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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최고야! ㅣ 북극곰 무지개 그림책 71
토미 드 파올라 지음, 이순영 옮김 / 북극곰 / 2021년 5월
평점 :
가끔 그림책을 읽다가 비슷한 느낌의 음악이나 영화가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그림책도 책을 덮고 나서 예전에 봤던 이 영화가 기억났어요. 2001년에 국내에 개봉한 영화 <빌리 엘리어트>요. (2017년 재개봉)
탄광촌 출신의 소년 빌리가 편견에 맞서 발레리노에 도전하는 내용을 담은 이 영화는 뮤지컬로도 제작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죠. 주인공 빌리는 남자는 강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체육관에 다니며 권투 연습을 합니다. 하지만 권투가 자기 적성에 맞는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죠. 그러다 우연히 발레 수업을 엿보게 된 빌리는 발레에 끌리게 되고, 아버지에게는 권투를 배우러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발레 수업을 다니며 꿈을 키웁니다. 하지만 거짓말은 결국 들통 나고 발레리노를 꿈꾸는 빌리에게 아버지는 이런 말을 하죠.
"남자가 발레라니. 호모나 하는거지."
춤을 추고 싶은 소년과 남자다움을 강요하는 아버지. 영화 속 빌리와 빌리 아버지 같은 모습이 토미 드파올라의 1979년작 <Oliver Button is a Sissy>에도 담겨 있어요. ‘Sissy’는 ‘계집애 같은 사내’를 뜻하는데 국내에서는 2005년 문학과지성사에서 <올리버 버튼은 계집애래요>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가 절판되었고, 이번에 북극곰 출판사에서 <우리는 최고야!>라는 제목으로 표지와 제목을 바꿔 복간되었습니다.

주인공 우리는 조금 다른 성향을 가진 남자아이입니다. 혼자 숲 속을 산책하거나 줄넘기, 책 읽기, 그림 그리기, 종이 인형 만들기나 옷 입는 것을 좋아해요. 활동적인 놀이보다는 혼자서 정적인 놀이를 즐기는 조용한 기질의 아이인 것이죠. 아들의 이런 모습을 보고 아버지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여자애처럼, 남자아이답게…’
영화 <빌리 엘리어트> 속 아버지가 발레를 하고 싶어 하는 빌리에게 권투를 권했듯, <우리는 최고야!> 속 아버지는 다른 남자아이들처럼 공놀이를 하라고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타고난 기질이라는 것이 있고 성향이 있잖아요. 우리는 아버지가 말하는 ‘남자다운 놀이’가 재미있지 않았습니다. 빨리 달리지도, 공을 잘 다루지도 못해서 남자아이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당합니다. 좋아하지 않는 일을 억지로 강요당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놀림거리가 되는 상황은 어린 우리가 감당하기는 힘들었을 거예요.
아들의 성향을 잘 알고 있는 엄마는 그래도 운동을 해야 한다며 아이에게 신체활동을 권하고, 우리는 무용학원에 가게 되었어요. 운동이란 명목 아래 아빠도 특별히 무용 학원에 다니는 걸 허락합니다. 까맣게 반짝이는 탭댄스 구두를 신은 우리. 우리는 연습에 연습을 이어가며 춤에 푹 빠집니다.
하지만 우리의 학교생활은 그리 녹녹치 않습니다. 우리의 반짝이는 탭댄스 구두는 남자아이들 사이에서 또다시 놀림감이 되었고, 벽은 우리를 조롱하는 낙서로 채워집니다. 여자아이라고 놀림 받는 우리는 어떻게 될까요? 우리의 학교생활에 평화가 찾아올까요? 우리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온전히 누릴 수 있었을까요? 아니면 자기 자신다움을 포기하게 될까요?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제목 <우리는 최고야!> 속 ‘우리’를 ‘인칭대명사 '우리(We)'라고 생각했습니다. 앞표지에 웃음 띤 얼굴로 몸을 움직이는 아이와 그걸 지켜보는 고양이가 ‘우리(We)'일거라 여긴거죠. 토미 드파올라의 자료를 찾다가 북극곰 출판사에서 주인공 이름을 ‘우리’라고 의역해 놓은 것을 알았습니다. ‘왜 그랬을까? 이유가 무엇일까?’ 혼자서 조심스레 그 이유를 추측해 보았어요.
’나(I)와 너(You)‘,처럼 확실하게 나뉘어 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포함되는 대상, ’우리‘ 속에 함께하는 존재라는 의미로도 해석되었고, 성별이 명확하게 구분되는 이름이 아니라 중성적인 느낌을 주기 위해 ’우리‘를 사용한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원서와는 다르지만 번역하는 과정에서 우리 독자들의 해석의 다양성, 상상의 즐거움을 주기 위한 북극곰 출판사가 고심의 흔적이라 여겨졌습니다.

토미 드파올라의 다른 작품인 <오른발, 왼발>이나 <위층 할머니 아래층 할머니>등은 노화나 질병에서의 회복, 죽음 등 어려운 주제를 그림책에 담고 있습니다. 주제는 무겁지만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고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그는 최대한 명확하고 단순하게 그림을 그립니다. 그리고 이 책 <우리는 최고야!> 역시 다름과 존중이라는 심오한 주제를 쉽게 그림책에 담아냈습니다.
4살 때부터 이미 자신은 커서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무대에서 노래하고 탭댄스를 출 것이라고 이야기 한 토미 드파올라는 로라 잉걸스 와일더상, 칼데콧 아너상, 뉴베리 아너상, 스미스손메달 수상, 안데르센상 미국 후보지명, 레지나 메달 수상 등을 받으며 거장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그는 평생 270권 이상의 책을 만들었고 이를 계산해보면 55년동안 매해 4권 이상의 신간을 발표한 것이었대요. 예술적 영감과 이야기가 넘쳤던 그가 쓰고 그린 <우리는 최고야!>에 더욱 눈길이 가는 이유는 이 그림책이 그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소수자였던 그는 어린 시절 따돌림 당했던 경험과 탭댄스를 향한 애정을 투영시켜 <우리는 최고야!>를 만들었다고 하는데요, 남들과 다른 취향과 행동으로 괴롭힘을 당했지만, 예술을 사랑하고 춤을 즐길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토미 드파올라는 인터뷰를 통해 가족 덕분이었다고 말한적 있는데요, 그를 지지하고 지원한 가족들이 있었기에, 토미 드파올라는 그림을 그리고 춤을 추며 예술가로서의 자신의 꿈을 펼쳤습니다. ‘여자애같아(Sissy)’라는 단어가 ‘최고야!(Star)' 단어로 바뀐 이유는 편견이 사라지고 다름을 인정받았기 때문이었을 거예요. 남들과 다름을 인정받았고 존중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토미 드파올라의 주옥같은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죠.
2020년 3월, 스튜디오로 사용하던 헛간에서 추락한 후 수술로 인한 합병증으로 토미 드파올라는 8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더 이상 그의 새로운 작품은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작품 속에서 그가 삶에서 깨우친 삶의 지혜와 교훈들은 영원히 이어지리라 믿습니다.

*본 서평글은네이버카페 '책 읽는 마을, 북촌'에서 진행한 서평이벤트를 통해 북극곰 출판사로부터 해당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