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는 손의 마지막 문단.

아이가 서두르듯 벌떡 일어나 부엌 등을 끈다. 춥고 어두운 겨울밤, 아이와 나 사이에 노란 빛이 일렁인다. 불빛 아래서 우린 왜조금씩 달라 보일까. 이제 정말 소원 빌 시간이다. 아이에게 박수쳐줄 준비를 하며 숨을 고른다. 재이가 눈을 감고 슬며시 미소짓,
는다. 그런데 그걸 본 순간 내 속에서 짧은 탄식이 터져나온다. 웃음 고인 아이 입매를 보자 목울대가 매캐해지며 얼굴에 피가 몰린다. 불현듯 저 손, 동영상에 나온 손, 뼈마디가 굵어진 손으로 재이가 황급히 가린 게 비명이 아니라 웃음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정말 그렇다면 그동안 내가 재이에게 준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윽고 눈뜬 아이가 맑은 눈망울로 나를 바라본다. 그러곤 가슴팍을 크게 부풀려 숨을 모은 뒤 초를 향해 훅 입김을 분다. 초가 꺼지자 주위가 순식간에 어두워진다. 그 어둠 속애서 잘 보이지도 않는 재이 얼굴을 찾으려 나는 꼼짝 않는다. (p221 , 가리는 손. 마지막 문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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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엄마랑 아빠는 …… 지쳐 있었어.
‘이해‘는 품이 드는 일이라, 자리에 누울 땐 벗는 모자처럼 피곤하면 제일 먼저 집어던지게 돼 있거든. .……… 그런 걸 다 설명하진 않는다. (p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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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재이야, 어른들은 잘 헤어지지 않아. 서로 포개질 수 없는 간극을 확인하는 게 반드시 이별을 의미하지도 않고, 그건 타협이기 전에 타인을 대하는 예의랄까, 겸손의 한 방식이니까. 그래도 어떤 인간들은 결국 헤어지지. 누가 꼭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각자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해. 서로 고유한존재 방식과 중력 때문에, 안 만나는 게 아니라 만날 수 없는 거야. 맹렬한 속도로 지구를 비껴가는 행성처럼, 수학적 원리에 의해 어마어마한 잠재적 사건 두 개가 스치는 거지. 웅장하고 고유하게 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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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보건교사 안은영 오늘의 젊은 작가 9
정세랑 지음 / 민음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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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랑 작가님 최고. 필체도 스토리도 사건들도 상상력도 모두 최고. 당신은 더한 쾌감을 느낄 수 있는 책도 쓸 수 있어요. 기다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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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간 한 번쯤 돌이켜볼 문장, 독보적인 캐릭터들, 딱 떨어지는 단어, 잊혀지지 않은 존재들, 재치 넘치는 웃음 포인트들. 행복한 책이었다. 별 하나가 없는 건 단지 내가 이 책이 끝나바려서 아쉬워서이다. 작가의 말에서 평생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셨는데 나도 평생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작가의 말마저도 사랑스러웠다. 읽는 내내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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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항구의 사랑 오늘의 젊은 작가 21
김세희 지음 / 민음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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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보려는 시도, 더 공정하게 바라보려는 시도들에 박수를 보낸다. 여학생들의 사랑을 처음 다룬 만큼 새롭지만 또 한편 무언가를 더 기대하게된더. 이 책을 시작으로 이 또래의 기억들이 더 많이 소환되고 꺼내질 것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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