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 열매 날개달린 그림책방 39
미야자와 겐지 지음, 오이카와 겐지 그림, 박종진 옮김 / 여유당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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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다양한 연령층에서 골고루 사랑받는 대상에게 우리는 자연스레 ‘국민'이라는 수식어를 붙입니다. 국민MC, 국민가수, 국민배우, 국민여동생, 국민첫사랑 등등….

오늘 만나 볼 <은행나무 열매>를 쓴 미야자와 겐지도 일본에서 ‘국민작가’라 불립니다. 국내에서는 <은하철도 999>의 모티브가 된 <은하철도의 밤>과 <비에도 지지 않고>가 알려져 있죠. 특히 전후 시기 피폐했던 일본인들의 마음을 다독였던 시 <비에도 지지 않고>는 우리나라에서 윤동주 시인의 <서시>가 그러하듯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고, 일본 전역에 시비가 세워질 만큼 사랑받고 있다고 해요.



<비에도 지지 않고>는 우리나라에도 두 권의 그림책으로 출간될 만큼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시에서 그는 사람들에게 ‘멍청이’라고 불리고 싶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내 것을, 나만의 것을 챙기는 사람보다는 남을 위해 나누고 희생하고 그것을 실천하겠다는 자신의 삶의 철학을 담아냈어요.



여유당 출판사에서 [미야자와 겐지 컬렉션1] <비에도 지지 않고>에 이어 [미야자와 겐지 컬렉션2] <은행나무 열매>를 2020년 이 가을에 선보였는데요, 미야자와 겐지 작가의 ‘희생과 나눔, 함께’라는 그의 철학은 그의 짧은 동화 작품인 <은행나무 열매>에서도 엿볼 수 있어요.



노란 은행열매가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데요, 검고 굵은 선으로 표현된 은행나무 가지에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서 있는 꼬마열매들이 보이시죠? 이 책은 은행나무가 엄마로, 은행열매들은 그 아이들로 의인화 되어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귀여운 그림 때문에 ‘가볍고 아기자기한 이야기 이겠구나.’ 생각하셨다면 오산입니다. 계절의 변화를 보며 미야자와 겐지 작가는 인생, 통과의례, 이별과 성장을 이 이야기에 녹여냈거든요.



열매가 가득달린 은행나무 가지가 그려진 면지를 넘기면, 동트기 직전의 새벽을 묘사한 장면으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별이 가득한 하늘, 사락사락 소리 내며 내리는 서리, 빛이 아직 비치기 직전의 새벽이라 그림은 검은색 바탕에 하얀 선으로 표현되어 있지만, 하늘도, 별도, 들판도, 은행나무도 글을 소리내어 읽다보면 어느새 색이 입혀집니다. 연한 도라지 꽃잎같은 색상으로 물드는 새벽하늘로 말이죠.



엄마 은행나무는 올 한해 천명의 은행열매 아이들을 키워냈고 그 아이들이 오늘, 북풍에 몸을 싣고 각자의 길을 떠나는 납니다.

엄마는 아이들을 떠나보내야 합니다. 하지만 엄마는 그 슬픈 마음을 아이들에게는 내색하지 않습니다. 그저 부채모양의 황금 머리카락을 모조리 떨굴 뿐... 아이들의 새로운 출발을 위해 덤덤히 뒤에서 응원하고 격려하는... 우리 어머니들의 모습과 같습니다. 먼 길을 여행하며 속앓이를 할 아이를 위해 박하물을 준비하고, 추위를 피하기 위한 외투와 구두, 빵도 챙겨줘요. 해가 떠올라 아이들이 떠날 시간이 되자, 죽은 듯 가만히 서 있는 엄마 은행나무. 담담히 이별을 받아드립니다.



반면에 엄마를 떠나 새로운 곳으로 떠나가게 될 은행나무 열매들은 모험을 앞두고 분주합니다자신의 원대한 계획을 이야기하는 아이도 있고, 외투를 잃어버려 당황한 아이도 있어요. 하지만 누구 하나 뒤쳐지거나 버려지지 않습니다. 내가 먼저, 더 빨리, 더 멀리 떠나가겠다고 하지 않습니다. 짐을 빼먹고 동동거리는 아이가 있으면 자기 것을 함께 하자고 도닥입니다. 너를 위해 내 것을 기꺼이 내어주는 아이들. 서로의 것을 바꿀 줄도 알고, 부족하면 함께 나눌 줄도 아는...작가가 바라는 '함께 하는 세상'을 열매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그려냈습니다.

좁은 교실 안에서도 아이들끼리 경쟁하고, 등수가 매겨지고, 친구가 조금이라도 실수를 해야 내가 더 돋보일 수 있는다는 것을 아는 '나 먼저, 나부터'를 외치는 요즘 아이들과는 달리 '너와 함께', '우리 같이'를 보여주는 열매 아이들의 모습에 마음 한켠이 따뜻해집니다.

은행나무 엄마는 그렇게 천명의 열매 아이들과 이별을 했고, 아이들은 북풍에 몸을 맡겨 여행을 떠나갑니다. 은행나무는 빈 가지만이 남아 있지요. 하지만 이야기의 마무리가 쓸쓸하거나 외롭지 않습니다. 은행나무 엄마의 삶도,새로운 곳에 터를 잡을 열매 아이들의 삶도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고, 그들의 인생은 다음해, 그 다음해에도 각자의 자리에서 반짝반짝 빛날테니까요.



국민작가의 글에 그림을 그린다는게 쉽지 않았을텐데, 미야자와 겐지와 같은 이름을 가진 일러스트레이터 오이카와 겐지가 멋지게 그려냈습니다. 때로는 덤덤하게, 때로는 아기자기하게 은행나무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담아냈는데요, 검정과 노랑, 회색빛을 기조로 은행나무 엄마, 새출발을 준비하는 열매 아이들, 그리고 북풍까지 위트있게 표현해 냈어요.


순수함을 지닌 '어린왕자'같은 미야자와 겐지의 작품들은 앞으로도 여유당 출판사의 [미야자와 겐지 컬렉션]을 통해 소개될 것이라고 합니다. 미야자와 겐지의 작품들은 철학적이고 어렵다는 평이 많은데, 다행히 이 그림책 마지막 장에는 박종진 번역가의 작품 해설도 친절하게 실려 있어요. 그러니 부담갖지 마시고, 올 가을은 <은행나무 열매>를 찬찬히 음미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책은 꼭 소리 내서 읽으시구요. 그래야 미야자와 겐지의 감성이 더 짙게 베어나오거든요~♡

이상, 이 가을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은행나무 열매> 서평글이었습니다.

* 본 서평글은 여유당 출판사에서 진생한 서평 이벤트에 당첨되어, 해당도서를 지원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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