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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시인의 하루 ㅣ 북극곰 꿈나무 그림책 74
장혜진 지음 / 북극곰 / 2021년 4월
평점 :
얼마 전 가요계의 핫이슈는 ‘브레이브 걸즈’의 ‘역주행’이었어요. 2017년 발표된 ‘롤린’이란 노래로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기까지 무려 4년이란 시간이 걸렸고, 많은 인터뷰에서 해체 직전까지 가있었다는 말을 했습니다. 오랜 무명기간 동안 몇몇 멤버들은 탈퇴를 했고, 생활고와 미래를 생각해야 했던 남은 멤버들은 자격증을 따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가수로서의 꿈을 접고 현실과 타협하기 직전이었던 것이죠.
‘예술 하면 밥이 나와 술이 나와!’ 과거 어른들이 시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겠다는 자식을 향해 흔히들 내뱉던 말이었죠. 이름을 널리 알리면 좋겠지만 성공하는 이는 극히 소수이고, 나머지는 배를 곪아야 하는 예술가의 길. 사실 예술가나 철학가들만 선택의 딜레마에 빠지는 건 아닙니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표를 받아들고서는 ‘꿈을 실현시킬 과에 소신지원을 하느냐, 졸업 후를 생각해서 안정적인 과에 지원하느냐’에서부터 ‘원하는 일을 하며 사느냐, 안 잘리고 돈 많이 버는 그런 직업을 선택하느냐’ 등... 나이 먹을수록, 세상과 마주할수록 현실과 이상, 돈과 꿈 사이에서 끝없이 고민하는 우리를 만나게 됩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그림책 <꼬마 시인의 하루>도 꿈과 현실 사이의 그 간극을 위트 있게 담아 낸 그림책이에요.

2019년 와우북페스티벌과 네이버 그라폴리오가 주최하는 <제5회 상상만발 책그림전> 수상작인 장혜진 작가의 <어느 무명 시인의 하루>. 하지만 이 책이 2021년 북극곰 출판사에서 '꿈나무 그림책' 시리즈로 출간되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북극곰 출판사 이루리 편집장님의 제안으로 주인공을 바꾸게 되었는데요, 제목부터 '무명 시인'에서 '꼬마 시인'으로 바뀌었고 전체적인 색상도 시크한 무명시인을 나타내던 흑백 대신 꼬마 시인을 나타내는 노랑이 추가되었습니다. 설정이 바뀌면서 그림을 처음부터 새롭게 그려야 했다는데, 그 기간만 1년 반이 걸렸다고 하네요.

어느 날 갑자기 떠오른 검은새 이미지. 그날 이후 검은 새가 장혜진 작가님의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고 해요. ‘검은 새가 애기하는 것은 무엇일까? 무엇을 말하는 것이지?’ 그런 질문을 품은 채 계속 드로잉 작업을 하면서 고민하다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일까?’라는 질문에 도달하게 되었고, 그렇게 이 그림책이 탄생하게 되었답니다. 그래서일까요? 책 표지에도 검은 새가 등장합니다. 마치 우주를 유영하듯 검은 새는 날개를 펼쳐 날고 있고 꼬마 시인은 커다란 검은 새를 타고 있어요. 편안한 듯 눈을 지그시 감고, 입가에는 미소를 머금고 있어요. 날개에는 종이를 끼고 있는데, 꼬마 시인은 잠든 걸까요? 아니면 꿈을 꾸는 걸까요??

시작부터 강렬한 대사가 엄마의 잔소리가 귀에 꽂히는 것 마냥 눈에 꽂힙니다.
“숙제는 다 하고 가는 거야? 예습 복습은? 방 청소는?”
대부분의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하는 말이죠. 하지만 꼬마 시인은 조용히집 밖으로 나가네요. 책상 위에는 <가지 않은 길>이라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집만 남겨둔 채요.

우리의 인생은 늘 선택의 연속이죠. 여러 갈래 길 앞에서 늘 고민하고 선택해야 합니다. 선택한 후에도 가지도 않은 길에 미련이 남아 ‘그때 그 길을 선택했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하며 후회하기도 합니다. 장혜진 작가님이 생각한 '가지 않은 길'은 무엇이었을까요? 지금의 예술가의 길이 아니라 평범한 직장인의 길이었을까요??!!

꼬마 시인은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을 읽고 뭔가가 느껴졌던 것인지, 산책하며 만난 주위의 여러 대상인 작은 꽃 한송이, 길을 걷는 어미 오리와 아기 오리들, 둥지에서 지저귀는 새 가족들을 보고 철학적인 질문들을 되뇌이며 혼자 사색합니다. 그리고 절벽 위에서 아름다운 경치를 바라보며 시인답게 ‘시’를 쓰려 합니다. 하지만, 꼬마시인은 현실의 벽에 부딪히고 마는데요, 꼬마시인은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걸어갔을까요? 아니면 현실과 타협하고 말았을까요??

꼬마시인의 고민의 흔적을 따라 우리도 우리 인생을 돌아보고 질문하게 되는데, 신기하게도 굉장히 철학적인 주제를 담고 있지만 책이 어렵거나 무겁지 않습니다. 곳곳에 뼈 때리는 현실적인 멘트들과 상황들 때문에 '피식-' 웃음이 터지게 되죠. 철학적이면서도 극사실주의를 담고 있는 책이랄까요??
그리고 <꼬마 시인의 하루>에 쓰인 기법에 대해서도 말씀드리고 싶어요. 표지를 장식한 커다란 검은 새도 그렇고, 배경으로 그려진 풀밭이나 나무등이 매끈한 그림이 아니라 거칠면서 질감이 느껴지고, 형태 주위로 비규칙적으로 튀어나간 선들이 보입니다. 장혜진 작가님이 북극곰출판사 인스타 라이브 방송에서 직접 작업 방식을 설명해주셨는데, '프로타주(frottage)기법'을 이용해 연필로 배경작업을 하셨다고 해요.
초등학교 때 한 번씩 해봤던 '동전 무늬 베끼기' 기억나시죠? 저도 동전 위에 종이를 올려두고 연필로 문질러 동전 무늬가 그대로 드러나면 그걸 오려서 친구들과 놀곤 했는데, 그 방식을 전문용어로 '프로타주 기법'이라 칭하답니다. 장혜진 작가님은 이 책 <꼬마 시인의 하루>에서 작품 배경에 이 기법을 활용해요.
저는 '우연히 나타나는 예기치 않는 않은 효과'를 노리는 프로타주 기법과 예술가의 삶이 닮아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사람들은 누구나 자연을 느끼고 사회 현상을 경험하지만, 시인은 거기서 시의 영감을 얻어 시를 창작해내고 철학자는 끝없는 사고와 함께 존재론적인 질문을 풀어냅니다. 예술가들도 음악으로, 미술로, 영화나 춤으로 그것들을 나타내죠. 연필로 문질러 아래에 있는 물체의 무늬가 드러나듯, 예술가들의 끝없는 고민과 노력으로 우리 삶과 결이 닮은 예술작품들이 탄생하는것은 아닌가라고요. 그래서 저는 <꼬마 시인의 하루>가 프로타주 기법을 통해 주제를 잘 드러낸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장혜진 작가님의 첫 그림책인 <꼬마 시인의 하루>. 출판사의 책 소개글에 ‘진지한데 쉽고 웃기고 찡한 그림책’이란 문구가 있었는데, 이보다 더 이 그림책을 잘 설명하지는 못할 것 같아요. 주인공의 진지한 성찰과 독백과는 대비를 이루는 현실 세계 이야기에서는 웃게 되고, 마지막에 마주하게 되는 결말에 찡해집니다.
냉혹한 현실 속에서 예술가로 살아남는 법도 책 속에 슬쩍 제시됩니다. 바로 ‘오늘도 행하는 것! 오늘도 반복하는 것!’. 오늘도 시를 한편 쓰고 잠드는 꼬마 시인처럼, 내일의 꿈을 향해 오늘은 노력해야한다고 이 책은 말합니다. 오늘에 안주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 나날들이 쌓이면 꼬마 시인처럼, 브레이브 걸스처럼, 또 불멸의 예술가들처럼 꿈을 이루는 날이 올테니까요.
*본 서평글은 네이버카페 '책 읽는 마을, 북촌'에서 진행한 서평이벤트를 통해 북극곰 출판사로부터 해당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