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양귀자 지음 / 쓰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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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위하여

삼수생인 우연이 자신의 가족과 나성여관에서 투숙하는 인물들과 함께 살아가고 사람들의 지난날 삶을 돌아보면서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의 아픔을 가감없이 드러내고 위로한다.

길고 긴 소설이지만 주제는 일목요연하다. 고통으로 얼룩진 삶이었더라도 희망을 버리지 말고 나아가자는 것. 제대로 된 선택을 하기 위해 내 삶의 무게를 제대로 이해하자는 것. 책을 다 읽은 후 작가가 소리높여 말하고자 하는 것들이 내 가슴을 제대로 관통해서 지나가버리는 기분이었다.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이루는 많은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을 따스하게 위로하는 책이라서 읽으면서도 눈물이 계속 나왔다.

우연은 삼수생이고 그마저도 대학진학을 포기해버린, 나성여관의 두 번째 아들이다. 나성여관은 매우 허름하고 다 쓰러져가는 닳디 닳은 여인숙에 불과하지만, 우연을 비롯한 가족에게는 소중한 삶의 터전이다.
그 시대 흔히 일컬어졌던 가장의 책임을 모두 벗어 던지고 여관 아랫목을 차지해 하루종일 빈둥대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 대신 실질적인 가장의 무게를 짊어지고 생계를 꾸려서 호랑이가 돼버린 어머니, 현실적인 것에 안주하지 않고 세상의 부조리함과 맞서 싸우는 것을 택한 운동권 첫째 형, 보이는 색깔과 비싼 것들에만 정신이 팔려버린 누나가 우연의 가족이다.

평생을 빈둥대는 아버지와 데모에 정신이 팔려 밖으로만 내도는 형이 못마땅한 어머니의 구박과 외침은 나성여관을 항상 시끄러운 곳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렇지 않아도 술취한 사람들과 진상손님이 많은 여관장사에서 가족들마저 눈을 마주치면 으르렁대기 일쑤이니 나성여관은 항상 부산스러운 곳이었다. 게다가 대학을 포기하고 운동권의 길로 들어선 형을 어머니는 사람 취급도 하지 않으니, 그 속에서 우연이 기댈 곳은 일심동체인 것처럼 마음이 잘 통하는 누나뿐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누나는 매우 위험한 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백화점 여성복 매장에서 일하면서 비싼 옷들을 몰래 착용하고 놀러나가는 것이 그 시작이었다. 어쩌면 수련이 그렇게 타락하기까지 그녀의 자잘한 선택들은 그녀를 그런 운명으로 이끌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20대 초반의 나이에 40대 남자의 스폰을 받는 것을 선택한 것은 한 때의 철없는 행동으로 치부하기엔 너무 선을 넘어버리는 것이었다.

수련은 화려한 색깔에만 정신이 팔려 진정 자신이 어떤 것을 포기했는지를 잊어버렸다. 애써 외면한 것도 아니고 별 것 아닌 것으로 치부해버렸다. 하지만 돌이키면 후회되는 것들의 시작은 왜 그렇게 사소한 것일까. 우연이 아무리 수련을 말리려고 했어도 수련은 다시 그런 선택을 할 것이다. 넘치는 돈의 맛을 알아버린 수련은 술집에서 일하면서 마약에 손을 대기까지에 이른다. 우연은 속이 타들어가는 마음으로 누나를 집에 데려오려고 하지만 수련은 미련하게도 그것이 허황된 것임을 알지 못한다. 수련은 초라했지만 따뜻했던 삶을 버리고, 화려하지만 텅 빈 삶을 살아가기로 한다.

이렇게 누나의 일로 혼란스러운 와중에 우연은 나성여관에 머무르는 사람들로 인해 더욱 혼란에 빠진다. 정녕 20살이 겪기에는 너무나 벅찬 일들이 계속해서 터진다.

찌르레기 아저씨는 공사판에서 일하는 인부이다. 우연은 아저씨의 진솔한 말과 행동으로 점차 아저씨와 친하게 지내게 되고, 어느새 아저씨를 가족 이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찌르레기 아저씨는 강하면서도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요즘에서야 인권이란 것이 화두가 되어 모두가 삶을 제대로 살아갈 권리에 대해서 목소리를 높이지만, 당장 20년 전까지만 해도 인권은 권력자들에게만 유리한 것이었다. 아저씨는 노동자로써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는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투쟁을 하기도 하는 사람이다. 부당한 것을 올바르게 고치자는 연대감이 피어나는 시대에, 그것을 앞장서서 주도했던 멋진 인물이었다.

그렇지만 우연은 아저씨의 일기를 읽고 그의 과거에 숨겨진 고통을 정면으로 보게 된다. 태어날때부터 쉽지 않았던 그의 성장과정과, 그 속에서도 올바르게 살려고 애썼던 그의 처절한 몸부림이 드러난다.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지만 돈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어 그녀의 손을 점차 놓아버리게 된다. 어떻게든 다시 가정을 회복하고 싶어 3년 동안 중동에서 일했던 것은 최악의 선택이었다. 그 과정에서 그의 아내인 미혜는 차마 글로 적기 힘든 삶을 살아가다 죽고 만다.
그가 왜 복수의 화신이 되었는지는 그의 고백을 통해 점차 밝혀지지만 한편으로는 왜 그에게는 이렇게 비극적인 일들만이 일어나는지 정말 답답하고 안타까웠다. 나는 절대 찌르레기 아저씨가 가상의 이물이라고만 생각하지 않았다. 그의 진솔한 고백을 담은 일기를 통해 한 사람에게 그렇게나 많은 고통과 악재가 겹칠 수 있다는 것을, 지금의 내 삶에 빗대서 오만하게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다 섬뜩한 사실을 상기했다. 지금의 현실도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도저히 올라갈 수 없는 투명계단을 밝고 올라가는 것처럼 모든 희망이 사라지고 오직 고통만이 존재하는 삶. 그런 삶은 지금까지 항상 있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었다. 순간의 행복마저 느낄 수 없는 무감각의 삶. 거대한 고통의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오는 삶.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찌르레기 아저씨의 고백이 정말 비통하게 다가왔다. 잘못된 시대의 악재가 만들어낸 괴물들이 어떻게 다른 사람의 삶을 짓밟아 왔는지, 그 울음이 너무도 생생하여 나도 우연처럼 머리가 핑핑 돌았다.

나성여관의 특성 상 숙박비를 겨우 낼 수 있는 사람들이 숙박하는 경우가 많다. 그 중에 하나가 10호실 노인이었다. 어느 날 숙박비를 꼬박꼬박 보내오던 노인의 딸에게서 소식이 없자 우연은 우연히 노인과 함께 딸을 찾아가게 된다. 딸을 만나는 순간, 우연은 삶의 냉정함에 몸서리를 친다. 어둡고 곳곳에 곰팡이가 피어나는 집에서 정신에 장애가 있는 아들까지, 그녀가 부양해야 할 사람은 노인을 포함하여 둘이나 있었다.

노인의 딸 또한 어쩔 수 없는 삶의 희생양이었다. 변변치 못한 아버지가 부모인 까닭에 평생 아버지를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으로 몸과 정신이 모두 망가졌을 것이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칼자국이, 몸에는 담배로 지진 자국이 있었다. 그녀의 주변을 둘러싼 남자들은 모두 그녀에게 고통만을 안겨주었다. 북에서 내려와 평생 젊은 시절의 부유함만을 그리워하며 그녀에게 자신의 부양에 대한 희생만을 강요하고, 결국 다른 어떠한 삶도 선택하지 못하게 한 노인. 결정적으로 몸과 마음을 모두 부셔버린, 그녀에게 지울 수 없는 고통을 남긴 남자.

그녀가 왜 그런 삶을 살게 되었는지 굳이 따져보자면 노인의 무책임한 선택 때문이었다. 북에 아내와 아이들을 두고 왔으면서도 다시 다른 사람과 정을 통하여 아이를 낳았다. 그렇다면 책임을 져야 한다. 이것은 가난한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과는 또 다른 문제다. 책임감을 갖고, 자신이 선택한 인생을 받아들이고, 그 아이를 키우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노인의 딸은 나성여관의 숙박비를 대고, 자신의 아이를 키우기 위해 그렇게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었다. 자신의 목숨을 끊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이 왜 태어났는지 원망만 하며 살 수 있는 상황에서, 자신만을 바라보는 두 사람을 부양하기 위해 살았다.

그런데 노인은 도대체 뭘 한 것일까? 노인의 지난날에 대한 구체적인 행적은 노인의 입을 통해서만 나온다. 하지만 그것에서도 노인이 무책임하게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기르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너무나 명백했다. 나중에 딸이 교통사고로 죽었을 때도, 보상금을 타내 자신이 이북으로만 갈 생각을 하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손자인 민구를 위해 써야하지 않겠냐는 우연의 말을 듣고서야 찔끔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노인이 자신의 고향인 이북에 가기 위해 강원도로 갔다가 죽었다고 했을 때도 전혀 안타깝지 않았다. 노인의 딸이 불쌍할 뿐이었다. 평생 그런 아버지를 모시다 교통사고로 운명을 다하는, 그런 삶에 안타까움을 느끼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선택의 결과는 나몰라라 하고, 그저 한 순간의 쾌락과 욕망에만 몸을 맡기고,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인간들이 하는 최대의 잘못은, 그런 자신의 짊을 다른 삶에게 떠넘긴다는 것이다.

민구는 비록 정신에 문제가 있는 아이였지만, 종국에는 우연에게 따스한 위로가 될 수 있는 마지막 한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온기를 나누어주는 것에 있어서 지능은 절대 중요한 조건이 아니다. 진심만 있으면 된다. 우연과 민구의 관계는 그것을 여실히 보여줬다. 나중에 햇빛마을로 보내진 민구를 우연이 찾아가는 대목을 읽고서는 정말 펑펑 울었다. 우연이 돌아가려 하자 계속 붙잡던 민구가, 자신이 떠나면 남은 친구들이 슬퍼할 것이라는 선생님의 말에 우연을 보내주는 모습은 정말 슬펐다. 얼마나 우연을 따라 가고 싶었을까. 하지만 남은 친구들을 위해서 벌써 자신의 소원을 단념하는 법을 배운 민구가 애통했다.

찌르레기 아저씨의 복수는 우연의 형인 도연이 대신한다. 우연의 형이 나성여관에 잠시 데리고 왔던 ‘미라’는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이 한창 거세던 시절, 민주화 운동을 하다 고문기술자에게 고문을 당한 도연의 선배였다. 그리고 그 고문기술자는 찌르레기 아저씨의 삶을 파탄 낸 장본인이기도 했다. 결국 그 괴물을 찔렀던 것이 찌르레기 아저씨가 아니라는 것과, 도연이 그랬다는 것을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먹먹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누가 찔렀든, 두 사람 모두 긴 시간을 이어온 악행의 희생자였기 때문이다.

사람을 죽이는 것이 그 사람의 악행에 대한 벌로 정당화될 수 있을까? 사람들을 탄압했던 독재의 시절을 끝낼 수 있었던 것은, 정당한 삶의 권리를 찾고자 노력했던 또 다른 사람들 덕분이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로 인해, 정당한 법이 생겨났다. 그렇다면 독재의 그늘 하에서 권력자로 당당히 먹고 살았던 사람들은 그러한 법으로 처단하면 된다.
하지만 문제는 법은 아직도 권력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점이다. 정당한 외침을 했다는 이유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고문하고 죽인 괴물들이 아직도 살아있고, 속죄하지 않고 부끄러움도 모른 채 당당하게 잘 먹고 잘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고통과 한이 모여 그 사람을 죽일 수 밖에 없는 길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도연은 그 사람을 죽이는 것이 오직 자신의 선택일 뿐이었다고 말한다. 그것 외에 다른 의미는 없고, 오직 자신이 짊어지고 가야 할 짊이라고 말한다. 그의 담담한 고백은 너무 쓸쓸하다. 세상의 평화를 얻기 위해 실천하는 삶을 선택한 그 무게를 나는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그저 간접적으로나마 그의 선택을 이해할 수 있을 뿐. 내가 도연과 똑같은 상황에 있었다면 나는 과연 어떠한 선택을 했을 것인가? 쉽사리 대답할 수도, 내 선택의 무게를 가늠할 수도 없는 질문이다. 농담처럼 말하는, ‘이번 생은 다했다’는 말이 어떤 사람에게는 진실이 될 수도 있는 그런 삶을 나는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아우르는 아픔과 고통을 보여주는 인물들을 통해 내 마음 속에서도 한과 고통이 덩달아 차올랐다. 그렇게나 큰 울림을 받았던 것은 그것이 전혀 허구가 아님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잊지 말아야 할 정신이 이 책 속에 담겨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모든 사람의 삶은 정말 많은 선택으로 이루어져 있다. 불합리한 시대를 바꾸기 위해 투쟁을 선택하는 것도, 권력자의 개가 되어 씻지 못할 죄를 짓는 것도 모두 저마다의 선택이다. 이러한 양극단의 삶과 비교적 평범한 그 중간의 삶들이 모여 넓고 넓은 강을 이루고 있다. 그 강이 어디로 흘러갈지는 우리가 어떤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어떤 삶을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다. 요즘같이 소통이 활성화된 시대에 우리는 진실된 목소리를 듣기 위해 아주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진실을 감추는 침묵과 탄압은 흘러가는 강의 흐름을 막을 수 없다. 멈춰있던 강을 다시 흐르게 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이 있는 한, 내가 그런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하는 한, 그 강은 계속 흐를 것이고, 그 흐름을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모든 사람은 원해서 태어나지 않는다. 그들의 부모가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태어나버린다. 우리들이 이 세상에 처음 나서 하는 선택은 힘차게 울어대는 것이다. 앞으로의 삶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소원인지 마냥 행복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감인지 모를 울음을 터뜨리는 것이 일단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고 할 수 있는 전부이다.

그렇지만 내가 원하는 원하지 않았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나는 삶을 살아갈 의무가 있다. 하지만 어떤 선택을 하냐, 그것이 중요한 문제다. 수련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의로 타락하기를 선택했다. 도연은 ‘의분이 많은 땅에 평화가 있기 때문에’ 악을 처단하는 것에 자신의 삶을 희생하기로 선택했다. 찌르레기 아저씨는 복수에 자신의 온 삶을 바치다가 비로소 안식의 길로 들어서기로 했다. 노인은 허망한 욕망을 쫓아가며 자신의 선택의 결과를 외면했다. 우연은 이 모든 것들을 바라보고 그들의 삶의 무게를 외면하지 않고 직시했다.

이들을 통해 나 또한 내가 강의 한 줄기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고, 나보다 먼저 흘러간 삶의 줄기들을 바라봤다. 강이 왠지 모르게 눈이 부셔 울었고, 거대한 벽에 부닥치는 강물들이 안타까워 울었다. 그러나 강은 다시 흐르기 시작했고 나 또한 흘러갈 것이다. 내 다음 강물들이 나의 흘렀던 길을 보고 웃을 수 있기를 바라며, 나는 내 선택의 무게를 알고 살아갈 것을 선택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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