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것들
필립 지앙 지음, 윤미연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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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립 지앙의 열여섯번째 장편소설인 '나쁜 것들'에 나오는 프랑시스는 저자의 자조적인 모습들이 많이 투영되어 있다고 한다.이 책을 색깔로 표현해 본다면 회색빛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족여행 중 아내 조아나와 딸 올가의 갑작스런 죽음과 남은 딸 알리스의 실종,재혼한 쥐디트에 대한 끊임없는 의처증,대학동창 안 마르그리트와의 만남과 그녀의 죽음,안 마르그리트의 아들 제레미와 쥐디트의 불륜 등 온통 늙음에 대한 또는 삶 자체에 대한 부정적이고 암담한 시선만이 그려져 있는 것 같다.


  문학축제에 참석한 주인공 프랑시스가  출판사 여사장 마를렌과 지낸 하룻밤으로 인해 아내가 상처입고 그 상처를 치유할 시간도 주어지지 않은 채 아내와 맏딸의 죽음을 맞이하게 된 주인공은 어쩌면 자신 스스로 조차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기에 더욱 더 주변사람들에게 마음의 문을 닫고 자신만의 세계를 고집하고 스스로에게 벌을 내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부정을 안 딸 알리스가 '추잡한 인간'이라고 끊임없이 외면하고 경멸하면서 무늬만 가족인 채로 서로를 용서할 수 없는 이들을 보면서 '가족'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어쩜 모든 사람들이 등을 돌릴지라도 그 방패막이가 되어 주어야할 가장 가까운 사람들 '가족' 그 이름만으로도 이성보다는 감성이 앞설 수밖에 없는,차마 버릴 수 없는,끊을 수 없는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소설 속에 부녀가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외면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스스로가 아무렇지않게  행했던 많은 일들이 가족이기에  더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주인공 스스로가 자신을 '텅 빈 집안을 맴돌면서 종이에 글이나 시커멓게 채우며 살아가는 염세적인 한 마리 늙은 짐승' (p261)이라고 표현한 것 처럼 이 한 문장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어쩜 자신 스스로가 저지른 부정을 스스로조차 용서할 수 없고 용서조차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스스로에게 단죄하기 위한 몸부림으로 모든 주변인들을 거부하면서 스스로 홀로 남겨지는 것을 선택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때로는 외로움에 몸부림치면서 때로는 스스로를 위안하면서.


  책 표지 그림에 해 저문 저녁 무렵 의자에 쓸쓸히 혼자 앉아있는 한 남자의 뒷모습만으로도 쓸쓸함과 외로움이 느껴진다.필립지앙이 말하고자 했던 '나쁜 것들'(원제 : 용서할 수 없는 사람들)은 과연 누구일까? 또한 인간에게 있어 스스로 또는 타인을 단죄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떳떳하게 나설 수 있는 이가 있긴 한 걸까?


  온통 회색빛이기에 쓸쓸함,외로움,어두움이란 부정적인 단어들만이 난무하지만 우리 인생에 있어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부분들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한편으론 이 한바탕의 회색빛으로 인해 도리어 우리안에 있는 석연치않은 감정들이 정화되는 느낌조차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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