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그늘 웅진 모두의 그림책 54
조오 지음 / 웅진주니어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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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부터 연두색이 가득한 따뜻한 느낌의 <나의 그늘>. 조오 작가님의 첫 메이저 출판물 <나의 구석>의 후속작입니다. 전작을 읽지 않아도 내용은 이해되지만 캐릭터와 설정은 연결되는게 많아요.

 



<나의 구석>에 등장했던 식집사(=식물+집사) 까마귀가 <나의 그늘>에서도 주인공으로 나오고 전작에서처럼 까마귀는 여전히 조용하고 내성적인 면을 갖고 있어요.

전작과 마찬가지로 <나의 그늘>에서도 색연필 스트로크 특유의 따뜻하고 포근한 그림체가 이어지고 제본선도 적극 활용했습니다. 인쇄된 종이를 순서대로 모아서 읽기 쉽게 책으로 엮을 때 접힌 종이 중간에 필연적으로 생기는 제본선! 이 제본선을 <나의 구석>에서는 까마귀의 방 네 귀퉁이 중 하나인 구석으로, <나의 그늘>에서는 건물 밖 모서리로 드러내 표현하죠. (은 방 한쪽 구석, 은 건물 외벽 모서리)


책의 물성을 멋지게 활용한 <나의 그늘>은 약간의 대사만 있는 그림책으로 무려 104쪽이나 됩니다. 64쪽이었던 <나의 구석>보다 페이지수가 훨씬 늘었어요. 그만큼 담긴 이야기도 많다는 뜻이겠죠? 판형도 달라졌습니다. <나의 구석>이 147x282mm로 세로로 길고 폭이 좁았다면 <나의 그늘>은 163x260mm으로 가로가 살짝 넓어지고 세로 길이는 조금 줄었네요.


집 안 화분 속에서 쑥쑥 자란 식물을 까마귀가 건물 밖 한쪽 모서리에 옮겨 심으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러다 '폭풍우'라는 시련이 찾아오고 시련 극복 프로젝트가 진행되죠. 하지만 또 다른 사건이 발생하는데요, 과연 이야기의 끝은 어디로 나아가는지 스토리가 궁금하신 분들은 책으로 직접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그림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읽고서, 이 책 제목이 왜 '나의 그늘'일까를 고민했습니다. 까마귀가 소유한 '식물'과 관련된 이야기이니까 '나의 식물'이라고 해도 상관이 없었을 것 같아서요. 그래서 '그늘'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게 됐어요.


사전에는 그늘이 불투명한 물체에 가려 빛이 닿지 않는 상태나 어두운 부분을 뜻하기도 하지만 ‘부모님의 그늘 아래’에서처럼 의지할 만한 대상의 보호나 혜택을 나타낼 때에도 ‘그늘’이란 단어를 사용한다고 나와 있어요.


이 책 제목 속 '그늘'에는 '빛이 차단되어 드리워지는 그늘'과 까마귀가 식물을 보호한다는 의미의 '혜택의 그늘', 이 두 가지 의미가 모두 녹아 있어요.

내 소유였던 작은 식물의 그늘이 모두의 그늘이 되는 공유의 과정도 담겨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내 영향력 아래에 있던 식물이 여러 동물들의 도움으로 홀로 우뚝 서기까지 까마귀의 그늘을 벗어나 스스로 시원한 그늘을 만드는 식물의 독립기이자 식물을 돌보는 이들의 성장 스토리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품안의 자식을 세상 밖으로 독립시키는 과정으로도 보였고,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감정을 이입해서 읽게 됐어요. 집 안에서 집 밖으로 옮겨 심은 뒤, 한차례 폭풍우로 쓰러지기 직전의 식물과 까마귀의 모습을 보면서 가정보육만 하다가 처음으로 기관에 보냈을 때의 불안감과 걱정들이 겹쳐졌고, 상처가 나서 돌아왔을 때의 속상함 등도 떠올랐어요. 유행하는 감기라도 옮아오면 괜히 밖으로 내보내서 아이가 아프다고 자책하며 아이의 소소한 일상에 일희일비하던 모습들이요.



그런데 아이는 부모의 힘만으로 크는 것은 아닙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말처럼 좋은 선생님과 바른 어른들을 만나고 우정을 나눌 친구들도 만나야 올바르게 커갈 수 있지요. 세찬 비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아플 때도 쓰러질 때도 있지만, 내 주위를 든든히 지켜주는 이들이 있어 다시 힘을 내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부모가 분신처럼 소중한 아이를 위해 경제적, 정신적으로 뒷바라지 하다보면 부모의 삶이 흔들 때도 있습니다. 아이에게 시간과 정성을 쏟다보면 내 삶이, 내 자신이 사라진 것처럼 허무할 때도 있어요. 나와는 전혀 다른 한 인격체를 마주하고 가치관이 변하기도 하고,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이상향을 품기도 합니다. 기존에 알고 있던 세상이 전복되고 전혀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는거죠.




그렇게 온 정성을 들여 키운 아이가 독립을 했을 때, 부모님의 그늘에서 벗어나 스스로 큰 그늘을 드리울 수 있는 존재로 홀로 우뚝 서게 됐을 때, 부모가 마주하는 행복은 이 책의 마지막 장면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눈을 지그시 감고 그늘을 누리는 이들의 모습처럼, 우리도 아이를 키울 때의 추억들을 떠올리며 감사하지 않을까요? (저 순간이 무척이나 기다려지고 기대됩니다.)




색연필 그림이 주는 특유의 따스함과 책의 물성을 느낄 수 있는 묘미, 조오 작가님이 곳곳에 숨겨놓은 깨알 소품 디테일들을 모두 누릴 수 있는 <나의 그늘>. 이 책을 만날 수 있어서 그림책 애독자인 저는 참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구구절절 설명하는 긴 글은 없지만 그림으로 상상하고 이야기를 꾸며가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책이에요. 여러분도 그 즐거움을 누려보시기 바랍니다.

* 본 서평글은 제이 그림책 포럼 카페에서 진행한 서평단 모집 이벤트를 통해, 웅진주니어 출판사로부터 해당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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