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때 할머니의 젊었던 시절의 사진을 본적이 있다. 흑백 사진 안에는 양장을 하고 올림머리를 멋지게 한 신 여성이 비스듬이 앉아 있었다. 얼굴을 보니 우리 할머니가 맞는데, 사진 속의 여성은 마치 영화배우 같은 분위기여서 깜짝 놀랐다. 가끔 할머니가 해주시던 옛날이야기는 호랑이가 담배피던 시절이 아닌, 마치 지금도 어디선가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 같았다. 그래서 1900년대, 근대를 소재로한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무척 흥미롭다. 분명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의 이야기인데, 그들의 젊음과 활기가 우리와 다르지 않기에 시대를 넘나드는 기분이 든다.
<파리에서 길을 잃다>는 '오만과 편견'으로 유명한 소설가 제인 오스틴을 좋아해서 미국에서 영국으로 와 가이드를 하는 해나의 영화같은 이야기다. 해나는 엄마와 사이가 좋지 않다. 해나는 할머니가 주로 양육을 해주셨고 엄마는 그저 스쳐지나가는 수준의 접점만 있었다. 게다가 엄마는 알코올 중독 등으로 가족들을 힘들게 했던 전적이 화려하다. 그러던 어느날 할머니의 유산 상속으로만 연락하던 엄마가 해나가 있는 런던으로 들이 닥쳤다. 해나에겐 엄마는 문제와 짐이었는데, 해나의 입장에서는 그럴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나를 할머니에게 맡겨두고 자유를 찾아 떠났던 엄마와 따뜻한 가족의 느낌이 있긴 힘들었을것 같다. 그런데, 엄마는 갑자기 나타나 파리에 동행하기를 요청한다. 파리에 증조할머니 아이비의 아파트가 있다는 것을 할머니의 다락방 상자에서 찾았다는 것이다.
여러 사건들 속에서 만나게된 먼지와 함께 1920년대에 머물러 있는 아파트. 그 안에서 증조할머니의 가장 활기차고 사랑이 넘쳤던 순간을 만나게 된다. 엄마에겐 할머니, 해나에겐 증조할머니인 아이비의 젊은 시절이라니! 모녀 둘 다에게 아이비할머니의 모습은 나이든 노년의 모습일것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할머니의 젊은 시절을 마주하게 된다. 할머니가 썼던 일기장과 함께 말이다. 이부분에서 그 기분이 얼마나 묘하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일지 알 수 있었다. 나에겐 태어날때부터 자랄때까지 할머니는 할머니셨다. 어쩌면 당연한 말이겠지만 할머니의 젊은 20대는 조금도 떠올려본적이 없다는 말이다. 마치 할머니는 언제나 할머니였던것처럼 말이다. '아! 할머니도 젊을때가 있으셨구나. 마치 나처럼 이런 나이가 있으셨구나.' 라는 깨달음은 충격이다.
인간관계 중에서 가장 가깝고 특별한 관계는 모녀 관계일것 같다. 엄마와 딸이라는 한쌍은 어떻게든 연결되어 있으니 말이다. 파리에서의 첫날 트렁크를 끌고 파리 골목을 헤매던 것을 떠올리면 그때부터 둘의 관계에서 뭔가가 시작되었던것 같다. 그리고 1920년대 할머니의 일기와 현대 해나의 이야기가 교차되며 전개되는 것도 흥미로웠다. 마치 어떤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느낌이었는데, 일을 하고 사랑을 찾아가는 비슷한 나이대의 두 여성이 사실은 증조할머니와 손녀딸이었다는 이야기였으니까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광란의 20년대'라는 말이 재미있었다. 찾아보니 세계1차대전이 끝나고 평화를 갈망했던 사람들이 화려한 문화를 꽃피우던 시대. 재즈, 블루스가 대중 음악이었골, 영화산업이 떠오르기 시작했으며,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지기 시작하는 모든것이 활기찼던 시대였다. 미국에서 1920년에 여성의 투표권을 인정하는 법이 통과되기도 했다. 1920년대의 파리는 예술의 황금기라는 말이 어울리는 시기였다. 화가 피카소, 소설가 헤밍웨이, 소설가 피츠제럴드, 지금은 모두 대단한 사람들이지만, 그들이 신인이었던 시절이다. 소설 속에 그들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어서 재미있게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었다.
예술의 도시 파리에서 증조할머니 아이비의 1920년대를 따라가며 엄마와 해나의 관계도 달라진다. 서로가 몰라서 오해했던 마음속 비밀들을 밝히고 관계가 개선되며 서로를 받아들인다. 마치 마법처럼 말이다. 그리고 핑크빛 미래를 꾸며 나간다. 길을 잃었던 이들이 파리에서 길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