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어디에 있을까?'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 예전에는 손을 들어 가슴에 대며 마음이 거기에 있다고 했다. 요즘은 좀 배웠다고 손을 머리에 가져다 댄다. 뇌과학이 발전하면서 뇌가 우리에게 미치는 많은 영향을 어설프게나마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게 정답은 아닌것 같다. 골치아픈일을 당면할때는 머리를 감싸며 머리 아프다고 할 수 있지만, 감격스러울때 머리를 잡고 기뻐하지는 않으니 말이다. 도대체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
마음이 사라졌단다. 임상심리학자로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상담도 하고 있는 저자의 말이라 무슨 그런 말을 하냐고 반박하기에는 나의 전문성이 떨어진다. 사람의 마음을 주로 다루는 이가 마음이 사라졌다고 하니 우리가 껍데기만 살아있는 것은 아닌가 걱정스럽기까지 하다. 코로나19라는 세계적인 팬데믹의 영향도 아니라고 한다. 일본의 예를 들어 물질의 풍요와 함께 마음에 대해 살피고 '나는 누구인가?'를 묻고 내면의 가치를 찾던 시대는 지나갔다고 한다. 세계를 뒤흔들며 우리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팬데믹과 함께 경제적인 불안을 이야기 하는 현재에서는 풍요와 함께 마음도 사라졌다는게 저자의 주장이다. '개인'이 강조되는 시대를 살면서 마음이 사라졌다는 저자의 말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바로 앞에 닥친 코로나19라는 커다란 공동의 문제 앞에서 나의 마음은 너무나 작은 이야기가 되어 버렸기에, 물질이라는 커다란 화두 앞에서 마음을 논하기에는 너무나 배부른 소리같은 느낌이 들기에 저자의 주장이 헛소리로 들리지 않는다. 문화가 비슷한 일본의 이야기라 책을 읽으며 위화감이 들지 않고 사람 살아가는게 다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다루는 임상심리학자인 저자는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작은 에피소드에 마음이 있다고 한다. 글을 쓰는 자신의 서브캐릭터 마이씨의 일상 이야기를 통해 그 안에 보이는 마음을 유쾌하게 전하고 있다. 원래 나의 모습과 반대되는 모습, 혹은 제2의 인격은 마음을 풍요롭게 해준다니 나의 삶을 위해서라도 생각해볼 일이다. 저자가 심리학자로서 상담안에서 만난 내담자들과의 에피소드는 각색과 창작(개인적인 비밀이기에)을 통해 이야기 되었지만, 우리중 누군가의 이야기 같았고 봄 부터 겨울까지 계절의 흐름따라 이어지는 그의 이야기는 우리가 경험한 코로나 시기와 맞물려 있어 마치 그의 지인이 되어 일상을 함께 공유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마음은 수시로 지워지기에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며 마음을 계속 찾아야 한다. 일상의 작은 이야기를 통해 마음을 발견하게 되고 우리의 마음이 어떤지를 알게 되는 것이다. 그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상처를 발견하게 되고 이야기를 통해서 상처는 새살이 돋고 흉터로 변해간다는 저자의 말에 마음이 머문다. 어느 드라마의 대사처럼 '살면 살아지느니라' 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나이가 들려면 아직 멀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계속 토로되던 상처들은 어느새 아물게 되지만 말로 표현조차 못하고 가슴에 담고만 있는 상처는 점점더 상처를 키워 나라는 존재 자체를 덮어 내가 나답지 않게 만들기도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저자의 에피소드와 상담실에서의 이야기들을 읽으며 우리의 마음에 대해 생각해본다. 나의 마음을 누군가 알아줬을때 내 마음이 확인받는듯, 내가 맞다는 도장을 받는듯한 느낌이 든적이 있는가? 우리의 마음은 누군가의 마음 속에서 발생하고 그런 경험이 쌓이면서 우리 자신이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저자의 말이 마음에 계속 남는다. 홀로 존재하기 어려운 인간은 서로의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보기 위해서는 대상이 있어야 한다. 그 대상을 통해 상처도 받고 치유도 받는다. 우리는 그런 존재다. 앞만보고 달려가기 보다는 옆을 둘러봐야 되는 이유기도 하다. <마음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를 읽으며 주위를 둘러보고 너의 마음을 살핀다. 나의 마음이 비춰지는지, 너의 마음은 어떤지, 서로 이야기 하게 된다. 이렇게 우리의 마음을 찾아 가는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