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공동체를 말하는 시대가 왔다. 교통의 수단이 발달하면서 우리는 이동의 자유를 얻었고 내가 사용하는 말이 아닌 다른 언어를 듣고 때로는 습득해야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보통 이해하지 못하는 말들을 외계어라고 말한다. 어쩌면 멀지 않은 미래에 진짜 우주어-외계인이 사용하는 외계어를 배워야 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특별한 자랑으로 삼는 부분이 있다. 단일문화, 단일언어, 단일문자는 세계 어디에 내놔도 자랑스럽다. 그러나 엄밀하게 살펴보면 단일언어인 우리나라도 지역별 사투리가 있어서 완전히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는것은 아니다. 요즘 방영되는 드라마 영향으로 제주도 방언을 하는게 유행이라고 한다. 예전에 제주도가 고향인 친구와 이야기를 하는 중에 그 친구가 갑자기 전화 통화를 하는걸 옆에서 듣는데 일본어를 하는줄 알았다. 물어보니 제주도 방언이라고 했다. 같은 나라인데, 억양이나 단어가 전혀 다른 언어가 있다는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강원도가 고향이었던 친구는 무척 과묵했다. 나중에 알게 된건데, 영화 동막골에 나오는 사투리보다 더한 그의 강원도 억양을 들은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리자 친구는 웬만하면 말을 안하는 과묵한 사람으로 살았던 것이다. 그가 태어나고 자라면서 사용했던 언어가 지역 사투리로 정의되며 표준어가 기준이되어 마치 표준어보다 못한 말인것처럼 되었다. 옳고 그르냐의 관점보다 언어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암묵적인 분위기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말과 행동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말에는 자신의 생각과 느낌이 표현된다. 그렇게 말은 나를 나타내는 방법이자 수단이다. 그런데 우리는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니 서로를 잘 알고 소통할 것이라고 기대를 한다. 그러나 같은 단어를 사용하더라도 자신이 경험한 것에 영향을 받고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같은 단어를 같은 의미로 사용해도 그 단어를 말할때의 발음이 다르다면 이상하게 바라본다. 그래서 우리가 그렇게 영어 발음을 중요하게 여기며 신경을 쓰나보다.
어떤 말에는 표면적인 뜻 외에도 그 말의 분위기가 가진 의미가 더 있다. 제주도 방언에 속솜허라는 말이 그렇다. 조용히 하라는 의미로 발음하기 예쁘다고 한다. 그러나 더 깊은 의미를 침묵하라는 것으로 입을 닫으라는 뜻이다. 제주도에서 일어난 4.3사건에 대해 공식적으로 조사되고 수면위로 올려 말하게 된것도 그리 오래지 않다, 그동안은 말하기가 어렵고 꺼렸다는 말이다. 몇십년전의 일인데도 말하기를 조심했다니 얼마나 강압적이며 폭력적이었는지 추측해볼 수 있다. 우리도 모르게 어떤 목소리에 침묵을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가 살펴봐야 한다. 그 강요된 침묵 속에 숨겨진 것들을 돌아볼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