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딕 브루너 ㅣ 일러스트레이터 2
브루스 잉먼 외 지음, 황유진 옮김 / 북극곰 / 2021년 2월
평점 :
그림책을 읽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그림책을 고르던 어른들이 그림책의 매력에 빠지며 자기 자신을 위해 그림책을 찾기 시작한 것이죠. ‘0세부터 100세’까지 누구나 쉽고 편하게 누릴 수 있는 그림책의 세계. 그래서 최근 그림책을 공부하는 분들도 많아지고, 작가 연구모임이나 강의를 온․오프라인에서 쉽게 찾을 수 있어요. 한 작가의 생애와 작품을 살펴봄으로써 작품 더 깊고 폭넓게 이해할 수 있거든요. 저도 몇 년 째 이어가고 있는 그림책모임에서 작가 연구를 매달 이어왔는데, 이번에 이 책을 만나고 ‘왜 이 작가를 빼놓고 있었지?’라는 생각을 했어요.
다섯 살 아래 막냇동생이 아기였을 때도 이 캐릭터가 그려진 그림책이 저희 집에 있었고, 세월이 훌쩍 지나 제 아이가 아기였을 때도 이 그림책을 읽어줬거든요. 손 안에 쏙 들어오는 앙증맞은 사이즈, 길지 않은 문장과 단순한 캐릭터, 선명한 색감! 전 세계 아이들이 처음 만나는 그림책 중 한 권이고, 반 백년 넘게 사랑 받아온 캐릭터를 탄생 시킨 작가인데 말입니다.

바로, 딕 브루너!!!
이름을 듣고 사진을 봐도 잘 모르시겠다고요??
그러면 이 작가가 탄생시킨 캐릭터를 한번 만나보시죠. 그럼 단번에 ‘아하!’ 하실거예요.

네, 바로 ‘미피’입니다.
그림책이 아니더라도 미피는 우리 생활 곳곳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각종 문구류에서부터 도시락, 그릇, 조명, 침구류, 물티슈, 아이들의 기저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상품 속에 녹아 있어요. 누구나 알고 누구에게나 친근한 미피지만, 미피가 어떻게 해서 탄생했는지, 어떤 변화의 과정을 거쳤는지 아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북극곰에서 출간된 이 책 <딕 브루너>는 'The Illustrators' 시리즈 중 두 번째 책 입니다. 지난해 영국의 그림책 작가 <주디스 커>를 시작으로 <딕 브루너>가 시리즈의 두 번째라고 하는데요,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그림책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 퀜틴 블레이크 경이 이 시리즈의 자문은 맡았고, 영국 왕립예술대학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하고, 20년 가까이 어린이 책을 쓰고 그린 작가 겸 일러스트레이터 브루스 잉먼(Bruce Ingman)과 미피를 비롯한 다양한 아동 도서 편집자로 활동해 온 라모나 레이힐(Ramona Reihill)이 공동 집필했습니다. 이 책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딕 브루너라는 일러스트레이터의 전기이자 그의 작품들에 대한 탐구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차례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딕 브루너의 어린시절, 가족사, 성장과정, 일러스트레이터로 행보 등이 다양한 사진, 작품들과 함께 실려 있어요. 딕 브루너의 ‘미피’ 외에도 그가 완성한 초기 출판 작업물들, 포스터 디자인 등이 담겨 있는데, 양장본으로 꽤 두꺼운 책이지만 일러스트만 116컷이 담겨 있어서 편안하고 부담 없이 책을 볼 수 있어요.
영미권 작가들이 익숙한 탓에 미피를 탄생시킨 딕 브루너도 그렇겠지 넘겨짚고 있었는데요, 딕 브루너는 1927년 네덜란드 중부 위트레흐트에서 태어났습니다.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나 피트 몬드리안과 함께 네덜란드 최고의 예술가로 꼽히며, 네덜란드 작가 중 안네 프랭크 다음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번역된 작가라고 해요. 2017년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32권의 미피 그림책은 50개 이상 언어로 번역되어 8,500만부 이상 팔렸다고 하니, 이제 네덜란드 하면 ‘풍차나 튤립’보다 ‘딕 브루너와 미피’가 자연스레 떠오를 것 같아요.
1955년에 탄생한 미피는 딕 브루너가 아들과 떠난 첫 가족 여행지에서 시작되었다는 점, 딕 브루너가 네덜란드 출판사 집안의 장자였다는 것, 아내와의 인연과 현대 미술과의 조우 등 딕 브루너나 미피에 관심 있었던 독자라면 읽고 즐길만한 수많은 이야기들이 이 책 한권에 모두 담겨 있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은 [영향을 받은 작품]이란 챕터였는데, 등장하는 이름마다 너무나 놀라웠습니다. 앙리 마티스와 페르낭 레제, 바르트 반 데르 레크, 몬드리안, 헤리트 리트벨트, 빌럼 산드베르흐 등등... 언급되는 인물들이 대부분 현대 예술에 한 획을 그은 인물들이었어요. 이들에게서 현대적 영감을 받은 딕 브루너가 선택한 서체, 그어낸 선, 단순화한 도형과 색상을 담아낸 <미피>시리즈는 단순히 아이들 눈에 맞춘 그림이 아니라 현대 예술의 집합체였던 것이죠.


그렇게 탄생한 ‘미피’. 본래 네덜란드 이름은 ‘네인티어’, 작은 토끼의 줄임말이랍니다. 초기 드로잉이 지금의 미피와 다르다는 것과 첫 그림책 판형도 지금의 판형과 다르다는 점은 무척 흥미로웠구요, 그가 어떤 기법으로 미피를 탄생시켰는지도 사진으로 상세히 나와 있어서, 그림책 연구 하시는 분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미니멀리즘 일러스트레이션의 궁극점을 보여준 북유럽 감성의 미피. 1955년 6월 21일에 탄생한, 반 백살이 훌쩍 넘은 미피지만 이 작은 토끼의 이야기는 여전히 우리 아이들에게 읽혀지며 그 생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딕 브루너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유산은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이죠.
‘미피’가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가 궁금하시다면, 이 책 <딕 브루너>를 꼭 찾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본 서평글은 네이버카페 '책 읽는 마을, 북촌'에서 진행한 서평 이벤트를 통해
북극곰 출판사로부터 해당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