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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의 장례식 ㅣ 고래뱃속 창작그림책
치축 지음 / 고래뱃속 / 2020년 11월
평점 :
관혼상제라는 말을 한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冠 갓 관, 婚 혼인할 혼, 喪 죽을 상, 祭 제사 제’- 이 한자들을 보면 바로 알아채실 텐데요,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꼭 한 번은 겪는 일들입니다. 성인이 되어 남자는 상투를 올리고 갓을 쓰고, 여자는 비녀를 꽂는 성인의 의식부터 결혼할 때 하는 의식, 사람이 죽었을 때 치르는 의식과 조상을 위해 제사를 지내는 의식을 말합니다. 예부터 우리 조상들은 ‘관혼상제’를 중시해 왔는데, 이 의식들이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 ‘예’를 갖추는 것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그림책을 마주하고서 그 생각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죽음을 마주하고, 죽은 이를 기리기 위해 치르는 의식 중 하나인 ‘장례식’이 인간만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거든요. 바로 치축 작가의 <동물들의 장례식>입니다.

표지의 푸른색들이 강렬하게 다가오죠? 희미한 어둠 속에서 하얗게 빛나는 파란 시간대에(*안 에르보 작가의 <파란시간을 아세요?>) 늑대 한 마리가 하늘을 향해 하울링(howling)을 합니다. 울부짓고 휘몰아치는... 하울링. 저는 이 표지를 처음 접했을 때, 김소월 시인의 <초혼>이란 시가 떠올랐습니다. '초혼'의 사전적 의미가 ‘사람이 죽었을 때에, 그 혼을 소리쳐 부르는 일’이지요.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겠다는 의지를 표현하는 부름의 의식이며, 정말로 죽었는지 확인하는 절차라고 하는데요,

이 표지 속 늑대는 마치 김소월의 시 속의 주인공처럼 설움에 겹도록 누군가를 부르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늑대의 울음은 멀리 멀리 퍼져나갑니다. 영정사진의 검은띠를 두른것처럼 앞표지에는 파란색 바탕에 하얀 선으로 테두리가 쳐져 있습니다. 그리고 표지 속 반짝임을 따라 속표지를 넘기면 이야기는 시작 됩니다.



응급실로 급하게 발길을 재촉하는 여성과 그 손을 맞잡은 아이. 기다란 복도와 초록 가운을 입은 사람들. 수술실이 언뜻 보이고 수술실 문 앞을 누군가는 지키고 있습니다. 절망한 듯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는 사람, 초조함을 견디지 못하고 서서 계속 기도만 하게 되는 순간. 병원과 수술실 앞... 어떤 상황인지 대번에 알아차리실 거예요
다음 장 그림은 더욱 여실하게 그 상황이 더 자세히 드러납니다. 지는 해와 사이렌을 울리며 급히 달려가는 구급차. 네, 맞아요. 죽음을 암시하는 장면입니다. 작가의 말대로 죽음의 순간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매일 24시간이 ‘무한 리필’ 된다고 착각하는 우리들에게 죽음은 늘 마주치고 싶지 않은 순간이고, 어떻게 해서든 피하고 싶은 단어입니다. 특히 무방비로 찾아온 ‘죽음’이라며 그 충격과 공포는 더 커지죠.
그래서 사람들은 죽은 이를 떠나보내는 ‘장례식’을 통해 죽음의 슬픔과 충격, 죽음에 대한 공포를 다독입니다. 그리고 그런 행동들은 우리가 미물이라 여기는 동물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어요. 사회성이 높고 인간과 비슷한 지능을 갖고 있다는 돌고래들과 영리하다고 알려진 까마귀, 무리지어 사는 늑대, 육지에 사는 동물 중 가장 큰 코끼리, 인간과 DNA가 98%일치한다는 고릴라까지... 여러 동물들이 죽음을 마주하는 순간을 작가는 정성스레 그려냈습니다.

그들만의 애도방식을 보여주며 작가는 말합니다. 그들의 장례의식과 우리의 장례의식이 별반 차이가 없다고요. 그 방식만 조금 다를 뿐, 동물들의 장례식은 모두 죽은 이를 기억하고 마음에 담기 위해 행하는 것이고, 그 ‘죽음’이 영원한 이별, 삭제, 소멸이 아니라 ‘순환’의 의미를 갖고 있다고 힘주어 말하고 있습니다.
꽤 오랜 기간 이 작품에 매달렸다는 작가의 말을 인터뷰 기사를 통해 읽었는데요, 2012년 경에 한 신문에 실린 동물들의 장례식 기사를 보고 이 그림책을 기획하게 되었다고 해요. 슬픔을 나누고 명복을 빌며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의미를 동물들의 장례식을 통해 표현하고 싶었다는 치축 작가. 예상하지 못한, 감당할 수 없는 이별을 마주한 분들께 이 그림책 <동물들의 장례식>이 죽음을 마주하고 아파하는 이들에게 자그마한 위로가 되길 바라봅니다.
*본 서평글은 제이 그림책 포럼 카페에서 진행한 서평단 모집 이벤트를 통해, 고래뱃속 출판사로부터 해당도서를 지원 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