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혼란 - 지성 세계를 향한 열망, 제어되지 않는 사랑의 감정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서정일 옮김 / 녹색광선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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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깊고 넓은 사랑의 세계

그렇게 길지 않은 분량의 소설이지만 이야기가 주는 울림은 굵고 묵직하다.

자아를 찾아가는 소년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과의 사랑 이야기가 씁쓸하게 느껴지는 것은 단지 그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었음에 있지 않다.

여러차례 교수가 소년에게 어떠한 감정을 느꼈는지 유추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더불어 그것을 자신을 향한 남자의 경멸과 분노라고 오해하는 소년의 생각이 너무 순수해서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소년의 입장에서보다는 교수의 입장에서 사랑의 의미를 생각하게 됐다. 소년은 이 소설의 제목처럼 완전한 감정의 혼란 속에서 자신을 감싸는 정열적인 사랑의 불꽃을 전혀 보지 못한다. 그 불꽃을 점화시킨 주체는 그것이 자신은 물론 소년을 불태워버릴까봐 계속해서 꺼뜨리려고 하지만 순수한 사랑의 불꽃은 어느새 스스로 타오르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교수가 엄청난 고통을 겪었음을 예상할 수 있지만 소설 말미에서 소년을 향해 고백하는 그의 진심을 통해 그것이 남자의 삶을 어떻게 다시 재정립했는지 비통할 정도로 느꼈다. 그가 살아온 인생과 그 속에서 느꼈을 수많은 혼란들이 그를 노쇠하게 만들고 파괴했을 동안 그가 그것을 어떻게 버틸 수 있었는지 안타깝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 자아를 부끄럽게 만드는 것이라면 그것만큼 큰 고통이 있을까?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을 사랑하고 사랑받고 공감받지 못한다는 것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이다.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자신의 열정을 혼탁한 정욕으로 덮어야하는 수치심이 계속해서 자신을 잡아먹을 때 또다시 자기혐오로 번지는 그 악순환을 그는 수십년간 견디고 있었다.

그런 인생에서 소년의 순수한 열정과 헌신이 그에게 얼마나 큰 의미였을지, 단순히 어떤 의미를 넘어서서 그를 신이 자신에게 보내준 마지막 에로스의 불꽃이라고 느끼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감정을 그토록 견뎌낸 남자가 대단하기까지 하다. 자신의 모든 것을 줄 수 있는 사랑을 만났음에도 지금까지의 자신의 삶을 통해 그것이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빛나게 만드는 것이 아닌, 거부당할 수 밖에 없는 자신을 다시 발견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는 섣불리 자신을 표현할 수 없었다.

그가 온 힘을 다해 자신의 감정을 제어해도 사랑의 기운은 감춰질 수 없었지만 소년은 그것을 오히려 반대로 해석해버렸다. 스승을 향한 끝없는 존경심에서 비롯된 사랑을 열렬히 표현해도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경멸과 비난이 대부분이었다. 소년은 자신의 사랑을 몰라주는 스승에게 분노하고 심지어 자기파괴적인 행동까지 일삼지만 애초에 사랑의 속성이 다르기 때문에 소년의 사랑은 보답받기 힘든 것이었다.

소년의 사랑이 과연 교수의 사랑과 동일한 성질의 것이었을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자신의 지난 날들을 돌아봐도 스승을 사랑한 것만큼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 사랑은 누군가를 갖고싶은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그 사람의 존재 자체를 사랑하는 더 높은 차원의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정신적으로 서로 연결됐다는 특별한 느낌을 서로 공유하는 것이 이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했던 방식이었다. 더 높은 정신적 고양의 세계를 함께 탐험하며 서로만이 이해할 수 있는 인생을 함께 만들어나갈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본능적인 사랑의 방향성을 바꿀 수는 없기에, 사랑과 욕망이 서로 충돌할수록 피폐해질 수 있기에, 이미 한 사람은 욕망으로 인해 자기혐오를 끊임없이 겪어야했기에 두 사람의 결말은 정해진 것이나 다름 없었다.

스승은 소년에게 넓디넓은 인생을 항해할 수 있도록 길잡이가 돼주었다. 소년은 스승에게 마지막 사랑의 불꽃으로서 영원히 그의 기억 속에 남을 에로스가 되었다. 서로에게 다시 없을 사랑을 주고 받았던 존재로서 서로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게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사랑의 완성이 아닐까 싶다. 씁쓸함보다는 영원함으로 기억돼야 할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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