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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네스
황명화 지음 / 하다(HadA)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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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마음이 깊지만 집착하지 않고, 하염없이 흐르되 서두르지 않고, 넘치지만 소유하려 들지 않으니.

 

  주인 예지를 향한 안내견 '창조'의 마음이기도 하지만 요즘처럼 가벼운 관계들이 판치는 세태에 가장 절실하고 소중한 마음이 아닐런지.

시각 장애인 피아니스트 김예지씨와 안내견 창조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가족이란 어떤 의미인지, 타인과 더불어 산다는 의미는 무엇인지,사랑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요즘 진정한 가족의 의미는 빛이 바랜지 오래다. 거저 한 집에서 지내는 사람들 정도인 것 같다. 예전처럼 오순도순,아웅다웅 하면서 부대낄 시간조차 없는 것 같다. 황금만능주의,엘리트주의,과학기술의 폐해라고 할까? 같은 공간이지만 서로 다른 시간을 살고 있는 사람들.인정하긴 싫지만 서글픈 우리 모두의 현실이다.

 

  그러나 '하네스'에 나오는 예지모녀와 '창조'의 모습은 진정한 가족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비오는 날 비를 싫어하는 '창조'를 두고 혼자 외출하려는 예지나 아침에 살짝 손이 베인 예지를 보면서 불안한 마음에 기어코 예지와 동행하기를 원하는 '창조의 모습'에서,예지가 우울하거나 화가 나 있을 때 어느틈엔가 그 감정들을 읽고 예지에게 앞발을 올리거나 울고 있는 예지의 눈물을 핥아 닦아 주는 모습들에서. 우리는 가족들의 아픔을 얼마나 공유하는가? 그들이 어떤 상태인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스스로 반문해 보았다.가족이란 단순한 혈연이나 같이 한 공간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희노애락에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관계여야 하는 것은 아닌지.

 

  자신의 '색다른 경험'을 위해 데이트 신청을 한 남자 때문에 상처받고 힘들어하는 예지의 모습을 보면서 언제부터인가 '다름'과 '틀림'을 같은 뜻으로 생각하고 있는 우리의 슬픈 모습들이 느껴졌다. 장애인, 다문화가정,외국인 노동자 이들은 우리와 다를 뿐이지 결코 틀린 것이 아닌데 그들을 거부하고 상처주고 외면하는 모습들을 공공연하게 자행하고 있다. '다름'과 '틀림'을 착각하고 있는 우리 자신이 진정한 의미에선 '마음의 장애'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타인의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순간  좀 더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을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지모녀가 나이 든 '창조'를 두고 유학길에 함께 떠날 안내견을 분양 받으러 가는 날에도 끝까지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그들과 동행하기를 원했던 창조의 모습에선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창조'가 예지를 떠나기 싫은 자신의 슬픈 감정보다는 안내견으로서 자신의 본분을 잊지않고 예지를 위해서 말없이 떠나보내고자 애쓰는 모습들에서 나의 추한 모습들이 떠올랐다. 살아가면서 안되는 것들을 뻔히 알면서도 포기하지 못하고 집착했던 모습들과  인간관계에서 내가 준 만큼 받지 못했을 때 원망하고 서운해 했던 때가 떠올랐다.

 

  '안내견'이라는 단어는 내겐 참 생소하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그들이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나 사회적 인식이 안되어 있는 철옹성이기 때문은 아닐까? 그들에게 '장애'란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자신의 핸디캡을 향한 '세상의 편견'과 맞서 싸워야 하는 하루하루가 전쟁터이기에  그들에게 있어 많은 '창조'들은 단순히 길을 안내하는 개의 의미가 아니라 그들의 삶을 함께 공유하고 공감하는 가족보다 더한 존재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 하나니라','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는  유치환님의 시 구절이 가슴에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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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 혜민 스님과 함께하는 내 마음 다시보기
혜민 지음, 이영철 그림 / 쌤앤파커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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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은 무엇일까?’ 라는 질문을 던지므로 잠시나마 ‘멈춤’이라는 시간을 우리에게 던져주는 책이다. 책 중간 중간에 그려져 있는 우창헌님의 몽환적이면서도 따뜻한 그림들은 활자의 피로를 풀어주고 혜민스님의 현답을 되새김질 할 수 있는 여유를 주는 것 같다.


나는 온화한 훈풍처럼 생명의 기운을 돋우는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싶다.

하나의 영혼이 다른 영혼에 불을 붙어줄 수 있다면,

어둠과 추위에 맞서 싸우는 한 인간이

한 조각 불을 밝히고 다른 이들에게도 나누어 줄 수 있다면,

나도 또한 그렇게 하고 싶다. -우창헌-

 

  한줄 한줄 이 책을 따라가는 동안 내가 잠시 ‘삼림욕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착각 속에 빠졌다. 자연과 벗하면서 자연을 감상하고 서로 어우러져 숨 쉬고 있는 자연의 섭리를 보면서 마음에 평안과 타인과의 어우러짐을 생각하게 되듯 저자의 글도 나, 타인, 인생에 대해서 객관화 할 수 있는 시각과 그로 인해 찾아오는 평온들을 선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혜민스님은 8강(휴식,관계,미래,인생,사랑,수행,열정,종교)을 통해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나, 타인, 인생에 대한 생각들을 구체적인 현실의 문제들을 예로 들어 부드럽고 따뜻하게 토닥여주기도 하고 때론 우리네 밑바닥의 더러운 내면들을 바라볼 수 있도록 질타하고 있다.

  미래의 장에서 ‘삶은 다른 사람들과의 경쟁이 아닌 나 자신과 벌이는 장기 레이스이다’라는 문장에서 늘 남을 의식하고 비교하면서 그로 인해 힘겨워하면 살아가는 우리 삶에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고 자신만을 빛깔을 가지기를 권유하신다. 나 역시 과거나 현재의 나보다는 남들과의 비교나 경쟁으로 힘들어 하는 편이다. 저자로 인해 남과의 경쟁이 아닌 자신에게 충실하기 위해 열심히 하면 일을 즐길 수 있고 마음에 여유를 가질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인생의 장에서 미국 사람들은 그 사람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를 중요하게 여기는 반면 우리들은 그 사람을 ‘소속과 직위’라는 잣대로 재단한다는 부분에서는 우리가 학연, 혈연, 지연이라는 세 가지로 얽히고설키는 모습들이 떠올랐다. 가장 중요한 그 사람의 면면이 아니라 그 사람의 배경을 더 중요시 여기는 어처구니없는 우리네 편협한 시각에 일침을 가하시는 것 같았다.

  수행의 장에서 우리 마음 안에는 ‘히틀러와 테레사 수녀’가 같이 있어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히틀러의 광폭함으로 또는 테레사의 숭고한 사랑으로 나타날 수 있음을 얘기하고 있다.

 

  ‘멈춤’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너무나 낯설다. 현실과는 동 떨어진 언제나 쫓기듯이 멈추면 바로 경쟁에서 인생에서 낙오될 것 같은 위기감으로 앞만 보고 달려 온 우리이기에 더욱 더. 그러나 어느 순간 찾아 온 ‘멈춤’에 또는 어쩔 수 없는 ‘멈춤’으로 인해 고통 받는 영혼들에게 나와 타인과의 관계와 그 속에 나를 돌아보고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며, 내가 과연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가장 우리에게 소중한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답들을 잔잔하고 따뜻한 눈길로 답해주고 있다.

  ‘멈춤’이란 곧 ‘내려놓음’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인생에 있어서 분노와 욕망들을 내려놓음으로 그 빈자리에 평온과 휴식이 찾아올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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