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에 비하면 감옥살이는 편했다. 인도에 있을때 그림을 배웠던 그는 평생 그림이라고는 들어 본 적도 없다는 어느 교도관과 친구가 되었다. 그는 교도관에게 그림을 그려서 보여주겠다고 제안했고, 교도관은 페인트를 몰래 들여왔다. 테인 리는 담배 라이터의 심지를 뽑아서 붓으로 썼다. 교도소에는 휴지가 없었고 수감자들은 그 대신 버려진 죄수복을 가는 띠로 찢어서 뒤를닦았는데, 테인 린은 자기 몫에서 절반을 아꼈다가 그 희고 나달나달한 천 위에 전쟁의 섬뜩한 이미지들을 그렸다. 그는 병뚜껑, 유리조각, 깎은 비누, 낡은 어망을 써서 모노타이프 판화를 찍었고, 교도소 감옥에서 구한 주사기로 가는 선을 그렸다.
그러나 한 교도관이 테인 린의 추상화를 탈출용 교도소 지도로 오해하는 바람에 작품이 몽땅 폐기되었다. 테인 린은 다시 시작했다. 갇혀 있던 7년 동안 작품을 300점쯤 만들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테인 린의 친구 교도관은 다른 몇몇 교도관들에게도 자신들이 가둔 죄수가 훌륭한 예술가라는 비밀을 털어놓았다. 그리하여 한통속이 된 그 교도관들은 모두가 동시에 근무하던 어느 날 다 함께몰래 그림들을 반출하여 테인 린의 가족에게 전달했다. 그 후 한 친구가 영국 대사 비키 보먼에게 접촉하여 테인 린의 작품을 봐달라고 요청했다. 보먼은 그러마고 했고, 그림을 통해 테인 린과 사랑에빠졌다. 두 사람은 그가 석방된 뒤 곧바로 결혼했다. 2005년 양곤에서 전시회를 연 테인 린은 감옥에 있을 때 재료를 구해 주었던 교도관을 초대했고, 두 사람은 자신들의 협동 작업을 기리며 축배를들었다. 테인 린은 내게 예술이 미얀마의 새로운 이데올로기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나는 감옥에서 많은 정치인과 변호사 를 만났는데, 그들은 모두 옥중에서 시인이나 작곡가로 변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