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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위한 메르헨 ㅣ 청소년 북카페 4
에리히 캐스트너 지음, 울리케 묄트겐 그림, 정초왕 옮김 / 여유당 / 2024년 4월
평점 :

제목을 보면 행복은 두루뭉술하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낯선 단어가 등장합니다. '메르헨'!!! 메르헨이 무엇인지 먼저 짚고 넘어가면 좋을 것 같아요.
Märchen(메르헨)은 15세기 중세 쓰인 독일 고어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달된 이야기, 소식, 어떤 질문에 대한 대답, 소문, 지어낸 이야기, 주목할 만한 사건에 대한 이야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아동문학가이자 번역가로 활동 중인 김서정님이 <그림 메르헨>을 번역하며 책에 메르헨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있는데요, "메르헨 안에 들어 있는 내용은 삶과 인간의 온갖 면모를 그 이면까지 꿰뚫어 보여 주는 것입니다."라고 설명합니다.
삶과 인간의 온갖 면모를 그 이면까지 꿰뚫어 보여주는 ‘메르헨’. 거기에 ‘행복을 위한’이라는 단서까지 붙었습니다. 독일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지 시인인 에리히 캐스트너(Erich Kästner)가 1947년 쓴 단편소설 쓴 작품(1899년생인 에리히 캐스트너가 40대 후반에 쓴 글)으로 원제는 <Das Märchen vom Glück>, 원서그림책은 2022년에 출간됐네요.
2024년 에리히 캐스트너 탄생 125주년(서거 50주년)을 기념해 아트리움 출판사(Artrium Verlag AG)에서 그의 단편소설을 단행본 그림책으로 펴내는 작업이 진행 중인데 그 일환으로 <행복을 위한 메르헨>이 만들어졌다고 하네요. 우리나라에서는 여유당 출판사가 번역해 우리말로 편안히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야기는 ‘옛날옛날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이 아니라, 연기 자욱한 선술집에서 시작됩니다. 일흔 정도로 보이는 노신사와 그의 말을 듣고 있는 화자인 나. 선술집에서 우연히 마주친 그들은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노신사에게 40년 전에 있었던 놀랍고도 신기한 경험을 전해 듣게 됩니다. 공원에서 우연히 만난 어떤 노인이 제안한 ‘세 가지 소원’ 이야기를요.
40년 전 인생이 고통스러웠던 시절, 세상을 원망하며 공원 벤치에 안자 있는 젊은 시절의 노신사에게 산타를 닮은 어느 노인은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며 말을 겁니다. 단, ‘소원 세 개를 다 썼는데도 여전히 불행하고 불평불만에 가득 차 있으면, 그 땐 더 이상은 어쩔 수 없다’고도 말합니다.
세 개의 소원, 삼 세 번의 기회는 동서양 공통인가 봅니다. 과연 노신사는 젊었을 적 행운의 기회가 왔을 때 어떤 소원을 빌었을까요?? 아름다운 여자? 어마어마한 부? 아니면 멋진 콧수염?? 행복을 위해 신사는 어떤 소원을 빌었을까요? 우연히 찾아온 행운으로 그는 과연 행복해졌을까요??!!
그림책 속 화자인 ‘나’처럼 노신사의 ‘행복과 소원 성취’가 궁금해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가슴을 쿵 하고 울리는, 안데르센 상 수상에 빛나는 에리히 캐스트너의 행복론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여운은 꽤 오래 지속됩니다.
행복이란 매일매일 한 조각씩 잘라 먹을 수 있는 저장용 소시지가 아니거든!
맞아요. 과거의 행복이 지금이나 미래의 행복으로 당연히 이어지는 것이 아니고, 원하는 대로 소원이 전부 이루어진다고 해서 무조건 행복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아파트 평수만큼 행복이 커지는 것도, 줄어들지 않는 통장 잔고가 행복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죠. 행복은 ‘돈, 명예, 건강’처럼 딱 하나로 단정 지어지는 게 아니라 우리가 하는 행동이나 생각의 결과물 같은 것 일수도 있어요. 그래서 작고 소소한 것이라도 매일 실천하고 쌓아가며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이죠.
로또 같은 한 순간의 행운을 바라고, 저장용 소시지를 잘라 먹듯 과거의 영광에 매몰되어 오늘의 행복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간절히 바라고 소원하는 것을 위해 지금 얼마나 노력하고 나아가고 있는지를 고민하며 책을 읽어내려갔어요. 그리고 또 한번 쿵!
소원이란 마음속에 품고 있을 때까지만 좋은 것이라네.
노신사는 40년간 마지막 하나 남은 소원권을 품고 있습니다. 영화 장면에서처럼 숫자 3( 독일어로 Drei)을 열쇠를 채워 유리함 속에 소중히 넣어두고 주위에는 레이저 광선을 쏘며 접근을 차단합니다. 마지막 소원권을 왜 저렇게 꽁꽁 잠궈놓았을까요?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 아니면 소원권을 아끼기 위해서 일까요??!!

노 신사는 마음 속으로 ‘어차피 소원권 쓰면 뭐든 이루어지지만 그 정도 일로 소원권을 쓰기는 좀 아까우니 일단 스스로 해보자’ 라는 생각으로 모든 일에 임했을 거예요. 그 태도에는 ‘할 수 있다. 될 수 있다’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 있었을 것이고요. 그런 생각과 행동이 변화를 가져왔고 그는 그 과정 속에서 자연스레 성취하는 행복을 느낄 수 있었을 겁니다.
바라던 소원을 아무런 노력 없이 이루는 '행운'이 아니라 스스로 이룩한 '행복'! 소원권을 썼다면 그 성취감이나 감흥은 느낄 수 없었을거예요. 그의 일상도, 삶의 태도도 바뀌지 않았을 것이고 소원권의 영광은 이내 사라졌겠지요.
전가톨릭 사제이자 변호사인 한동일님의 <라틴어 수업> 중에 ‘베아티투도(Beatitudo)’라는 라틴어를 설명하는 부분이 떠올랐어요. ‘행복’을 뜻하는 단어인데요, ‘베오’라는 동사와 ‘아티투토’라는 명사의 합성어랍니다. ‘베오’는 ‘복되게 하다, 행복하게 하다’라는 의미이고 ‘아티투토’는 ‘태도나 자세, 마음가짐’을 의미한데요. 즉 행복을 뜻하는 ‘베아티투도’라는 말은 ‘태도나 마음가짐에 따라 복을 가져올 수 있다’는 말인거죠. <행복을 위한 메르헨>이 이야기하는 행복론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이어지는 부분이 있다고 봤어요.
이런 '행복'이란 주제를 바라보는 에리히 캐스트너의 독특한 시선이 그림작가인 울리케 뮐트겐(Ulike Möltgen)의 그림으로 촘촘히 담겼는데요, 심오하고 예술적인 그림은 마법 같은 이야기에 신비로움을 더합니다.
글이 먼저 써지고 글작가인 에리히 캐스트너가 세상을 떠난 후에 그림책 작업이 시작된 만큼, 오롯이 자신의 생각만으로 그림 작업을 이어가야했던 울리케 뮐겐 작가의 고심도 느껴졌습니다. 신비롭고 환상적인 메르헨이기에 울리케 뮐트겐 작가는 콜라주 스타일의 초현실주의 이미지로 이야기를 풀어냈어요. 그림책 속에 그냥 그려진 이미지는 없을 것 같아서 그 의미를 찾아보며 읽었는데, 이 책을 누리는 또 다른 즐거움이었습니다.

행복은 늘 우리 주위에 머물고 있습니다. 사소하고 소소해서 놓치거나 지나치기 쉽죠.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위해 행운부터 찾는 경우도 많고요. 하지만 갑자기 찾아든 행운은 오롯이 나만의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자기 손으로 행복을 만들어낸 사람만이 행복을 쌓을 수 있고 끝까지 누릴 수 있습니다. 마지막 장면에 노신사의 모습처럼요.
'시대를 초월하여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라는 추천사가 아깝지 않는 <행복을 위한 메르헨>.
행복을 잡고싶어 하는 여러분들이라면 꼭 읽어보세요!
*본 서평글은 여유당 출판사에서 진행한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출판사로부터 해당도서를 선물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