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 핀 이야기꽃 - 아이들을 사랑한 사서 푸라 벨프레 이야기
아니카 알다무이 데니즈 지음, 파올라 에스코바르 그림, 안지원 옮김 / 봄의정원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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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영어공부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부모님이라면 <세사미 스트리트>나 <도라도라 영어나라> 같은 프로그램을 한번쯤 접해 보셨을 거예요. 이 프로그램들을 보다보면 영어 이외의 다른 언어가 종종 들리죠. 바로 에스파냐어입니다. 사실 <도라도라 영어 나라>는 원래 스페인어 교육 프로그램으로 제작된 것이고, <세사미 스트리트>에도 기초적인 에스파냐어를 가르치는 코너가 있어요. 만국공통어라 일컫는 '영어'를 쓰는 미국에서 '왜 에스파냐어를?'이라는 궁금증이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찾아보았지요.

미국에서 영어 다음으로 많이 쓰는 언어, 사실상 미국의 제2 공용어라 불리는 언어가 바로 에스파냐어랍니다. 미국 내 히스패닉(에스파냐어를 쓰는 중남미계의 미국 이주민을 뜻함) 비중도 높고, 이런 높은 비중 때문에 에스파냐어만으로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어린이 프로그램에서도 에스파냐어를 다루는 것이래요. (위키백과 참고)

미국의 공립학교 학생의 25%가 히스패닉계라고 하는데, 2018년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어린이를 위해 출판된 책의 3%미만이 라틴계 작가와 일러스트레이터가 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라틴계 작가들의 어린이를 위한 책의 비율은 너무나도 미미합니다. 그렇다고 그런 노력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미국이라는 다양한 인종이 섞인 나라에서 히스패닉계 아이들의 문화적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노력! 그것도 책과 도서관이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문화적 정체성을 알리고자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것도 1920년대에 말입니다. 바로 그림책 <도서관에 핀 이야기 꽃> 속 "푸라 테레사 벨프레"가 그 주인공 입니다.



뉴욕 공공도서관 시스템 최초로 푸에르토 리코 출신 사서였던 푸라 벨프레는 작가이자 민화 수집가, 인형극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1921년 푸에르토 리코 대학의 대학생이었던 그녀는 교사가 될 계획이었지만 언니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뉴욕에 와서 이곳에 정착하기로 결정합니다. 당시 뉴욕으로 넘어온 많은 푸에르토 리코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그녀의 첫 번째 직업은 의류 산업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다중 언어 능력(에스파냐어, 영어, 프랑스어)은 곧 할렘의 135번가에 있는 공공 도서관에서 도서관 사서로 꽃을 피웁니다. 벨프레는 어린이 부서에서 일하면서, 스토리텔링에 대한 열정, 어린이 문학에 대한 사랑, 사서에 대한 가능성을 발견합니다.



그녀가 쓴 에스파냐 바퀴벌레 마르티나와 멋지고 용감한 생쥐 페레즈의 이야기는 미국 대륙에서 푸에르토 리코인이 영어로 출판한 최초의 책이 되었고, 그녀는 이중언어로 도서관에서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에스파냐어를 사용하는 가정에서 아이들이 도서관에 다가가기란 얼마나 힘들었을지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됩니다. 히스패닉계 부모들은 도서관이 '영어'로만 가득 차 있을 뿐이라 생각하고는 도서관을 찾지 않았겠지요. 벨프레의 이야기와 노력은 이민자들이 도서관을 집과 같이 느낄 수 있도록 이끌었습니다. 그녀의 노력으로 도서관은 히스패닉계 주민들에게 중요한 문화 거점이 된 것이었죠.



이야기와 그림책으로 문화적 다리를 연결한 그녀의 노력은 1996년 설립된 ‘푸라 벨프레상’으로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년에 한번씩 라틴, 라틴계 작가와 일러스트에게 수여되는 이 상은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문학 중 라틴계 문화 경험을 가장 잘 묘사한 작품에 수여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책에 담긴 마지막 문장처럼 ‘그녀가 심은 이야기 씨앗은 세상으로 뿌리를 뻗어아가 꽃을 피우고 울창한 숲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푸라 벨프레처럼 이민자 가족이었던 작가 아니카 알다무이 데니즈가 글을 쓰고, 콜롬비아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파울라 에스코바르가 아름답고 따뜻한 그림을 그려낸 <도서관에서 핀 이야기꽃> 을 읽으며, 자연스레 우리나라에 꾸준히 증가 중인 다문화가족을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2050년 정도가 되면 다문화가족의 아이들이 초등학교에서 5명 중 1명이 된다는 기사를 접했는데요, <도서관에 핀 이야기꽃>을 읽으며 우리에게는 푸라 벨프레 같은 분이 있는지, 다문화가족에게 도움이 되고 사회통합에 기여하는 어떤 문화적 씨앗이 심겨지고 있는지 고민하고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아름답고 의미있는 책을 번역 출간해주신 봄의정원 출판사 관계자 분들께 감사드리며 글을 마무리 합니다.

푸라가 심은 이야기 씨앗은 세상으로 뿌리를 뻗어 나가 발을 내딛는 곳마다 꽃을 피우고 울창한 숲을 이루었어요. 지금도 멈추지 않고 이야기 싹을 틔우고 있지요. 마치 푸라가 늘 그곳에 있는 것처럼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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