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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아스 ㅣ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5년 6월
평점 :
인간은 운명을 정녕 벗어날 수 없는가
왜 이 고전이 그 오랜 역사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내 생각으로는 인간의 삶과 운명 간의 관계를 명료하게 묘사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운명을 바꿀 수 있는가. 인간이 운명을 통제할 수 있는가. 아마 인간이 존재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그 질문들은 인간의 그림자 속에서 인간과 함께 공존해왔을 것이다. 이 고전에서 말하는 운명은 절대적이며 모든 인간이 복종할 수 밖에 없는 우주적 흐름이다. 단지 그리스의 신들을 빌려 인간은 운명을 바꿀 수 없고 운명이 인간의 삶을 수놓는 절대신이라는 것을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운명 그 자체가 그리스의 신들과 동의어는 아니다. 그렇다고 믿기에는 신들이 굉장히 감정적으로 인간의 대소사를 처리하고 그것이 옳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들의 결정과 생각들이 신들의 것보다 더 현명하고 성숙하다고 느꼈던 부분이 많이 있었다. 트로이아의 파리스가 자신들을 최고의 여신이라고 고르지 않아서 그리스군을 지원한 헤라와 아테나만 봐도 그렇다. 그들의 대사 하나하나에서 트로이아를 멸망시키고 싶어하는 질투와 분노, 미움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또한 제우스는 어떠한가. 전쟁에서 위기에 빠진 그리스군을 돕기 위해 헤라가 쓴 묘책에 걸려들어 이성을 팽개치고 욕망을 그대로 실현한다. 한마디로 신들의 행동과 말들이 모두 인간의 것과 너무 비슷하다.
그들은 신이기 때문에 인간을 다스릴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지만 정작 자기들이 다스리는 인간보다 성숙한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등장인물들이 끊임없이 외쳐대는 신들을 향한 숭배가 그들의 한없는 염원과는 동떨어지게 들렸다. 본질은 서로 같은데 범접할 수 없는 위대한 힘을 가졌기 때문에 신의 결정에 굴복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어쩐지 불합리하다고 느꼈다. 여기서의 신은 힘과 지혜가 동일선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게추가 기울어버린, 균형이 깨진 채 힘을 과시하는 인간적인 모습이었다.
이것은 내가 생각하는 신의 절대성이 선한 것과 옳은 것을 지향할 것이라는 일종의 편견에서 유발된 것인지도 모른다. 수많은 매체에서 다뤄왔던 신의 모습은 공통적인 이미지를 구축한다. 인간의 삶과 죽음을 관장하며 절대선이라는 느낌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처럼 화를 내고 질투하고 기뻐하는 그리스 신들의 모습이 내가 느낀 절대적인 신이 아니라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던 것이다.
전쟁의 흐름과 아킬레우스, 헥토르의 운명이 신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것을 느끼며 뭔지 모를 허탈함을 느꼈다. 이야기의 주제가 너무나 명확한데 그것을 부정하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어떻게 삶을 살든 자신이 믿는 바를 밀고 나가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매번 그럴 수는 없다. 좋은 일과 나쁜 일, 행복과 불행, 기쁨과 슬픔 등 그 모든 것이 이미 정해진 흐름이라면 인간은 어떻게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 좋은 것일까? 애초에 운명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것일까?
이 주제를 매번 생각할 때마다 답이 바뀌지만 적어도 지금은 운명이라는 것에 너무 매몰된 채 살아가고 싶지는 않다. 흘러가는대로 살되, 모든 일에 양면성이 있다는 것을 항상 느끼면서 겸손하게 사는 것이 지금 내가 지향하는 삶의 방향이다. 한 때는 운명이란 것은 없다고도 생각했었고 어떤 시기에는 내가 겪은 불행이 필연적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운명이 있든 없든 나는 결국 지금의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고 내게 불어오는 그 어떤 미지의 힘에도 꿋꿋이 버티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나는 그것이 진정한 영웅적인 면모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아킬레우스보다 헥토르를 좀 더 응원했는데 헥토르가 그러한 맥락에서 좀 더 유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헥토르는 아주 많은 것을 짊어졌다. 신들의 자존심 싸움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결국 동생 파리스의 욕심으로 트로이아는 거대한 전쟁에 휘말리게 된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그는 목숨을 걸고 적들을 죽인다. 물론 신들의 체스게임으로 그에게 유리할 때도 불리할 때도 있긴 했지만 그는 용감하게 전장을 누빈다. 아킬레우스가 무서워 도망갔을 때도 그와 싸울 사람은 자신밖에 없기에 다시 돌아가고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특히 그는 죽을 때 영웅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신이 자신을 저버렸음에도 사후에 자신의 죽음을 슬퍼할 가족과 트로이아 사람들, 국가의 운명을 걱정한다. 그는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 아님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해결사의 위치에 있었고, 죽음의 고독함을 최전방에서 이겨내고자 고군분투했다.
아킬레우스는 이와는 반대다. 그는 아가멤논과 전리품을 두고 크게 다투어 전쟁에 참가하지 않고 자신의 동료들이 죽어나가는 상황에서도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그런 그가 각성했을 때는 자신의 가장 절친한 친구가 죽었을 때였다. 그는 미친듯이 적들을 베어 죽이며 자신의 슬픔을 발산했고, 헥토르의 시신을 마차에 묶어 끌고 다녔다. 아무리 전쟁 중에서 사랑하는 친구를 잃었다지만 비인간적인 행동이고 신들도 잔인한 행동이라 말한다. 그는 헥토르와는 달리 자신의 감정과 기준으로 이 전쟁에 참가했다. 이미 자신의 운명이 단명할 것임을 아는 상태라고 해도 그는 그것만을 등에 짊어진 채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만 챙긴다. 상대적으로 헥토르에 비해 죽음과 운명에 있어서 여유있다고 생각되는 부분이다.
헥토르는 마지막에 신들의 뜻을 받아들이며 운명을 맞이한다. 그가 체념하기보다 담담히 운명을 마주했듯이 나도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운명을 바꿀 수 있을지는 확언하기 어렵다. 그러나 운명이 나를 주시하고 있다면 나 또한 피하지 않고 맞이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