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모든 미친년‘이나 ‘사이코‘가 ‘괴짜‘ 만큼 가치를 인정받는다면 어떨까? 우리가 위에 묘사한 온건한 변화보다 멀리까지 우리의 지평을 펼친다면 세상이 어떻게 달라질까? 만약 표준의 한계선을 넘어가는 마음의 상태들이 억눌리지 않고 키워진다면 어떨까? 평범하지 않은 정신적·감정적 관점이 있는 사람들이 그래도 받아들여지는 사회가 아니라 ‘그래서 오히려 더 가치 있는 일원으로 인정받는 사회가 이상적 페미니스트 사회의 핵심이다. 우리는 억압이 아닌 지지를 정신보건의 기본 원칙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틀림없이 페미니스트 유토피아의 문화는 평범하지 않은 정신 상태를 경험하는 사람들이 살아남는 데 그치지 않고 번영하는문화일 것이다. 분명히 짚고 넘어가자.
내 말은 정신적인 병이 현실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정신병은 사람들이 현실과의 접촉을 모조리 놓치게 하서나 자신이 원하는 대로 안전하게 살아가는 것을 방해할 수도 있다. - P32
을 것이다), 정신적인 병은 치명적인 경우가 몹시 흔하지만, 극도의 정신적 고통을 겪거나 위험한 망상을 하는 환자들을 안전하게관리하는 것과 그들에게 삶에 대한 자율권을 주는 것 사이에서 늘균형을 잡아야 한다. 이 점을 감안할 때, 환자와 정신과 의사가 협력하는 치료 계획의 일환인 약물치료는 반드시 페미니스트 유토피아의 정서적 포용 문화를 실행하는 선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현존하는 정신 건강 관리의 유형과 우리가 앞으로 만들고 싶은 유형의 차이점은, 평균적인 범주 밖으로 넘어가는 마음의 상태들을 억압하거나 치료하지 않고 가능한 한 좋은 환경에서 경험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체제에서는 심리적 상태가 병리화되고, 난감하게도, 상상할 수 있는 한 건강에 가장 해로운 환경에서 치료된다. 조증이나 우울증이 있는 사람을 일반 정신 병동에 보내는것은 방금 심장마비를 겪은 사람을 공습 중에 급조한 야전병원에보내면서 회복을 바라는 것과 같다. - P33
평범하지 않은 정신적상태를 억누르는 기술을 환자에게 가르치는 게 아니라 각 개인이 스스로 좋아지는 데 가장 알맞은 방법을 찾도록 돕는 게 핵심이되리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약학적으로나 비약학적으로나 ‘처방전‘은 페미니스트 유토피아의 정신건강 관리의 일부로서, 인권을 박탈하는 방식은 결코 안 된다. 개별 환자는 관리받을 때 자신의 권위와 주체성을 인정받고 직접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정신건강 환자들의 자율성을 (특히 입원하는 경우) 박탈하는 것은 ‘정신적으로 아픈 개인이 환자로서만이 아니라 시민으로서도의사 결정을 내릴 수 없다는 생각에서 나온다. 여자들은, 히스테리적이든 그렇지 않든, 특히 이런 식으로 권리를 박탈당할 위험에 처해 있다. 행복의 일반적인 기준에 순응하지 않는 정신 상태는 바람직하지 않고 수용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왜냐하면자본주의의 거대한 거짓말과 어긋나기 때문이다. 삶은 그저 개인적인 행복 추구 외에 아무것도 아니며 그 행복의 척도는 돈이라는거짓말 말이다. 행복이 인간의 기본이라는 원칙에 동의하지 않는마음 상태는 다 치료해야 할 질병으로 여겨진다. 현 상태의 부르주아에 부합하지 않는 모든 사람은, 기껏해야 사회의 해충이고 심 - P34
지난 2002년에, 서독의 극좌파 테러리스트 단체인 적군파의 가장 유명한 일원이었던 전직 언론인 울리케 마인호프Ulrike Meinhot 가감옥에서 죽고 26년이나 지난 시점에 그녀의 뇌를 부검했다. 그녀에게 적군파의 테러에 가담한 죄를 물을 수 없다는 것을 입증하기위해서였다. 마인호프가 1962년에 수술을 받으면서 대뇌변연계가 손상되었고, 거기서 유발된 감정적 불균형이 테러를 초래한 원인이라는 것이었다. 개인의 이념과 뇌 손상의 관련 여부와 별도로, 이것은 정치적 여성을 중성화하려는 우리 사회의 욕망을 보여 준다. 여자가 기존 체제에 불만을 (특히 폭력적으로) 드러내면, 그것은 정치적 신념이 아니라 비이성이나 감정적 불안의 표현으로 무시당한다. 자궁이 돌아다니고 있다거나 뇌에 멍이 들었다는식으로, 여자의 행동은 몸의 지배를 받는다고 여겨진다. 슬픔, 불만, 분노의 표현을 가치 있는 것으로 인정한다면 자본주의 사회의구조를 몰아가고 정당화하는 바로 그 생각의 토대가 뒤흔들릴 것이다. 대다수의 주류 사람들보다 고통과 황홀을 더 자주 느끼는 사람들은 페미니스트 유토피아를 상상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는다. 그 - P35
들은 자원이다. 우울증을 동반하는 비판적인 마음 상태는 세상의잘못된 점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것은 특정한 조증과 관련된 민감성, 창의성, 에너지와 함께 예술적이고 정치적인행위에 꼭 필요하다. 소중한 유토피아 사상가들을 잃지 않기 위해우리는 불행을 억압하고 날카로운 열정을 무디게 만드는 체제인자본주의적 가부장제와 그 오른팔인 의학을 폐기해야 한다. 영화제작자인 파스빈더r. w. Fassbinder 가 제대로 자각했듯이, 좌절을 못 느끼는 것은 위험한 안주로 이어질 수 있다. "어떤 이유도, 어떤 동기도, 어떤 절망도, 어떤 유토피아도 갖지 않은 사람이야말로 남들에게 가장 쉽게 이용당한다." 평범하지 않은 정신적·감정적 상태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바꾸는 것은, 정신의학의 실천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억압때문에 침묵당한 모든 목소리를 해방하기 위해 내딛는 핵심적인 한 걸음이다 - P36
한 걸음이다. 우리가 자본주의적 가부장제를 떠받치는 핵심 원칙들 중 행복 또는 순응만이 가치 있는 마음 상태라는 원칙을 들어내고 나면, 체제는 흔들리기 시작하다 결국 무너질 것이다. 우리세계를 다시 정의하려면 반드시 우리가 생각하는 정신 건강을 다시 정의해야 한다. 가부장제가 죄악시하며 규탄하는 것을 페미니스트 유토피아는 미덕으로 칭송한다. 절망을 드러내고, 소리 내어불만을 토로하고, 대담하게 자유로운 상상력을 펼치고, 석양으로부터 더 많은 것을 원하는 것을 말이다.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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