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가 아니라 몸이다 -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는 몸의 지식력
사이먼 로버츠 지음, 조은경 옮김 / 소소의책 / 2022년 5월
평점 :
절판


처음 책을 소개 받았을 때 제목이 상당히 재미있어 보였다. 뇌가 아니라 몸이라니? 무엇이? 궁금증을 유발하는 제목이었고 저절로 손이 가게 만드는 책이었다.

저자는 사이먼 로버츠라는 사람으로 소개글이 참신했다. 비즈니스 자문을 하고 있다는 저자의 약력에 더해진 선도적인 비즈니스 인류학자라는 소개. 비즈니스 인류학이라는 분야는 어떤 분야일까? 처음 들어 보는 분야였고 호기심이 자극되었다.

책은 총 3부, 13개의 챕터로 구성되어있다. 작가가 생각하는 몸이 기억하는 지식을 소개하고 그 지식을 습득 활요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되어있다.

제1부 몸인가, 정신인가

정신과 몸이라는 두 개의 키워드를 관통하는 예시들로 구성되어 있다. 데카르트의 정신-몸의 이원론과 메를로 퐁티의 체화 이론이라던가 가우스와 훔볼트, GPS와 영국의 택시 기사, 등 서로 상반되는 관계를 서술하고 있다. 서양의 이성주의 철학으로 대표되는 데카르트의 정신(=논리, 이성 등)의 우수성을 보여주면서도 동시에 비효율적인 면이나 몸으로 체화된 지식의 우수성에 대해 보여주고 있다.

서구의 주류 교육은 사고의 자동화와 뇌를 컴퓨터에 비유하는 개념을 영속화시키는 정신-몸의 이원론에 사로잡혀있다. 아이들은 시각, 소리, 촉감, 냄새, 그리고 맛과 같은 감각으로 세상을 이해한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이런 감각은 교육과정이 진행될수록 더욱더 경시되고 있다. (p.63)

문어의 몸에 대한 설명 중 인간이나 침팬지처럼 문어도 중추신경계를 가지고 있지만 신경세포는 머리뿐만 아니라 몸 전체에 분포되어 있다는 게 기억에 남는다. 문어의 팔이 뇌의 조정 없이도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인다는 것은 뇌가 여러 개라는 의미 같기도 하고 동시에 몸이 뇌 자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어의 방식은 몸이 나름의 지능을 가졌고 뇌가 지능에 기여하는 만큼 몸도 일정 부분 기여한다는 증거와 같은 것이다.

내가 예전에 보았던 소설에서 아이가 모닥불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불꽃 도마뱀을 본다. 아이는 아버지에게 묻고 아버지는 갑자기 아이의 뺨을 친다. 영문도 모르고 울먹이는 아이에게 아버지는 그것이 불의 정령인 살라맨더이고 네가 이것을 기억하게 하기 위해 때렸다며 아이를 안아주는 장면이 있었다. 몸이 겪은 경험의 강렬함이 지식이 되는 순간인 것이다.

나의 경우에도 공부를 하다가 죽어도 안 외워지는 부분들이 있을 때 몸으로 외웠다. 표를 만들고 그 표를 허공에서 상상하면서 손가락으로 순서대로 짚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순서대로 짚어야 한다는 점이다. 죽어도 안 외워지는데 꼭 손가락으로 순서대로 짚으면 답을 찾는 그런 경험들을 종종 했었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by 데카르트

나에게는 몸이 있다

그러므로 나는 알 수 있다

by 메를로 퐁티

뇌가 아니라 몸이다 中

제2부 몸의 학습법

체화된 지식은 [관찰], [연습], [즉흥성], [공감], [보유]로 특징지을 수 있다.

[관찰]에서는 몸이 배우는 방법을, [연습]을 통해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는 과정을 알 수 있다.

책 속 사례인 미국 프라임 모기지론 사태에서 아이스만은 싸구려 양복 같은 작은 디테일을 [관찰]함으로써 금융위기에 큰돈을 벌수 있었다. 미나레트의 도제방식은 무엇을 가르쳐주는 게 아니다. 그저 [관찰]을 통해 스스로 이룩해 낸다. 다른 사람의 활동을 [관찰]함으로써 우리 몸과 뇌는 함께 작업해 신경 경로를 만들면서 그 행동을 할 기반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우리가 몸을 통해 지식이 생성되는 과정을 설명할 수 있도록 해준다.

자전거 타기와 같이 처음에는 말로 세분화할 수 있지만 [연습]을 통해 전문가 단계에 오르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떠한 것들이 있다. 마치 형사나 소방관의 육감이라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흥성]은 체화된 지식을 통해 낯선 것에 반응하는 방법을 알 수 있다. 운전은 인간에게 어찌 보면 단순한 활동인데 자율주행으로 넘어가면 굉장히 어려워진다. 인간은 체화된 지식으로 즉석에서 통합된 결정을 내리지만 자율주행 AI에게는 이 모든 것들의 조건을 조합하여 수만 가지의 가정들을 계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감]에서는 타인의 감정과 의도를 이해할 수 있는 인간의 소통 시스템을 이야기한다. 위대한 음악을 들었을 때 느꼈던 감정들의 공명은 서로에게 동질감을 주기에 상대를 더울 잘 이해할 수 있게 다한다. 오케스트라나 밴드의 연주처럼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면서 눈짓과 웃음, 머리 움직임 등 여러 몸의 언어들로 조화롭게 연주하고 있는 셈이다.

[보유]는 인간이 몸에 기억하는 지식이다. 근육에 보유된 지식이 대표적이다. 경찰관이나 성직자처럼 직업이나 위체에 맞는 몸짓을 배우고 저장된다. 자신도 모르게 나타나는 행동들은 정체성 그 자체이다.

체화된 지식은 왜 중요할까?

한마디로 체화된 지식은 상당히 효율적이고 실질적이기 때문이다. 관찰과 연습을 통해 몸에 익히면 즉흥성이나 공감, 보유성을 통해 빠른 판단과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있다.

제3부 몸의 지식력 활용

3부는 체화된 지식이 '비즈니스, 정치, 정책 입안, 창의성과 디자인, 로봇공학과 인공지능'에 어떻게 사용되는지, 체화된 지식이 사용되어 그 결과가 어떻게 개선되는지 등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비즈니스 부분에서는 소비자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직접 소비자와 비슷한 체험을 하게 하는 예들이 소개되어 있었다. 이 경우 좀 더 실질적이고 인간미 있는 비즈니스 전략을 수립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난민 모의체험 같은 경험은 강한 감정이 결부된 활동이다. 타인의 현실을 이해하는데 탁월하다. 정치적으로 보여주기식일 수도 있지만 어느 정도 몸이 인식하기 때문에 정책을 수립할 때 도움을 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창의성 부분에서는 바디스토밍이라는 단어가 주된 키워드이다. 바디스토밍은 최고의 아이디어나 통찰력이 브레인스토밍에서 나온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거부하는 의미로 붙인 명칭이다. 방법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하는 행위를 재연하고, 실행과 즉흥성을 발휘해 체화된 방식으로 얻은 데이터를 이용해 살아가는 것 (p. 258)

특히 디자이너들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구체화할 때 사용한다. 실질적으로 실행했을 때 어떤 기분이 드는지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한지 등. 체화된 지식은 디자인의 디테일을 맡고 있는 셈이다.

로봇과 인공지능 분야에서의 체화된 지식은 어렵다. 컴퓨터가 높은 수준의 인간 지식을 습득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오히려 연필을 잡는 것처럼 낮은 수준의 작업을 구현하는 건 어렵다는 게 지식의 체화와 상관이 있다. 체화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부분이다.



예전 김경일 교수님의 강연에서 인간이 컴퓨터 보다 위대한 점이 있다고 했다. 인간은 컴퓨터와 달리 자신이 모르는 걸 안다는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이 강연 내용이 자주 생각났었다. 인간이 몸으로 익히는 지식의 독특함과 그 특별함을 읽는 내내 알 수 있었다. 나의 판단이라든지 잘 팔리는 디자인의 디테일, AI 세상 등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약간의 조각을 얻은 느낌이다.

다만 많은 논문의 인용과 지식의 향연은 여러 번 읽어야 이해할 수 있어 배경지식이 부족한 나 같은 사람들이 읽기에는 약간의 장벽으로 느껴진다.

인간의 특별함과 그 특별함이 인류 미래에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그 힌트를 얻고자 한다면 한 번쯤 읽어보면 좋을 듯하다.

<친절한 한줄평>

인간의 특별함과 체화된 지식의 유용함을 배울 수 있었다.

<까칠한 한줄평>

읽는 게 어렵다 어려워~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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