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인 계절 - 박혜미 에세이 화집
박혜미 지음 / 오후의소묘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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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서점 내 도서 카테고리 속 에세이를 선택해 열어보면 다양한 분야의 에세이들을 볼 수 있습니다. 출간된 국가에 따른 한국에세이, 외국에세이로 나누기도 하고, 다룬 소재에 따라 동물에세이, 명상에세이, 사진, 그림 에세이, 음식에세이, 독서에세이, 예술에세이, 종교에세이, 자연에세이 등 수많은 에세이들이 존재합니다. 


‘에세이가 왜 이렇게 사랑받을까?’ 자문해 보면 읽기 부담되지 않은 가벼움, 그리고 에세이를 통해 우리가 놓치고 있는 일상의 소소한 조각들을 끄집어내어 맞춰볼 수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우리의 삶을 다시 마주하고 나 자신을 바라보게 한달까요.



2025년 1월에 오후의소묘 출판사에서 나온 이 책 <사적인 계절>도 그렇습니다. 박혜미 작가가 바삐 흘러가는 계절 속에 녹아있는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손끝으로 정교하게 구체화해 계절을 담은 에세이로 탄생시켰습니다.


그림책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는 박혜미 작가는 일상의 풍경을 세밀하게 포착해 그 안에 섬세하게 감정을 녹여내는 특징이 있는데 <사적인 계절> 역시 앞서 출간된 그림책 작품들과도 결이 이어집니다.

기억하고 싶은 순간의 계절을 드로잉해 모았던 박혜미 작가는 ‘사적’으로 누렸던 계절의 풍경과 생각들을 묶어 한 권의 책으로 완성합니다. 모두가 똑같이 같은 계절을 누리지만 그 안에서 우리가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들은 제각기 다르잖아요. 그래서 제목 속 '사적'은 중의적인 표현으로도 읽힙니다. 개인을 뜻하는 私 일수도, 생각을 뜻하는 思일수도 있겠다고 말이죠.

박혜미 작가님이 보낸 계절이 무척이나 궁금해 서둘러 버드나무 홀씨가 바람에 흩날리는 띠지를 벗기고 사철제본으로 펼침성이 좋은 <사적인 계절>을 펼쳐들었습니다.



계절을 다룬 많은 책들이 봄-여름-가을-겨울 순으로 진행된다면, <사적인 계절>은 독특하게 겨울 이야기부터 시작해요. 작가가 남긴 겨울 단상을 마주하면 왜 겨울을 시작에 배치했는지 이해가 되면 겨울이란 계절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겨울은 계절의 끝에, 또 다른 시작의 맨 앞에 있어 하나의 마음으로 보낼 수 없다. (...) 꾹꾹 눌러쓴 글씨는 한낮 햇볕에 닿아 서서히 녹아내리다 찬 바람에 얼어붙으며 흐릿하게 윤곽만 남기더니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 자리엔 다시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와 다짐이 새로 적힌다. 결국 겨울은 보내는 마음에서 다시 기다리는 마음으로 시작되고, 나는 그런 겨울의 애쓰는 마음이 좋다.


작가는 사계절의 정형적인 표현인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쓰지 않고 자신의 단상을 녹여 수식어를 붙였어요. 그리고 그 계절들이 챕터가 되었답니다. “보내고 기다리는 계절(겨울) ― 재회하는 계절(봄) ― 비밀한 계절(여름) ― 물들고 구르는 계절(가을) ― 쓰이고 그려지는 계절(겨울)”. 겨울로 시작해 다시 겨울로 이어지는 것을 보면서 계절의 순환과 반복을 떠올리게 되는데요, 박혜미 작가는 책의 말미에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모든 계절이 찰나처럼 지나가고, 잊혀진 풍경들 사이에 내가 서 있고, 쥐고 있던 기억에는 우리가 남았다. 기억은 문장이 되어 쓰였고, 풍경은 페이지가 되어 그려졌다. 그렇게 우리는 책이 되었다. 돌아오는 계절마다 너를 만났고, 혼자여도 둘이 되어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책의 다음 페이지에 언젠가의 우리가 계속해서 쓰이고 그려질 것이다. 오늘 만난 계절은 잊지 않고 우리를 다시 찾아올 테니까.


다시 돌아올 계절, 그 속에 계속 쓰이고 덧그려질 모습들... 작가는 ‘사적’이라는 수식어로 자신만의 이야기라 말하지만 비슷한 경험이 있는 독자는 나의 이야기, 우리 이야기로 읽히며 공감하게 되고 자신의 추억을 떠올리며 <사적인 계절>을 수놓은 그림 위로 자신의 이야기를 투영하게 됩니다.




아름다운 벚꽃과 개나리가 만개한 담장, 버드나무 홀씨가 눈처럼 내리는 그림과 함께 봄을 '재회하는 계절'이라 표현한 챕터에서는 이사를 준비하며 짐을 정리하다 찾은 교환 일기를 통해 소환된 여중 동창생과의 일화도 담겨 있고, 봄의 아름다움 앞에 절망(!)하는 작가의 마음과 자연의 그린 화가가 많았던 이유도 엿볼 수 있습니다.





작가의 가장 내밀한 이야기인 난독증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이야기합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도서관에 있는 책을 읽을 수 있는 날이 오길 간절히 바랐던 그녀는 이렇게 고백해요.


그저 느리지만 읽을 수 있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자음과 모음에 맞춰 쓸 수 있는 현재가 있어 다행이라 여긴다. 그리고, 언제나 글보다 편하게 나를 대신해주는 그림으로 책을 만드는 사람이 되었으니 책 안에 계속 머물러 있는 셈이다. 좋아하는 것과 나란히 서기 위해, 오늘도 문장 앞에 서 있다.

'좋아하는 것과 나란히 서기 위해' 누구보다 노력한 박혜미 작가의 여름은 그 어떤 챕터보다 반짝였어요. <빛이 사라지기 전에>를 인상깊게 읽었던 독자라면 더욱 기대하고 펼쳐볼 ‘비밀한 계절’(여름)에서는 여름에 볼 수 있는 소소한 것들에 그 나름의 의미를 부여합니다.


온종일 한 장면만 생각하다 책상 앞에 앉아 종이를 채웠을 박혜미 작가는 이어지는 가을은 '물들이고 구르는 계절'이라 표현합니다. 그리고 나무에서 떨어지는 낙엽과 열매들을 보며 이런 글을 썼어요 .


한때 나무의 자랑으로 불리던 것, 자라나고 찬란히 흔들렸던 것, 무겁게 쥐고 있던 것. 나무는 스스로가 붙인 적 없는 결실이라는 말이 버거운 듯 붙잡고 있던 모든 것들을 하나둘 내려놓기 시작했다. 툭, 위에서 아래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낙하하는 소리와 함께 나무의 결말들이 허공을 가르며 우리의 발밑으로 떨어진다.


그렇게 '짧게 만나 길게 헤어지는' 가을을 뒤로 하면 다시 쓰이고 그려지는 겨울을 마주하게 됩니다.




계절의 변화와 시간의 흐름, 그 안에 머무는 마음을 섬세하고 아름답게 담은 <사적인 계절>.

눈으로 보고 코로 마시고 피부로 느끼는 계절은 순식간에 지나가 붙잡을 수 없는 것 같지만 마음에 각인된 찰나의 순간들을 꺼내볼 수 있도록 만든 책이 바로 이 책 <사적인 계절>이 아닐까 합니다. 계절의 흐름을 손끝으로 잡아낸 박혜미 작가님의 능력에 경탄하게 되고, 자연 속에 머무는 우리들의 일상 또한 이처럼 아름답구나, 돈으로 살 수 없는 소중한 순간들을 놓치지 말고 제대로 누려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됩니다.



작은 것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작가님의 글과 그림을 보며 책 속에 더 오래 머물고 싶어지는 <사적인 계절>. 박혜미 작가님의 온기 가득한 시선을 여러분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본 서평글은 서평단 모집 이벤트를 통해, 오후의소묘 출판사로부터 해당도서를 지원 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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