 스펙트럼임을 인정하고, 젠더가 생물학적으로 정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면 그런 합리화는 힘을 잃는다. 이는 곧 남녀 사이의 사회적 불평등이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위협을 가한다.”(158쪽)


갈등 없는 변화는 없다

에머 오툴은 이분법적 성역할에서 해방된 세상을 위해 위와 같은 신체적 행동에 더해 ‘말에서 성별을 없애려는 실험’도 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도 남성 관련 어휘는 칭찬, 긍정의 의미로, 여성 관련 어휘는 모욕, 부정의 의미로 사용되며 젠더 이분법을 공고히 해왔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성차별적 편견이 녹아 있는 어휘나 표현들의 대안을 찾아보는 시도를 해 보자고 제안합니다.

저자가 제안한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지 않는 대명사 사용, 성별이나 장애에 대한 편견이 섞이지 않은 새로운 욕 발명, 경멸적인 표현들을 칭찬으로 바꾸기 등을 해보면 좋겠다 생각합니다. 언어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과 사회를 만들어간다는 점을 기억하고 우리가 무심코 하는 말들에서 성별에 따른 편견을 없애가는 노력을 해보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노력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님을 저자는 말합니다. “사람들에게 지금까지 학습한 성차별을 버리라고 요구하는 것만으로도 분노를 자아낼 수 있다는 것”을 에머 오툴은 경험했습니다. 아마도 요즘 대한민국의 젊은 남성들이 페미니즘에 대해 분노하는 지점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자도 다르게 행동하는 여성으로 생활하면서 주변 세계의 강렬한 저항에 부딪쳤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차별적 세상은 변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에머 오툴은 “때때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불편하거나 화나게 만들지 않고서 성역할을 벗어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선언합니다. 저자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변화는 필연적으로 갈등을 일으키며, 그것이 올바른 변화일 경우 기존 체제의 저항이 더욱 강렬했던 것을 저도 조직 생활을 통해서 경험한 바 있습니다. 에머 오툴은 대표 ‘프로불편러’라 할 수 있겠습니다.

“페미니스트들에게 메시지를 부드럽게 전달해야 한다고, 보다 상냥하게 굴어서 남자들도 이 운동에 합류시켜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이건 헛소리다. (중략) 나는 어렸을 때부터 오빠와 남동생에게 제 몫의 집안일을 하라고 부탁해왔다. 크리스마스나 가족모임이 있어 집에 올때마다 나는 그들이 얼마나 특권을 누리고 있는지, 여자가 남자의 시중을 드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얼마나 성차별적인지 일깨우려 애썼다. 결국은 어느 날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나는 그 해 크리스마스에 집에 가지 않았다. 가족들은 그제야 문제가 있음을 알아챘다. 그리고 정말 놀랍고 감사하게도, 그들은 변하려 노력하고 있다.”(351-2쪽)


내가 할 수 있는 일들

에어 오툴이 독자에게 제안하는 노력들 중 남성으로서 제가 해볼 만한 시도들을 찾아봤습니다. 문학, 영화, 텔레비전, 공연 등에 내재된 성차별적 요소들을 찾아보고 문제를 제기하기, 무의식적으로 내뱉는 성차별적, 인종주의적, 계급주의적, 장애인 차별적인 언어습관을 발견하고 고치기, ‘남자다움’이라는 관습적 사회적 역할에 도전하는 실험들(치마 입어보기 등)을 고안해 실천해 보기. 그리고 <여자 다운게 어딨어>와 같은 책을 계속 읽으며 페미니즘 배우기.

여성이라면 저자가 했던 체모 기르기, 남장해보기, 삭발 등 여성의 신체에 씌워진 사회적 금기에 도전해보는 시도들을 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미디어에서 규정하는 여성의 아름다움에 순응하지 않는 자기만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방법을 찾아보는 실험들도 해 볼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시도들로 인해 불편해 하는 주위 세계에 아랑곳하지 않기.

"의사가 "공주님입니다!"라고 외친 순간부터 우리의 몸은 우리를 정의하고,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며, 다른 이들이 우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규정한다. 부호화되고 의상이 입혀진 신체는 우리를 남성과 여성으로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해서 사회 내에 인위적인 구분을 만들며 어떤 젠더의 사람들이 정체성을 당당하게 수행하지 못하도록 제한한다. 그러니 우리가 수행하는 여자다움이라는 것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자.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 누가 그로부터 이득을 보는지. 그리고 새로운 각본을 써보자." - P26

"남성과 여성의 신체가 다양한 남성적, 여성적 특징을 지니는데다 간성까지 존재하니 성을 스펙트럼으로 봐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가 성을 이분법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그 답이 불평등한 우리 사회 내에서 신체의 차이가 불평등을 합리화하는 데 쓰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간성을 인정하고, 생물학적 성이 이분법이 아닌 스펙트럼임을 인정하고, 젠더가 생물학적으로 정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면 그런 합리화는 힘을 잃는다. 이는 곧 남녀 사이의 사회적 불평등이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위협을 가한다." - P158

"페미니스트들에게 메시지를 부드럽게 전달해야 한다고, 보다 상냥하게 굴어서 남자들도 이 운동에 합류시켜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이건 헛소리다. (중략) 나는 어렸을 때부터 오빠와 남동생에게 제 몫의 집안일을 하라고 부탁해왔다. 크리스마스나 가족모임이 있어 집에 올때마다 나는 그들이 얼마나 특권을 누리고 있는지, 여자가 남자의 시중을 드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얼마나 성차별적인지 일깨우려 애썼다. 결국은 어느 날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나는 그 해 크리스마스에 집에 가지 않았다. 가족들은 그제야 문제가 있음을 알아챘다. 그리고 정말 놀랍고 감사하게도, 그들은 변하려 노력하고 있다." - P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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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틸다 (반양장) - 개정판 시공주니어 문고 3단계 34
로알드 달 지음, 퀸틴 블레이크 그림, 김난령 옮김 / 시공주니어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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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나 이 게임 하나만 깔면 안돼?”
“아빠 나 유튜브 봐도 돼??”
“아빠 나 밤 늦게까지 놀면 안돼?”
“아빠 나 젤리 좀 먹어도 돼?”


올해 초등학교 4학년인 딸은 아직까지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들을 마음껏 할 수 없습니다. 뭔가를 하려면 엄마아빠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또 어떤 일들은 엄마아빠가 허락을 해주지 않아서 시도조차 못하기도 합니다. 아빠가 내거는 조건에 응하며 끈질기게 협상을 하다가 한숨을 푹 쉬며 불만스런 표정으로 딸은 묻곤 합니다. “그럼 대체 언제부터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건데?”

하하! 언제부터 아이 마음대로 하게 해 줄까요? “너도 아빠 만큼 어른이 되면 그렇게 하렴.”이라고 대답하면 딸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얼굴엔 불만이 한가득입니다. 저 역시 온갖 불만으로 가득했던 어린 시절을 보냈으니 초등학생인 딸의 마음을 얼마간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미 어른이 된 후 아이를 바라보기에 딸의 마음을 온전히 공감하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어른이 되면 한없이 높디 높은 나무에도 쭉쭉 뻗은 가지도 쉽게 닿겠지
어른이 되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맴돌던 어려운 질문도 풀릴거야
어른이 되면 콜라 실컷 마시고 늦게 잘 거야 또 출근도 내맘대로
아침이 오면 눈알 다 빠지도록 밤 새서 만화책만 볼 거야 다 괜찮겠지 어른이니까"

어른이 되면 아무리 버겁고 힘겨운 짐도 버텨낼 수 있겠지 씩씩하게
어른이 되면 밤마다 날 괴롭힌 괴물들도 무찌를 수 있겠지 용감하게
어른이 되면 엄만 재미없는 척 유치한 거라며 참는 것들 다 할 거야 난
아침이 오면 눈부신 햇살 아래 온종일 뒹굴 대며 놀거야 다 괜찮겠지 어른이니까”

-뮤지컬 <마틸다> ‘어른이 되면’ 중에서-


아이의 불만을 생각하다 이전에 봤던 뮤지컬 <마틸다>에서 아이들이 부르던 노래가 떠올랐습니다. 어릴 땐 정말 어른이 되면 뭐든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어른이 되니 뮤지컬 속 아이들의 노래처럼 할 수 있는 것들이 분명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어른이 되었다고 뭐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더군요.생각만큼 씩씩하지도 용감하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시간도 원하는대로 쓸 수 없습니다.

‘어른이 되면 하라’는 아빠의 말을 이해할 수 없는 아이, 아이의 마음을 온전히 공감해주지 못하는 아빠. 아이들이 커갈수록 자녀와의 대화가 점점 더 어려워집니다. 어린 자녀들이 부모 입장을 생각하고 부모와 말할 수는 없으니 아빠인 제가 동심을 회복해 어린 딸의 마음을 헤아려야 하겠습니다. 잃어버린 동심을 회복해 보고자 뮤지컬의 원작인 <마틸다, 로알드 달 지음>를 읽습니다.
 

 

아이에겐 전혀 관심이 없는 못된 부모를 둔 소녀 마틸다. 그런데 마틸다는 세 살 때 스스로 읽기를 터득하고 그 이듬해엔 마을 도서관에 다니며 고전 문학작품들을 모조리 독파할 정도로 똑똑합니다. 사기를 쳐 돈을 벌면서 그것을 자랑하는 아빠에게 다른 사람을 속이는 건 나쁜일이라고 말할 수 있는 용감한 아이이기도 합니다. 마틸다는 자신을 막 대하는 아빠에게 복수하겠다는 마음을 먹는 당찬 아이입니다.

현실에선 아이가 어른을 골탕먹이는 것이 무척 어렵겠지만 이야기 속에선 가능합니다. 마틸다는 아빠 모자에 접착제를 듬뿍 발라놓기도 하고, 친구에게 앵무새를 가져다가 부엌 벽난로에 숨겨놔 유령이 있는 것처럼 해서 아빠 엄마를 골탕먹입니다. 샴푸통에 과산화수소를 넣어서 아빠 머리가 탈색되게 하기도 합니다. 깜짝 놀라 허둥대는 부모를 보며 마틸다는 통쾌해 합니다.

마틸다의 부모만큼 못된 건 아니지만 가끔씩은 어리다는 이유로 아이를 제지하는 아빠를 보면 제 딸도 저를 골탕먹이고 싶을 때가 있겠지요?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다 “아빠는 하면서 나는 왜 못하게 하는데?”라는 말을 들을 땐 참 난처합니다. 곤란해 하는 제 모습을 의기양양하게 쳐다보는 딸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럴때면 제 딸도 마틸다처럼 통쾌하겠죠? 아이앞에 떳떳한 아빠로 살아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딸 교육에도 관심이 없는 부모탓에 마틸다는 또래보다 조금 늦게 학교에 들어갑니다. 그곳에서 마틸다는 자신의 특별한 재능을 알아주는 담임 하니선생님을 만나게 됩니다. 선생님은 마틸다의 총명함을 알아채곤 마틸다의 성장을 위해 교장선생님과 마틸다의 부모님에게 마틸다의 천재성을 알려줍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니선생님의 이야기를 전혀 듣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하니선생님은 마틸다를 자세히 관찰하고 마틸다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관계를 맺어갑니다.

집안의 폭군이 아빠였다면 학교에서의 폭군은 트런치불 교장선생입니다. 교장선생님은 수업 중 트집을 잡아 아이들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해머던지기를 하듯 아이들을 던져버리는 무지막지한 사람입니다. 교장선생님의 폭력에 맞서 선생님을 골탕먹이려는 친구들도 있지만 교장선생님에게 호된 반격을 당하곤 합니다. 친구 중 하나가 교장선생님 물컵에 도마뱀을 넣어 골탕먹이려 할 때 마틸다는 자신에게 생각만으로 물건을 움직이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마틸다는 물컵과 함께 자기에게 일어났던 일을 누군가에게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그와 같은 어마어마한 비밀을 마음 속에 꼭꼭 감추고 있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마틸다가 필요한 것은 이 모든 기이한 사건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지혜롭고 이해심 많은 어른이었다.”(171쪽)


자신의 능력에 스스로도 놀랐던 마틸다는 고민 끝에 자기 재능을 알아봐줬던 하니선생님에게 이 믿을 수 없는 일을 이야기합니다. 마틸다를 매우 많이 생각하며 어떻게 하면 도와줄 수 있을까 고민하던 하니선생님은 마틸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입니다.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그리고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야기임에도 선생님은 가능하면 마틸다를 이해하려는 쪽으로 이야기를 듣습니다.

어떻게 그런 능력이 가능한지는 알 수 없었지만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은 믿을 수 밖에요. 이 일을 통해 마틸다와 하니선생님은 서로를 깊이 신뢰하게 됩니다. 어느 날 하니선생님도 자신의 비극적인 인생사를 마틸다에게 말합니다. 불행한 인생사가 모두 하니선생님의 이모인 트런치불 교장선생님으로 온 것이란 사실을 안 마틸다는 복수를 결심합니다.

마틸다는 하니선생님의 복수를 위해 생각으로 물건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게 되도록 열심히 연습합니다. 물건을 자신의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되자 마틸다는 드디어 하니선생님의 삶을 정상으로 돌려놓기 위해 복수를 감행합니다. 하니선생님의 이모인 트런치불 교장선생님이 그 동안 숨겨왔던 비밀을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폭로함으로써 복수를 완성합니다.

책에 나오는 어른들의 모습을 보며 너무 극단적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이에게 무관심한 마틸다의 아빠와 엄마, 서슴없이 아이들에게 폭력(물리적인 것은 아니지만 언어 등의 억압)을 휘두르는 교장선생님의 모습이 제게도 있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요. 하지만 어른이라는 이유로 아이를 제압하려는 욕구가 제 마음 한구석에 항상 도사리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마틸다의 재능을 알아채고 진심으로 도우려는 마음을 가진 하니선생님처럼 아이들을 바라보고 싶어집니다. 어른의 눈높이에서 아이들을 내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 눈높이에서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어른이 되었어도 억압과 위협에 쫄아 위축되어 있을 때도 많은데 마틸다처럼 쫄지않고 당당히 맞설 수 있는 용기도 갖추고 싶어집니다. 아이들과 함께 마틸다를 읽으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이들로부터 의외의 위로를 얻을 지도 모릅니다.

"마틸다는 물컵과 함께 자기에게 일어났던 일을 누군가에게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그와 같은 어마어마한 비밀을 마음 속에 꼭꼭 감추고 있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마틸다가 필요한 것은 이 모든 기이한 사건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지혜롭고 이해심 많은 어른이었다." - 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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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의 5.18 - 다시 읽는 5.18 교과서 질문의 책 23
김정인 외 지음, 5.18기념재단 기획 / 오월의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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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얼굴을 보고 싶다. 잠든 그들의 눈꺼풀 위로 어른거리고 싶다. 꿈속으로 불쑥 들어가고 싶다. 그 이마, 그 눈꺼풀들을 건너다니며 어른거리고 싶다. 그들이 악몽 속에서 피 흐르는 내 눈을 볼 때까지. 내 목소리를 들을 때까지. 왜 나를 쐈지, 왜 나를 죽였지.” -한강,<소년이 온다> 중에서-

인간이 권력을 얻기 위해선 못할 짓은 없는 걸까요? 죽어야 하는 이유도 모른채 무참히 짓밟혔던 1980년 5월 광주 시민들의 물음은 또 한 번 5월을 맞은 2019년 시민의 하나인 제 머릿속에서도 떠나지 않습니다. 당시 출판된 지 두 해가 지났던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힘겹게 읽으며 ‘5.18 민주화운동’을 제대로 알아야겠다고 마음 먹은 지도 3년이 지났습니다.

그 동안 틈나는대로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한 책, 기사, 영화 등 기록물들을 접하며 5.18을 조금은 더 알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18은 여전히 ‘나’의 이야기는 될 수 없었습니다. 아니 당연히 그럴 것입니다. 이 고통의 역사를 겪지 않은 이들에게 그것이 온전히 내 이야기가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할 수 있는 것은 끊임없이 기억하고 진실과 대면하며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깨어있을 뿐.

역사 왜곡을 좌시할 수 없다! 교과서를 펴자

하지만 1980년 5월 광주 학살의 주범들에 뿌리를 둔 사람들이 여전히 역사의 진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악다구니를 쓰는 모습을 보고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습니다. 5.18의 진실을 외면할 뿐만 아니라 역사를 왜곡하려는 이들이 이 땅에서 마음껏 활개칠 수 있는 이유는 온전한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 독재의 잔당들과 의식들을 몰아낼 수 있을까요?
 

 
올 해엔 각 가정에 5.18 교과서를 한 권씩 마련해 온 가족이 함께 읽으면 좋겠습니다. 5.18기념재단이 기획하고 김정인, 김정한, 은우근, 정문영, 한순미 다섯 사람이 함께 쓴 <너와 나의 5.18>엔 ‘다시 읽는 5.18 교과서’라는 부제가 달려 있습니다. 그 동안 5.18 기록물들이 민주화운동 당시 사실을 확인하고 알리는 역할을 했다면 이 책은 역사적 사실에 더해 5.18이 우리에게 남긴 과제를 종합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게 합니다.

특히 5.18을 둘러싼 왜곡과 거짓말, 망언이 국회에서까지 남발되고 있는 요즘 2019년의 대한민국 시민들이 집중해서 살펴볼 부분은 이 책 5장(5.18, 진실과 거짓말: 그들은 왜 5.18을 왜곡 조작하는가?)과 6장(모두의 5.18로 가는길)입니다. 살았어도 죽은 것과 같은 삶을 살아온 상처입은 사람들에게 또 다른 아픔을 주지 않도록 전 국민적 차원의 노력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5.18

5장에서 은우근 교수는 5.18민주화운동을 왜곡하는 주체, 왜곡조작의 내용, 왜곡의 이유와 영향을 소상히 밝히고 있습니다. 5.18당시 군사반란 세력이 남겨놓은 유산을 먹고 살아가는 현재 극우세력과 그들에게 협력하는 언론들은 여전히 거짓으로 확인된 사안들을 가지고 논란을 만들려고 시도합니다. 이러한 행태를 그냥 두어서는 안되는 이유를 은우근 교수가 인용한 문구들을 보면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거짓말은 처음에 부정되고, 그다음 의심받지만, 되풀이하면 모든 사람이 믿게 된다.”(괴벨스, 나치의 선전장관)

“그것을 행했다라고 나의 기억이 말한다. 그것을 행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나의 자존심이 끝까지 고집을 부린다. 마침내 기억이 굴복하고 만다.”(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을 넘어서>)(196쪽)


극우세력들의 가당치도 않은 왜곡과 날조를 그동안은 무시해 버렸으나 은우근 교수의 지적을 접하니 생각이 달라집니다. 은우근 교수는 국회, 법원 등 국가와 시민사회가 역사적 진실과 법률에 의해 민주화운동으로 평가하는 역사를 왜곡하려는 시도의 의도를 살펴야 한다고 말합니다. 날조의 의도에 그들이 감추려 했고 또 감추려 하는 5.18의 진실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관점과 평가의 다양성을 보장한다 하더라도 반인륜적 행위와 반민주적 범죄를 미화하는 것까지 정당화될 수는 없다…이는 과거 청산이 근본적으로 미진한 탓이기도 하다…무엇보다 교육을 통해 5.18의 의의와 가치를 널리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역사적 진실이 널리 알려지고 학습될 때, 사회 전체가 민주주의를 향해 확실하게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231쪽)


정부와 시민사회는 역사 왜곡 세력들이 우리 역사와 민주주의를 유린하려는 행위들를 면밀히 살피고 처벌해야 할 부분들이 있다면 엄격하게 벌해야 할 것입니다. 이전처럼 화합이라는 명목으로 쉽게 사면하고 용서해서는 지금까지와 같은 일이 반복될 뿐입니다. 은우근 교수가 지적하는 것처럼 왜곡과 날조를 방관하면 우리 사회의 건강을 망가뜨리게 됩니다.

‘나’의 5.18로 나아가는 길

김정한 교수는 6장에서 ‘어떻게 하면 5.18이 우리 모두의 것이 되게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함께 하자고 제안합니다. 우리 사회가 5.18을 ‘달력에서만 기억하는 기념일’로 여기게 되면 5.18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여전히 진행중인 고통을 공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5.18에 죽어간 사람들과 살아남은 사람들에 대한 기억과 기념은 끝나지 않았다는 김정한 교수의 말을 다시 읽게 됩니다.

전 세계인이 공감하게 된 홀로코스트의 사례를 들며 김정한 교수는 우리도 5.18의 피해자는 물론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공감으로 나아가야 함을 역설합니다. 홀로코스트가 인류의 비극이 되기까지는 서적, 영화, 연근 등 문화 매체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이를 통해 대중들은 홀로코스트의 당사자들의 경험을 ‘개인화’하여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희생자들이 ‘보통의 나’와 동일시 된 것입니다.

홀로코스트의 사례처럼 5.18도 소설, 시, 만화,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 등으로 재현되어 왔지만 대중들의 심리적 동일시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는 점을 김정한 교수는 언급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안내를 통해 그동안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관찰했던 소설, 만화, 영화 등을 ‘나’의 눈과 마음으로 바라보는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피해자라면? 혹은 가해자라면?’이라는 질문을 하며 찬찬히 읽었습니다.

“‘나’는 군인이 쏜 총에 하나뿐인 혈육 진우를 잃었다!”
“‘나’는 군인이 쏜 총에 졸지에 엄마를 잃었다!”
“‘나’는 국민을 향해 총을 쏘는 군인에게 이러면 안 된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총을 들었다!”
“‘나’는 살았으나 목숨만 붙어 있을 뿐 제대로 사는 게 아니다!”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으나, 결국 ‘나’는 폭도라 불리고 말았다!”

“‘나’는 아무 죄도 없는 가녀린 소녀를 죽였다!”
“‘나’는 평생 두려움을 떨쳐내지 못할 것이다!”
“‘나’는 평생 속죄와 참회의 삶을 살고자 한다!”
“나도 사실은 용서를 빌고 싶었다!” (본문에서 발췌 248~252쪽)


5.18 희생자의 외침, 그리고 가해자들의 고백이 이전과는 확실히 다르게 다가옵니다. 이 ‘다시 읽는 5.18 교과서’를 통해 이전에 읽었던 5.18관련 기록물들을 찾아보며 다시 한번 ‘나’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5.18국립묘지를 참배하러 간 학생들이 비석에 쓰인 이름과 사연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추모하는 <오월상생>이라는 애니메이션처럼 “죽어간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마음으로” 돌아보고 있습니다.

“5.18이 국가 주도의 기념일과 교과서를 통해 배우는 과거로만 기억되는 한, 5.18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평범한 일상을 누리고자 하는 이들의 꿈은 실현되기 어렵다. 우리 모두가 5.18을 1980년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에도 일어날 수 있는, 그렇지만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비극으로 받아들이고 ‘나’의 감성으로 함께 슬퍼하고 분노하고 공감할 수 있을 때, 5.18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이들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동시에 모두의 5.18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259쪽)


"거짓말은 처음에 부정되고, 그다음 의심받지만, 되풀이하면 모든 사람이 믿게 된다."(괴벨스, 나치의 선전장관)

"그것을 행했다라고 나의 기억이 말한다. 그것을 행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나의 자존심이 끝까지 고집을 부린다. 마침내 기억이 굴복하고 만다."(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을 넘어서>)(196쪽) - P196

"역사적 사실에 대한 관점과 평가의 다양성을 보장한다 하더라도 반인륜적 행위와 반민주적 범죄를 미화하는 것까지 정당화될 수는 없다…이는 과거 청산이 근본적으로 미진한 탓이기도 하다…무엇보다 교육을 통해 5.18의 의의와 가치를 널리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역사적 진실이 널리 알려지고 학습될 때, 사회 전체가 민주주의를 향해 확실하게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231쪽) - P231

"‘나’는 군인이 쏜 총에 하나뿐인 혈육 진우를 잃었다!"
"‘나’는 군인이 쏜 총에 졸지에 엄마를 잃었다!"
"‘나’는 국민을 향해 총을 쏘는 군인에게 이러면 안 된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총을 들었다!"
"‘나’는 살았으나 목숨만 붙어 있을 뿐 제대로 사는 게 아니다!"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으나, 결국 ‘나’는 폭도라 불리고 말았다!"

"‘나’는 아무 죄도 없는 가녀린 소녀를 죽였다!"
"‘나’는 평생 두려움을 떨쳐내지 못할 것이다!"
"‘나’는 평생 속죄와 참회의 삶을 살고자 한다!"
"나도 사실은 용서를 빌고 싶었다!" (본문에서 발췌 248~252쪽)

"5.18이 국가 주도의 기념일과 교과서를 통해 배우는 과거로만 기억되는 한, 5.18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평범한 일상을 누리고자 하는 이들의 꿈은 실현되기 어렵다. 우리 모두가 5.18을 1980년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에도 일어날 수 있는, 그렇지만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비극으로 받아들이고 ‘나’의 감성으로 함께 슬퍼하고 분노하고 공감할 수 있을 때, 5.18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이들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동시에 모두의 5.18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259쪽) - P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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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아이는 정말 핑크를 좋아할까
호리코시 히데미 지음, 김지윤 옮김 / 나눔의집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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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아이를 둔 부모님들은 올해도 어김없이 자녀들에게 어린이날 선물을 해주셨겠죠? 아마도 자녀의 성별에 맞게(?) 선물을 준비하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랜만에 마트에 들렀다가 어린이 장난감 코너를 지나가는데 장난감을 성별에 따라 구별해 놓은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여자 아이들 장난감은 대체로 핑크색계열이고, 남자 아이들 장난감은 파란색계열입니다.
 
장난감 코너를 이렇게 구분해 놓은 건 여자 아이들은 핑크색을 좋아하고 남자 아이들은 파란색을 좋아하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성별에 따라 색상을 구분해 놨기 때문에 아이들이 선호하는 색상이 만들어지는 걸까요? 여자 아이 둘을 키우면서 딱히 색상에 대한 선호를 두지 않으려고 했음에도 아이들이 핑크색 장난감들을 좋아했던 것을 보면 유아기 때 선호하게 되는 색상은 타고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일본인 작가 호리코시 히데미도 어린 딸이 핑크색에 빠져드는 것을 보면서 의문을 갖기 시작해 <여자아이는 정말 핑크를 좋아할까>라는 책을 썼습니다. 엄마가 블랙 마니아여도, 칙칙한 색 옷만 입어도 여자아이들은 유아기 때 대체로 핑크색에 빠져든다는 점을 저자는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았습니다. 딸 둘을 둔 아빠인 제게도 흥미로운 주제이고 의문이었습니다.
 
“국경을 초월해서 이렇게 많은 여자아이들이 핑크(혹은 프린세스, 반짝반짝거리는 것, 요정 등)를 좋아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사회적인 영향일까? 아니면 여자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핑크를 좋아하도록 타고나는 것일까? 설령 이것이 타고난 성질이라 할지라도 왠지 찜찜한 기분이 가시지 않는다. 애초에 나는 핑크색에 왜 이런 찜찜함을 느끼는 것일까? 나는 과연 핑크색에서 또 다른 무엇을 느끼고 있는 것일까?”(12쪽)

아이가 고정된 성역할에 갇히지 않기를

부모로서 아이들이 가능하면 특정한 틀에 갇히지 않고 성장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아이가 어느 한가지를 너무 좋아하게 되면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특히나 여자아이든 남자아이든 어려서부터 성별에 따른 성역할에 고정관념을 가지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다양한 경험을 하지 못하게 되고 더 나아가 성인이 되어서까지 그 틀에 갇혀 살아가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저자 역시 자신의 딸이 미용, 소꿉놀이, 요리 등 기존의 여성 역할을 답습한 장난감들에 영향을 받아 고정된 성역할에 갇히게 되지 않을까 걱정합니다. 이렇게 시작된 고민과 의문을 이 책에 차근차근 풀어냈습니다. 핑크가 어쩌다가 여자의 색이 되었는지 역사를 살피고, 기존 여아용 장난감과는 다른 접근을 하면서 핑크에 저항하는 운동을 소개합니다. 더 나아가 여성의 사회진출, 특히 이공계 분야로의 진출문제까지 핑크와 연관지어 이야기합니다.

책의 마지막 장에선 핑크색과 여자아이의 관계를 넘어 핑크와 남자아이에 대한 문제를 다루는데, 이 부분을 통해 저도 ‘남자다움’이라는 기존의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 있지 못하다는 점을 다시 환기할 수 있었습니다. 생물학적으로 나뉜 남성, 여성이라는 구분이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의 범위를 생각보다 크게 제한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자신이 이같은 틀 안에 있다는 사실을 지각하고 남성이든 여성이든 자신이 ‘주체’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재확인합니다.

핑크는 여성의 색? 역사는 짧다

18세기 프랑스 로코코 시대엔 여성 중심 문화가 활기를 띠었는데 이 때 귀부인들은 핑크색 옷가지, 가구, 식기 등을 선호했다고 합니다. 장미를 사랑한 마리 앙투아네트, ‘퐁파두르 핑크’라는 사기그릇 색에 이름이 사용된 퐁파두르 후작부인 등이 유명한 인물들입니다. 기원은 기껏해야 200여년 정도이고 이런 경향이 심화된 것은 대체로 2차 세계대전 이후였다고 하니 ‘핑크=여성의 색’이란 편견은 정말 얼마 되지 않은 것입니다.

게다가 지금은 여성적인 것으로 대표되는 보석, 스타킹, 하이힐, 리본과 레이스 등을 19세기 이전 서양에선 남성들이 권력 과시용으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 다윈의 진화론과 민족학이 계기가 되어 화려한 장식은 열등한/미개한 혹은 하류계층 남성들이 하는 것이란 인식이 확산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어른 남성이 예쁜색이나 장식을 좋아하는 것을 ‘계집애 같은’ 행위로 여기게 되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신선했던 건 책에 실린 30개월 무렵의 프랭클린 루즈벨트 사진이었습니다. 1884년 사진인데 레이스 달린 치마, 끈 달린 구두, 긴 머리를 보면 딱 여자아이입니다. 당시엔 특별히 남녀 구분 없이 아이들에게 옷을 입혔다고 합니다. 하지만 20세기 초반 아동심리학이 등장하면서 남자 아이들의 자위, 동성애에 대한 확인되지 않은 가설 등으로 인해 남아들 옷이 ‘남자다워’지게 되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2차 대전이 끝난 후 1950년대 미국에서 핑크는 여성스러움의 상징이 됩니다. 핑크와 여성이 밀접하게 연결된 역사는 결코 길지 않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됩니다. 여자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부터 핑크색 용품들로 둘러싸이게 된 이유를 저자는 아래와 같이 추정하는데 그럴법 합니다.
 
“전쟁에서 해방된 여성들은 무엇보다도 남성의 사랑을 받는 것이 풍요로움과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었을 것이다. 그러려면 자신이 전쟁에 지친 남성들을 위로해줄 수 있는 가정적인 존재임을 어필해야 한다. 그래서 핑크색 옷을 입고 남편에게 헌신하는 순종적인 모습, 우아하고 섬세한 여성스러움, 가정을 행복하게 만드는 적절한 백치미를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당시에 핑크가 여성성과 강하게 연결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일찍이 여성들의 ‘입신 출세 의지’가 있었을 것이다.”(42쪽)

아들이 핑크를 좋아하고 귀여움을 추구한다면?

책에서 다룬 여자아이와 핑크색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지만 보다 관심이 갔던 부분은 남자아이들이 받을 수 있는 사회적 압박이었습니다. 미국에서 여아용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브로니’들은 또래 아이들에게 조롱과 무시를 당한다고 합니다. 제 어린시절을 돌아봐도 그랬던 것 같고, 책을 읽으면서 남자아이가 핑크인형을 가지고 노는 모습을 떠올려보니 뭔가 적절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제가 여성스러움보다는 남성스러움에서 벗어나는 이미지에 보다 부정적으로 반응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게도 기존의 성별 이미지가 고착되어 있는 것이겠죠. 남자아이에게 남자다움을 강조하는 미국의 경우 귀여움을 추구하는 남자아이들이 심하게 차별을 당한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여자 아이들이 좋아하는 취미를 가진 남자아이들이 존중받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저자는 여자아이든 남자아이든 취향에 대한 억압을 받게 되는 사회를 ‘숨막히는 사회’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억압을 줄여나가는 방법으로 남자아이에 대한 억압에 초점을 맞춰보면 어떨까 제안하는데 일리가 있습니다. 이는 여성이 사회로 진출하는 만큼 남성이 가정에 진출해야 한다는 주장과도 상통하는 것 같습니다.
 
“남자아이 자신이 ‘가와이’를 버리는 일 없이 그 영역에서 감성을 다듬어 간다면, 성장한 뒤에 여성에게 ‘순진무구한 객체로 있으라’고 강요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남성 부재의 육아 현장에서는 남성성을 텔레비전 방송이나 소년 만화, 게임 등에서밖에 배울 수가 없다. 대중문화는 보다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도록 표현이 고정관념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점점 더 치우치기 마련이어서 배틀이나 경쟁을 좋아하지 않는 남자아이가 롤모델로 삼을만한 현실적인 남성상을 기르기 어렵게 만든다.”(238쪽)

성별에 따른 고정관념을 가진 부모들로 인해 자녀들이 억압을 받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남자아이가 핑크색이나 귀여운 것을 좋아할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저자는 콜린 스톡스 씨의 TED 토크를 인용하면서 남자아이를 겨냥한 영화에서 배우는 남성성은 주로 폭력으로 악인을 쓰러트리는 영웅이 주류라는 것을 언급합니다. 콜린 스톡스 씨가 말한 것처럼 아들들에게 새로운 롤모델이 시급해 보입니다

"국경을 초월해서 이렇게 많은 여자아이들이 핑크(혹은 프린세스, 반짝반짝거리는 것, 요정 등)를 좋아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사회적인 영향일까? 아니면 여자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핑크를 좋아하도록 타고나는 것일까? 설령 이것이 타고난 성질이라 할지라도 왠지 찜찜한 기분이 가시지 않는다. 애초에 나는 핑크색에 왜 이런 찜찜함을 느끼는 것일까? 나는 과연 핑크색에서 또 다른 무엇을 느끼고 있는 것일까?" - P12

"전쟁에서 해방된 여성들은 무엇보다도 남성의 사랑을 받는 것이 풍요로움과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었을 것이다. 그러려면 자신이 전쟁에 지친 남성들을 위로해줄 수 있는 가정적인 존재임을 어필해야 한다. 그래서 핑크색 옷을 입고 남편에게 헌신하는 순종적인 모습, 우아하고 섬세한 여성스러움, 가정을 행복하게 만드는 적절한 백치미를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당시에 핑크가 여성성과 강하게 연결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일찍이 여성들의 ‘입신 출세 의지’가 있었을 것이다." - P42

"남자아이 자신이 ‘가와이’를 버리는 일 없이 그 영역에서 감성을 다듬어 간다면, 성장한 뒤에 여성에게 ‘순진무구한 객체로 있으라’고 강요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남성 부재의 육아 현장에서는 남성성을 텔레비전 방송이나 소년 만화, 게임 등에서밖에 배울 수가 없다. 대중문화는 보다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도록 표현이 고정관념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점점 더 치우치기 마련이어서 배틀이나 경쟁을 좋아하지 않는 남자아이가 롤모델로 삼을만한 현실적인 남성상을 기르기 어렵게 만든다." - P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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