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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는 마음 - 그림 그리는 이의 시선으로 기록한 날들
전소영 지음 / 달그림 / 2023년 6월
평점 :
작은 풀꽃에서 깊은 사유를 짚어낸 <연남천 풀다발>, 식물에게서 배운 관계의 거리를 담은 <적당한 거리>, 실제 작가님 아버지의 이야기를 쓰고 그린 <아빠의 밭>까지. 전소영 작가님의 맑은 수채화와 깊은 관찰에서 나온 글들을 참 좋아하는데요, 전소영 작가님의 첫 그림에세이 <그리는 마음>이 2023년 출간되었습니다.

이 책을 처음 마주하고서 발견한 것이 책의 타이틀 디자인이었어요. 인터넷 서점에서 소개하는 책 이미지로는 미처 알아채지 못했는데, 표지의 제목 자세히 보면 ‘그리는’이라는 단어가 가로와 세로로 교차되어 있어요. 가로로 쓰인 글자는 진하게, 세로로 쓰인 글자는 흐린 듯 연하게 적혀있습니다.

‘그리는 마음’이라는 제목을 보고선 작가님이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그림책 작가이니까 당연히 연필이나 붓으로 어떤 사물의 모양을 나타낸다는 뜻의 ‘그리다(draw, paint, sketch)’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국어사전에 있는 ‘그리다'의 또 다른 의미를 제가 놓치고 있었어요. 사랑하는 마음으로 간절히 생각하는 ‘그리다(wish, miss)’ 말이죠.
전소영 작가님의 첫 번째 에세이집 <그리는 마음>은 날실과 씨실이 교차되어 완성되는 직조처럼 '손으로 그린다'와 '마음으로 그리는' 두 행위가 겹치고 쌓여서 완성된 아름다운 책입니다. 부제는 ‘그림 그리는 이의 시선을 기록한 날들‘로 이 책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어요.
표지 그림은 유유히 흐르는 강물과 파란 하늘, 푸르름이 빛나는 시골 풍경인데요, 인터넷 서점 이미지를 보면 표지가 두 가지 버전이 있는 듯 합니다. 파란 하늘의 표지와 노을 풍경이요. 그런데 이게 책표지를 감싸고 있는 북커버입니다.
책을 감싸고 있는 커버를 벗겨 펼치면 전소영 작가 팬이라면 꼭 소장하고 싶은 그림이 펼쳐집니다. 커버 안쪽에도 숨은 그림들이 있습니다. 라인드로잉으로 무스카리 씨앗이라던가 땅꽈리 등 식물 그림이 그려져 있어요.

커버를 벗겨낸 표지는 소프트 커버입니다. 담백하게 제목과 부제가 담겨 있는데, 표지 재질이 코팅되고 반짝이는 종이가 아니라 전소영 작가님의 글과 그림을 닮은 (<연남천 풀다발> 표지같은) 종이라 책을 들고 읽을 때 손에 닿는 특유의 감촉이 있습니다. 연두색 면지를 넘기면 이 책 <그리는 마음>이 어떻게 해서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는지, 어떤 마음이 담겨 있는지 ‘작가의 말’을 통해 확인할 수 있어요.
살아 숨쉬는 식물처럼 이 책은 '잎사귀, 줄기, 뿌리' 이렇게 세 가지 장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식물을 관찰할 때처럼 잎사귀, 줄기 뿌리를 차근차근 따라가다보면 작가의 일상과 생각들을 자세히 엿볼 수 있어요.
작가님 팬으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부은, 작가님이 꿈꾸는 책이 어떤 책인지를 담은 '식탁의 크기'라는 글입니다.
언젠가 책을 만든다면
두고두고 펼치고 싶은 책을 만들고 싶었다.
한번 보고 덮어두는 책이 아니라 내 가장 가까이에 두어
계절마다 다른 페이지에 기대어 보고 싶은,
그리하여 누구가의 손끝에 닳고 닳아서
나무가 그 쓰임을 다하도록
(...)
그림이 글이 되었다가 글이 그림이 되기도 하는,
한동안 잊고 살았다가 문득 생각이 나면
쪽지를 남겨보는 친구처럼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모두 나의 이야기 같은
그렇게 살아 있는, 살아지는 책을.
<그리는 마음> p.84, -식탁의 크기- 중에서
모든 작가들의 소망이고 바람이겠지요. 독자들의 품안에서 길고 오랫동안 영감을 주고 느낌표를 줄 수 있는 책! 이미 작가님의 책들이 독자들에게 충분히 그런 역할의 책으로 살아지는 책이라 감히 말씀드리고 싶네요. ^^
이외에도 작가님의 북토크를 찾아가야만 들을 수 있을법한 <연남천 풀다발>의 탄생 비화도 담겨 있고, 관찰하는 것과 그리고자 하는 마음에 대한 사유(‘성실한 구경꾼’, ‘아무것도 되려 하지’)도 자세히 기록되어있어요.
담백하지만 마음을 울리는 전소영 작가님의 글과 페이지 중간 중간 작가님의 일상 드로잉을 누릴 수 있는 그림에세이 <그리는 마음>.
소소한 일상을 마주하며 수첩에 남겼던 글이라는 씨실과 그림이라는 날실이 짜여 이렇게 멋진 책이 되었습니다. 전소영 작가님 팬이라면 결코 놓쳐서는 안될!!! 아름다운 에세이 <그리는 마음>. 여러분도 꼭 마주해보시길 바랍니다.

*본 서평글은 제이 그림책 포럼 카페에서 진행한 서평단 모집 이벤트를 통해, 달그림(도서출판 노란돼지) 출판사로부터 해당도서를 지원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좋아하는 마음을 욕심으로만 채우지 않고 너무 아껴 먼지가 쌓이게 하지 않고 그리하여 서운해지지 않도록.
더는 미루지 않고 쓸모를 더해주는 것. 그게 진짜 좋아하는 마음의 완성이라는 글을. - P111
마음에 사람을 들이는 일도 ‘나’를 돌아보는 일이란 것을 알았다. 한 때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주었다. 불편해도 불편한지 모르고 소중해도 소중한지 잘 몰랐다. 언젠가 부턴가 사람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먼저 내 집의 상태를 보게 되었다. 모든 것이 관계로 이루어진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나와의 관계이지 않을까. 내가 어떤 마음의 상태를 가지고 있는지 유심히 살펴보고, 부지런히 환기를 시키며 쓸고 닦아 지켜내야 하는 것이 내 마음이다. 그래야 그곳에 다른 무엇을 들일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 -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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