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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퍼와 나 - 나의 작은 딱지 이야기 ㅣ 비룡소의 그림동화 332
베아트리체 알레마냐 지음, 정회성 옮김 / 비룡소 / 2024년 10월
평점 :
아이 키우는 집이면 한 번은 경험하는 찰과상과 회복의 과정을 그림책에서 다루면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요? 그저 그런 뻔한 이야기가 될 거라고요?? 작가가 무려 그림책으로 전세계에 이름을 알린 '베아트리체 알레마냐'라면 뭐가 달라도 다르겠죠?!

2024년 10월에 비룡소에서 번역 출간된 <페퍼와 나>. 원서가 2024년 1월에 출간되고 채 1년도 되지 않아 우리말판이 나왔습니다. 이를 보면 베아트리체 알레마냐 작가의 인기를 가늠해볼 수 있어요.
베아트리체 알레마냐 작가 특유의 별색(<페퍼와 나>에서는 형광오렌지) 사용은 표지에서부터 드러납니다. 화려한 별색에 시선이 꽂혔다가 전체적으로 무슨 그림인가 찬찬히 살펴보게 되지요.

오렌지색 머리칼을 가진 아이는 고개를 숙여 자신의 왼쪽 무릎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요가동작 가운데 하나인 '서서하는 전굴자세' 마냥 아이는 고난도 자세를 선보이는데, 머리카락이 바닥에 쓸리는 것은 개의치 않고 시선은 오로지 무릎에 있는 빨간 것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왼쪽 무릎 대부분을 차지한 빨간 것에는 눈과 입도 있어요!
부제에서 ‘빨간 것’에 대한 힌트를 찾을 수 있습니다. <페퍼와 나> 제목 아래에 ‘나의 작은 딱지 이야기’라고 적혀 있는데, 상처에서 피, 고름, 진물 따위가 나와 말라붙어 생긴 껍질을 뜻합니다. 표지 속 아이가 뚫어져라 바라보는 것은 상처로 생긴 ‘딱지’인 것이죠.

어제 길을 가다 넘어졌어요.
돌멩이에 걸려 땅바닥에 엎어진 거예요!
배에도 얼굴에도 흙이 잔뜩 묻었고,
일어나 보니 무릎에 상처가 나 있었어요.
얼마나 아픈지 나는 아기처럼 울음을 터뜨렸지요.
주인공 아이의 과거 회상이자 독백입니다.
길바닥에 헤딩하듯 고꾸라진 아이는 무릎에 커다란 상처가 났습니다. 우리에겐 여전히 귀염둥이 로 보이지만 아이 스스로는 자신을 꽤 자랐다고 생각해 사건을 서술하며 ‘아기처럼 울음을 터뜨렸다’라고 표현해요.
탁 트인 길에서 철퍼덕 넘어질 때의 부끄러움, 당황스러움, 아픔은 무릎에서 줄줄 흘러내리는, 아이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말인 ‘피’로 정리됩니다. 다친 다리를 끌고 집으로 돌아오자 아빠는 아이의 무릎을 치료하며 따뜻한 말로 아이의 마음을 다독입니다.
아이에게 아빠는 "좀 있으면 예쁜 딱지가 생길 거야"라고 다정하게 말합니다. 아빠의 설명대로 딱지가 생기긴 합니다. 하지만 아이 눈에는 예뻐보이지 않았나봐요. 아이는 피가 거무스름하게 굳어 딱지가 붙은 무릎이 큼지막한 햄버거처럼 보인다고 이야기하는데, 덜 아문 상처 딱지와 딱 닮은 꼴입니다.
흉하게 보이는 딱지가 자꾸만 신경 쓰이는 아이는 엄마에게 딱지가 언제 사라지냐고 묻습니다. 아마도 아이 눈에 자꾸만 보이고 움직일 때도 불편해서 그런거겠지요? 그런데 그림을 보세요. 아이의 심각한 표정과는 반대로 엄마는 평소와 다름없이 장을 보고 누군가와 통화를 하며 일상을 이어갑니다. 아이가 혼자 걷지 못할 정도로 불편한 상처는 아니라는거죠. 아이가 가진 딱지의 경중에 대해 엿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글로 이야기하지 않지만) 엄마가 생각할 때는 아이의 딱지가 아이들이 크면서 한 번은 겪는 딱 그 정도의 상처라는 것을요.
물론 엄마가 아이에게 무심하지는 않습니다. 딱지를 신경 쓰는 아이를 위해 연고를 발라주며 딱지는 곧 떨어져 나갈 거라고 아이를 달래요. 하지만 아이는 괴물 같은 딱지에 자꾸만 눈이 가고 신경이 집중됩니다.

자기 무릎에 있는 딱지가 세상에서 가장 보기 흉하다 생각하는 아이는 어디를 가든 함께 있는 딱지에게 ‘페퍼’라는 이름을 붙여줍니다. 페퍼라는 이름을 붙여준 딱지는 아이에게 말을 걸어오는데요, 그렇게 긴 시간을 딱지와 함께하게 된 아이에게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여전히 '아이의 시선'을 간직한 베아트리체 알레마냐 작가님이 평범하고 소소한,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은 경험했을 ‘딱지’를 어떻게 책 속에 녹여냈을지, 이야기 끝에 무엇이 남았을지 궁금하시죠? 이야기 진행도, 그 안에 내포된 의미들도 흥미롭지만 작가님의 그림 역시 ‘2024 뉴욕 일러스트레이션 협회 선정 그림책 원화 대상작[SINYC (Society of Illustrators) The Original Art 2024 medal winners- The 2024 Gold Medal]’으로 선정될 만큼 충분히 매력적입니다.
상처와 치유, 성장과 수용을 담은 감동적인 그림책! 여러분도 자신의 유년시절을 스쳐 지나갔던 ‘딱지’를 떠올리며 이 책을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절대 놓치지 마세요!!

*본 서평글은 제이포럼에서 진행한 서평단 모집 이벤트를 통해, 비룡소 출판사로부터 해당도서를 지원 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