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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잠에게
박새한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9월
평점 :
'잠이 보약'이라는 말도 있고, 대문호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에서 “잠은 세상의 모든 기쁨을 누릴 수 있게 해준다.”고 했는데 수면 부족, 수면장애, 불면증 등으로 ‘잠의 기쁨’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습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이 그림책에 등장하는 캐릭터 역시 쉽게 잠들지 못하고 '잠을 찾아 삼만리'를 한답니다.

산들바람이 부는 광활한 목초지에 민들레 홀씨가 여기저기 흩날리고 있습니다. 표지 중앙에는 민들레 홀씨 위에 까만 존재감을 뽑내며 주인공이 누워 있어요. 얼핏 보면 쉼표(,) 처럼 보이는 이 캐릭터는 눈을 살포시 감고 있는데 무척이나 평온해 보입니다.

책을 펼치면 가로로 긴 그림이 막힌 데 없이 넓고 탁 트인 공간을 드러냅니다. 아름다운 그림 위로 제목인 <오늘의 잠에게>라는 글자와 주인공 ‘까만 존재’에만 특별히 투명 잉크가 덧입혀져 돌출되어 반짝 거리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요.
앞뒤 면지에는 까만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이 수놓아져 있습니다. 앞면지에는 이 책을 쓰고 그린 박새한 작가에 대한 소개글이 자리잡고 있고 뒷면지에는 판권 정보가 우주의 성단, 은하의 모습처럼 물결치듯 수록되어 있어요. 가로 세로 반듯한 일렬정렬이 아니라 더 매력적입니다. 💕

이야기는 '잠' 하면 자연스레 연상되는 잠자리 '침대’가 등장하면서 시작됩니다. 속표지 속 침대는 비어있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 이 침대의 주인이자 화자인 아이가 한 명 등장해요. 침실에 난 창밖으로는 어둠 속에서 별이 반짝이고 있고 아이는 인사해요. "안녕, 잠!"이라고요. 침대에 누워 있지만 아직 잠이 오지 않는지 아이는 잠에게 말을 겁니다.
'잠(너)'은 매일 밤마다 우리를 찾아오고, 어둠이 오는 길을 따라 달리며 깨어있는 모든 것들을 재운다고요. 잠이 다가오면 사람들은 물론이고 황새도, 지렁이도, 굴뚝 위에 앉은 고양이도 예외없이 잠든데요.
손에는 반짝이는 지팡이를 쥐고 세상에 모두에게 잠을 선사하는 캐릭터 '잠'을 보면서 윌리엄 조이스의 <가디언즈와 잠의 요정 샌드맨>에 등장하는 '잠의 요정 샌드맨'이 떠오르기도 했어요. 꿈모래를 뿌려 악몽으로부터 지구 어린이들의 꿈을 지켜주는 샌드맨과 반짝이는 지팡이를 휘두르며 잠을 선사하는 캐릭터 '잠'.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 만큼 캐릭터 설정도 재미있고 그 모습도 무척 사랑스러워요~💕

자신의 임무를 열심히 수행하던 '잠'은 잠든 고양이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불현듯 놀라고 마는데요! 다른 존재들을 다 재우고 다니지만 정작 자신은 잠들지 못함을 깨닫게 된 것이죠. 어떻게 자는 것인지, 잠들면 어떻게 되는지 물어보고 싶지만 ‘잠’이 물어보려고 다가가는 순간 상대는 zZZ 잠들고 말아요. 물어보고 싶은데 물을 수 있는 존재가, 가르쳐줄 대상이 없습니다.
이때부터 ‘잠’의 ‘잠에 대한’ 노력, 도전, 집착이 진행됩니다. 두 팔을 몸통에 딱 붙이고 같은 자세로 잠을 청합니다. 잠은 보송보송한 병아리 떼 위에도, 푹신한 산타 수염 위에도, 빵빵한 쓰레기 봉투 위에도, 평평한 게르 위에도 누워봅니다. 바오밥 나무 꼭대기, 열기구 위, 왕의 침대 위나 매운 연기 위도 도전합니다. 자장가를 듣거나 명상을 해보기도, 잠자는 최적의 온도를 찾기 위해 아마존강의 따뜻한 물결 위에도, 시베리아의 찬 바람 위에도 자신을 뉘입니다.

모두가 잠든 밤, 다른 이들의 잠을 책임지는 자신만 잠들지 못해 이것저것 시도하다가 결국 세상 한 바퀴를 돌고 지친 몸으로 잠은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남들은 다 재워도 자신은 재울 수 없었던 ‘잠’은 과연 잠들 수 있었을까요? 이야기의 어떻게 끝날까요??
박새한 작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잠’을 단순하면서도 귀엽게 형상화 했습니다. 그리고 잠드는 순간, 그 과정을 위트있고 공감되게 담았어요. '기차가 달리는 소리'라는 표현과 그 그림에서 많이 공감했고요.

이야기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아이도 책 다 읽고 나서 다시 넘겨 찾아보게 됩니다. 첫 장면에서 말똥말똥했던 아이의 눈은 마지막 장면에서는 감겨있습니다. 여기서 또 '다른 그림 찾기'를 해볼 수 있어요. '그믐달'이 마지막 아이의 방 장면에서도 등장합니다. 별이 총총했던 밤하늘이 그믐달이 뜰 시간까지 지났다는 거겠죠. 아이 머리맡에 하얀 덩어리는 흰 고양이 였고 그 고양이도 아이와 함께 '새근새근' 잠듭니다. 액자 속 그림도 달라져 있는데요, 처음 아이 방의 풍경 속 액자에는 민들레 홀씨가 담겼지만, 마지막 장면에서는 액자에 꽃 한송이가 펴 있습니다.
멋지게 쓰인 장문의 장도, 화려한 선율이 그려진 악보에도 '쉼표'는 꼭 들어 있지요. 우리 삶에서의 쉼표는 바로 잠일 것입니다. 잠을 통해 꿈과 희망을 키울 체력적, 정신적 힘을 얻고 잠이 행복을 꽃피우는 밑거름이 되기도 하죠. 그래서 박새한 작가님은 책뒤표지에 "안녕, 잠! 고마웠어" 라는 글을 남기셨나봐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살며 만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 그림책 작가로 활동중인 박새한 작가의 그림책은 <아빠 풍선>에 이번 <오늘의 잠에게>가 두번째 책입니다. 더 특별한 것은 프랑스와 한국 두 출판사에서 2024년에 동시에 출간됐다고 해요. 참고로 프랑스판 제목은 <Coucou Sommeil>입니다.
이번 작품에서도 박새한 작가는 모양자를 이용해 잉크로 선을 그리고 선명하지만 부드럽게 번지는 마커로 색을 올렸습니다. 박새한 작가님만의 동글동글 프레임, 그림 속에서 소소한 이야기와 디테일, 단순함을 찾아볼 수 있었어요. 개인적으로는 가로가 긴 판형을 이용해 시원하게 펼쳐지는 멋진 하늘빛과 지평선, 다채로운 풍경들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화자인 아이가 '오늘의 잠에게' 전하고 싶었던 마지막 한 마디를 <오늘의 잠에게> 그림책을 통해 꼭 확인해보세요~! 😊

* 본 서평글은 문학동네 출판사가 진행한 그림책서포터즈 뭉끄 3기에 선정되어, 해당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