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어나다 인생그림책 6
장현정 지음 / 길벗어린이 / 2020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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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퀄(prequel) 이라는 말은 영화에서 자주 쓴다. 유명 오리지널 영화에 선행하는 사건을 담은 속편을 뜻하는데, 2020년 9월에 출간된 <피어나다>를 읽으면서 <피어나다>는 장현정 작가의 첫 작품 <맴>의 프리퀄이 아닐까?!’라는 생각했다.


2015년 여름, 서점에서 처음 만났던 <맴>은 여름의 태양만큼 강렬했다. 매미 소리를 시각적으로 표현해 깊은 인상을 남겼는데, 책장을 펼치면 매미의 울음소리가 입체 서라운드 사운드로 울러 퍼지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 들게 했다.

내가 <맴>으로 그해 여름을 나고 있을 때, 장현정 작가는 독자들을 위한 깜짝 선물로 매미 허물을 수집하러 이 동네 저 동네, 이 산 저 산을 떠돌아 다녔다고 한다. 그리고 첫 책 <맴>이 그랬듯, 두 번째 책 <그래봤자 개구리>가 그러했듯 작고 보잘 것 없는 ‘매미 허물’에 꽂혀 <피어나다>를 쓰게 됐다고 한다.



동사 ‘피어나다’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생각보다 여러 상황에 이 단어가 쓰인다. 가장 일반적으로 생각나는 것은 꽃이 피게 되었을 때이다. ‘기사회생’의 의미로 꺼져 가던 불이나 연기 따위가 다시 일어날 때, 거의 죽게 된 사람이 다시 깨어났을 때, 곤란한 형편이 차츰 풀리게 됐을 때, 상황이 성하거나 좋아질 때도 ‘피어나다’라는 말을 쓰고 웃음이나 미소가 드러날 때 역시 ‘웃음꽃이 피어나다’라는 표현으로 이 단어를 사용한다. 작가는 다분히 중의적이고 넓은 의미로 ‘피어나다’를 제목으로 선택했을 것이다.



앞표지에는 꽃 봉우리에서 꽃잎이 툭하고 터지듯, 매미도 등껍질을 터트리고 젖은 날개를 펼쳐지고 있다. 젖은 날개를 바람에 말리는 순간을 그린 것인데 날개 부분만 볼록하게 튀어나오는 효과를 주는 에폭시라는 재료로 인쇄되어 있다. 그래서 실제로 갓 ‘피어나’ 젖어 있는 날개처럼 반짝 반짝 빛나고 있다.



면지에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코를 박고 킁킁 냄새를 맡으면 흙냄새가 훅 올라올 것 같은 짙은 갈색의 흙 속, 빨간 점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존재가 이 책의 주인공이다. 땅 속에서 7년의 시간을 인내하는 매미 유충! 식물의 씨앗이 떡잎을 밀어 ‘톡’ 하고 땅을 뚫고 나오듯, 매미 유충이 선탈을 하기 위해 땅 위로 나온다. 7년간의 흔적을 남기듯 땅 위에 자신 몸 크기만큼의 구멍을 뚫고 말이다. (뒷면지 그림으로 남겨져 있다!) 매미유충은 성충으로 선탈할 곳을 찾는다. 나뭇가지와 나뭇잎 뒤, 활짝 핀 꽃망울, 가느다란 외줄 등 매달릴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피어날’ 장소가 된다.

물론 7년이란 시간을 모든 매미유충들이 보상받는 것은 아니다. 하늘을 나는 참새가, 포식자 사마귀가, 떼 지어 다니는 개미가 선탈 중인 매미를 공격하기도 한다. 이 모든 역경을 거친 후에야 한 송이 꽃이 피듯, 비로소 매미는 ‘피어난다.’


그렇게 하나 둘 피어난 매미들은 <맴>에서 그랬듯, 한여름 자신의 삶을 열정적으로 노래한다. 뜨겁게 피어난 매미의 짧지만 강렬한 한 철인 것이다.

한 폭의 동양화처럼 하얀 여백이 가득한 그림에, 한편의 시를 읽는 것처럼 최소한의 단어로 표현된 문장들. 때로는 의성어와 의태어로만 이야기는 진행되는데 작가의 이런 표현 방식이 매미의 모습에 더욱 집중하고 몰입하게 만든다.


작가가 이 책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마음은 작가의 말에서 들어난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자세히 보면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매미가 벗어 놓은 옷, 텅 빈 공간 속에서 수많은 감정들을 보았습니다.

그 흔적을 같이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저도 피어나 보려고 합니다."


텅 빈 공간은 피어나기 위한 노력의 흔적이었을 것이다. 7년을 땅 속에서 웅크리며 피어날 ‘때’를 기다린 매미의 인내였을 것이다. 작가 역시 <피어나다>에 5년을 공을 들였다. 같은 장면을 수십번 반복해서 그렸고, 제목과 글도 수없이 다듬어 냈을 것이다. 그렇게 2020년, 드디어 장현정 작가의 세번째 그림책이 피어나게 되었다.



앞표지에서 활짝 피었던 꽃은 뒤표지 그림처럼 언젠가는 시들고 만다. 하지만 활짝 피어본 꽃은 그 자리에 자신의 씨앗을 떨어뜨릴 것이고, 다시 자신의 계절을 땅 속에서 기다릴 것이다. 한 여름 자신의 존재감을 빛내며 가장 화려한 시절을 맛 본 매미 역시 마찬가지다. 한 여름을 점령했던 매미는 땅 속에 자신의 알을 남기고 사라지겠만 그 알은 다시 깨어날 것이고, 우리는 매해 여름 우렁차게 울려퍼지는 매미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피어나길 바라며...부족한 글을 마무리 한다.

*본 서평글은 길벗어린이 출판사에서 모집한 서포터즈로 선정되어, 해당도서를 지원 받아 작성했습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자세히 보면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매미가 벗어 놓은 옷, 텅 빈 공간 속에서 수많은 감정들을 보았습니다.

그 흔적을 같이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저도 피어나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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