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화가에게 project B
존 밀러 지음, 줄리아노 쿠코 그림, 김난령 옮김 / 반달(킨더랜드)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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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을 표현하는 많은 수식어 가운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말이 ‘내 손 안의 미술관’, ‘집에서 펼치는 미술관’이라는 표현입니다. ‘아이들이 보는 그림책이 어떻게 미술관이 되느냐’고 의아해 하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지만 한국인 최초 안데르센 상 수상에 빛나는 이수지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고급 예술의 한계에 갇히지 않고,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에 누구나 소유할 수 있는 예술로서의 그림책의 가능성이 멋있어 보였다”며 그림책 작가의 길을 선택한 이유를 밝힌 적이 있고, 요즘은 그림책 원화가 공공미술관에 전시되는 일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개인적인 공간에서 혼자 오롯이 그림에 빠져들 수 있는 ‘혼자 가는 미술관’ 같은 그림책! 오늘 그 미술관 노릇을 톡톡히 하는 그림책 한 권을 소개해드릴게요.



다채롭고 새로운 세계의 그림책과 그림책 작가들을 소개하는 반달 출판사의 세계 그림책 작가 시리즈 '프로젝트 B'에서 나온 4번째 책입니다.


원서는 <Before I grew up>이라는 제목으로 Enchanted Lion Books 출판사에서 2021년 발표됐고 존 밀러가 글을 쓰고 줄리아노 쿠코가 그림을 그렸습니다. 미국의 작가 존 밀러나 이탈리아 화가 줄리아노 쿠코, 두 작가 모두 살짝 생소해서 국내에 소개된 다른 작품들이 있나 검색해보니 2015년 출간된 <울퉁이와 콕콕이>가 나오네요. 표지만 비교해봐도 오늘 소개해드릴 <어린 화가에게>와는 느낌이 상당히 다릅니다.



<어린 화가에게> 책 표지부터 보실까요?

앞서 '집에서 펼치는 미술관' 같은 책이라고 소개해드렸는데, 겉싸개에 담긴 그림도 그 안에 숨겨진 앞표지도 보면 볼 수록 어떤 의미가 담긴 예술작품 같아 보입니다.


첫 장면에서 그림 작가인 줄리아노 쿠코의 자화상이 등장하고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자라서 화가가 되기 한참 전의 이야기라면서요.



주인공 '나'는 자신이 어릴 때 어떤 활동을 좋아했는지, 무엇을 무서워했는지도 말합니다. 말수는 적지만 자신의 일에 대해선 확고했던 아버지와 키가 크고 아름다운 어머니 사이에서 외롭지 않게 자랐다고해요.


어느 날, 주인공은 도시에 하는 친척 집으로 보내집니다. 그곳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지만 다시 시골로 돌아와요. 도시의 삶은 신기하고 흥미로웠지만 자연에서 주인공 나는 더 많은 에너지를 얻었거든요. 그리고 열두 살 쯤, 주인공은 아버지로부터 자신의 삶의 이정표를 얻게 되는데요...!!


<어린 화가에게>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없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속표지를 차지한 파랑과 마지막 장을 가득 채운 노랑이 주는 여운에 꽤 오랫동안 책을 덮지 못하고 그림 속에 한참을 빠져 있다가 이 그림책에서 신기한 점을 하나 발견해요.



<어린 화가에게> 그림 사이사이에 남겨진 그림 작가 줄리아노 쿠코(Giuliano Cucco)의 서명. 화가가 자신의 작품을 마무리하고서 남기는 사인을 <어린 화가에게> 속 그림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어요. 그제야 이 책의 그림들이 하나의 통일된 스타일이 아니라 어떤 그림은 붓의 터치가 느껴지는 유화인 것도 있고 따스하고 포근한 느낌의 파스텔 드로잉 그림도 있다는 걸 깨닫게 됐습니다. ‘한 명의 작가가 그린 그림일 텐데 왜 화풍이 다를까?’ 궁금증이 일었어요. 이 그림책을 긴 시간 오래 작업해서 화풍의 변화가 있었던 걸까요? 아니면 또다른 시도였을까요??


제 질문에 대한 답은 책 마지막에 존 밀러가 쓴 “이 책이 나오기 까지”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그림들은 줄리아노 쿠코가 어릴 때 그린 게 아니예요. 이 그림들은 줄리아노가 어른이 되어 훌륭한 화가가 되기 위해 수년을 연습한 끝에 탄생한 작품들이지요. 나는 50여 년 전 청년 시절에 로마에서 살았어요. 그때 줄리아노를 만났고, 우리는 마음과 뜻이 잘 맞아 곧바로 친해졌죠. 그리고 함께 어린이책 4권을 작업했어요. 내가 글을 쓰고 줄리아노가 그림을 그렸지요. 하지만 그 책들은 출판되지 못했어요. 그 당시에는 다양한 색이 쓰인 삽화를 찍으려면 비용이 많이 들었거든요. 하지만 50여 년이 지난 뒤 상황은 많이 달라졌고, 미국의 한 출판사에서 우리 책을 출판사고 싶다고 했어요. 나는 이 멋진 소식을 오래전 연락이 끊긴 내 친구에게 하루빨리 전해주고 싶었어요.

하지만 줄리아노를 찾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어요. 오랫동안 수소문한 끝에 줄리아노의 가족과 연락이 닿았지만, (...) 안타깝게도 줄리아노는 2006년에 아내와 함께 로마에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거였어요.

그래도 줄리아노의 아들 조반니와 만날 수 있었어요. 조반니는 아버지가 남긴 많은 작품을 잘 보존하기 위해 정리하는 중이었죠. 대부분이 한 번도 전시한 적 없는 그림이었고, 상당수가 줄리아노의 어린시절을 그린 그림이었어요. 그 그림을 보고 있으니, 내 오랜 친구 줄리아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죠. 나는 그림 한 점 한 점에 담긴 단편적인 이야기를 끌어내 줄리아노의 어릴 적 이야기 한 편으로 엮었어요. 줄리아노의 목소리와 정신을 최대한 담으려고 노력하면서요.

그림책 작업은 먼저 이야기가 완성된 다음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 책은 반대로 그림들 속에서 발견한 실마리를 꿰어 이야기를 완성했어요. 바로 줄리아노의 어릴 적 꿈과 고독과 상상력과 환희가 담긴 이야기를요.

그림책 작업은 이야기가 먼저 완성되거나, 글과 그림이 함께 작업되는 경우가 일반적인데 이 작품은 일찍 세상을 떠난 줄리아노 쿠코 작가의 작품들을 토대로 친구인 존 밀러가 글을 썼습니다. 친구 줄리아노의 어린시절을 떠올리며 꿈꿨을 환희, 노력하며 겪었을 고독과 좌절을 <어린 화가에게> 속에 담아낸거죠.



젊은 시절 함께 예술의 혼을 불태웠던 두 사람의 우정의 깊이를 느낄 수 있을 만큼, 글과 그림은 참 잘 어우러져 있습니다. 줄리아노 쿠코가 남긴 빛을 보지 못한 아름다운 작품들은 친구 존 밀러의 글을 만나 이렇게 아름다운 그림책으로 태어나게 됩니다.


글 역시 무척이나 매력적입니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을 꼽으면, 화가를 꿈꾸는 아이가 아버지를 떠올리며 그린 그린 그림을 보고 빛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연구하는 학자인 아버지가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그림을 그린 아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에요.


"그래. 네가 그 빛을 그렸구나."



아버지가 자신의 그림을 보고 남긴 저 두 문장으로 주인공 나는 화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믿음을 갖게 됩니다. '믿고 가는' 힘은 살아가는 데 아주 중요한 힘이 되고 그 힘은 무척이나 강합니다. 내 가슴을 뛰게 하는 일에 전진할 수 있다는 것, 그 일에 확신한다는 것은 나를 가장 나 답게 만드는 일이니까요.


글 작가 존 밀러가 친구 줄리아노 쿠코의 이름을 가져와 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데, 그림에서 시작해 이야기로 이어지는게 전혀 어색하지 않고 놀라울 만큼 조화롭게 이어집니다. 화면을 가득 채우는 꿈과 배, 그리고 빛... 한 예술가의 창의성이 어린 시절 어디에서 왔는지, 그 가능성의 시작과 어린 시절에 대한 송가인 이 책을 보고 있으면 '아름답다'라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2021 Northern Lights Book Awards에서 최고의 예술상(Winner of the Art Category) 수상작이자 A Marginalian이 선정한 2021년 최고의 어린이 책인 <어린 화가에게>. 이 책 속에 담긴 예술의 힘, 그림책의 힘- 그 아름다움의 힘을 여러분도 꼭 누려보시길 바랍니다.



본 서평글은 반달 출판사에서 진행한 서평단 'B평가' 모집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를 지원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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