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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똑! 집 지으러 왔어요
군타 슈닙케 지음, 안나 바이바레 그림, 박여원 옮김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24년 9월
평점 :

여기 곱게 차려입고 바쁘게 발걸음을 옮기는 여성이 있습니다. 그녀가 바로 오늘의 주인공 ‘이네스’ 인데요, 책제목 <똑똑똑! 집 지으러 왔어요>를 곧 외칠 예정입니다. 과연 누굴 만나 저 말을 건낼까요?

힌트를 드리자면 이 책의 글을 쓴 군타 슈닙케(Gunta Šnipke) 작가와 그림을 그린 안나 바이바레(Anna Vaivare) 작가 모두 라트비아에서 ‘건축가’라는 직업을 갖고 있습니다. 글 작가 군타 슈닙케는 리예파야(Liepaja)를 거점으로 도시 경관 개발에 참여하거나 건축 관련 기사와 평론을 쓰면서 시와 희곡 작업도 하고 그림작가인 안나 바이바레 역시 건축가 겸 일러스트레이터로 만화와 일러스트를 그리고 있다네요. 두 작가가 모두 ‘건축가’임을 알고 제목을 다시 본다면, '문을 두드리고 집 지으러 왔다'고 말할 수 있는 곳이 어디인지 유추 가능합니다. 바로~ 건축사 사무실이겠지요?!

이네스가 검은 머리에 까만 뿔테 안경을 쓴 인물과 인사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네스는 처음 만난 건축가에게 대뜸 이런 말을 던집니다.
건축가는 일하기 참 쉽겠어요. 그냥 집만 쓱쓱 그리면 되잖아요?
집 짓기를 의뢰하기 위해 건축가를 찾은 예비 건축주 이네스. 건축가에게 이네스는 '갑 오브 더 갑'이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자신을 위해 일할 건축가에게 대뜸 '일하기 참 쉽겠다'고 말하다니... 이네스는 ‘집 짓는 일, 건축’에 대해선 전혀 모르는 것 같아요. 잘 모르니까 건축가 앞에서 저렇게 용감하게 이야기하는 거겠지요?
다행히 검은 옷을 입은 건축가는 이런 무례한 건축주를 만나는 것이 처음은 아닌가 봅니다.
이네스는 그러니까 지금 바로 자기 집을 그려달라고 했어요.
이네스가 뭔가 오해를 한 것 같군요.
이네스는 집이 눈 깜짝할 사이에 뿅 하고 나타나는 줄 아나 봐요.
'집을 짓는 것'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일인지 모르는 것은 집을 처음 지어보는 이네스나 이 책을 읽는 어린이 독자나 큰 차이가 없을 겁니다. 집 외관이나 조경, 인테리어 등이 스케치 한 번에 뚝딱 완성될 것이라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베테랑 건축가(그림책 속에서는 검은 옷을 입은)인 책 속 화자는 건축을 쉽게 보는 이네스의 생각을 바로 잡습니다. 끝없는 질문을 통해서요.
우선 집을 지을 위치(언덕 위,바다)과 주재료(통나무, 흙집, 벽돌)를 묻습니다. 첫 질문부터 이네스는 대답이 막힙니다. 지금부터 생각해 볼 것이라고 답하죠. 하지만 건축가는 이네스 같은 건축주를 많이 만났나 봅니다. 답을 주저하는 이네스의 모습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질문들을 이어갑니다.
집에 혼자 살 것인지, 남편과 사는지, 친척이 더 있는지, 일년내내 머무는지, 여름이나 특정 시즌에만 머무는 별장인지, 게스트 룸은 몇 개나 필요한지… 이네스가 원하는 집을 짓기 위해서는 건축가의 입장에서는 꼭 필요한 질문들이었죠. 그러면서 질문은 더욱 세밀해집니다. 저녁 시간은 어떻게 보내는지, 취미가 무엇인지, 그 취미를 위한 공간이 필요한지, 반려동물에 대한 물음도 빠지지 않지요.
건축가의 끝없는 물음에 머뭇거리던 이네스는 약간의 반발심이 인 듯 이렇게 되묻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나치게 깊이 생각하는 거 아닐까요?
(...)
집을 짓는 데 정말로 이 모든 걸 알아야 하나요?
이에 당연하다고 맞받아치며 건축가의 질문은 끝없이 이어지고 이네스가 상상하던 집은 커지고 커져서 4쪽 펼침화면에 겨우 다 들어갈 정도가 되었어요. 😐

거대한 집 평면도를 마주한 후에야 이네스 스스로가 자신이 집에서 진정 원하는 것, 필요한 것을 정리할 수 있게 됩니다. 건축가의 물음을 통해 이네스가 현실적인 깨달음을 얻은거죠. 마치 상대가 잘 모르는 것을 자각하도록 하는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산파술) 같았다고 할까요.
<똑똑똑! 집 지으러 왔어요>는 집 짓는 일에 대해 독자들에게 설명하는것 같지만 이네스의 집 짓는 이야기는 단순히 ‘집’에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어떤 진로를 선택해서 어떤 직업을 가지느냐, 어떤 사람과 만나서 어떤 결혼생활을 이어갈 것이냐, 더 크게는 어떤 인생을 살아갈 갈 것인가로 뻗어갈 수 있습니다.
집이 눈 깜짝할 사이에 뿅 하고 지어지지 않는 것처럼 꿈이나 인생도 단번에 '짠'하고 완성되지 않습니다. 건축가가 쉼없이 던지는 질문의 요지는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이고 ‘본인 스스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느냐’ 입니다. 건축가가 사람과 사물사이 보이지 않는 것들을 연상하며 집을 짓는 과정은 내가 누구인지를 명확하게 찾는 과정과 같아요.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있는 옮긴이 박여원님도 이 책 마지막 이와 관련된 글을 남겼습니다.
살고 싶은 집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은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알아 가는 과정이었을 거예요.
두 건축가가 직접 쓰고 그린 내 집 짓기와 건축에 관한 흥미롭고 유익한 그림책 <똑똑똑! 집 지으러 왔어요>. 알찬 내용이 가득한 독후 활동지도 초판 한정으로 독자들에게 선물 드리니까 놓치지 말고 꼭 누리세요!!

*본 서평글은 제이포럼에서 진행한 서평단 모집 이벤트를 통해, 미래아이 출판사로부터 해당도서를 지원 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