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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메유의 숲 - 이상한 오후의 핑크빛 소풍 / 2020 볼로냐 라가치상, 앙굴렘 페스티벌 최고상 수상작 ㅣ 바둑이 폭풍읽기 시리즈 1
까미유 주르디 지음, 윤민정 옮김 / 바둑이하우스 / 2020년 11월
평점 :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 보았던 대부분의 TV 애니메이션이나 명작동화, 옛이야기들까지... 대부분의 주인공들은 현실에 안주하기보다는 미지의 세계로 모험을 떠났습니다. 주인공들의 여정은 늘 쉽지 않았어요. 곳곳에 도사리는 위험과 유혹을 이겨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고난과 역경을 넘어선 주인공은 결국에는 성장합니다. 고통을 이겨내고 경험이 쌓이며 한층 성숙해지는 것이지요.
오늘의 책 <베르메유의 숲>에 등장하는 주인공 ‘조’도 다른 주인공들 마찬가지로 현실에 불만을 느끼고 미지의 세계로 모험을 떠납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성장하는데요, 핑크빛 면지를 넘기면 그 흥미진진한 모험의 세계가 펼쳐집니다. 어른에게는 잊고 있던 모험의 세계를 떠올리게 하고, 아이들에게는 핑크빛 상상의 세계가 펼쳐지는 <베르메유의 숲>, 지금 소개해드리겠습니다.

표지 색이 참 예쁘죠? 파스텔 톤 수채화로 채색된 분홍, 파랑, 노랑. 이 표지를 처음 봤을 때, 저는 골라먹는 재미가 있는 아이스크림 전문점에서 파는 ‘이상한 나라의 솜사탕’이 떠올랐습니다. 한 입 베어물면 입 안에서 사르르 녹아 달콤함만 남기고 사라지는 솜사탕. 그 솜사탕 색과 닮아 있는 <베르메유의 숲>. 이 책에는 '이상한 오후의 핑크빛 소풍'이라 부제도 붙어 있답니다.

이 책을 서점에서 보신 분이라면 처음에 두툼한 두께 때문에 놀라셨을 텐데요, 155쪽에 달하는 <베르메유의 숲>은 그래픽노블 작품입니다. 시각적인 표현을 뜻하는 ‘그래픽’과 기승전결 서사를 뜻하는 ‘노블’의 합성어로 만화책의 한 형태라 보시면 되는데요, 일반 만화보다 철학적이고 진지한 주제를 다루고 있고, 스토리에 완결성을 가진 단행본 형식으로 발간되는 것이 그래픽노블의 특징이라고 해요. (*나무위키,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
만화책이지만 살짝 두껍고 소설처럼 뚜렷한 서사와 주제 의식도 지닌, 그래서 어른 아이 모두 함께 보기에 더 없이 좋은 책이에요.


앞표지에 등장한 캐릭터들이 <베르메유의 숲> 이야기를 이끌어 갑니다. 앞표지 노란머리 친구가 당찬 주인공 ‘조’이고요, 무지개빛 장화를 신은 다리 여섯 개의 강아지 '퐁퐁', 츤데레 매력을 가진 여우 ‘모리스’랍니다. 뒤표지에서는 여러 조연들도 만날 수 있답니다.
이야기는 한적한 숲, ‘조’를 찾는 아빠의 부름으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캠핑을 온 가족의 모습이 보이는데요, 신데렐라처럼 새언니들과 새엄마를 얻게 된 조는 새로운 가족과 함께 하는 이 가족여행이 불편합니다. 그래서 조는 배낭을 메고 홀로 숲 속으로 떠납니다.
그 숲에서 우연히 꼬마요정을 만나 신비로운 세계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가 회중시계를 가진 조끼 입은 토끼를 보고 호기심에 토끼굴 속으로 내려간 것처럼, 조 역시 요정들과 함께 터널을 통과해 숲 속 신비로운 세상 속으로 발을 들이게 됩니다.
환상적이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들이 가득한 숲 속 세계는 처음에는 즐겁고 신기했어요. 하지만 평화로워 보이는 숲 속 세상도 현실과 마찬가지로 크고 작은 문제들로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숲 속에는 자유롭게 들판을 달리는 알록달록 조랑말 ‘베르메유’를 가두어 자신의 생일 파티를 빛내려는 독재자 고양이 ‘마투 황제’가 있고, 그에게 반대하는 이들은 모두 잡혀갑니다. 잡혀간 가족과 친구들을 구하기 위해 맞서 싸우는 여우 모리스와 숲속 친구들. 그들은 가족과 친구들을 마투 황제의 손에서 구해낼 수 있을까요? 갇혔 있던 베르메유들은 어떻게 될까요? 주인공 소녀 조는 모험의 끝에서 무엇을 얻게 될까요?

조각조각 나눠진 프레임 안에 가득한 그림들과 이야기들. 작가 까미유 주르디는 다채로운 시점과 화려한 색채로 단조로움을 깨며 독자들의 눈길을 끝까지 사로잡습니다.
특히나 이 책 표지를 보면 "2020 볼로냐 라가치상"이라는 스티커가 보이실거예요. 라가치상 코믹부문 수상작이구요, 프랑스 5대 국제문화행사 중 하나로 자리 잡은 앙굴렘 국제만화 페스티벌에서도 아동문학부문 최고상을 수상했다고 합니다. 재미와 감동, 문학성과 예술성 모두 잡은 작품이라는거죠!

제목에도 쓰인 다채로운 색상의 조랑말 '베르메유'. 처음 책을 접하기 전에는 혹시 프랑스에 있는 '베르사이유 궁전 주변의 숲에서 따온건가?' 궁금했었는데, 책 마지막에 그에 대한 언급이 나와 있었어요.
메르베유.
경이롭고 경탄할 만하며 신비롭고 아름다운 것을 뜻하는
프랑스 단어. ‘메르베유’.
앨리스가 토끼굴을 통해 빠진 환상의 나라,
신비의 나라 원더랜드를
프랑스에서는 ‘메르베유의 나라’라고 표현한답니다.
<베르메유의 숲> 옮긴이의 작은말 중에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뜻하는 프랑스어 <Les aventures d’Alice au pays des merveilles>에서 영감을 받아 언어유희로 탄생한듯한 베르메유. 그래서인지 이 작품 곳곳에 고전에 대한 오마쥬와 체취 같은게 느껴집니다.
마투 황제의 모습에서는 <피터팬>에 나왔던 덜 성숙한 어른인 ‘후크 선장’이 엿보이고, '망각의 평원'에 머물러 있는 길 잃은 아이들의 모습에선 네버랜드에 머물던 집없는 소년들이 떠오르죠. 모험의 마지막 관문인 '할망구들의 막집'은 엣이야기 속 영웅들이 사건 해결의 관문 격인 마녀들(!)의 모습도 스칩니다.
가두면 빛을 잃고, 강요 받는 것을 질색하는 영롱한 베르메유.
고단한 삶에 쫓겨 억지로 무언갈 하고 있는 내 자신도 점점 빛을 잃는 것은 아닌지,
마음 속 상상의 친구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 있는 삶을 사는 건 아닌지...
마치 모험을 망각한 우리의 삶은,
잡혀서 억지로 해야만 하는 베르메유의
어색한 공연을 보는 것 같습니다.
<베르메유의 숲> 옮긴이의 작은 말 중에서
혹시 여러분도 '갇혀서 빛을 잃은 베르메유' 같지 않으신가요?
단조로운 삶에 갇혀 잊어버린 나의 꿈, 잃어버린 나의 색...
어린 시절의 그 느낌을 다시 되찾고 싶으시다면, 이 핑크빛 책을 펼쳐보시길 바랍니다.
베르메유들이 뛰노는 그 곳, <베르베유의 숲>에서 그 시절의 아련함과 즐거움을 다시 누리게 되실거예요.
*본 서평글은 꽃님이네책장과 바둑이하우스에서 진행한 서평이벤트를 통해,
해당도서를 지원 받아 작성했습니다.
멋진 그래픽노블 작품을 발빠르게 출간해주신 바둑이하우스 출판사 관계자 여러분과
서평 이벤트를 진행해주신 꽃님이네책장 관계자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