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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마지막 여름
글로리아 그라넬 지음, 킴 토레스 그림, 문주선 옮김 / 모래알(키다리) / 2020년 8월
평점 :
BTS의 Dynamite가 빌보드 싱글차트 상위권에서 머무는 요즘, 오늘은 그림책 <할아버지의 마지막 여름>을 소개하기에 앞서 올드팝 한 곡을 언급하고 싶어요. 그림책 표지를 보고 저는 이 노래가 떠올랐거든요.
"I am sailing, I am sailing, home again 'cross the sea.
I am sailing, stormy waters, to be near you, to be free."
Rod Stewart(로드 스튜어트)의 Sailing 중에서
네. 사람들은 종종 인생을 긴긴 항해에 비유하곤 해요. 거칠고 험한 망망대해에서 작은 배를 타고 목적지를 항해 가는 여정......사방이 똑같아 보이는 짙푸른 바다 위에서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 나를 이끄는 누군가가 있다면, 참으로 든든하고 안심될 것입니다.
오늘의 그림책 <할아버지의 마지막 여름>는 그런 '항해'를 비유해서 그리고 있고, 개인적으로는 표지 그림은 책 내용의 전부를 담고 있다고 생각해요.


빨간색 벽돌담으로 둘러싸인 마당 가운데 정겨운 빨래줄이 보이고, 커다란 이불보와 바지, 속옷 등이 널려있습니다. 햇살 가득한 날, 담벼락 아래에는 검은 고양이가 눈을 감고 낮잠을 청하고 있고 한 아이가 보이죠? 작은 배를 잡고 이불보를 바다 삼아 항해 놀이 중인데요, 그 아이를 지탱하는 것은 실루엣만 비치는 그림자 어른입니다. 목마 태우고 아이의 항해를 함께 하고 있어요. 아이가 흔들리지 않게 방향을 잃지 않게 이끌어 주고 있는 존재죠.
원제목은 <De quan l'avi va desaparèixer>입니다. 카탈루냐어로 avi가 '할아버지'이고요, 구글번역기의 도움을 받았더니 ‘할아버지가 사라진 이후로’라고 해석되네요. 우리말 제목인 <할아버지의 마지막 여름>과는 살짝 다르죠? 앞표지가 할아버지 모습이 이불보에 살짝 사라진 그림이라 ‘사라졌다’는 의미의 중의적 표현인 것 같기도 해요.
제목 <할아버지의 마지막 여름>을 보고 우리는 어렴풋이 추측합니다. ‘저 이불보 뒤 실루엣으로 드리운 사람은 할아버지일 것 같고, 아이와 할아버지가 함께 보내는 여름 이야기이겠구나.’라구요.


친구처럼 지내는 할아버지와 아이. 두 사람 사이에는 추억거리가 많습니다. 여름이 오면 늘 아이를 바다로 이끌었던 할아버지는 아이와 많은 것들을 함께 했습니다. 모래사장에서 파라솔을 펼치고, 햇빛 차단제를 등에 바르고, 바다 위를 떠다니는 배를 셌습니다. 헤엄도 치고, 노래도 부르고 모래성도 함께 만들었어요.
하지만 늘 함께 할 것 같은 할아버지는 조금씩 변합니다. 조금씩 잃어가는 것들이 늡니다. 하지만 아이는 할아버지의 모든 것을 기억합니다. 할아버지가 전한 이야기도 잊지 않습니다. 할아버지와 함께 했던 모든 순간들은 다시 이어져요.
글로는 표현되지 않았지만, 첫 장면에 그려진 가족의 모습과 배경도 유심히 봐주셨으면 해요. 할아버지는 뭐하는 사람이었는지, 바다에 대해 잘 알고, 왜 그렇게 바다를 좋아하는지에 대한 단서들이 다 들어 있어요. 그리고 죽음과 탄생, 삶의 이어짐이 첫 장면에 복선으로 모두 담겨져 있죠. (계단을 오르는 고양이까지도요.)
“마지막”이란 단어가 들어간 제목 때문에 아마도 책을 펼치기 전에 결말을 예상하신 분들도 계실거예요. 하지만 마냥 슬프지만은 않습니다. “찬란한 슬픔의 봄”이라는 모순적 표현처럼 슬프지만 절망적인 슬픔이 아니라 그것을 초월하는 아름답고 의미있는 시작과 이어짐이 이 책 속에 담겨져 있거든요.
이 그림책을 다 읽고 덮으면 뒷표지의 문구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끝까지 빛나는 미소를 포기하지 않는
할아버지의 마지막 여름을 기억하는 아이.
삶과 죽음 사이, 소중한 추억을 간직한
모두에게 깊은 울림을 전합니다."
할아버지는 죽음으로 아이의 삶 속에서 사라진 것이 아니라, 표지 그림 속 실루엣처럼, 그림자처럼 늘 남아 있습니다. 할아버지와의 추억은 아이의 삶을 통해 계속 이어질거예요.
나는 내 아이에게 무엇을 전할 수 있을까, 아이의 삶을 관통한 어떤 의미를, 어떤 가치를 남겨줄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된 <할아버지의 마지막 여름>. 삶의 가치를 다시금 떠올려보게 하는 의미 있는 그림책이었습니다.
가슴이 따뜻해지는 그림책을 번역, 출간해주신 모래알 출판사 관계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 해당도서는 출판사 모래알로부터 지원받아 서평글을 작성했습니다.
나는 눈 깜짝할 사이에 깨달았어요. 하나씩 하나씩 잃어 가다가 결국 사라지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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